사람의 기억을 지배하는 것은 무엇일까. 다닐로 키슈의 단편집을 읽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이 작가의 경험 혹은 독서는 우리의 평범한 경험과는 거리가 있는 곳에 위치해 있다. 그의 기억을 지배하는 모티브는 수용소로 상징되는 이데올로기의 폭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폭력은 길거리의 깡패처럼 정확한 실체가 존재하지 않는 폭력이다. 실체가 없다는 것은 달리 말하면 어느 곳에나 존재한다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실체가 없는 폭력은 정교한 조직에 의해 소리없이 움직이는 톱니바퀴와 같다. 그 기계는 너무나 커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악의 메카니즘에 의해 작동되는 세계, 그 세계는 바로 인간성이 말살되는 세계인 것이다.
동구의 역사는 다양함의 역사이다. 옛날부터 거주하던 슬라브인과 무력을 통해 들어온 이슬람세력, 그리고 서구에서 쫓겨나 삶의 자리를 찾아 들어온 유대인의 다양한 역사는 동구의 모양이 어느 하나로 고정시킬 수 없음을 암시한다. 그러기에 이 책에 나오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은 어찌보면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의 고통은 바로 세상의 고통인 것이다. 또 이곳에서 자행되는 억압은 세상에서 자행되는 억압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닐로 키슈의 작품은 지금 읽어 내려갈 때도 전혀 낡은 이야기가 아니다. 그가 경험한 세계는 인간의 경각심이 무디어지면 언제든지 고개를 들고 나타날 세계이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으며 아쉬웠던 점은 다닐로 키슈가 89년에 사망했다는 사실이다. 그는 전체주의의 사회에서 태어나 이를 경험하고 그 속에서 함몰되었다. 그가 죽기전까지 바라보았던 세계는 암울한 색조였다. 그가 아직껏 살아있었다면 동구의 변화를 경험했다면 나는 <일곱장으로 구성된 한 편의 희망극>을 읽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였다.
<문학은 과거를 되돌려 죽은 자들을 돌아오게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을 후대의 독자들 앞에 의미있게 부활시킴으로써 미래를 변화시킬 수는 있습니다> -다닐로 키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