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로빙거 세계 - 한 뿌리에서 나온 프랑스와 독일
패트릭 기어리 지음, 이종경 옮김 / 지식의풍경 / 2002년 1월
평점 :
절판


프랑크족의 메로비치에 의해 세워졌다는 메로빙거 왕조는 유럽사에서 보면 초기 중세시대에 해당되는 부분이다. 이 시기의 역사는 우리에게 다소 낯설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이 시기가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의 공동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어디에서도 거칠고 세련되지 못한 이들을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인정하기를 꺼려했다. 그렇기 때문에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역사의 첫머리는 이 시대로부터 시작하고 있음에도 이 시기는 그렇게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오지 못하고 있다. 메로빙거 왕조가 이렇게 홀대를 받는 이유는 로마의 몰락 이후 서유럽 세계는 깊은 침체 속으로 빠져들어갔기 때문이리라.  즉 야만의 시대라고 인식된 이 시기를 선뜻 자신들의 자랑스런 역사의 시작으로 삼으려는 국가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대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혼란스런 시기가 서서히 정리되면서 이후 형성될 중세 유럽의 모습을 서서히 만들어가고 있는 시기였다. 라틴어가 종교의 언어이면서 외교의 언어로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고, 로마는 서유럽에서 이단과의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나감으로서 이 지역의 정신문화를 선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앞으로 로마가  이 세계의 중심으로 나설것임을 보여주는 표식이었다.


메로빙거의 시대는 클로비스가 성 레미에 의해 세례를 받음으로서 교회의 역사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왕의 세례를 통해 교회는 왕국에 정통성을 부여하는 대신 왕국은 교회의 보호자가 된 것이다. 이는 교회가 유럽을 기독교화하는데 세속의 힘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아주 중요한 사건인 것이다.


또 이시기는 지중해 맞은편에 있는 팔레스타인지역과 북아프리카 지역이 아랍인들에 의해 이슬람화화되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랍인들은 왕성한 정복의 결과 지브로울터 해협을 넘어 유럽의 서쪽 끝인 이베리아반도를 석권하고 피레네를 넘어 서유럽을 위협한 시기이기도 하다. 아랍의 침입을 막아낸 칼 마르텔은 이후 메로빙거 왕조의 실질적인 지배자가 되어 그 후손들이 새로운 왕조를 세우게 된다.  아랍의 팽창으로 서유럽은 동쪽으로는 동로마제국, 서로는 아랍인에 의해 포위된 형국이 되었다. 서유럽이 이 상태를 탈피하기까지는 앞으로도 수 세기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는 왕성한 선교의 시기이기도 하였다. 아일랜드는 유럽에서 가장 먼저 기독교를 받아들여 섬 전체가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변모하였다. 그리고 이 섬에서 교육을 받은 수도사들이 대륙으로 파견되어 대륙을 그리스도의 영성으로 채워가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서유럽은 모든 것이 뒤떨어져있었지만  반면 이들을 동과 서에서 압박하고 있던 동로마제국과 이슬람세력은 세련된 문명의 사회였다.  이런 외적인 요인은 이 왕국을 자극하는 요소였다. 이런 자극은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이 교회 혹은 수도원을 통해 로마적인 요소를 끊임없이 발견하여 왕국의 체제에 적용하기를 요청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 결과 메로빙거 왕조는 서서히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잊혀졌던 로마문명의 기본적인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이 토대를 배경으로 샤를 마뉴에 의해 카롤링거 왕조가 세워지게 되는 것이다.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는 바로 찬란한 태양빛을 가능하게한 여명의 아침인 것이다. 그 희미한 빛 속에서 우리는 서유럽 중세의 기본적인 모양을 볼 수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땅에서 일어난 전쟁이면서도 오히려 서구 학자들의 기록이 더 많은 전쟁. 자신의 땅을 수호하려는 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남의 땅을 훔치려던 자들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는 전쟁. 그것은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이 부조리한 전쟁의 당사자인 아랍인이 쓴 십자군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무척 생소한 경험이다.  그만큼 십자군에 대한 시각은 서구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서구의 기록에는 자신들이 상대한 아랍인들을 거의 이교도로 지칭하는 반면 아랍의 기록은 프랑크인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이렇게 명칭 하나만으로도 서로가 상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전쟁이 십자군 전쟁인 것이다. 서구가 바라보는 이교도는 정복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아랍이 표현하는 프랑크인에는 질시보다는 동등한 전사로서의 배려가 엿보인다.


아랍인들에게 십자군이 도래하기 전에 예루살렘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국에 다녀온 여행에서 잠시 머물렀던 도시로 인식될 뿐이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도시는 신의 도시 메카였다. 아랍인들에게 예루살렘은 기독교도들의 도시였을 뿐이다. 이  말은 예루살렘 지역이 이슬람교도들에게 중심지가 아니었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중심지를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카이로, 이스탄불 등에 설치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에게 종교적인 도시는 메카였고 그 다음이 메디나였다. 예루살렘은 아무리 종교적으로 격상을 시켜도 3번째 도시 이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 종교집단이 예루살렘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던 것은 서로 이해되지 못한 부분 때문이었다. 기독교도들에게 예루살렘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일어난 거룩한 땅이었다. 이 땅을 기독교도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반면 아랍인들에게는 이 전쟁은 명예에 관한 것이었다. 아랍의 관습에 따르면 자신이 모욕을 당하면 전 가문이 나서서 그 수치를 씻어주어야만 한다는 법칙이 존재하였다. 이 법칙이 민족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즉 서구의 침입은 전 아랍이 일거에 모욕을 당한 것이었다. 이 수치를 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원상태로 회복시켜 놓아야만 했다. 이것이 아랍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모든 기독교도들이 사라지는 날까지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성전-지하드-의 개념으로 승화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기에 아랍인들은 전쟁이 지속되던 1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내 복수의 규칙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였다. 기독교도가 휴전을 요청하면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휴전을 수락하였다. 이런 신사적인 전쟁수행방식은 기사도를 존중하던 유럽인들의 눈에도 경이로운 모습으로 비쳐졌음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아민 말루프는 이런 모든 사실을 담담하게 소설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아랍은 쇠퇴의 길을 걷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본다. 이 전쟁으로 예루살렘은 최종적으로 아랍의 수중에 남았지만 그 댓가는 너무 가혹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아랍세계가 십자군의 도래에 맞서 단결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이런 지역주의적 분열로 인해 아랍은 더욱더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비극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아민 말루프의 말대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의 소설을 이용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가슴에 와닿는 기록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전쟁의 뒷풀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아랍세계는 분열되어 있어 서구의 침탈에 효과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 그 현실이 우울하고도 슬프게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민족과 제국 크로노스 총서 5
안토니 파그덴 지음, 한은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엉뚱하게도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전사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민음사 보르헤스전집 3권 알렙참조>를 이야기의 실마리로 삼아 나간다. 드룩툴푸트라는 야만인이 라벤나의 로마군 전초지에 약탈자로 도착하여 자신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이 약탈자 야만인에게 세계란 자신의 부족이었다. 이 부족을 벗어난 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세계를 접하므로서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느낀다. 그의 이야기는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만주족이 자신들의 세계를 떠나 중원을 장악했을 때 그들은 왕국을 얻었지만 민족을 잃어버렸다.  안토니 파그덴은 민족에서 제국으로 나아가는 것, 즉 변방에서 중앙으로 나아가면서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탄생하였다고 본다. 그 시작을  알렉산드로스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 신성로마제국, 대항해시대와 이베리아반도의 부상과 몰락, 영국의 등장, 그리고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획득으로 제국은 쉴새없이 확장되어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 제국의 확장은 얼마나 경쟁적이었는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남극과 북극 심지어는 에베레스트 산정에까지 확대되어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국은 고정적이며 죽은 물체가 아니다. 제국은 히드라와 같아서 한쪽을 상실하면 다른 쪽으로 확장하는 속성을 가진 유기물이다.  제국주의자들은 하나를 잃으면 다른 쪽에서 그 잃어버린 것 만큼을 얻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제국주의가 한창 극성기였을 때 영국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동일한 넓이의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은 동쪽에서 식민지를 상실하면 즉시 서쪽에서 보충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땅넓이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신성로마제국의 칼 5세의 경우 그는 가톨릭적 세계관을 통해 이 지상에 거룩한 제국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즉 칼 5세의 경우 지리적인 확장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통합까지도 염두에 둔 명실상부한 제국을 건설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의 이런 시도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이 시도는 멀리 알렉산드로스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헬레니즘이라는 단어로 알려진 민족과 민족의 통합, 제국과 제국의 통합이라는 거대한 이상주의적 세계관을 세계사속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것이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에서부터이다. 그의 야망은 이후 서구 세계의 제국관으로 확실하게 자리 매김을 하였다. 이런 주장은 잘사는 나라가 못사는 나라를 흡수하여 더 잘살게 만들어 준다는 이론으로 진화하였다. 이런 주장은 우리의 주위에서 자주 듣게되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어두운 굴곡의 역사가 첨가되므로서 제국의 어두운 면이 드러난다.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피지배자-노예-는 항상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정복한 자와 정복당한자로 구분될 때 지배하는 민족과 지배받는 민족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즉 정복자는 주인이되고 피정복자는 노예가 되는 이 과정에서 서구의 인종적 우위가 확립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인종적 우위의 확립에 종교의 인과론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모순이라고 할 수있다.  서구의 제국은 일차세계대전 이후 거의 소멸된것으로 보는 것이 일치된 견해이다. 이제 지구상에는 알렉산드로스 이후 지속되어왔던 전통적인 관념의 제국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제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제국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것은 다국적 기업과 같은 경제적인 차원의 제국인 것이다. 이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강대국은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제국이 통합과 교화라는 이상적인 구호를 내건것과는 외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사실은 고전적인 제국주의자들의 주장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왜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그렇게 쉽게 허용했을까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설탕의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카리브해의 섬들을 식민지로 삼아 이곳을 거대한 설탕 플란테이션으로 만들어 세계 설탕시장을 장악하려하였다. 하지만 북아메리카는 설탕 이전에 부를 보장해 주었던 담배 이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땅이었다. 영국은 설탕과 담배 가운데서 설탕을 택했을 뿐이었다. 이 결과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고 영국은 카리브해의 모든 섬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품목이 설탕에서 석유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그넨의 인간적인 민족과 제국관은 낭만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 낭만성을 관통하고 있는 서구의 시선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독일제국 1871~1919 크로노스 총서 3
미하엘 슈튀르머 지음, 안병직 옮김 / 을유문화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독일처럼 유럽의 중앙부에 자리잡고 있는 국가가 19세기 후반에 들어와서야 비로소 통일된 민족국가를 형성했다는 사실은 역사를 읽어가면서도 참 당혹스럽다. 독일민족들은 오토 대제가 신성로마제국의 왕관을 쓰고 즉위한 시점을 제1제국으로 부른다. 그리고  그 영광스러운 제국은 정치적 이해에 의해 갈갈이 ?기고 분열되어 유럽의 2등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하지만 전 유럽의 제왕으로서 독일인이 즉위하였다는 그 사실은 앞으로 전개될 유럽사에서 독일의 위치를 결정하게끔하는 미약이 되었다. 비스마르크의 <철과 피>로 유명한 제2제국은 보-오전쟁, 보-불전쟁의 승리로 인해 획득한 피와 땀의 제국이었다. 그리고 이 통일은 실제로 독일 역사에서 이룩한 진정한 통일이었다. 하지만 이 제국은 전쟁으로 탄생하여 전쟁으로 무너지고 말았다. 제3제국은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1933년 시작되었다. 히틀러는 자신이 이룩한 제3제국이 천년을 지속할 천년의 제국으로 불리우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확하게 12년만에 이 제국은 붕괴하였다.


미하엘 슈퇴르머가 저술한 이 책은 제2제국에 관한 것이다. 여기서는 독일의 통일에서부터 일차세계대전으로 달음질쳐가는 독일 제2제국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그려내고자 하는 독일의 모습은 서구 열강 가운데 비교적 늦게 산업혁명에 돌입한 독일이 어떻게 단기간 안에 제국주의적 국가로 변모하게 되었는가를 간결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간결함 속에는 독일이 독일다운 국가로 형성된 제2제국에 대한 자부심이 깔려있다. 이 자부심은 결국 전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방향으로 가게된다. 하지만 일차세계대전을 독일인들은 결코 패배한 전쟁으로 부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이 전쟁은 휴전이었으며 독일의 배후를 칼로 찌른 불순한 세력에 의해 독일은 신의를 배신당해 어쩔 수 없이 휴전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이런 자부심이 생기게 된 시작이 바로 제2제국인 것이다. 이들 제2제국의 건설자들은 1천년간 분열된 독일을 통일시켰다는 자부심이 대단한 융커들이었다. 이들은 이 통일의 자부심을 민족적 자부심으로 승화시키면서 제국의 모든 것을 군사적인 것으로 변모시켰다. 이 과정에서 블룸과 같은 자유주의자들을 처형하고 사회주의자들을 탄압하는 폭거가 자행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이런 사건은 지나가는 역사의 흔적일 뿐이다. 이 책은 제2제국을 통해 어떻게 현대적인 강국 독일이 탄생될 수 있었는가를 조명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읽어볼 만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단 이 책은 전문적인 역사서가 아니라 일반인을 대상으로한 교양서적인 관계로 역사적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읽는 사람들이 독자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나면 독일의 제2제국의 성격과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었는지를 알게되고, 아울러 이런 독일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바이마르 공화국의 이상이 얼마나 나약하게 느껴졌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등장하는 제3제국은 독일의 운명이 아니라 제2제국의 속성에 따른 숙명이었다는 것도 깨닫게 될 것이다. 역사가 괘도에서 이탈하여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는 것처럼 당혹스러운 것도 없다. 그 당혹스러움은 가끔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이 책을 읽은 감정이 그렇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체제 예술 - 사상신서 21
사카자키 오쯔로오 / 과학과사상 / 1990년 3월
평점 :
품절


라드제프, 틸만 리멘슈나이더, 고야, 발라하, 그로츠, 콜비츠, 슐레머, 피카소...이 끝없이 이어지는 명단의 행렬은 자유의 이어짐이다. 80년대 민중예술이란 장르가 우리의 눈 앞에 아주 가깝게 다가온 적이 있었다. 이들의 작품은 선이 거칠고 투박하면서도 아주 묵직한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지만 걸개 그림 이상의 의미는 아니었다. 즉 그동안 보아오던 익숙한 것에서의 일탈이 주는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그만큼 민중예술이란 장르는 생소한 것이었다.


그러던 차에 이 책을 구해서 읽게 되었다. 호기심으로 시작된 독서는 읽으면 읽을수록 깊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고야의 <카프리치오>시리즈가 이렇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줄은 미처 깨닫지 못하였고, 틸만 리멘슈나이더란 조각가를 알게 된 것 또한 큰 수확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예술과 저항 그리고 배고품의 관계였다. 배가 부르면 저항이 사라지고 이렇게 되면 격렬한 예술은 결코 탄생할 수 없다는 단순한 도식이 그려지면서 권력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였다. 우리는 높이 날아 멀리 볼 생각만 하지만 넘어져서 밑X멍도 봐야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 넘어짐이란 자체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누가 자신의 현재 위치를 부정하면서 넘어지려 하겠는가. 이 책은 예술이라는 장르를 다루고 있지만 사실은 민중의 혁명사이며 좌절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민중은 언제나 순진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삶을 위해 봉기하지만 그 순수한 원칙은 항상 굴절되었음을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하지만 불굴의 예술가들은 그 민중의 원칙을 자신들의 손끝을 통해 우리에게 남겨주고 있다. 이 책은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보여주면서 그 작품이 생성되게 된 역사적 배경과 예술가 개인의 고통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이들 예술가들의 작품이 더욱더 강렬한 현실로 다가오는지도 모른다.


*카프리치오스는 <마음 내키는대로>라는 스페인어라고 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