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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과 제국 ㅣ 크로노스 총서 5
안토니 파그덴 지음, 한은경 옮김 / 을유문화사 / 2003년 4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엉뚱하게도 루이스 보르헤스의 단편 <전사와 포로에 관한 이야기:민음사 보르헤스전집 3권 알렙참조>를 이야기의 실마리로 삼아 나간다. 드룩툴푸트라는 야만인이 라벤나의 로마군 전초지에 약탈자로 도착하여 자신의 세계와는 전혀 다른 세계를 경험한다. 이 약탈자 야만인에게 세계란 자신의 부족이었다. 이 부족을 벗어난 세계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다른 세계를 접하므로서 자신이 그동안 살아왔던 세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을 느낀다. 그의 이야기는 멀리 갈 필요도 없다. 만주족이 자신들의 세계를 떠나 중원을 장악했을 때 그들은 왕국을 얻었지만 민족을 잃어버렸다. 안토니 파그덴은 민족에서 제국으로 나아가는 것, 즉 변방에서 중앙으로 나아가면서 강한 민족이 약한 민족을 제압하는 과정에서 제국이 탄생하였다고 본다. 그 시작을 알렉산드로스에서부터 시작하여 로마, 신성로마제국, 대항해시대와 이베리아반도의 부상과 몰락, 영국의 등장, 그리고 지구에서 마지막으로 남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획득으로 제국은 쉴새없이 확장되어 나가는 것으로 마무리 짓는다. 이 제국의 확장은 얼마나 경쟁적이었는지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남극과 북극 심지어는 에베레스트 산정에까지 확대되어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제국은 고정적이며 죽은 물체가 아니다. 제국은 히드라와 같아서 한쪽을 상실하면 다른 쪽으로 확장하는 속성을 가진 유기물이다. 제국주의자들은 하나를 잃으면 다른 쪽에서 그 잃어버린 것 만큼을 얻어내는 재주를 가지고 있다. 실제로 제국주의가 한창 극성기였을 때 영국은 전세계적으로 거의 동일한 넓이의 식민지를 유지하고 있었다. 영국은 동쪽에서 식민지를 상실하면 즉시 서쪽에서 보충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땅넓이가 조금도 손상되지 않도록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던 것이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신성로마제국의 칼 5세의 경우 그는 가톨릭적 세계관을 통해 이 지상에 거룩한 제국을 건설하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 즉 칼 5세의 경우 지리적인 확장 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통합까지도 염두에 둔 명실상부한 제국을 건설하려 하였던 것이다. 그의 이런 시도는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이 시도는 멀리 알렉산드로스로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흔히 헬레니즘이라는 단어로 알려진 민족과 민족의 통합, 제국과 제국의 통합이라는 거대한 이상주의적 세계관을 세계사속에서 처음으로 접하는 것이 바로 알렉산드로스의 제국에서부터이다. 그의 야망은 이후 서구 세계의 제국관으로 확실하게 자리 매김을 하였다. 이런 주장은 잘사는 나라가 못사는 나라를 흡수하여 더 잘살게 만들어 준다는 이론으로 진화하였다. 이런 주장은 우리의 주위에서 자주 듣게되는 일제의 식민지배가 조선의 근대화를 앞당겼다는 주장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격적일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어두운 굴곡의 역사가 첨가되므로서 제국의 어두운 면이 드러난다. 사실 인류의 역사에서 피지배자-노예-는 항상 존재해왔다. 하지만 이것이 정복한 자와 정복당한자로 구분될 때 지배하는 민족과 지배받는 민족으로 구분되는 것이다. 즉 정복자는 주인이되고 피정복자는 노예가 되는 이 과정에서 서구의 인종적 우위가 확립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인종적 우위의 확립에 종교의 인과론이 정치적 이데올로기보다 더 강한 요소로 작용했다는 사실은 역사의 모순이라고 할 수있다. 서구의 제국은 일차세계대전 이후 거의 소멸된것으로 보는 것이 일치된 견해이다. 이제 지구상에는 알렉산드로스 이후 지속되어왔던 전통적인 관념의 제국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제국을 대신하여 새로운 제국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그것은 다국적 기업과 같은 경제적인 차원의 제국인 것이다. 이제 경제적인 이익을 위해 강대국은 새로운 제국을 건설하려 할 것이다. 이것은 전통적인 제국이 통합과 교화라는 이상적인 구호를 내건것과는 외적인 차이를 보이는데 사실은 고전적인 제국주의자들의 주장과 전혀 다른 것이 아니다. 우리는 왜 영국이 미국의 독립을 그렇게 쉽게 허용했을까하는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당시 세계에서 가장 이윤이 많이 남는 설탕의 문제 때문이었다. 당시 영국은 카리브해의 섬들을 식민지로 삼아 이곳을 거대한 설탕 플란테이션으로 만들어 세계 설탕시장을 장악하려하였다. 하지만 북아메리카는 설탕 이전에 부를 보장해 주었던 담배 이외에는 아무런 쓸모가 없는 땅이었다. 영국은 설탕과 담배 가운데서 설탕을 택했을 뿐이었다. 이 결과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할 수 있었고 영국은 카리브해의 모든 섬을 자신들의 손아귀에 넣을 수 있었다. 바로 이런 상황이 21세기에 들어서면서 다시 시작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만 품목이 설탕에서 석유로 바뀌었을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파그넨의 인간적인 민족과 제국관은 낭만적으로 들릴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은 그 낭만성을 관통하고 있는 서구의 시선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