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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인의 눈으로 본 십자군 전쟁
아민 말루프 지음, 김미선 옮김 / 아침이슬 / 2002년 4월
평점 :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땅에서 일어난 전쟁이면서도 오히려 서구 학자들의 기록이 더 많은 전쟁. 자신의 땅을 수호하려는 자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남의 땅을 훔치려던 자들의 목소리는 크게 들리는 전쟁. 그것은 바로 십자군 전쟁이다. 이 부조리한 전쟁의 당사자인 아랍인이 쓴 십자군 이야기를 읽는다는 것은 무척 생소한 경험이다. 그만큼 십자군에 대한 시각은 서구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리라. 서구의 기록에는 자신들이 상대한 아랍인들을 거의 이교도로 지칭하는 반면 아랍의 기록은 프랑크인으로 부른다는 점이다. 이렇게 명칭 하나만으로도 서로가 상대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전쟁이 십자군 전쟁인 것이다. 서구가 바라보는 이교도는 정복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아랍이 표현하는 프랑크인에는 질시보다는 동등한 전사로서의 배려가 엿보인다.
아랍인들에게 십자군이 도래하기 전에 예루살렘은 예언자 무함마드가 천국에 다녀온 여행에서 잠시 머물렀던 도시로 인식될 뿐이었다. 이슬람교도들에게 정말로 중요한 도시는 신의 도시 메카였다. 아랍인들에게 예루살렘은 기독교도들의 도시였을 뿐이다. 이 말은 예루살렘 지역이 이슬람교도들에게 중심지가 아니었다는 의미였다. 실제로 이슬람교도들은 자신들의 정치적 중심지를 다마스쿠스, 바그다드, 카이로, 이스탄불 등에 설치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이들에게 종교적인 도시는 메카였고 그 다음이 메디나였다. 예루살렘은 아무리 종교적으로 격상을 시켜도 3번째 도시 이상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두 종교집단이 예루살렘을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여야 했던 것은 서로 이해되지 못한 부분 때문이었다. 기독교도들에게 예루살렘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 일어난 거룩한 땅이었다. 이 땅을 기독교도의 땅으로 만드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었다. 반면 아랍인들에게는 이 전쟁은 명예에 관한 것이었다. 아랍의 관습에 따르면 자신이 모욕을 당하면 전 가문이 나서서 그 수치를 씻어주어야만 한다는 법칙이 존재하였다. 이 법칙이 민족으로 확대되었던 것이다. 즉 서구의 침입은 전 아랍이 일거에 모욕을 당한 것이었다. 이 수치를 씻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원상태로 회복시켜 놓아야만 했다. 이것이 아랍인들에게는 팔레스타인 땅에서 모든 기독교도들이 사라지는 날까지 지속되어야만 한다는 성전-지하드-의 개념으로 승화되어 버렸던 것이다.
그러기에 아랍인들은 전쟁이 지속되던 1백년이 넘는 기간 동안 내내 복수의 규칙에 따라 전쟁을 수행하였다. 기독교도가 휴전을 요청하면 자신들이 유리한 상황에서도 휴전을 수락하였다. 이런 신사적인 전쟁수행방식은 기사도를 존중하던 유럽인들의 눈에도 경이로운 모습으로 비쳐졌음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아민 말루프는 이런 모든 사실을 담담하게 소설식으로 기록하고 있다. 저자의 결론은 십자군 전쟁으로 유럽은 도약의 발판을 마련하였고, 아랍은 쇠퇴의 길을 걷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본다. 이 전쟁으로 예루살렘은 최종적으로 아랍의 수중에 남았지만 그 댓가는 너무 가혹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아랍세계가 십자군의 도래에 맞서 단결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이런 지역주의적 분열로 인해 아랍은 더욱더 큰 상처를 받았던 것이다. 이 슬프고도 아름다운 비극을 기술하기 위해서는 아민 말루프의 말대로 역사의 기록이 아니라 사실의 소설을 이용해야만 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더더욱 가슴에 와닿는 기록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른다. 그 전쟁의 뒷풀이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지금도 아랍세계는 분열되어 있어 서구의 침탈에 효과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 그 현실이 우울하고도 슬프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