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녹색 세계사 1
클라이브 폰팅 지음 / 심지 / 1995년 10월
평점 :
품절
생태학적으로 본 세계사의 모습은 시작부터 으스스하다. 저자는 남태평양 한 가운데 외롭게 떠 있는 면적 120제곱킬로미터의 이스터 섬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인간이 이 섬에 이주하여 일으킨 巨石문명이 어떻게 섬을 황폐화시켰는지를 차분하게 보여 준다. 주민들의 석상을 만들기 위한 대대적인 벌목과 이에 따른 섬의 황폐화, 그리고 회복할 수조차 없이 파괴된 환경에 의해 발생된 생활환경의 변화로 이어지는 환경파괴공식에 의해 이스터 섬은 몰락해 간다. 이 이야기는 인간이 자연이라는 환경의 그믈망 속에서 외따로 독립된 위치에 따로 존재하는 종이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고 있다. 인류 역사의 99%가 수렵.채취 경제였다. 200만년간 인류는 동일한 방식으로 지구상에서 자신들이 삶을 이뤄 나갔다. 당시의 인류는 수렵이나 무분별한 채취를 통해 먹이사슬의 한 부분을 제거하는 방법으로 환경의 변화에 큰 영향을 제공하였다. 이에 따른 인간 삶의 방식이 변화하고 이 변화는 또 다른 종의 멸종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인류역사의 99%를 차지하는 수렵. 채취 경제하에서 자연의 파괴는 미미하였다. 그것은 소수의 인류가 넓은 지역에 분포되어 독립적인 단위로 생활하면서 이동하였기 때문이었다. 인류가 본격적으로 환경의 파괴를 시작한 것은 인류가 식량을 수렵.채취에서 얻는 방식을 포기하고 다른 방법을 택하게 된 1만년전 이후부터라고 보고있다. 그 치명적이며 혁신적인 방식이란 다름아닌 <농업>이었다.
역사에서 신석기 혁명으로 알려진 농업의 확산은 인류에게 불안한 미래보다는 안정적인 현재의 삶을 보장해주는 것이었다. 이제 인류는 먹이를 쫓아서 이동하는 고단한 삶을 마감하고 대신 집단적으로 한 지역엣 정주의 삶을 선택하게 됨으로서 환경파괴는 가속화되게 되었다. 농업의 발전은 인구의 증가를 불러 일으켰고, 이 결과 농업은 더 많은 땅을 필요로 하게 되면서 무자비한 자연의 개척-혹은 파괴-이 가속화 되었다. 그리고 또 다시 인구의 증가...이런 반복은 인류에게 식량외의 또 다른 대안 야생동물의 가축화를 병행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농업의 발전은 좀더 많은 수확량을 목표로 모든 것이 이뤄졌다. 이 결과 농작물의 발육에 해가되는 모든 해충은 인간의 손으로 박멸하였다. 이는 이들을 먹이로 삼고 있는 또 다른 동물의 멸종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독교적 세계관-너희는 낳고 번성하여 이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려라-에 의한 자연 파괴는 점점 가속화 되었다. 그리고 인간은 자연에게 마지막 타격을 가하게 된다. 200년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은 지구를 완전히 빈사상태에 빠지게 만들었다. 농업혁명이 지구의 껍질을 강탈하는 것이었다면 산업혁명은 지구의 속을 강간하는 무자비한 것이었다. 이 결과 지구는 안과 속으로 회복불가능한 상처를 입게 되었다. 산업혁명의 결과 농업사회는 산업사회로 바뀌게 되고 도시의 팽창과 인구의 집중은 지구를 벗어난 공간의 오염으로까지 확산되게 되었다. 이제 오염과 파괴는 이차원적 세계를 벗어나 삼차원적 세계로까지 확장되었다.
클라이브 폰팅의 세계는 장미빛은 아니다. 오히려 그가 제목으로 설정했던 녹색과 비슷하다. 녹색에는 자연.생명.건강.봄.희망이 속해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포와 독毒의 색깔이기도 하다. 자연은 있는 그 상태에서 우리에게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하지만 변화되는 순간 부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 녹색의 세계사는 그동안 인류가 외치면 달려왔던 <진보.번영>이란 구호가 우리의 배후를 찌르는 등 뒤의 칼로 돌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東江의 역설>을 잊지 말아야한다. 보호되어야만 하는 가치가 있는 동강이 메스컴을 통해 알려진 순간 그 동강은 순식간에 인간들의 손길을 거치면서 피폐한 환경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은 환경문제가 그리 단순하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얼마전에 텔레비전에서 쿠바의 친환경농법에 대한 것을 보았다. 그들은 미국의 경제적 봉쇄를 극복할 방법으로 자신들이 오래전에 잊고 있었던 전통적인 농업방식을 다시 역사의 전면으로 부상시킨 것이다. 물론 이런 방식이 인류의 식량난을 해결할 수있는 최선의 길은 아니지만 지역적인 방식으로 채택될 때 의외의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잠재성을 인정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만 할 것이다. 녹색의 세계사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자본주의에 의해 황폐화되었던 쿠바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