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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희의 문화 이데올로기 - 동아시아 사상 전통의 형성 ㅣ 나루를 묻다 1
이용주 지음 / 이학사 / 2003년 2월
평점 :
중국 역사상 송시대는 가장 문치적인 성격이 강한 시기였다. 반면 군사적인 역량은 어느 왕조보다 떨어진 시기이기도 했다. 이 결과 송왕조는 건국에서 멸망에 이르기까지 내내 이민족의 군사적 침입에 시달려야만 했다. 송왕조가 이들을 무마시킬 수 있는 방법은 다량의 물품을 하사하는 형식으로 이민족에게 갖다 바치는 것이었다. 이런 왕조의 군사적 무능력을 지식층은 대단히 수치스러워하였다. 즉 中華민족이 四夷에게 굴복하는 현실을 지식인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지 혼란스러웠다. 문명국가로서 사이를 교화시켜야할 의무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던 제국이 오히려 오랑캐의 지배를 받아야하는 처지에 이른 것에 대한 비판이 싹트기 시작했던 것이다. 여기에 선구적인 역할을 담당한 사람이 바로 주희이다.
주희는 자신의 시대를 냉철하게 관찰한 결과 중화제국이 오랑캐들에게 수치를 당한 것은 禮로 표현되는 질서의 파괴라고 보았다. 이 질서를 회복시키기 위한 일련의 작업이 바로 주희의 목표였던 것이다. 주희는 예의 회복을 역사적인 차원에서 시작하고 있다. 요.순.우. 탕. 문왕의 시대를 거치면서 예의 질서는 전해지지 않고 단절되었지만 다시 공자에 의해 회복되었다고 본다. 하지만 공자 이후 그 예의 질서는 다시 단절되었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살고 있는 시기에 그 단절된 예의 질서를 이어 회복시켜야만 한다고 보았다. 즉 주희는 역사의 흐름을 하나의 정통론적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요-순-우-탕-문왕-공자-맹자로 이어져온 유학의 도를 자신이 계승하여 회복시킨다는 입장을 취했던 것이다. 이런 주희의 역사관은 어찌보면 유대의 사제계급들이 본 역사관과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유대의 사제들은 자신의 민족이 야훼를 알고 예배를 하였을 때는 축복이 내리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신의 징벌이 내린다고 보았다. 주희 역시 중화민족이 유가의 질서인 도를 체득하고 있다면 역사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유지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예의 회복이 절실하다는 것이 주희의 입장이었다. 주희는 예를 알기 위해서는 사서와 오경을 철저히 아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주희는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던 것이다. 이런 원리를 알고 난 뒤에 다른 것을 배우고 익힐 수 있다는 순서의 방식을 주희는 권하고 있다. 즉 오경을 배우기 위해서 순서를 정해 차근차근 배워 익힌 다음 다른 것으로 영역을 넗혀나가야만 흔들림이 없다고 본것이다. 여기서 유학은 주희에게 있어서 어떤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의미하는 것이라 하겠다. 주희에게 이런 사상적 근거는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으로서의 소명-문제의식과 진지성-을 통해서 그 시대의 문제점을 정확히 인식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주희는 이런 유교적 질서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왕조의 간섭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역설하였다. 즉 왕조를 통해 하나의 강력한 지침이 만들어지고 그 지침에 따른 질서를 확립해 나가야 된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 왕조의 권력을 통한 질서의 드러나는 실제가 바로 제사의 문제였던 것이다. 주희는 천자의 제사와 제후의 제사와 士庶民의 제사가 다름을 강조하였다. 즉 이 다름이 바로 질서였던 것이다. 천자는 하늘에 제후는 땅에 사서민은 五祀에 제사를 지내야 했다. 서민이 하늘이나 땅에 제사를 지내고 제후가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것은 질서의 어긋남이라고 보았다. 이런 질서를 통해 왕조의 통치기반을 확립하려 했던 것이 주희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주희는 왜 유교를 근간으로 하는 질서의 세계를 구상하였던 것일까. 漢이후 唐에 이르는 시기까지 중국은 자신들의 고유한 사상인 유교보다는 불교,도교와 같은 이단에 의해 지배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즉 중국인의 정체성이 이들 외래사상과 이단에 의해 훼손됨으로서 중국의 문화는 정체성을 상실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주희는 유교 사상을 제정립함으로서 중국의 정체성을 되살리고 총체적인 위기에 빠진 중국을 구하려고 하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는 북송의 왕안석과 같은 급진적이며 빠른 방법을 택하지 않았다. 주희는 왕안석의 개혁이 실패한 것은 정치력의 부재가 아니라 올바르지 못한 학문 때문이었다고 보고 있는데 이것은 주희가 학문을 통한 근원적인 개혁을 꿈꾸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결국 주희는 자신의 당대에 치열하게 이단과 싸우고 후학을 양성하면서 학문을 배우고 익히며 중국을 변모시켜 나갔다. 그리고 그가 사망한지 70여년이 지나 중원을 장악한 몽골족의 원제국이 제국의 지도이념으로 주희의 유학을 선택함으로서 그의 점진적인 변화는 결실을 맺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새롭게 이해된 유학의 실체는 대단히 합리적이면서 진보적인 부분이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주희의 사상은 이상주의적인 면이 있음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상주의적인면 역시 현실주의라는 면의 상대적인 경향성의 문제라는 점 또한 유념해야될 사항인 것이다. 그리고 끝으로 서구에서의 주희 연구가 굉장히 활발함을 알고 무척 놀라운 느낌이었다. 차제에 시간이 된다면 퇴계와 율곡의 書響을 들어보고 싶은 욕구가 생기게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