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과 가축의 역사 - 양장본
J.C. 블록 지음, 과학세대 옮김 / 새날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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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동물이 함께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인류 역사에서 보면 아주 짧은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가장 먼저 가축화가 진행된 개의 경우 1만 2천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가장 늦은 말의 경우는 신석기 시대 말로 잡고 있다. 이는 지구나이 50억년에 비하면 보잘것 없는 시간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렇게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개나 말은 인간과 아주 가까운 사이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동물의 행동양식은 과장해서 말한다면 인간과 유사한 행동양식을 보인다고 해도 전혀 무리가 없을 정도이다. 그만큼 이들 가축화된 동물들은 인간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인간이 수많은 동물을 가축화한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 수많은 야생동물 가운데 가축화에 성공한 동물은 개, 양, 염소, 소, 돼지, 말, 당나귀, 노새, 버새 밖에 없다. 그리고 가축화에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인간에 의해 길들여진 동물은 고양이, 코끼리, 낙타와 라마, 순록, 아시아소 정도이다. 여기에 언급된 동물들이 인간의 삶 속에 함께 공존하는 짐승의 전체 명단이다.  이 가운데 코끼리를 제외한 다른 짐승들은 놀랍게도 역사 이전의 시대에 인간에 의해 길들여지거나 가축화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우리가 원시시대라고 불리우는 역사 이전의 시대에 인류는 이미 위대한 진보를 이루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이들 야생동물들이 가축화되면서 인류의 삶의 형태 또한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 자연의 산물을 직접적으로 채집하는 단계에서 동물의 부수물을 인간의 삶을 위해 이용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은 가축화하거나 길들인 짐승에게서 고기, 우유, 가죽, 털과 노동력을 얻을 수 있었다.  대신 가축화된 짐승들은 인간의 세심한 보살핌을 받았다. 이렇게 동물과 인류 사이에 공생관계가 싹트게 되었다. 또한 인류는 살아있는 저장음식을 가지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인류에게 현대와 같은 저장시설이 발명될 때까지는 살아있는 가축을 기르는 것 자체가 부의 상징이었다. 이들 가축들은 언제나 인간에게 신선한 음식을 제공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인류의 수가 증가하고 목초지가 줄어드는 상황이 발생하면서 인간은 가축화한 동물을 위해 귀중한 식량을 공유하는 모순에 직면하게 되었다. 그러나 가축을 곡물을 이용하여 사육하는 방식은 곡물소비량과 가축의 고기화율의 관계가 너무 비효율적이라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예를 들어  1백킬로그램의 고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그와 맞먹는 풀과 식량 혹은 더 많은 식량이 제공되어야만 한다. 지금과 같은 국경이 없었던 고대의 유목세계는 목초지를 따라 이동하는 것이 수월했다. 그러므로 인간의 귀중한 식량을 가축을 위해 낭비하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역사시대로 접어들고 인구가 증가하면서 초지가 인간의 삶의 터전으로 바뀌면서 가축에게도 인간의 귀중한 식량을 나누어주어야만 하였다.  그리고 현대처럼 국경이 막혀있는 상태에서 유목을 한다는 것은 많은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바로 이런 문제점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핵심적인 가축 몇 종류-소,돼지,양-만을 핵심적으로 사육하고 있다. 이런 인간의 상업적 사육의 문제점은  고기를 얻기 위한 투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좀더 많은 양의 고기를 얻기 위해 인간은 인위적인 방식을 동원하였고 결국은 크로이펠트 야곱병-광우병-이란 재앙을 만들어 내었던 것이다.

인간의 가축화의 역사를 보다 보면 의아한 점이 하나 생겨난다. 개와 고양이는 대체 무엇 때문에 가축화하였을까. 이들은 고기도 가죽도 우유도 제공하지 않는 동물이다. 다만 개의 경우 파수꾼으로서의 역할을 기대하지만 오늘날과 같은 가옥 구조에서 개의 본연의 역할은 이미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고양이는 개보다 더욱더 가치가 없는 짐승일 뿐이다. 고양이는 인간의 귀중한 곡식을 지키기 위한 용도로 가축화되었지만 오늘날 고양이의 역할 역시 축소되었을 뿐이다. 도시를 돌아다니는 도둑고양이는 쓰레기통을 뒤지는 것이 힘들게 쥐를 잡는 것보다 더 편하다는 사실을 오래전에 깨달은듯 하다. 이들 고양이와 개는 인류와 같이 살을 맞대고 오늘날까지 살아왔다. 이들의 역할이 축소되거나 단절된다 하더라도 이들은 인간의 심리적 지혈제로서 오래도록 함께 갈 것이 확실하다.

**살아있는 2개월된 강아지를 쓰레기 봉투에 넣어 버렸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가축의 역사를 다시 한번 훑어 보았다. 이들 가축들은 자신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손에 의해 길들여 짐으로서 야성이 퇴화된 동물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손에 의해 길들여진 만큼 가축을 기르는 인간들은 이들의 삶에 일정한 부분을 책임져야만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가축을 키워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기 기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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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내전연구
제등효 외 / 형성사 / 199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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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 희소성으로 인해 읽어볼 가치가 있는 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 책은 내가 알기로는 한국에서 스페인 내전을 다룬 유일한 책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은 역사적 중요성에 불구하고 한국에는 단편적으로만 알려져 있을 뿐이다. 오히려 소설-앙드레 말로의 희망,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서 스페인 내란이 소개되고 있다. 그만큼 역사적 사건으로서의 스페인 내전은  우리의 관심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30년대 세계는 대공황, 파시즘의 대두, 이에 대항하는 국제 공산주의 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던 시기였다. 세계는 싫건 좋건간에 파시즘이냐 공산주의냐의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었다. 이러한 세계적인 갈등이 유럽의 후진사회인 스페인에서 충돌하게 되었던 것이다. 스페인 문제를 둘러싸고 세계는 왼쪽과 오른쪽으로 갈라져 기싸움을 벌였다. 결과는 파시즘의 승리였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은 파시즘 세계는 스페인 내란이 종료된지 몇 달 후에 2차세계대전을 일으키게 된다. 즉 스페인 내란은 서구 민주주의 체제의 허구성을 파시즘과 공산주의 양쪽에 드러낸 사건이었다.

세계가 이렇게 스페인 문제를 놓고 양분되어 있을 때 한국은 어떠하였는가. 한국은 당시 일본 강점기였기에 이 문제에 참여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이 결과 스페인에서 드러났던 사회적 모순이 한국 사회에서는 제대로 드러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이 결과 한국은 일제 강점기로부터 해방된 이후 본격적인 좌우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 대립은 합리적인 타결점을 찾지 못하고 전쟁을 통한 해결을 시도한 결과 자유로운 사상의 논의는 또 다시 역사의 미래로 미뤄지게 되었다. 이 결과 현재 한국사회는 경제적으로 발전했으면서도 사상적으로는 30년대의 이분법적 테두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의 스페인이 어떻게 이런 갈등을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모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스페인 내전은 당시 스페인 사회가 안고 있던  불만이 한꺼번에 표출된 사건이었다. 이 대립이 얼마나 극렬하였는지는 당시 2천 1백만-당시 한국의 인구2천만과 비슷한 수준-의 인구 가운데 1백만명이 내전 중 사망했다. 피해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프랑코가 승리한 뒤 다시 1만명이 처형되고 25만명이 수용소로 향하였다. 그리고 40만의 인구는 망명을 택하였다.  스페인 내전의 희생자는 전투 중 사망자는 대략 10만에서 15만 정도로 추측된다. 그 나머지는 좌와 우의 대립에서 오는 보복에 의한 처형이었다. 스페인 내전은 양측에게 있어서 그냥 전쟁이 아니라 종교전쟁이었던 것이다. 한쪽은 노동자의 천국을 위해서 다른 한쪽은 하느님의 왕국을 위해서 싸웠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행해진 모든 죄악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체제의 왕국이 완성되는 순간 사면될 것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두려울 것이 없었다.

또 하나 스페인 내전은 우리의 사상사 속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는 무정부주의자들의 활약이 돋보이는 전쟁이었다. 이들의 얽매이지 않는 정신의 자유성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양쪽으로부터 견제를 받았다. 스페인 내전은 무정부주의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활짝 핀 무대였던 것이다. 다만 시도때도 없이 나오는 CNT, UGT, POUM과 같은 약어의 홍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이 책을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장애물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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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의 이름 창작노트 - 양장본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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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노트라고 하는 것은 글을 쓴 사람의 원초적인 생각을 엿볼 수 있는 틈이 아닐까. 그 틈에 나의 쐐기를 박아 넓히고 싶은 마음... 그러기 위해서는 공유되는 부분 혹은 내가 읽었던 부분을 작가가 언급할 때 얼마나 기쁜가.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이런 경험을 했다. <누가 말하는가?>의 부분에서 5명의 화자가 똑같은 내용의 말을 주고 받지만 상황에 따른 변화의 폭이 제시되고 있다.  여기서 독일의 성서학자 궁켈의 <삶의 자리> 이론이  접목된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분명히 에코로 들어가는 문의 열쇠를 하나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 넘어가면서 짧은 내용 속에 너무 많은 내용을 집어 넣은 글을 보았을 때 에코라는 사람의 보폭이 상당외로 넓음을 알고 체념하고 말았다. 어차피 한 인간의 두뇌를 쫓아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다만 그 사람의 글에서 나의 공감대가 1%만이라도 발견된다면 그와 같이 역사를 공유하는 것이라고 위안을 받을 수 밖에...

에코는 이탈리아인이면서 기호학을 전공하였고, 이를 통해 중세를 바라보고 있다. 중세의 모습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할 수 있다. 그 다양함은 중세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형성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중세가 푸른색이라고 하지만 어떤 사람은 주홍이라고 하기도 한다. 중세를 하나의 색으로 규정짓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에코 역시 중세의 모습을 기술할 때 중세에 대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중세에서 쓰고자 노력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아드소가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으로 시점을 잡았던 것이다. 바로 이 점이 이 소설을 독파하는데 어려운 점이다.  읽는 사람이 중세인이 되지 않는다면 그 자체의 이야기에서 수도사들의 세력다툼과 속물근성만을 볼 수 밖에 없다. 특히 둘치노파에 대한 이단의 이야기는 수도사들의 입을 통해 재판의 과정에서 잠시 잠시 언급된다. 이것을 자세히 알지 못한다면 종교심문관에 대한 윌리암의 두려움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장미의 이름 맨 마지막 부분에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e nuda tenemus란 문장이 나온다. 그 내용은 장미는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존재해 왔으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락한 이름뿐이란 뜻이다. 하지만 이 글에서 로사-장미-는 로마의 잘못이라는 설이 있다. 로사를 로마로 바꿔 다시 해석해보면 로마는 예로부터 그 이름으로 존재해 왔으나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영락한 이름뿐이다. 오히려 이것이 더 그럴듯 하지 않은가.  이 시는 베네딕트 수도회의 베르나르가 쓴 <어디있느뇨?Ubi sunt>의 한 귀절이라 한다.

Est ubi gloria nunc Babyloniae 바빌론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

O quam salubre, quam jucundum et suabe est sedere in solitudine et tecere et loqui cum Deo  홀로 적막안에서 침묵하고 하느님과 더불어 대화를 나눔이여, 참으로 즐겁고 감미로워라.

Stat rosa pristina nomine, nomine nuda tenemus  장미는 예로부터 그 이름이 존재해 왔으나 이제 우리에 남은 것은 영락한 이름뿐

바빌론의 댓구는 로사보다는 로마가 훨씬 더 합리적이지 않은가. 아마도 필사실의 손이 곱은 수사가 겨울의 추위에 Roma를 Rosa로 잘못 필사한 것은 아닌지.   내 개인적으로는 이 장면이 이 소설의 핵심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누가 아랴...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는 내 확신에 확신을 가질 수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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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사상 - 삼성세계사상 8
이븐 할둔 / 삼성출판사 / 199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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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븐 할둔의 <이슬람 사상>의 원제목은 무캇디마, 역사서설이란 뜻이라 한다. 유럽이 중세의 끝트머리를 잡고 있을 무렵인 14세기에 이슬람에서 이런 멋진 저술이 나왔다는 사실은 그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가늠하게하는 것이라 할 수있다. 특히 2장에서 기술하고 있는  유목민족과 야만국가에 대한 고찰은 지금 읽어보아도 명쾌한 논리를 지닌 글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유목민과 정착민이 다같은 자연적 집단이라는 전제를 깔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러면서 유목민이 정착민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왜 유목민이 선한가를 논해가는 것을 보면 그의 역사적 혜안에 탄복하게 된다. 그리고 정착민들이 법에 의존하는 행위를 인내심과 저항력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보면서 실정법 보다는 신의 법인 종교법을 준수하는 자세를 촉구한다. 이런 그의 사상적 흐름은 현대의 원리주의에까지 연결된다고 한다면 너무 앞선 판단일까.

그러면서 이븐 할둔은 유목민의 고향인 사막의 특수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왜 사막이란 곳은 집단감정과 혈연으로 묶여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이 소규모 집단이 어떻게 혈통의 섞임을 통해 확대되어 나가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혈통이 가문으로 가문이 더 큰 집단으로 성장하는 동인을 왕권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할둔은 왕권이란 통솔력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왕권은 이와는 다른 좀더 다른 우월성과 힘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왕권으로 향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원래 본분을 상실하게 되면 몰락한다는 역사적 필연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순수성을 잃지 않고 왕권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것의 핵심을 할둔은 종료로 보고 있다. 종교를 통해서 아랍민족은 왕권을 길이 길이 보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신을 중심에 둔 종교의 민족인 이슬람민족 혹은 아랍민족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3장에서 논하는 칼리프제도와 왕조, 정부관료제도에 대한 이븐 할둔의 관점은  집단감정이란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국수적인 것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같은 종교, 같은 혈통에 의해 묶여진 집단의 응집력에 의해 왕조는 유지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집단감정이 와해될 때 왕조도 소멸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집단감정은 더 큰 의미로 이야기할 때 아랍민족이 된다. 이들이 아랍인되는 조건은 종교와 언어이다. 만약 이 집단감정이 해체된다면 아랍민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50년대 이집트의 낫세르가 추구했던 범아랍주의에 왜 그토록 아랍민중들이 열광했는지를 이븐 할둔은 이미 500여년전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할둔은 왕조와 도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한다. 이 둘의 관계는 왕조에 더 큰 중심을 둔다. 할둔은 왕조가 있음으로해서 도시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즉 도시는 왕조의 부산물로 보고있다. 왜냐하면 왕권이 강하고 견고하면 할 수록 도시는 안정적으로 고착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할둔은 도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자세하기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세력가들은 왕권과 결탁하여 왕권의 지속을 도와주고 그 댓가로 도시는 왕권과 함께 생명을 얻는다고 본 그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문의 종류와 교육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역사에서 이것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는 의문이지만 이븐 할둔은 학문의 역사를 기록하므로서 인류가 어떻게 지적인 발전을 이룩해 왔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런 서술방식은 후에 프랑스의 아날 학파들이 미시사적 접근연구 방식으로 역사를 보는 영역을 확대하므로서 그의 역사를 보는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여기에는 존재론과 인식론, 지리학과 경제학, 그리고 교육학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븐 할둔이 이 책을 저술할 무렵의 아랍세계는 최정상의 고점을 지나 이제 완만한 하강의 시대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나타난 내용의 무계는 여전히 묵중함을 느낄 수 있다. 당시 중세의 끝자락을 잡고 있던 유럽에서는 이만한 책을 쓸 지적 축적이  없었다. 다만 일부 성직자들이 아랍의 번역된 서적을 기반으로 이와 유사한 것을 기술하기는 했지만 질적으로는 결코 같은 수준이 될 수 없었다. 아랍의 역사서술에 관한 책을 이 책 이외에는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방식으로 기술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븐 할둔의 이러한 역사 서술의 방식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아도 매우 신선하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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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화의 수수께끼 1
주강현 / 한겨레출판 / 199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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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동네 집 앞에 금줄이 쳐진 집을 보면 우선 먼저 무엇이 달려있는가를 확인하였다. 붉은 고추가 달려있다면 남자가 태어난 것이고, 숯과 솔가지 달려있다면 여자가 태어난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대문에 걸린 금줄을 다시 한번 바라보면 이상하게도 그 집 앞에서는 함부로 행동할 수 없게 만드는 그 무엇이 있었다. 누런 짚의 색깔과 우중충한 나무 대문의 조화 속에서 금줄은  더욱 더 어린 나에게 경외심과 두려움을 주었는지도 모른다. 금줄은 결코 두려운 표식이 아니었다. 오히려 기뻐해야만 하는 표식이었지만 그 줄이 걸린 집 앞에서 왜 떠들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

  이제 금줄을 치는 집은 거의 없다. 아니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시에서는 금줄을 치기 위해 구해야하는 볏짚도 그렇거니와 왼새끼를 삼을 줄 아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우리의 문화 하나가 서서히 사라지는 모습을 볼 때 약삭빠른 장사치들이 왜 금줄 산업에는 손을 안 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구한말 이래 일제 36년의 지배를 거쳐 오는 동안 우리들에게는 전통과 퇴보라는 공식이 기억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 이후 우리의 전통은 근대화의 물결 속에서 철저하게 배척되어야만 하는 장애물로 인식되었다. 그 결과 초가집으로 상징되던 우리의 전통적인 스카이라인이 사라지면서 그에 부수된 흔적들이 하나 둘 우리 곁을 떠나갔다. 그래서인지 이제 나는 호젓한 시골길을 걸을 때 나타나는 서낭당을 보고도 침을 세 번 뱉어내고 깨금다리로 내 나이숫자만큼 뛰어가지를 않는다. 어린 시절 아무리 바쁜 걸음이더라도 서낭당을 만났을 때는 우리 모두 이 엄숙한 의식을 꼭 치루고 고개를 넘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왠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 불안함은 이제 하나의 추억으로 변했을 따름이다. 뭐랄까, 두려움을 보고도 두려움을 느끼지 못하는 전형적인 무감각한 현대인이 된 것이리라.

  초등학교 1학년 때인가, 우리 동네에 돼지를 키우는 집에 엄청나게 큰 돼지가 들어왔다는 소식이 들렸다. 우리들은 방과 후 그 친구 집에 들러 새로운 돼지를 구경하였다. 그 돼지는 정말로 엄청나게 큰 돼지였다. 허연 털에 붉은 속살이 살며시 내비치는 <누룩저지>인가하는 이 돼지는 옆 우리에서 정신없이 먹이를 먹어대는 재래종 돼지를 강아지처럼 보이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다. 그 친구 집에 서양돼지가 등장한 이후 우리 동네 돼지 축사에서는 검은 털에 하얀 주둥이가 귀여운 우리의 토종돼지들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했다. 이듬해 여름 내가 서울로 떠날 무렵에 우리 동네의 돼지는 거의 서양돼지로 바뀌어 있었다.

  문화와 전통의 소멸은 이렇게 소리 소문 없이 그러나 아주 급속하게 진전된다. 그러면서 전통은 자신의 흔적조차 남겨놓지 않고 사라진다. 그래서 한 번 잃어버린 전통을 찾는 다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다. 이는 전통은 사람과 함께 진행되기 때문이다.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바로 그 시대의 전통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청바지문화 속에 살고 있다면 먼 훗날 이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후손들은 우리를 청바지문화 혹은 전통을 가진 세대로 부를지도 모른다. 청바지 외에 다른 것을 접해보지 못한 이 세대에서 다른 전통의 흔적을 찾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전통이란 사람이 사라지면 함께 사라지는 것이다. 

  즉 전통이란 우리의 삶과 함께 이어져야만 하는 것이다. 보는 전통, 혹은 읽어 내려가는 전통은 결코 진정한 전통이 아니다. 그것은 죽은 전통이며 또 다른 전통의 훼손인 것이다. 얼마 전 네티즌들 사이에서 일본의 한 프로축구단의 심벌마크가 <삼족오三足烏>라는 사실을 가지고 설전이 벌어졌던 일이 있었다. 네티즌들은 삼족오가 고구려의 문양이기 때문에 이를 당장 찾아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네티즌들의 이런 주장이 정말로 두려웠다. 그들에게 우리의 고유한 전통이란 한갓 창고 속에 처박혀있는 고형화 된 유물로 인식되어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사용하지 않는다면 결코 남도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그런 마음은 아닌지... 진정한 우리의 문화는 고립된 것이 아니라 이웃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일 때 진정한 가치를 뽐낼 수 있고, 자부심을 갖게 되는 것이란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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