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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사상 - 삼성세계사상 8
이븐 할둔 / 삼성출판사 / 1990년 9월
평점 :
절판
이븐 할둔의 <이슬람 사상>의 원제목은 무캇디마, 역사서설이란 뜻이라 한다. 유럽이 중세의 끝트머리를 잡고 있을 무렵인 14세기에 이슬람에서 이런 멋진 저술이 나왔다는 사실은 그 지역의 문화적 역량을 가늠하게하는 것이라 할 수있다. 특히 2장에서 기술하고 있는 유목민족과 야만국가에 대한 고찰은 지금 읽어보아도 명쾌한 논리를 지닌 글임을 알 수 있다. 그는 유목민과 정착민이 다같은 자연적 집단이라는 전제를 깔고 자신의 논리를 전개해 나간다. 그러면서 유목민이 정착민보다 먼저 존재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왜 유목민이 선한가를 논해가는 것을 보면 그의 역사적 혜안에 탄복하게 된다. 그리고 정착민들이 법에 의존하는 행위를 인내심과 저항력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보면서 실정법 보다는 신의 법인 종교법을 준수하는 자세를 촉구한다. 이런 그의 사상적 흐름은 현대의 원리주의에까지 연결된다고 한다면 너무 앞선 판단일까.
그러면서 이븐 할둔은 유목민의 고향인 사막의 특수성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왜 사막이란 곳은 집단감정과 혈연으로 묶여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이 소규모 집단이 어떻게 혈통의 섞임을 통해 확대되어 나가는가를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이 혈통이 가문으로 가문이 더 큰 집단으로 성장하는 동인을 왕권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서 할둔은 왕권이란 통솔력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왕권은 이와는 다른 좀더 다른 우월성과 힘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왕권으로 향하는 가운데 자신들의 원래 본분을 상실하게 되면 몰락한다는 역사적 필연성 또한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순수성을 잃지 않고 왕권으로 나아가야 할까. 그것의 핵심을 할둔은 종료로 보고 있다. 종교를 통해서 아랍민족은 왕권을 길이 길이 보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를 통해 신을 중심에 둔 종교의 민족인 이슬람민족 혹은 아랍민족이 형성된 것으로 본다.
그리고 3장에서 논하는 칼리프제도와 왕조, 정부관료제도에 대한 이븐 할둔의 관점은 집단감정이란 것이다. 이것은 현재의 관점에서 볼 때 국수적인 것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같은 종교, 같은 혈통에 의해 묶여진 집단의 응집력에 의해 왕조는 유지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집단감정이 와해될 때 왕조도 소멸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 집단감정은 더 큰 의미로 이야기할 때 아랍민족이 된다. 이들이 아랍인되는 조건은 종교와 언어이다. 만약 이 집단감정이 해체된다면 아랍민족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50년대 이집트의 낫세르가 추구했던 범아랍주의에 왜 그토록 아랍민중들이 열광했는지를 이븐 할둔은 이미 500여년전에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할둔은 왕조와 도시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논한다. 이 둘의 관계는 왕조에 더 큰 중심을 둔다. 할둔은 왕조가 있음으로해서 도시가 발전한다고 보았다. 즉 도시는 왕조의 부산물로 보고있다. 왜냐하면 왕권이 강하고 견고하면 할 수록 도시는 안정적으로 고착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할둔은 도시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자세하기 기술하고 있다. 그리고 도시의 세력가들은 왕권과 결탁하여 왕권의 지속을 도와주고 그 댓가로 도시는 왕권과 함께 생명을 얻는다고 본 그의 지적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문의 종류와 교육방법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역사에서 이것이 과연 필요한 것인가는 의문이지만 이븐 할둔은 학문의 역사를 기록하므로서 인류가 어떻게 지적인 발전을 이룩해 왔는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런 서술방식은 후에 프랑스의 아날 학파들이 미시사적 접근연구 방식으로 역사를 보는 영역을 확대하므로서 그의 역사를 보는 깊이를 짐작하게 한다.
여기에는 존재론과 인식론, 지리학과 경제학, 그리고 교육학등이 총망라되어 있다. 이븐 할둔이 이 책을 저술할 무렵의 아랍세계는 최정상의 고점을 지나 이제 완만한 하강의 시대로 접어들 무렵이었다. 그럼에도 이 책에 나타난 내용의 무계는 여전히 묵중함을 느낄 수 있다. 당시 중세의 끝자락을 잡고 있던 유럽에서는 이만한 책을 쓸 지적 축적이 없었다. 다만 일부 성직자들이 아랍의 번역된 서적을 기반으로 이와 유사한 것을 기술하기는 했지만 질적으로는 결코 같은 수준이 될 수 없었다. 아랍의 역사서술에 관한 책을 이 책 이외에는 읽어보지 못해서 어떤 방식으로 기술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븐 할둔의 이러한 역사 서술의 방식은 지금의 시각에서 보아도 매우 신선하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