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 역사 인물 찾기 9
한스 마그누스 엔첸스베르거 지음, 변상출 옮김 / 실천문학사 / 1999년 6월
평점 :
절판


스페인 내전을 바라보는 시각은 인민전선과 공화파라는 도식이 대부분이지만 이 둘 사이에 흑색깃발의 '무정부주의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스페인 내전이 시작되면서 남부와 북부의 일부는 프랑코가 통솔하는 공화파가 중부는 인민전선이 장악하고 있었고 북부 일부와 동부의 바로셀로나는 무정부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었다. 

인민전선이나 공화파는 내전 이전부터 세력을 확장하고 있었던 무정부주의 세력을 의심의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무정부주의자들 역시 공화파와 인민전선을 철저히 경멸하고 있었지만 내전이 시작되면서 자신들이 제3의 세력으로 남느냐 아니면 어느 한편을 지지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결국 무정부주의자들은 인민전선의 편에 서서 프랑코의 공화파와 대항하는 길을 택하였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북부를 장악하고 있던 프랑코 세력이 무정부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던 아스투리아, 칸타브리아, 바스크 지역을 공격하자 연합하고 있던 인민전선이 방관하면서 북부의 무정부주의자들이 괴멸되어 버렸다. 

이 사건은 무정부주의자들에게 큰 충격이었다. 인민전선도 전쟁이 길어지면서 소련의 지령을 받은 공산주의자들이 장악하면서 스탈린식 숙청이 대거 이뤄지기 시작했고, 여기서 무정부주의자들이 많은 수 사라졌다. 

부에나벤뚜라 두루티는 스페인 내전이 일어났을 때 인민전선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는 철저한 무정부주의자였고, 민중의 대변자였다. 그에게 권력이란 행사하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누는 것이었다. 그에게 내전의 승리는 자신이나 인민전선의 승리가 아니라 불굴의 의지를 가진 인민들의 승리였다. 이런 그에게 인민전선을 장악한 공산주의자들의 교조적 믿음은 용인될 수 없는 것이었다. 하향식의 명령과 이를 이행하지 못했을 때 가차없이 행해지는 처벌은 두루티와 함께 하는 무정부주의자들에게는 생소한 것이었다. 돌로레스 이바루리는 무릎꿇고 살기보다 서서 죽기를 원한다고 부르짓었지만 서서 죽는 것은 신념으로 무장된 일반 병사들이었다. 오히려 수많은 지도자들은 내전이 패배에 가깝자 외국으로 망명해 무릎꿇고 살아오다 스페인이 민주화가 되자 돌아와 예전의 주둥이를 현란하게 굴렸을 뿐이었다. 

두루티는 인민전선의 수도였던 마드리드를 방어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이 방어전에서도 인민전선의 좌익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을 견제했다는 사실이다. 이런 와중에도 마드리드는 무정부주의자들의 신념으로 지켜졌다. 오히려 마드리드가 위험해지자 인민전선의 간부들은 무정부주의자들의 철옹성 바르셀로나로 피해가 그곳에서 피의 숙청을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소련에 경도된 인민전선의 지도부는 내전의 승리가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만을 생각했을 뿐이다. 

두루티는 죽고 결국 스페인 내전의 신화가 되었다. 그리고 그는 자신들의 성지인 바르셀로나로 운구되어 몬주익에 위치한 공동묘지에 묻혔다. 두루티는 스페인 내전에서 인민이 사라진 좌파의  인민전선도 공화가 사라진 우파의 공화파도 아닌 무정부주의자로 살고 싸우다 죽었다. 그가 죽음으로서 스페인 내전의 승리자가 누가되든 인민들에게는 불행하였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멕시코 혁명에서 이상주의자였던 사파타가 암살당하므로서 인민의 혁명이 배반당한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벽에는 흑,적색 천이 드리워져 있었고 같은 색으로 된 덮개, 몇 개의 촛대, 꽃과 화환, 이것이 전부였다. "많은 조문객들이 드나들 양 측면 문에는 스페인 풍습에 따라 커다란 판지가 붙었었고 그 위에는 이렇게 씌여 있다. '두루티가 들어오라고 하십니다.' '두루티가 안녕히 가시라고 합니다.'"

(어느 무정부주의자의 죽음, 29쪽 참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라토의 중세 상인 - 이탈리아 상인 프란체스코 다티니가 남긴 위대한 유산
마르케사 이리스 이리고 지음, 남종국 옮김 / 앨피 / 2009년 9월
평점 :
품절


중세의 그리스도교 세계가 1517년 루터의 항명으로부터 촉발된 종교개혁을 지나면서 근대로 접어들게 되지만 이미 이전부터 그런 싹이 보이고 있었다. 그 선두에 선 집단이 새로 부상하는 계급, 이른바 부르조아지라고 부는 상인 계급이었다. 이들은 종교개혁 이전부터 무역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한 사람들이었다. 

사실 유럽의 대항해 시대를 개막하는 항해의 시작은 우연이 아니라 생존의 차원이었다. 그 전까지 유럽은 우리의 바다Mare Nostra라고 부르는 지중해 중심의 세계였다. 하지만 아랍이 지중해를 장악하고 비단길마저 지배하면서 유럽은 동방과의 무역이 단절될 수 밖에 없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해 유럽은 대서양으로 배를 띠워 동방으로 가는 뱃길을 찾아야만 했던 것이다. 이 결과로 그 당시 항해술의 근간이 연안항법을 해야 했기에 아프리카의 서부가 유럽인들에게 철저히 탐색되었다. 그리고 희망봉을 돌면서 이제는 아프리카의 동부가 알려지면서 유럽은 본격적으로 동방을 향해 가는 길에 있는 아프리카를 자신들의 식민지로 삼게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종교의 세계에서 무역의 세계로 변해가는 시기에 상인들은 어떻게 대처하였을까. 당시 그리스도교 세계인 유럽에서 장사는 권장되었지만 과도한 이익을 탐하는 것은 금지되었다. 그리고 이자놀음은 절대로 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유럽의 상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신을 믿으며 신의 섭리에 따라 장사를 해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동방으로의 뱃길이 열리고 유대인, 아랍인, 동양인들과의 경쟁을 통해 상업세계에서 살아남아야만 했다. 

당시 이들에게 그리스도교 세계가 요구한 것은 종교적 정직성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이윤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죄악이 될 수 있었다. 돈을 멀리하면 파산이고 돈을 가까이하면 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현실은 상인들이 적극적으로 이윤추구를 하지 못하도록 막는 장애물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상인들은 자신들의 이런 약점을 기발한 방식으로 상쇄하였다. 그것은 바로 현재까지도 유용하게 써먹고 있는 회계장부였다. 

유럽의 상인들은 빈 공책의 한 면을 정확하게 반으로 구분한 다음 종교적인 자세로 장부에 선과 악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즉 수입은 선善, 지출은 악惡의 개념과 비슷하게 정리하였다. 이는 신심깊은 신자들이 자신의 선한 행실과 악한 행실을 매일 매일 기록하여 어느쪽이 더 많은지를 가름하여 그날의 삶을 평가하고 그 평가가 모여 한달을 그 한달이 모여 일년을 평가하는 식으로 기록되었다. 

상인들에게 선이란 돈을 많이 버는 것이고 악이란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쓸데없이 혹은 쓸데없는 곳에 지출되는 것을 의미하였다. 이들은 매일 매일 회계 장부에 자신의 상업실적을 기록하여 하루를 마감하며 자신의 오늘 행위가 주님의 뜻에 합당했는지 검토하였다. 그것이 자신이 뜻하는 방향이 아니었다면 더 열심히 더 절약하여 최대한 주님의 뜻에 맞는 결과를 산출하려 하였다. 이 결과 일년의 마지막 날에 자신의 장부에 선의 결과가 악의 결과보다 더 많으면 자랑스럽게 검은 글자로 그 결과를 기록했고, 손해를 보았으면 붉은 글씨로 자신에 대해 경고를 하였다. 

중세의 상인들이 이렇게 치열하게 자신과 신과 이익과 손해 사이에서 고심하고 분투하면서 자연스럽게 중세는 근대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이런 종교적 심성은 이후에 회계장부의 글자로만 남게되고 이들은 더욱더 착취적인 집단으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씁쓸한 기억이라 하겠다. 

이들은 중세적 시대에 그 시대에 맞춰 최대한의 이윤을 창출하려 노력하였고, 그 이윤의 노력을 악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 근면하고 성실하게 살아 이루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의 부를 합리화하였다. 이 합리화는 유럽이 가정 먼저 자본주의를 창출하는 원동력이 되었음은 불문가지라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간과 권력의 역사 - 인간 문명 그리고 시간의 문화사
외르크 뤼프케 지음, 김용현 옮김 / 알마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시간과 권력이라는 등식은 약간 생소하지만 학교에서부터 '시간은 금이다'라는 소리를 들은 사람들에게 히미하게 그 말 뜻이 무엇인지 다가올 수 있다. 

시간은 공간처럼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공간을 관통하는 연속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기에 시간이란 개념은 막연하게 아주 먼 옛날부터 중요한 것이었다. 원시인들도 무리지어 동굴 속에서 집단생활을 하면서 그 동굴을 지나가는 시간의 변화를 관찰하였다. 춥고-따스하고-더워지고-다시 추워지는 순환의 사이클을 그들은 가장 먼저 느낀 시간의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주변 사람들이 아기-젊은이-늙은이로 변해가다 결국 죽는다는 사실에 시간은 영속하지만 자신들은 유한하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추상적인 시간이 개념적인 시간으로 바뀌게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유럽에서는 중세를 거쳐 근대에 이르기까지 시간이란 추상적인 개념을 명확한 수의 개념으로 표현하고자 노력하였다. 초를 이용한 시간계산이나 물 또는 모래를 이용한 시간의 분류는 시간을 양(量)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인간의 자부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동양에서도 왕조가 바뀌면 가장 먼저 역(曆)을 정비하는 것이었다. 일년의 초하루를 정하고 제사의 시간을 정하는데 이전 왕조의 역법이 아니라 자신들의 역법을 갖추는 것이 바로 왕조의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시간의 등식화를 가장 원했던 집단은 종교세계였다. 특히 그리스도교가 유럽의 종교가 되면서 시간의 개념은 아주 중요한 것이 되었다. 유럽의 그리스도교 세계는 라틴어를 기반으로 코르도바에서 크라코프가지 웁살라에서 예루살렘까지 하나의 종교를 기반으로 하나의 종교적 세계를 형성하였다.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였고 종교의 전례역典禮曆은 통일되어야 했다. 특히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의 날짜는 명확해야만 했다. 이 날짜는 온 유럽이 동시에 함께 찬미하고 슬퍼하고 기뻐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교회가 끊임없이 케사르가 만든 태양력의 달력을 더욱더 정교하게 수정하여 그레고리우스력으로 대체한 것은 이런 필요에 의해서였다. 즉 시간을 장악한 자가 권력을 장악하게 된 것이다. 

이런 종교정치적인 시간의 역사는 종교개혁을 통해 큰 변화를 격게된다. 로마를 반대하는 집단은 로마의 력법을 거부하고 자신들의 역법을 고수하였다. 특히 로마와 대립각을 세웠던 정교회는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역법개혁을 거부하고 이전 케사르의 역법을 준수하고 있었다. 이 양자간의 차이는 그레고리우스 교황이 역법을 개혁할 때 정교회가 동참하지 않으면서 라틴 세계와 그리스 세계는 11일의 날짜 차이를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종교적인 것은 종교개혁 이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후에는 정치적인 면에서 시간의 통일성이 중요했다. 식민지를 획득하기 위한 제국주의가 본격적으로 가동되면서 해양강국들은 항해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시간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위도는 적도를 중심으로 위아래로 정확하게 나누어지기에 별 문제가 없었지만 경도는 권력의 문제였다. 어디를 중심으로 경도의 시작을 나누느냐에 따라 시간은 변화무쌍하게 요동치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전쟁사에서 유명한 과달카날 전투가 벌어진 곳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에 솔로몬 제도가 위치하는 것에 큰 의문을 느끼기도 한다. 왜 예루살렘과 동떨어진 곳에 이스라엘의 왕인 솔로몬의 이름이 붙여졌는지. 솔로몬 왕은 아기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두 여인에게 아이를 정확히 둘로 가르라는 판정을 내린 왕이었다. 대항해 시대를 처음 연 스페인의 탐험대가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곳을 솔로몬 제도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여기가 자신들이 떠난 곳에서 정확히 지구의 반이 되는 180도 되는 지점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이곳은 정확한 반보다 더 서쪽에 위치해 있었다. 

이 험난한 작업은 제국주의의 선봉장인 영국에 의해 완성되면서 시간은 정확하게 인간을 시각적으로 지배하게 되었다. 이 결과 영국은 지구의 반 이상을 식민지로 삼아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형성하였다. 

시간의 권력이 종교에서 경제 혹은 정치로 넘어가면서 이 시간은 엄격한 기준을 갖게 되었다. 시간의 엄수는 바로 규칙에 대한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모든 관료들은 정시에 출근하여 정시에 퇴근해야 했고, 노동자들 역시 시간에 맞춰 자신들의 일을 해야만 했다. 즉 시간을 통제하는 자가 권력의 실세가 되었던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눈물을 떨구다 - 성서 속에 나타난 매춘과 종교적 순종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체스터 브라운 지음, 이원경 옮김 / 미메시스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이 책에서 아벨과 카인으로 시작하여  다말, 라합, 룻, 밧세바 그리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비범한 아들, 통상적으로 돌아온 탕자로 알려진 우화로 이야기를  마무리한다.

아벨과 카인의 이야기에서 저자는 '신은 역사의 명령에 반항하는 이들을 흠모하고 아끼며, 신이 그들을 위해 창조한 질서를 과감히 거슬러 자신의 삶을 개선하는 자들을 좋아한다'는 이스라엘 철학자 요람 하조니의 말을 강조한다. 그리고 다섯 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탕자의 이야기를 배치하여 '네 동생은 순종하지 않음으로써 살아있느니라. 반면 너는 불만을 억누른채 복종함으로써 죽어있느니라. 시키는 대로만 할 줄 아는 맹목적 숭배자를 과연 주님께서 원하실 거라고 생각하느냐'라는 아버지의 말로 끝난다.

이 책은 이 말을 실천한 여성들의 이야기이다. 이들이 창녀인지 아닌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고대에는 매춘보다 간음을 더 큰 죄악으로 보았다. 그래서 간음한 여인은 돌로 쳐 죽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반면 현대의 관점에서 간음, 보통 간통이라 부르는 행위는 매춘이란 행위보다 도덕적으로 덜 비난 받는다. 그리고 많은 나라에서 아예 간통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매춘을 하다 걸리면 법률적 제재도 감수해야 한다. 그러기에 이런 텍스트를 이해할 때 현대의 잣대로 그 시대를 검토하다 보면 많은 오류를 낳을 수 있다.

신은 한분이지만 그분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여러갈래이다. 성아우구스티누스는 다양한 세상이 하나의 빛으로 모아지는 것을 주목했다. 하지만 성토마스는 하나의 빛이 다양하게 지상으로 투사되는 것을 보았다. 두 사람은 똑같은 하나의 태양을 이렇게 다르게 보았던 것이다. 이 책도 보고 읽다보면 기존의 종교적 해석과 다른 것이 나오기도 하고 때로는 과격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하나의 절대자를 찾는 다양한 길 가운데 하나라는 점이다.

하지만 진실로 중요한 것은 다양한 해석을 통해 하나의 모습을 구성하는 것이라 하겠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에 호르헤 수사는 예수님은 결코 웃지 않았다고 단정한다. 그리고 그 단정을 통해 예수님이 웃지 않았기에 우리의 즐거움은 죄악이라고 판단한다. 정말일까? 루카 19장 1-10의 자케오 이야기를 보자. 키가 작은 자케오가 예수님을 보기 위해 앞질러 달려나가 돌무화가 나무에 매달려 예수님을 기다리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아마도 예수님도 그런 자케오의 모습을 보고 미소를 지었을 것이다. 이렇게 행간을 통해 우리는 성 베르나르가 말했듯이 거인의 어께에 올라타고 더 멀리 더 높이 볼수있는 것이다.

이 책도 보고 읽으며 내가 몰랐던 것을 알게하고 내가 알았던 것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면 충분하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교회의 이콘 신학
레오니드 우스펜스키 지음, 박노양 옮김 / 정교회출판사 / 201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팔레스티나에서 태동된 그리스도교는 에우로파가 황소를 타고 보스포로스를 건넜듯이 사도들을 통해 유럽세계로 전파되었다. 그리스도교는 아드리아해를 기점으로 전혀 다른 사고방식을 가지고 토착화된다. 서구 유럽의 가톨릭과 동부 유럽의 정교회가 그것이다. 이 두 집단은 예수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구원자를 믿으면서 자신들을 부르는 명칭조차 다르게 정착하였다. 서구의 그리스도교 집단은 자신들을 보편적인 종교집단이라 해서 Catholic으로 불렀지만 동방의 정교회는 정통이란 의미의Orthodox란 명칭을 사용하였다.

이렇게 명칭부터 상이한 두 집단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리는 미사의 형태나 미사를 드리는 성전의 형태도 아주 상이하다. 가톨릭이 성전의 중심이 감실龕室이라면 정교회는 이코노스타시스로 양분되는 저 너머의 祭壇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이코노스타시스란 생소한 단어가 나오는데 굳이 우리 말로 번역하자면 성상벽聖像壁, 성상 칸막이라고 할 수 있다.

이코노스타시스는 말 그대로 구세주와 성 마리아와 성인, 성녀들의 화려한 성화가 들어차 있는 공간이다. 이 벽을 중심으로 정교회의 성전은 하늘의 세계와 지상의 세계가 분리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콘은 구세주인 하느님께서 자신이 계시던 곳을 벗어나 우리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지상으로 나올 때 취했던 우리 인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제임스 벌링턴, 이콘과 도끼에서).

그러므로 이코노스타시스는 우리가 지상에서 천상을 바라보는 창문이면서 거룩하게 변용된 하느님의 외적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바로 이콘은 하느님의 단일함이 여러 갈래의 빛으로 우리에게 전달되듯 그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서방의 가톨릭은 이런 이콘에 대항하여 성당의 외부 창을 형형색의 스테인드글래스로 장식했는데 그것 역시 이코노스타시스와 같은 의미라 하겠다.

정교회와 가톨릭은 서로 외형적인 모습이 다르다 해도 이콘과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자신들이 추구하는 본질이 동일한 것이란 것을 은연중에 말하고 있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