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렐라 아가씨, 몸조심 하세요
안노죠 지음, 서혜영 옮김 / 시공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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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 경계성 인격 장애자의 사랑과 미움

성냥팔이 소녀 : 학대와 섹스 의존증의 종말

헨젤과 그레텔 : 왜곡된 가족이 낳은 과식과 거식

백설공주 : 건강한 섹스를 위한 성교육 교재

벌거벗은 임금님 : 노출증과 비밀스러운 즐거움

복주전자 : 성동일성 장애자의 진정한 행복

이 책의 뒷표지에 적혀있는 자극적인 문구이다. 저자인 안노 죠杏野丈는 정신과 의사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그는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동화의 세계를 정신의학적인 관점에서 해부하고 있다. 솔직히 이런 책은 일본인의 장기가 아닌가할 정도로 이들은 환상의 해부에 탁월한 재능을 보이는 것 같다. 이 책은 솔직히 진지한 책은 아니다. 책 중간 중간에 글을 돕기 위해 그려져 있는 만화는 약간은 외설스럽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그 가벼움 속에서 언뜻 언뜻 비쳐지는 우리들의 자화상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 또한 이 책의 가벼움을 상쇄시켜주는 균형추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책의 말미에 '백설공주 어머니의 거울처럼 동화는 읽는 사람의 마음을 반영한다'고 적고 있다. 그래서 자신은 동화를 정신분석학적으로 접근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그래서 동화의 주인공 모두가 자신의 병원으로 치료받으러 온 환자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의사가 본 이들의 모습에는 조금도 연민의 감정이 섞여있지 않다. 오히려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심리적 해부를 가하고 있다. 저자가 프로이트의 추종자로 생각될 만큼 모든 것이 성적인 것으로 환원되는 것이 불만이다. 이들을 융의 입장에서 해석한다면 또 다른 결론이 나올 수 도 있지 않을까?

오래 전에 미술을 전공하는 친구가 하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은 적이 있다. 누드화를 그릴 때 여성은 모델의 유방을 자신의 것과 남성은 성기를 자신의 것과 유사하게 그린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 이론이 벌거벗은 임금님을 통해서 발견하였을 때 '예술은 심리와도 통하는구나'하고 뒤늦게 무릎을 쳤다. 저자는 이 책이 많이 팔리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이 책의 표지를 보면 정말로 사고 싶은 책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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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1-11 22:1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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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 에코의 즐거운 상상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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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시대는 신앙의 시대였으며 위조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믿기 위해 이해했지, 이해하기 위해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중세인들에게 위조는 죄악이 아니라 믿음을 이해시키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였던 셈이다. 중세인들의 이런 감성은 현대인들에게도 그리 낯선 세계는 아닌듯하다. 현대인들도 중세인들처럼 믿기 위한 이해의 도구를 여러가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선택한 믿음을 위한 이해의 도구는 '극사실주의'라고 에코는 넌지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중세인들에게 믿음을 이해시키기 위한 도구는 현대인들의 눈으로 볼 때 황망하기 까지 하다. 한 예로 뵈메의 샤를 4세의 보물 목록을 보자. 여기에는 성인 아달베르트의 두개골, 성 요셉의 약혼반지, 세례 요한의 12살때의 두개골, 성 스테파누스의 검, 예수가 썼던 가시 면류관, 십자가 조각,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테이블 보, 성녀 마르카레타의 이빨, 성 비탈리스의 뼈조각, 성녀 소피아의 갈비대, 성 에오반의 아래턱, 고래의 갈빗대, 코끼리의 엄니, 모세의 지팡이, 성모 마리아의 옷조각등이다. 그러면서 에코는 그 대칭점에 팝 아트와 새로운 리얼리즘의 전시품목을 벌려놓고 있다. 여기에는 배를 가른 인형(머리 위에는 다른 인형이 불쑥 튀어 나와 있다), 눈이 그려져 있는 안경, 코카콜라병이 끼워져있고 가운데에 전구가 들어있는 십자가, 크게 확대된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 틱트레이시의 연재만화를 크게 확대해 놓은 전시물, 전기의자, 석고로 된 탁구공과 탁구대, 접착제로 붙여 만든 자동차, 유화로 장식한 자동차 바퀴, 코르크병 마개로 만든 상자, 수직으로 세워진 접시와 나이프 등등.

이 두 전시품의 차이를 이성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현대인들의 극사실주의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것을 똑같이 복제하는 현대인의 기호에 기인한다. 현대인들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기 위해 아니 받아들이기 위해 진짜처럼 보이는 진짜 모조품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대의 모습과 중세에 믿음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위조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비틀음을 통해 에코는 우리에게 '알게됨으로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하고 있는 것이다. 에코는 현대의 이미지 중심의 사회 혹은 기호 중심의 삶이 중세적 사고와의 비교를 통해 그 차이의 간극이 아주 가까이 있음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가 묘사하는 현대인과 중세인들의  모습이 마치 조폐창에서 훔친 돈처럼 가치는 그대로 보존되지만  불법통화인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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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무협사 동문선 문예신서 115
진산 지음 / 동문선 / 199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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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무협사>는 좀 특이한 책이라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중국의 역사를 무협을 통해서 조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무협의 俠은 儒와 병행되는 개념으로 중국의 역사에서 일찍부터 등장하고 있다. 儒가 이론적이라면 俠은 실천적인 중국의 한 정신으로 볼 수 있다. 즉 이 俠은 민중도교와 마찬가지로 평민계층에 잠재되어 있는 사상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俠의 세계는 동한 이후 역사의 정식 기록에서 제거되기에 이른다(사마천의 사기에는 자객열전이 들어가 있다). 이것은 그만큼 俠의 문화가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와는 상반된 위험한 사상임을 알 수 있다. 俠은 검의 문화라 할 수 있다. 반면 儒는 붓의 문화이다. 검의 문화는 한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통일된 안정된 제국에서 검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은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검이 사라지는 자리를 붓을 가진 관료들이 채워 나가면서 중국은 좀더 제도화된 왕조의 틀을 갖게된다. 이렇게 중국 역사의 초기에 사라진 俠의 문화가 중국인들의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재창조된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俠의 문화가 대중문화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중국의 역사 속에서 일반 민중들은 협사들의 의리사상에 매료되었다. 이것은 유자들이 왕조의 갈림길에서 쉽게 자신의 신념을 굽히고 다른 왕조로 출사하는 것과는 매우 대조되는 것이었다. 중국의 민중들은 죽음 앞에서도 떳떳했던 형가, 예양, 전제와 같은 인물들의 모습에서 대리 만족을 느끼기도 하였다. 이런 민중들의 바램은 무협소설이라는 특수한 장르를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이 무협소설에 드러난 협객의 이미지는 서양의 기사나 일본의 무사와는 아주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서양의 기사가 상층지배계층의 귀족문화이고, 일본의 무사는 상층계급과 하층 계급 사이의 중간 계층의 특수한 문화인 반면 중국의 협객은 하층 대중 문화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협객들은 궁궐이나 자신들의 집단안에 안주하지 않고 강호를 활보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는 점이다. 그리고 기사계급은 의무라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고, 무사의 가치관념은 특정단체나 조직에 대한 강력한 책임감이었다. 반면 협객은 추상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도 아니고 특정 집단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 협객들은 우연적인 감정속에서 가치관념이 생성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앞에서 말한 협객이 하층 대중문화와 얼마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기사들이 이런 가치관념을 신사도라는 단어 속에 일본의 무사들은 무사도라는 단어 속에 집약하였다. 반면 중국의 협객들은 俠義라는 단어 속에 자신들의 가치관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이 협의는 중국 민간사회의 도덕적 기반이라는 점 역시 의미심상한 것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협의란 무엇일까? '허락의 말을 중히 여기고, 죽고 사는 것을 가벼이 여기며, 의기투합하지 않으면 검을 들고 일어섰고, 자신의 검이 빗나가면 할복함으로써 사죄하였으니, 이것이 협의 모습이다. 벗에게는 상처를 입히지 않고, 나라에 분함을 터뜨리지 않으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을 경시하고 나라의 권세를 중히 여기는 이것이 협의 기풍이다. 협은 유의 반대이다. 유는 죽음으로서 용서하지만 협은 분을 많이 내며, 유는 빈말을 숭상하믄 반면 협은 실제적인 것을 중시한다. 유는 길흉화복을 따지지만 협은 이해관계를 잊고, 유는 옛것을 답습하지만 협은 새롭고 기이한 것을 추구한다'라고 장유는 정의를 내리고 있다. 중국의 협객문화는 역사적으로 기록되지 않은 중국 민중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무협사는 정사의 보충적인 성격을 지니면서 또한 그 자체로 하층계급에 대한 하나의 망탈리테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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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적 사유와 그리스적 사유의 비교
토를라이프 보만 지음 / 분도출판사 / 197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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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명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은 두 축을 이루는 단단한 기둥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그 단단한 기둥은 왠만한 삼손이 나타나지 않는한 절대로 무너지지 않을 듯이 보인다. 이 두 사상은 유럽을 떠받치는 양대 축이면서도 결코 서로를 융합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여왔다는 점이다. 그리스적 사유가 인간이성을 강조한다면 유대적 사유는 신적 초월을 강조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유럽의 역사를 이해할 때 반드시 선행되어야하는 것이 유대적인 사유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유럽의 정신적 토대가 된 그리스도교 역시 유대교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해서 유럽의 그리스도교적인 사유는 유대전통에 그 맥이 닿아있는 셈이다.

그럼으로 우리들은 그리스적인 전통과 유대적인 전통은 아주 유사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가면서 느끼는 것은 두 사유의 공통점이 거의 전무하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유대적인 사유가 유럽인들에게 이해되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쩌면 유대적인 사고의 왜곡에 바탕을 둔 것은 아닐런지.

이 책의 저자는 스웨덴 출신의 루터교 성직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신학적인 관점에서 그리스와 유대의 사유를 바라보고 있다. 따라서 신학적 지식이 없는 독자들에게는 약간 따분하고 어려울지 모르지만  두 사유방식의 차이를 명료하게 구분하는 방법론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어려움이 없다. 그럼에도 이 책이 어렵게 보이는 것은 보만이 두 사유의 근간이 되는 언어에 집중적인 조명을 비추므로서 언어를 통한 사유의 해석을 시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쉴새없이 나오는 히브리어와 그리스어의 조각들을 따라가다보면 어지러운 느낌이 들지만 그 혼돈 속에서 두 민족의 사유에 대한 어떤 실마리가 솟아오름을 느낄 수 있다.  

언어를 분석하면서 그리스적 사유를 정적인 사유로 유대적 사유를 동적인 사유로 분석하는 저자의 논리는 그동안 우리들이 이해하고 있던 두 사상을 전혀 반대되는 것으로 해석하는듯이 보인다. 계속 이어지는 시간과 공간의 분석에 이르러서도  보만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그리스적 사유의 시,공성과 구약성경에 통해 드러나는 유대적인 시.공성을 통해 우리들이 알고 있던 고정관념을 깨뜨린다. 이러한 과정을 거처 저자는 우리들을 그리스인들은 논리학자로, 히브리인들은 심리학자로 파악하는 지점에 도달하게한다. 이 지점에 이르면 우리들은 그 어떤 명쾌함보다는 그동안 이해되어 왔던 두 사상이 아주 모순적인 정적논리와 동적심리로 재해석되는 것을 보게된다.  그리고 이런 사고방식이 유럽의 중세를 통해 그리스도교 사회로 그대로 이전되어 있음을 알게되면서 두 사유방식이 왜 유럽 사유의 두 축이되었는가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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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 일신서적 세계명작100선 35
보카치오 지음 / 일신서적 / 199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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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카메론의 이야기는 중세의 성인전이나 고백록같은 종류의 이야기와는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성인전이나 고백록이 신을 중심으로 이야기의 줄거리가 전개되는 반면 데카메론은 순전히 인간 중심의 이야기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카메론은 성인전이나 고백록과 같이 신을 향한 공동체의 공동체적 관심보다는 인간적인 관심사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데카메론에서는 중세의 고유한 신분질서인 성직자, 기사, 농민이라는 엄격한 구분이 파괴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계층은 새로운 신흥계급인 부르조아지들이다. 이들은 성직자의 타락과 기사-귀족-계급의 무능, 농민들의 빈곤을 마음껏 조롱하고 있다. 이것은 이 당시 이미 중세적 질서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신분질서Ordo가 서서히 붕괴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에는 현대의 관점에서 볼 때도 무리없이 이해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 작품 전체에 흐르는 분위기는 중세적 집단정신과는 사뭇 구별되는 개인적 인간형이다. 이 개인적 인간형들은 이전의 고대. 중세인들과는 판이하게 다른 유형의 인간들이란 점이다. 즉, 심리적인 인간이란 의미이다.  누군가는 중세를 '위조의 시대'라고 이야기하였다. 중세는 그 위조마저도 신앙의 준거로 변용시키는 절대적인 힘이 있었다. 하지만 데카메론에 나타나는 사람들은 개별적인 인간들이다. 이들에게는 자신을 절대적으로 제어하는 절대적 존재란 개념이 희미하다. 대신 이들은 자신들이 추구하는 것에 커다란 가치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즉 새로운 계급인 부르조아지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에 의미를 두면서 거기서 신의 가치를 찾으려 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의 눈에 무위도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성직자와 귀족들은 조롱의 대상일 뿐인 것이다. 반면 너무 열심히 일하는 농민들 역시 부르조아지들의 놀림감이 되었는데 그것은 그들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즉 데카메론에 드러나는 새로운 신흥계급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을 옭죄어왔던 계급적 질서를 의식하지 않는다. 대신 이들은 계급의식보다는 경제적 가치에 의해 사람을 새롭게 판별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신흥계급들은 수량화혁명을 통해 모든 가치를 통제할 수 있게되기를 희망하였다. 이런 이들의 희망은 경제적 확대를 통해 급속하게 퍼져나갈 수 있었다. 사실 이들 신흥 부르조아 계급들은 새로운 가치관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이들의 자신감은 데카메론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데카메론에 묘사된 100가지의 이야기에는 하나의 공동체가 아니라 100명의 개인이 존재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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