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모던인가 새로운 중세인가 - 에코의 즐거운 상상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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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시대는 신앙의 시대였으며 위조의 시대였다. 사람들은 믿기 위해 이해했지, 이해하기 위해 믿은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중세인들에게 위조는 죄악이 아니라 믿음을 이해시키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하였던 셈이다. 중세인들의 이런 감성은 현대인들에게도 그리 낯선 세계는 아닌듯하다. 현대인들도 중세인들처럼 믿기 위한 이해의 도구를 여러가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이 선택한 믿음을 위한 이해의 도구는 '극사실주의'라고 에코는 넌지시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중세인들에게 믿음을 이해시키기 위한 도구는 현대인들의 눈으로 볼 때 황망하기 까지 하다. 한 예로 뵈메의 샤를 4세의 보물 목록을 보자. 여기에는 성인 아달베르트의 두개골, 성 요셉의 약혼반지, 세례 요한의 12살때의 두개골, 성 스테파누스의 검, 예수가 썼던 가시 면류관, 십자가 조각, 최후의 만찬에 사용했던 테이블 보, 성녀 마르카레타의 이빨, 성 비탈리스의 뼈조각, 성녀 소피아의 갈비대, 성 에오반의 아래턱, 고래의 갈빗대, 코끼리의 엄니, 모세의 지팡이, 성모 마리아의 옷조각등이다. 그러면서 에코는 그 대칭점에 팝 아트와 새로운 리얼리즘의 전시품목을 벌려놓고 있다. 여기에는 배를 가른 인형(머리 위에는 다른 인형이 불쑥 튀어 나와 있다), 눈이 그려져 있는 안경, 코카콜라병이 끼워져있고 가운데에 전구가 들어있는 십자가, 크게 확대된 마릴린 먼로의 초상화, 틱트레이시의 연재만화를 크게 확대해 놓은 전시물, 전기의자, 석고로 된 탁구공과 탁구대, 접착제로 붙여 만든 자동차, 유화로 장식한 자동차 바퀴, 코르크병 마개로 만든 상자, 수직으로 세워진 접시와 나이프 등등.

이 두 전시품의 차이를 이성으로 판단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현대인들의 극사실주의는 역사적 사실을 받아들이기 위해 모든 것을 똑같이 복제하는 현대인의 기호에 기인한다. 현대인들은 역사적 사실을 재현하기 위해 아니 받아들이기 위해 진짜처럼 보이는 진짜 모조품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현대의 모습과 중세에 믿음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위조품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이 비틀음을 통해 에코는 우리에게 '알게됨으로서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게'하고 있는 것이다. 에코는 현대의 이미지 중심의 사회 혹은 기호 중심의 삶이 중세적 사고와의 비교를 통해 그 차이의 간극이 아주 가까이 있음을 우리들에게 말하고 있다. 그가 묘사하는 현대인과 중세인들의  모습이 마치 조폐창에서 훔친 돈처럼 가치는 그대로 보존되지만  불법통화인것과 같은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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