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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일곱 기둥 3
T.E. 로렌스 지음, 최인자 옮김 / 뿔(웅진) / 2006년 11월
평점 :
품절
드디어 세권의 전기를 다 읽었다. 영어로 쓴 책과 한글로 번역된 글과의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로렌스가 사막의 고독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쩌면 중세시대 이래로 내려온 사막의 은둔과 고독을 즐기는 수도자의 현대적 모델이었는지도 모른다.
중세 이래로 사막에서 활동한 수도자들은 현실의 모순을 개혁하는데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개인의 삶을 변모시키는데는 큰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로렌스 역시 그 자신의 활동으로 인해 거대한 국제적인 정치의 역할에서는 실패하였을지 모르지만 아랍인들이 마음 속에 압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큰 주제를 각인 시키는데는 성공하였다.
물론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로렌스의 이런 행위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시가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보고 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아랍의 상황은 터키의 압제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형태의 지도자가 필요했다. 로렌스는 아랍의 다층적인 갈등의 이해관계 속에서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로렌스가 브리튼 제국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듯이 아랍측 역시 자신들의 대의와 목적을 위해 로렌스를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로렌스는 사막의 은수자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우리들이야 이상을 추구하라고 재촉하고 싶지만 냉혹한 현실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브리튼 제국은 아랍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군사적 행동을 철저히 자신들의 통제하게 두려고 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아랍의 석유가 그 원인이었다). 아랍은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위신을 어떻게 하든지 역사의 시간표에 흔적을 남기려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로렌스는 정치적이기 보다는 종교적으로 변모해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로렌스가 추구한 것은 중세적인 종교윤리였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은 현대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로렌스는 현실과 종교의 사이에서 종교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추측은 그의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해 볼 수 있다.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는데 그 죽음의 순간은 자신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자신이 산다면 타인이 죽어야 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냉혹한 정치의 세계에서 종교적 현실을 꿈꾸던 이상주의자 혹은 종교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