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화소록
강희안 지음, 이병훈 옮김 / 을유문화사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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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김소운선생이 한국과 일본의 士農工商이란 신분질서에서 제일 위의 士는 전혀 다른 것이라고 쓴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는 한국의 士는 선비, 즉 文을 기반으로 한 지배층을 의미하지만 , 일본의 士는 武士의 士라는 것이었다. 이 평범한 단어의 차이를 통해서도 한국과 일본은 정서적인 평행선을 달릴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아쉬웠던 것은 조선의 선비는 어떤 모습이었을까?하는 의문이었다. 과연 조선의 선비들은 책상물림이면서 먹물이었을까? 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들은 한마디로 사회적 속물일 수밖에 없다는 숙명론적인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다분히 염세적이며 숙명적인 조선의 선비관은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치욕 앞에서 절대적인 힘을 발휘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조선의 선비는 어떤 존재였을까? 공리공론에 함몰된 나약한 존재였을까? 사고방식도 유학에 침잠하여 다른 세계를 볼 수 없었던 인간들이었을까?

조선의 선비란 구름위의 존재로 묘사된 현실의 고정관념은 정말로 확실한 것일까?

이 책은 선비의 책 답게 여러가지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가득 담고 있다. 꽃을 사람으로 본다면 인재 양성의 모습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꽃을 꽃 그대로 본다면 하나의 고아한 취미로도 볼 수 있다. 이렇게 여러가지 우의적인 모습 해석할 수 있는 이 책은 우리에게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한다. 꽃을 바라보는 심미안은 사람을 꾀뚤어 보는 날카로움이라고 할 수도 있다. 품종을 고르는 것은 사람의 자질을 가늠하는 것이고...

이런 養花의 모습은 내재적인 힘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숨은 가치를 가꾸면서 드러내게 하는 것이 바로 양화의 길인 것이다.  여기에는 품종 자체의 우수함 뿐만 아니라 가꾸는 사람의 정성이 더해져야만 한다. 거름을 주고 가지를 치는 이런 모습에서 조선의 위정자들이 어떤 자세로 국가를 경영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 이것은 선비의 가장 큰 자질인 靜中動의 다른 표현인 것이다. 이 조선의 선비는 현란함은 없지만 그 고요함 속에 커다란 에너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양화소록"은 이런 내면의 모습이 드러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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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사
레이몬드 카 외 지음, 김원중.황보영조 옮김 / 까치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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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스페인 혹은 에스파냐로 알려진 나라는 우리에게 기타와 돈키호테, 산쵸 판자로 고정되어 있다. 여기서 조금더 나간다하더라도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의 독재 정도 이다. 조금 더 머리를 짜내면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바스크 분리주의자 정도이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정도의 고정관념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큰 장애물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스페인의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장으로 나누어져 기술된 역사는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관심을 가진 시대부터 차근 차근 읽어나간다면 스페인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야만족인 비시고트가 지배한 스페인의 중세를 읽어 보기 위함이었다. 사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제는 이런 거창한 단어가 맞을지 모르지만-이 언제나 피레네 以東에서 끝나는 세계사에서 스페인은 변방의 외톨이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외톨이적인 스페인은 그 뒤에 이어지는 이슬람과의 투쟁과 엄격한 종교주의로 무장하게되는 종교재판소의 스페인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스페인의 역사 모습은 서유럽의 지속적인 역사와 너무 구별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세 스페인은 유럽에서 시작된 종교적 전쟁의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이다. 8세기 이후 이슬람에 의해 정복된 이베리아 반도는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온 용병들의 무대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엘 시드 역시 기독교 군주와 이슬람 고용주 사이를 오간 인물이었을 뿐이다. 그 시대는 그럴수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럼에도 스페인은 종교적 관점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스페인은 러시아와 비교가 되는 종교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자신을 제3의 로마로 칭하면서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안드레이-서구로마교회의 수장인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아-를 택한다. 이는 베드로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성인을 자신들이 선택했다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스페인은 산티야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성지로 대표되는 세인트 야고보-산티야고-를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삼고 있다. 야고보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의 형제로 표현되는 성서속의 인물인 것이다. 이것은 스페인이 로마와 모스크바가 취한 열쇠의 논쟁과는 또 다른 차원의 국가라는 점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적 뿌리는 예수의 형제와 닿아있다는 것은 스페인이 왜 종교적 관점과 열정을 포기할 수 없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스페인의 중세적 감성을 이해한다면 스페인의 역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종교-가톨릭-적 열정과 수호에 대한 의지가 스페인 역사의 중요한 부분임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종교적 감성의 이해를 통해 스페인의 현대 또한  "연장된 중세"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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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ine 2007-05-05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리뷰를 읽고 "히스패닉 역사" 를 재밌게 읽었습니다 이 책도 관심이 갑니다
 

 

16. hides

이 단위는 데인로Danelow 이외의 대부분 지역에서 발견되는 단위로 농민의 땅 소유 단위이면서 과세부과의 단위이다. 이 단어는 고 영어 hid에서 유래된 것으로 한 가족을 부양할 수 있는 땅의 크기를 의미한다. 대부분의 주에서는 120에이커acre를 1hide로 계산한다. 하지만 남서부에서는 40, 48 혹은 60에이커를 1하이드로 계산하기도 한다.


17. sulung


라틴어 솔리누스solinus에 해당한다. 이 용어는 세액부과 단위와 농부의 소유지를 이르는 말로 오직 켄트Kent지역에서만 확인된다. 다른 지역에서 이 용어에 상당하는 말은 쟁기이다. 이 말은 쟁기를 뜻하는 古영어 sulh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 용어는 하이드hide나 카루카테carucate가 관습적으로 사용된 지역에서도 두어번 나타나고 있다. 이 단어는 대략 240에이커 정도이다.


18. virgate


라틴어 virgata에서 유래되었다. 이 용어는 데인로지역과 켄트 외곽지역의 대부분 지역에서 과세단위와 농부의 토지소유 단위로 나타나고 있다. 이 단위는 하이드의 1/4로 대략 30에이커에 해당된다.


19. furlong


라틴어 quarentina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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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 대전 당시 미 해병대의 유명한 사진이 한 장있다. 유황도의 스리바찌 산 정상에 성조기를 세우는 여섯명의 해병을 찍은 사진이 그것이다. 이 사진이 유명한 것은 역동적인 여섯명의 모습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성조기를 세우는 해병들의 모습. 우에서 좌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포즈의 연속성과 거대한 성조기의 이미지는 거대한 아메리카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이 사진과 비교될 수 있는 장면은 아마도 조지 C. 스코트가 주연한 '패튼 대전차군단'의 첫 장면이 아닐까. 거대한 성조기 앞으로 승마바지에 조개껍질로 손잡이를 장식한 리볼버를 차고 성큼 성큼 걸어오는 패튼의 이미지는 또 다른 거대한 아메리카의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재와 영화라는 차이랄까,

유황도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섯명의 해병 가운데 깃대를 실제로 잡고 있는 사람은 다섯명이다. 맨 뒤쪽의 해병대원은 거대한 성조기에 손을 뻗치고 있지만 결코 손이 닿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진실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다. 여섯번째의 병사는 사진에서 조각에서 언제나 성조기를 향해 손을 뻗치고만 있을 뿐 결코 닿을 수 없다. 그는 거대하고 풍요롭고 강한 미국 속의 방황하는 아하스 페로스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미국 사회의 주류에 결코 진입해 본 적이 없는 인디언이었다.

그 인디언은 군대라는 획일적인 통로를 통해 자신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섯번째 병사는 존 세리던이 내뱉었듯이 '죽은 인디언이 좋은 인디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성조기는 자신이 결코 인정해 본적이 없는 조국의 상징이었지만...

오래 전에 토니 커티스라는 배우가 주연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성조기에 손이 닿지 못했던 병사의 이야기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맨 마지막 장면이다. 영웅이었지만 결코 미국인들 속으로 편입될 수 없었던 여섯번째 병사는 알콜중독자로 떨어지고 자신의 고향으로 흘러들어와 술병을 차고 자신이 자랐던 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서 술을 진창 마시고 얼어죽는다. 얼어죽은 그의 모습에서 손이 확대되어 화면에 비친다.그는 죽으면서도 자신이 유황도에서 잡지 못했던 성조기의 깃대를 잡으려는 듯이 손을 움켜쥐고 있지만 그 손의 모습은 허공 속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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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일곱 기둥 3
T.E. 로렌스 지음, 최인자 옮김 / 뿔(웅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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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세권의 전기를 다 읽었다. 영어로 쓴 책과 한글로 번역된 글과의 차이는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로렌스가 사막의 고독을 즐겼다는 사실이다. 그는 어쩌면 중세시대 이래로 내려온 사막의 은둔과 고독을 즐기는 수도자의 현대적 모델이었는지도 모른다.

중세 이래로 사막에서 활동한 수도자들은 현실의 모순을 개혁하는데는 큰 힘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개인의 삶을 변모시키는데는 큰 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이다. 로렌스 역시 그 자신의 활동으로 인해 거대한 국제적인 정치의 역할에서는 실패하였을지 모르지만 아랍인들이 마음 속에 압제에 대한 저항이라는 큰 주제를 각인 시키는데는 성공하였다.

물론 에드워드 사이드가 '오리엔탈리즘'에서 로렌스의 이런 행위를 비난하고 있지만 그것은 당시가 아니라 현재의 관점에서 보고 있기에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당시 아랍의 상황은 터키의 압제를 벗어나기 위해 어떤 형태의 지도자가 필요했다. 로렌스는 아랍의 다층적인 갈등의 이해관계 속에서 독립적으로 행동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물이었다. 로렌스가 브리튼 제국의 이익을 위해 자신의 지위를 이용했듯이 아랍측 역시 자신들의 대의와 목적을 위해 로렌스를  최대한 활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로렌스는 사막의 은수자처럼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을 표출하고 있다. 이 책을 읽어가는 우리들이야 이상을 추구하라고 재촉하고 싶지만 냉혹한 현실의 정치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다. 브리튼 제국은 아랍이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도록 군사적 행동을 철저히 자신들의 통제하게 두려고 하였고 실제로 그렇게 하였다(아랍의 석유가 그 원인이었다). 아랍은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자신들의 위신을 어떻게 하든지 역사의 시간표에 흔적을 남기려 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로렌스는 정치적이기 보다는 종교적으로 변모해갔는지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로렌스가 추구한 것은 중세적인 종교윤리였지만 자신이 처한 상황은 현대였다는 사실이다. 결국 로렌스는 현실과 종교의 사이에서 종교를 선택한 것처럼 보인다. 이런 추측은 그의 죽음과 밀접하게 연관해 볼 수 있다. 그는 오토바이 사고로 죽었는데 그 죽음의 순간은 자신이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자신이 산다면 타인이 죽어야 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렇기에 그는 냉혹한 정치의 세계에서 종교적 현실을 꿈꾸던 이상주의자 혹은 종교주의자였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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