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세계 대전 당시 미 해병대의 유명한 사진이 한 장있다. 유황도의 스리바찌 산 정상에 성조기를 세우는 여섯명의 해병을 찍은 사진이 그것이다. 이 사진이 유명한 것은 역동적인 여섯명의 모습 때문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성조기를 세우는 해병들의 모습. 우에서 좌로 이어지는 역동적인 포즈의 연속성과 거대한 성조기의 이미지는 거대한 아메리카의  힘을 느끼게 한다. 이 사진과 비교될 수 있는 장면은 아마도 조지 C. 스코트가 주연한 '패튼 대전차군단'의 첫 장면이 아닐까. 거대한 성조기 앞으로 승마바지에 조개껍질로 손잡이를 장식한 리볼버를 차고 성큼 성큼 걸어오는 패튼의 이미지는 또 다른 거대한 아메리카의 모습이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재와 영화라는 차이랄까,

유황도의 사진을 자세히 보면 재미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여섯명의 해병 가운데 깃대를 실제로 잡고 있는 사람은 다섯명이다. 맨 뒤쪽의 해병대원은 거대한 성조기에 손을 뻗치고 있지만 결코 손이 닿을 수 없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의 진실로 우리에게 보여지고 있다. 여섯번째의 병사는 사진에서 조각에서 언제나 성조기를 향해 손을 뻗치고만 있을 뿐 결코 닿을 수 없다. 그는 거대하고 풍요롭고 강한 미국 속의 방황하는 아하스 페로스인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는 미국 사회의 주류에 결코 진입해 본 적이 없는 인디언이었다.

그 인디언은 군대라는 획일적인 통로를 통해 자신도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어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여섯번째 병사는 존 세리던이 내뱉었듯이 '죽은 인디언이 좋은 인디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에게 성조기는 자신이 결코 인정해 본적이 없는 조국의 상징이었지만...

오래 전에 토니 커티스라는 배우가 주연한 영화를 본 적이 있다. 바로 그 성조기에 손이 닿지 못했던 병사의 이야기였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것은 맨 마지막 장면이다. 영웅이었지만 결코 미국인들 속으로 편입될 수 없었던 여섯번째 병사는 알콜중독자로 떨어지고 자신의 고향으로 흘러들어와 술병을 차고 자신이 자랐던 산으로 올라간다. 그리고 거기서 술을 진창 마시고 얼어죽는다. 얼어죽은 그의 모습에서 손이 확대되어 화면에 비친다.그는 죽으면서도 자신이 유황도에서 잡지 못했던 성조기의 깃대를 잡으려는 듯이 손을 움켜쥐고 있지만 그 손의 모습은 허공 속에 매달려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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