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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사
레이몬드 카 외 지음, 김원중.황보영조 옮김 / 까치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스페인 혹은 에스파냐로 알려진 나라는 우리에게 기타와 돈키호테, 산쵸 판자로 고정되어 있다. 여기서 조금더 나간다하더라도 스페인 내전과 프랑코의 독재 정도 이다. 조금 더 머리를 짜내면 바르셀로나 올림픽과 바스크 분리주의자 정도이다. 과연 그럴까? 이 책은 우리에게 이 정도의 고정관념이 세계를 이해하는데 얼마나 큰 장애물인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스페인의 고대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장으로 나누어져 기술된 역사는 굳이 순서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자신이 관심을 가진 시대부터 차근 차근 읽어나간다면 스페인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솔직히 이 책을 구입한 것은 야만족인 비시고트가 지배한 스페인의 중세를 읽어 보기 위함이었다. 사실 게르만족의 대이동-이제는 이런 거창한 단어가 맞을지 모르지만-이 언제나 피레네 以東에서 끝나는 세계사에서 스페인은 변방의 외톨이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런 외톨이적인 스페인은 그 뒤에 이어지는 이슬람과의 투쟁과 엄격한 종교주의로 무장하게되는 종교재판소의 스페인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불연속적인 스페인의 역사 모습은 서유럽의 지속적인 역사와 너무 구별되기도 한다. 하지만 중세 스페인은 유럽에서 시작된 종교적 전쟁의 시발점이었다는 사실이다. 8세기 이후 이슬람에 의해 정복된 이베리아 반도는 서유럽과 동유럽에서 온 용병들의 무대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엘 시드 역시 기독교 군주와 이슬람 고용주 사이를 오간 인물이었을 뿐이다. 그 시대는 그럴수밖에 없었고, 그래야만 생존할 수 있는 시대였다. 그럼에도 스페인은 종교적 관점을 결코 포기한 적이 없다.
스페인은 러시아와 비교가 되는 종교적 관점을 가지고 있다. 러시아는 자신을 제3의 로마로 칭하면서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안드레이-서구로마교회의 수장인 베드로의 형제인 안드레아-를 택한다. 이는 베드로에 결코 뒤지지 않는 성인을 자신들이 선택했다는 것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스페인은 산티야고 데 콤포스텔라라는 성지로 대표되는 세인트 야고보-산티야고-를 자신들의 수호성인으로 삼고 있다. 야고보가 누구인가? 바로 예수님의 형제로 표현되는 성서속의 인물인 것이다. 이것은 스페인이 로마와 모스크바가 취한 열쇠의 논쟁과는 또 다른 차원의 국가라는 점을 은연중에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자신들의 종교적 뿌리는 예수의 형제와 닿아있다는 것은 스페인이 왜 종교적 관점과 열정을 포기할 수 없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이러한 스페인의 중세적 감성을 이해한다면 스페인의 역사에 깊이 각인되어 있는 종교-가톨릭-적 열정과 수호에 대한 의지가 스페인 역사의 중요한 부분임을 이해하게 된다. 이런 종교적 감성의 이해를 통해 스페인의 현대 또한 "연장된 중세"의 또 다른 모습이 아닌가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