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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치통감 9 - 진(晉)시대 1 ㅣ 자치통감 9
사마광 지음, 권중달 옮김 / 도서출판 삼화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중국의 역사에서 진晉은 참 특이한 왕조라 할 수 있다. 오래 전 삼국지를 읽다가 느낀 점이 있다. 위魏,오吳,촉蜀이 치열하게 싸움을 벌이고 이들 나라 가운데 은근히 유비를 응원하면서 제갈량의 도움으로 촉이 삼국을 통일하기를 바랬는데, 갑자기 사마씨가 등장하면서 삼국의 영웅들과 재사들이 맥없이 사마씨에게 복종하고, 삼국이 아니라 사마씨의 진-西晉-이 통일한다. 삼국지의 4/5동안 등장하지도 않았던 인물이 갑자기 부상하여 모든 영웅들을 제압하는 이 후반부에 책을 몇번이나 덮다 읽다를 반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러한 감정이었는지 서진과 동진의 역사는 사기꾼들이 갈취한 왕조의 별볼일 없는 역사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청담淸談과 죽림칠현, 그리고 세설신어라는 책을 읽으며 그곳에 나와있는 대다수의 이야기가 삼국지시대와 그 이후의 왕조인 서진과 동진에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다. 유학에 얽매이지 않고 노장사상과 불교가 어울어진 청담과 세설신어의 세계는 이 시대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그러면서도 왜 이 시대는 전대인 한漢과는 달리 유교에 바탕을 둔 의리와 신의의 정치질서가 아니라 노장에 바탕을 둔 허무와 재치의 정치가 대세를 이루었을까?
아마도 이런 허무사상과 청담에로의 경도됨은 진 왕조 탄생 시초에 이미 뿌려진 것이 아니었을까-이에 대해서는 이나미 리츠코 교수의 배신자들의 중국사를 참조함것-생각 해 본다. 타인을 믿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혈족만을 믿을 수 있는 세상. 이러한 세상에서 공자의 글자와 정신은 어쩌면 의미없는 인쇄물이었는지 모른다. 오늘을 살아 내일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친구도 적도 없는 회색의 세계가 되어야만 했다. 필경 이 세계는 푸른 아편 연기에 찌든 아편굴과 같은 세계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일까, 서진의 제왕들은 사치스럽고 음탕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형제들끼리 나라를 절단낼 내란-八王의 亂-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이 결과 서진은 장강 이남으로 물러나고 장강 이북은 중국인들이 오랑캐로 부른 유목민들이 차지하는 이른바 5호16국의 역사가 시작된다.
사실 왕조의 건설이 하늘의 뜻天命이라 한다면 서진의 창건은 사마광에게 있어 역사의 흐름이었을지 모르지만 중국의 입장에서는 황하의 문명이 장강을 넘어 남만으로 흘러들어가는 시발점이 되었다는 점이다. 중국이 이전시대에도 남쪽을 공략하였지만 그것은 어디까지 침략의 의미를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서진이 장강을 넘어 동진을 건설하면서 침략이 아니라 정주와 지배의 의미가 첨가되었다는 점이다. 이 결과 남만으로 총칭되던 장강 이남은 급속히 발전하게 되면서 한화漢化되어 가기 시작한다. 이것은 회수 이북의 유목민에 대해 만리장성을 구축하여 자신들과 이민족을 구분하던 중국의 입장이 서서히 변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것은 중국이 강력한 유목세력과의 직접적인 대결보다는 자신들의 능력에 버겁지 않은 약소 민족을 확장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장강 이남으로 천도한 진은 얼마후 손님의 입장에서 벗어나 주인행사를 하게되는데-이것은 박한제 교수의 胡漢,僑舊이론을 참조할 것-이것이 바로 중국의 본질인 것이다. 중국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中國이었다. 즉 자신은 中이고 다른 곳은 國이었던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진 시대인 것이다.
*초수대읍楚囚對泣:서진이 장강 이남으로 천도한 뒤에 서진의 전직관료들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는 것을 보고 재상인 왕도가 이들을 꾸짖으며 한 말이라고 한다. 즉 서진의 관료들이 칠칠치 못하게 초나라의 죄인이 된양 눈물만 질질 짜고 있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