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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르강튀아.팡타그뤼엘 ㅣ 대산세계문학총서 35
프랑수아 라블레 지음, 유석호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04년 9월
평점 :
가르강튀아와 팡파크뤼엘의 세계는 풍자의 세계이며 엽기의 세계이다. 이런 풍자와 엽기의 세계는 무엇을 겨눈 것이었을까? 아마도 그 당시 타락하여던 종교라는 거대한 하나의 실체를 겨냥한 것이 었다고 생각된다. 종교의 세속화는 어쩌면 좋은 현상일지도 모른다. 천상의 눈높이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직자의 세속화는 이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종교의 세속화라고 하지 성직자의 세속화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다. 종교만큼 종교 자신과 성직자가 하나로 이해되는 곳도 없으리라. 그러기에 종교의 세속화는 종교의 본질을 말하는 것보다는 종교의 뜻을 실행하는 성직자에 대한 세속화를 질타하는 것으로 많이 쓰인다. 왜냐하면 성스런 종교를 수행하는 것은 축성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성직자는 신의 도구일 뿐이지 신 그 자체는 아닌 것이다. 성직자 만능주의는 이런 의미에서 종교에 비극일 수밖에 없다.
중세의 종교세계는 이러한 성직자 만능주의의 과신이 빚어낸 하나의 비극이었다고 볼 수 있다. 가르강튀아는 이러한 과신의 세계에 대한 하나의 풍자인 것이다. 이 세상이 종교적인 것으로 창조되었다면 인간적인 것의 과신 역시 전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그러기에 가르강튀아의 행동 하나 하나는 신적인 창조질서에 대항하는 인간의 질서인 것이다. 그것이 황당하다면 왜 신적 질서의 세계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는가? 왜냐하면 이런 인간적 과신은 이미 소수의 성직자들에 의해 실천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신의 대리자인 성직자의 과신이 용인된다면 신의 창조물인 인간의 과신 역시 용인되는 것이 아닐까? 하지만 중요한 것은 민중들은 인간적 과신이 아니라 신적 겸손에 몰입하는 성직자를 더 요구하였다. 이러한 이중성은 중세 기간 내내 성직자와 민중 간의 이질적인 요소로 작용하였다. 이런 결과 민중들은 자신들과 다를바 없는 성직자를 존중하지 않았고, 성직자 또한 성사적 요소에 집중할 수 없었다.
가르강튀아의 세계는 이런 세계이다. 문득 문득 이런 말도 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자신의 주변에 그런 세계가 실재한다면 그것은 허구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을 고발하는 것이 되는 것이다. 즉 가르강튀아는 허구를 통해 현실을 풍자하는 이야기 인 것이다.
사실 중세는 모순이 종교와 혼합되어 신비주의로 가공된 세계인지도 모른다. 이런 가공의 세계에 반론을 제기한 것이 르네상스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인간은 현실의 쓰라림 속에서 살아가고 있지 가공의 상상 속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가르강튀아는 상상의 세계를 통해 현실의 세계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게 된 것은 인간 정신의 근대성이라고 할 수 있다. 가르강튀아에서는 바로 이 근대성을 보는 것이다.
*팡타그뤼엘은 나중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