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미국 : 할리우드 영화의 문화적 의미 살림지식총서 7
김성곤 지음 / 살림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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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초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주연한 더티 해리 1탄을 볼때의 기억 한토막.


햄버거를 먹으며 유유히 걸어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밥을 밖에서 먹을 수 있는 파격이 부러웠다. 이는 마치 도시락을 길거리에서 먹으며 걸어가는 것과 같았으니까.


AFKN과의 추억 하나.


AFKN에서 방영하던 솔 트레인에서 골반을 격렬하게 흔들며 춤을 추던 무희는 금지된 성을 연상케하는 민망함이 있었다.


극장에서의 경험.


포스트맨은 벨을 두번 울린다에서 잭 니콜슨과 제시카 랭이 부엌에서 벌이던 격렬한 정사신. 그 대담함과 생략 속에 드러나는 감춰진 행위. 중년층의 반응이 굉장했다.


텔레비전 시리즈의 기억


70년대 한국에서 방영되었던 경찰 시리즈 가운데 ADAM 49(제목이 정확하지는 않음)인가 하는 영화에서 흑인 경관과 백인 여성과의 키스신을 처음 보았을 때의 충격. 흑인 경찰관이 도와준 앞을 못보는 백인 여성과 헤어지는 장면, 백인 여성이 손으로 흑인 경관의 얼굴을 더듬다 두툼한 입술에서 순간 멈춘 손가락이 머뭇거리고 둘은 키스를 나눈다.... 90년대 덴젤 워싱턴과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했던 펠리칸 브리프의 마지막 장면에서는 둘은 극의 흐름상  키스를 해야만 했다. 그러나 둘은 가벼운 포옹만을 나눈채 헤어진다. 누가 겁을 먹은 것일까?


패튼 대전차군단의 도입부에 나오는 거대한 성조기를 기억하는지. 그것은 마치 거대한 성기와 같은 느낌을 주었다. 미국의 오만? 혹은 자만?


영화속의 미국은 언제나 풍요로운 세상이었다. 미국은 자유로웠다. 그 모든 것을 따라잡기 위해 오늘도 우리는 열심히 땀을 흘린다. 무엇을 위해? 미국적 풍요를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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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끝으로 훔쳐본 세상
세노 갓파 지음, 박국영 옮김 / 서해문집 / 199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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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에 작고한 만화가 申東雨선생이 텔레비전에 나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며 그 세부적인 것을 그림으로 그리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분은 홍길동이란 만화영화를 만든 분이었기에 더욱더 실감이 났다. 그때 사물의 모든 것을 자신의 펜 끝으로 표현하는 만화가란 직업이 정말 대단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일본인들의 기록정신은 정말 남다른 데가 있다는 말이 결코 허전이 아님을 이 책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특히 드라마에서 미술을 담당하게 된 저자가 기차속의 상황을 리얼하게 묘사하기 위해 실제로 기차를 타고 여행하면서 터널의 상황을 자세하게 기록한 시간표는 기록의 압권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기록정신은 일본 역사 곳곳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기록정신은 일본의 근대화를 이루는 밑바탕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이들은 또 기록을 한다. 무엇을 위해... 즐거움을 위해... 그러나 분명한 것은 뒤에 오는 사람들은 이들의 기록을 토대로 또 새로운 무엇인가를 이룰 수 있는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부담감 없이 읽을 수 있는 이 책은 그 부피나 내용에서는 결코 만만치 않음을 느낄 수 있다. 아주 깔끔하게 처림된 그림과 시각의 자유로움은 또 다른 즐거움을 선사한다. 세상은 다양하면서도 그 다양성이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세계를 구성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느껴지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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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원 소장품과 통일신라
최재석 / 일지사 / 199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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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세노 갓파妹尾河童라는 일본인이 지은 <펜 끝으로 훔쳐본 세상>이란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 책의 한 부분에 자물쇠를 그린 그림이 있었다. 설명을 보니 에도江戶시대 일본의 열쇠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러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 책을 찾아보니 그림으로 그려진 열쇠의 대부분이 쇼소인正倉院에 소장된 제품과 유사한 그림이었다. 정창원이란 도다이지東大寺란 절에 딸린 창고의 이름인데 이 창고에는 일본이 세계적으로 자랑한다는 여러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일본의 주장은 이 유물이 일본과 당의 교류 혹은 교역에 의해 유입된 제품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많은 사람들은 정창원 유물의 전모를 알지 못한다. 일본은 매년 약 20일간에 걸쳐 나라 박물관에서 정창원 소장의 유물 20점씩을 공개하고 있다. 정창원의 유물이 대략 8천여점이니까 이 유물을 다 전시하는데 400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계산이 나온다. 일본은 이 정창원의 물품을 문화재로 취급하지 않고 왕실의 재산으로 분류하고 있다. 그리고 이 정창원의 유물관리도 문화청이 아니라 왕실의 행정을 담당하는 궁내청이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일반인이나 학자들은 정창원 소장의 유물의 촬영이나 관찰, 출입을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다만 일본정부에서 임명한 소수의 학자들만이 이 유뮬에 접근하여 연구하게 할 뿐이다. 그러므로 정창원 유물에 관한 것은 일년에 20일간 열리는 나라 박물관의 전시회와 이들 학자들이 내놓는 보고서뿐이다.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정창원 유물에 대한 학설은 일본의 일방적인 주장뿐이다. 중국은 일본이 이들 유물이 당나라시대의 것이라고 주장하기에 굳이 여기에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 중국은 자신들의 역사적 자존심만 건드리지 않으면 굉장히 우호적으로 보인다. 일본의 이러한 주장에 한국의 학자들만이 외롭게 투쟁하고 있지만 그 역시 유물이란 실재가 보이지 않는한 어려운 작업이다.


그럼에도 그동안 발표된 보고문과 박물관 전시품의 도록과 같은 것을 중심으로 우리가 발굴한 통일신라 시대의 유물과 비교하여 정창원 유물의 실체를 밝혀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 책은 빛나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는 감상적인 민족주의적 시각보다는 냉철한 학자적 시각으로 정창원의 유물을 비교하는데 15가지의 비교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중점을 두고 있는 것은 정창원 유물의 제작시점인 8세기경의 일본이란 나라의 문화적 역량이다. 저자는 과연 8세기 경에 일본이 이런 유물을 만들 능력이 있었는지, 그리고 당시 일본의 造船능력과 항해능력, 통일신라와 일본의 정치.불교관계,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과 정창원의 유물 비교, 정창원 소장품의 문양과 신라의 문양비교등 모두 15가지의 비교시각을 가지고 기술하고 있다. 이 결과 저자는 정창원 유물의 거의 대부분이 신라에서 제작되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다만 우려스러운 것은 일본측의 태도이다. 일본은 정창원의 유물에 제작국을 표시하는 대신 선박에 실려 왔다는 뜻인 <舶戴品>이란 용어를 사용하거나 근거의 제시도 없이 당에서 왔다거나 일본에서 제작되었다는 식으로 기술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정창원 소장품의 제작국이 일본이라고 명시되는 물품의 수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역사에 이어 유물에서도 왜곡을 시작하고 있다. 일본의 이러한 조작은 가미타가모리上高森유적에서처럼 자신들의 역사적 우월성을 위해서라면 무룰을 가리지 않는다는 점에서 주의를 요해야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라고 생각된다. 우리는 노학자의 분투로 또 하나의 날카로운 역사적 무기를 갖게 되었다. 이 점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한 가치가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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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제국기 범우고전선 57
신숙주 지음 / 범우사 / 200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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麗末鮮初 일본과 우리와의 관계는 그리 좋은 기억이 아니었다. 려말 왜구의 침입으로 야기된 양국관계의 악화는  결국 힘을 바탕으로 한 조선의 진무책으로 진정될 수 있었다. 이후 조선은 일본에 대해 交隣이라는 커다란 외교적 틀 속에서 외교적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


이 책은 이웃 일본으로 선초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9개월간 머물다 온 신숙주가 일본에 대한 보고 들은 것을 적은 외교보고문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지도와 일본와 유구(현재의 오키나와)에 대해 적어 놓고 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일본의 천왕에 대해 기록하면서 이들이 아무런 실권이 없는 존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일본이 무인들에 의해 지배되고 있으며 막부의 실권자가 일본의 실질적 지도자(여기서는 국왕으로 호칭)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유구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왕국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조선 초기에 우리의 선조들은 일본에 대해 어느정도 정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정보를 바탕으로 일본에 대한 외교정책을 수립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말기 운요호雲揚號사건에서 보여준 조선의 일본에 대한 정보미숙과 큰 대조를 보인다.


한 예로 명성황후를 시해할 임무를 띠고 조선에 부임한 미우라 고로三浦梧樓는 제물포에서 한양으로 오는 가마 안에서 숫자를 세고 있었다. 그가 숫자를 센 것은 제물포와 한양간의 거리를 셈하고 제물포에 있는 일본군이 위급상황시 얼마나 빨리 올 수 있는가를 계산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미우라의 이러한 모습에서 정보란 하찮은 것 하나도 흘려보내지 않는 것이란 생각을 새삼스레 하게 된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아쉽게도 이후 일본에 대한 이런 외교적 보고서는 두번 다시 나오지 않는다. 조선에서는 실제적인 보고서보다 이 해동제국기를 가끔 증보하는 것으로 일본에 대한 이해를 마무리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급격하게 변해가는 일본의 모습을 조선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의미하며 임진왜란이 일어나게 되는 한 원인이 되는 것이다. 정보는 국력이라는 현재의 구호는 5백년전에도 유효한 구호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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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에 살기 동문선 현대신서 43
자크 르 고프 외 지음, 최애리 옮김 / 동문선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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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시대인 중세를 살아간다는 것은 테크노 시대의 현재와는 아주 다른 감각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아날로그적인 감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는 중세를 논할 때 하나 간과하는 사실이 신앙의 문제이다. 중세의 신앙은 모든 사람들의 삶을 규정하는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중세인들은 믿음의 강도가 약했건 강했건 간에 태어나서 죽을 때 까지 종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성장하였다. 태어나면 세례를 받고, 결혼할 때 교회의 축복을 받았으며,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신앙생활을 영위했고, 죽어서는 교회의 안내를 받으며 천상으로 안내되었다. 여기서 논하고 있는 도박, 돈, 폭력, 여가 등도 종교적 범주를 벋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러한 것들이 종교적인 표피를 뒤집어 쓰고 어떻게 영위되었는가를 살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한 예로 중세의 사형 집행 모습을 기술한 부분은 중세의 폭력성이 어떻게 분출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형 자체보다 사형이 대중들에게 던지는 메시지가 더 중요하게 취급되고 있다. 그렇지만 죄의 댓가는 일회적이었다. 대중들은 죄인의 죽음이 일회적으로 끝나기를 바랬다. 그래서 대중들은 고의로 사형수의 고통을 연장시키면 소동을 벌이곤 하였다.

중세의 벌칙은 무척 엄했다. 사소한 위반으로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경우가 빈번했다. 우리는 로빈 훗을 읽으며 왕의 영지에서 사냥을 했다고  사형을 선고받는 장면을 보며 주장관의 가혹성을 생각하지만 그것은 당시에는 일반적인 것이었다. 가혹함은 일상적인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화풀이 대상이었고, 여성들은 과부가되는 것을 두려워 하였다.  아이를 버리는 <헨젤과 그레첼>의 이야기는 중세시대에는 아주 보편적인 것이었다. 삶의 우선 순위에는 언제나 어른, 그 중에서도 남자가 최우선이었다.  그러나 삶이 아무리 가혹하다 하더라도 삶은 계속 이어져야 한다는 자연의 법칙 또한 유지되고 있었다.

현재의 삶과 중세의 삶이 다른 것일까? 종교가 돈으로 대치된 현대의 시대는 어찌보면 중세보다 더 가혹한 시대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세에는 적어도 삶의 가혹함을 어루만져줄 종교라도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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