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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 기억 3 - 바람의 세기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박병규 옮김 / 따님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라틴 아메리카의 현대사를 이해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3권을 먼저 읽었다. 수많은 라틴 아메리카 현대사의 지명과 인명이 애잔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그렇다고 그 단편적인 모음이 일회성의 반짝임은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작은 사건들이 날줄과 씨줄의 역할을 하면서 라틴 아메리카 현대사를 극명하게 조명하고 있다.
갈레아노는 "미국 이남의 아메리카의 모든 국가는 미국과 영국, 프랑스, 독일과는 통상조약을 맺었지만, 그 가운데 이웃 나라와 통상조약을 맺은 나라는 하나도 없다. 라틴 아메리카는 분열을 위해 모여 있고, 서로 증오하는 데 길든 어리석은 국가들로 이루어진 군도"라는 글로 시작한다. 이 글을 통해 드러나는 라틴 아메리카의 치부는 읽어가는 사람들이 부끄러울 정도이다. 그러나 갈레아노는 그것을 조금도 과장하거나 축소하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여줌으로서 그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라틴 아메리카의 변화를 우리에게 보여주려 한다. 그러면서 갈레아노는 멕시코의 지도자인 카르데나스의 두 가지 예를 들어 라틴 아메리카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카르데나스는 귀를 활짝 열고 통치한다. 이 마을에서 저 마울로 돌아다니면서 끝없는 인내로 불평에 귀기울이고, 가능한 것 이상은 결코 약속하지 않는다. 약속이 곧 실천인 그의 입은 바위처럼 무겁다." 1910년에 시작된 멕시코 혁명의 종결자인 라사스 카르데나스는 분명 자신이 혁명의 선각자들이었던 사파타의 이상을 완결시켰다고 믿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30년 후인 1968년 멕시코의 야키 원주민 대표 8명이 라사스 카르데나스를 면담하고 그가 실행했던 모든 것이 원점으로 회귀했음을 고발하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는 쿠바와 니카라과와 엘살바도르와 같은 국가에서 벌어지는 조그만 혁명에 희망을 걸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쿠바와 니카라과의 혁명으로 라틴 아메리카의 민중들이 얻은 자신감은 분명 새로운 미래의 한 이정표로 작동할 것임을 믿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현대사의 연표와 같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짤막한 단편 속에 그 시대가 압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서 수시로 튀어나오는 인명과 지명을 찾아보며 읽어간다면 더 많은 라틴 아메리카 현대사의 속살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단편은 많은 것을 응축하고 있다. 그 응축된 사건은 우리가 많이 알면 알수록 더 많은 사실을 제시해 준다. 하지만 모르면 모르는 만큼 보일 뿐이다. 이는 미래를 위해 오늘을 살아가려면 과거에 대한 분별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하겠다. 그 분별력은 과거에 대한 정확한 판단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이런 점에 갈레아노는 우리에게 무수한 물음표를 던져주고 있다. 그러면서 그 단편의 뒤편에 가려진 또 하나의 진실을 찾아 보라고 말하고 있다.
라틴 아메리카의 혁명의 역사는 실패의 역사였다. 1804년 아이티로부터 시작된 독립의 역사는 이 땅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민중들의 독립을 알리는 역사는 아니었다. 오히려 스페인을 대신한 새로운 지배자의 착취가 시작되는 역사였다. 이 착취의 고리를 끊어버릴 방법은 무엇이었을까? 가톨릭 사제의 몸으로 고민하다 결국 게릴라에 합류한 뒤 정부군에게 사살된 카밀로 토레즈의 절규, "우리는 굶주림이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는 것을 안다. 그렇다면, 영혼이 불멸인가를 놓고 다투면서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의미있는가?"라는 물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갈레아노는 "미국 국무부는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인권 유린에 관한 자체 보고서에서 '살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기로 결정한다. '살인' 대신에 '생명의 불법적 또는 자의적 박탈'이라고 써야 한다. 또 CIA는 테러 교범에서 '살인'이라는 단어를 뺐다. 대신에 적을 죽이거나 죽이게 할 때 '무력화'한다고 씌어 있다"라는 글을 통해 라틴 아메리카는 분명 변화를 갈망하고, 변화되고 있지만 그것은 단어의 치환에 의한 착각일 수도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즉 라틴 아메리카의 전통적인 무기력, "모르기 때문에 할 수도 없다"라는 식민시대의 관습이 위에서부터 타파되지 않는다면 그 미래 역시 없을 것이다. 그 선봉에 라틴 아메리카의 관료들이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신들의 실수의 소산이다. 그들은 피가 없는 목재 인간으로서 용기도 절망도 모른다. 반향은 하지만 목소리는 갖고 있지 않고, 질서를 전파할 줄은 알지만 이념을 전파할 줄은 모른다. 그리고 모든 의문을 이단으로, 모든 반대를 반역으로 간주하며 단일성과 합일성을 분간하지 못한다. 또 민중을 자신들이 귀를 잡고 인도해야만 하는 영원한 어린애로 생각한다"는 갈레아노의 예리한 관찰은 지금도 변함없는 관료의 속성으로 남아있다. 즉 관료들은 자신들의 자리를 걸고 하는 모험은 죽었다 깨어나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자유와 평등의 앞날이 얼마나 험난한가를 보여주는 것이라 하겠다.
과테말라의 원주민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높은 산에 올라가 할아버지 화산, 어머니 땅, 아버지 태양, 할머니 달과 그밖의 강한 모든 조상들에게 아이를 보여주며 탯줄을 묻고, 아이를 위험과 잘못에서 보호해달라고 간청한다고 한다. 이들이 이렇게 하는 것은 조상들의 일부인 새 아이를 새로운 동반자로 심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 새로운 아이는 무럭 무럭 자라 새로운 세대를 이루고 이 세대는 또 자신의 아이를 심는 과정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라틴 아메리카의 자유를 향한 민중의 도전은 세대가 지속되는 한 지속됨을 상징하는 것이라 하겠다.
*219,221,223,225,253쪽에 나오는 앨런 둘스와 존 포스터 둘스는 아마도 CIA 국장인 앨런 덜레스와 국무장관 존 포스터 덜레스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이 두 사람은 형제간이다. 특히 존 덜레스의 경우 덜레스 라인으로 유명한 인물이다.
*44쪽의 필렌더 크녹스Philander C. Knox는 필렌더 녹스 미 국무장관을 말하고 있다면 녹스가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