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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의 역사 - 일월교양문제 29
수잔 브라운 밀러 / 일월서각 / 1990년 5월
평점 :
품절
저자는 책 머리에서 이 책을 쓰고 있는 동안 "당신은 난행당해 본 적이 있습니까?'라는 매우 불쾌하고 노골적인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물론 대답은 "아니오"였지만. 그런데 저자는 이 질문의 의중에 생각이 미치자 그들이 하는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고 적고 있다. 사람들이 저자에게 이렇게 질문한 것은 '당신은 피해자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라는 뒤틀린 논리가 배후에 자리 잡고 있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폭력에 대한 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과거의 어두운 기역이 있을 것이란 논리가 질문자들의 의중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뒤틀린 논리가 바로 성폭력을 바라보는 시각이라는 점을 저자는 책의 앞머리에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성이라는 주제에는 프로이트적인 근사한 논리를 통해 접근하지만 성폭력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의 대상이 육체가 아니라 정신이기에 그렇다고 변명할지도 모른다. 맑스와 엥겔스 역시 인간의 수탈에 대해서 장황한 이론을 펼쳤지만 성폭력 그 자체에 대해서 침묵을 지키고 있다. 그 역시 성폭행을 그의 경제적인 이론에 끼워맞출 수 없기에 그렇다고 대답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침묵 속에서도 분명한 것은 성폭력은 '남성 이데올로기'의 중심에 존재한다는 점이다. 성폭력에 대해 사회의 주류인 남성들이 침묵을 지키는 것은 바로 이런 이데올로기 때문이 아닐까. 저자는 남성의 성기가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남자들의 발견을 불의 발견과 조잡한 석기와 함께 선사시대 3대 발명품이라고 단언한다. 그러면서 저자는 성폭력은 '모든 남성'이 '모든 여성'을 공포의 상태에 있게하기 위한 위협의 의식화과정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저자의 견해는 선사시대, 중세, 일차세계대전, 이차세계대전, 방글라데시, 베트남, 미국의 노예제도와 인종문제를 통해 증명해 나간다. 저자는 이런 성폭행의 역사를 기술하면서 성폭행이 어떻게 현대에 와서 범죄로 규정될 수 있었는가하는 문제도 심도있게 고찰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범죄로 낙인 찍히는 성범죄가 다른 한편에서는 합법적으로 조장되고 정당화되어 가는 가를 고발하고 있다. 이런 성폭행의 합법화는 전쟁을 통해 확산되는데 저자는 60년대의 베트남 전쟁과 70년대의 방글라데시 독립전쟁 당시 발생했던 성폭행의 사례를 들어가며 성폭행이 군인-남성 이데올로기-들에 의해 어떤 목적에서 자행되었는가를 살펴보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구약의 <욥기>가 떠오른다. 욥이란 사람은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신의 시험에 빠지게 된다. 욥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한채 고통을 당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믿었던 친구들은 위로한다는 명목으로 욥을 찾아와 그가 신의 벌을 받은 것은 어떤 알지 못하는 죄 때문이라는 점을 각인 시키려 한다. 그러면서 그 친구들은 욥에게 신에게 용서를 빌으라고 추궁한다. 하지만 욥은 한사코 이를 거절한다. 하지만 결국 신이 개입하여 욥의 무죄함이 드러나게 된다. 성폭력이란 이렇게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재앙인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사회적 편견-욥의 친구들-이 문제인 것이다. 성폭력을 당한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사회적 관습에 따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죄인이 되어 버린 다는 점이다. 이런 고답적인 시선에서 바라보는 성폭력은 그 어떤 해답도 제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런 시각은 성폭력의 피해자만을 양산할 뿐 가해자는 없다는 점이다. 과연 그럴까하는 마음이 있지만 90년대에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벌어진 인종청소에서 세르비아나 크로아티아가 사용한 가장 확실한 방법은 성폭력이었다. 성폭력을 당한 보스니아의 여성들은 공동체로부터 버림을 받아야만 했다. 그것은 보스니아의 회교도 공동체를 확실하게 붕괴시키는 힘을 발휘하였다는 점이다. 이들 성폭행의 피해자인 회교도 여성들은 바로 이런 고답적인 성폭력의 시각때문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이 무죄한 피해자라는 사실보다는 더럽혀진 육체를 가진 사람으로 취급될 때 성폭력은 더욱더 공포스런 무기로 사용될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