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 기억 2 - 얼굴과 가면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지음, 박병규 옮김 / 따님 / 2005년 11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부제에 사용된 mascaras란 스페인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마스카라라는 이 단어는 우리들에게 여성의 화장에 사용되는 용어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이 단어 역시 persona가 심리학의 용어로 전용되었듯이 좀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여기서 mascaras는 누구의 얼굴에 덮씌워진 것일까? 가혹한 착취자일까, 아니면 핍박받는 원주민들일까. 정복자는 종교라는 가면 뒤에 자신의 본래 모습을 숨기고 철저하게 원주민을 탄압하고 착취한다. 반면 원주민들은 순응이라는 가면 속에 저항이라는 얼굴을 감추고 있다. 이것이 이 책의 속풀이라고 할 수 있다.

1700년부터 1900년 사이에 벌어진 사건이 기록된 2권은 슬픔과 분노의 기록이다. 실패한 자는 배반한 자의 가면에 속고, 성공한 자는 가면 때문에 민중을 속일 수 있었던 것이다. 이 책 곳곳에 스며있는 슬픔과 배반의 역사는 라틴 아메리카가 자신들의 맨 얼굴을 찾기 위한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하지만 그 맨 얼굴은 언제나 가면을 쓴 자들의 발 밑에 존재할 뿐이다.

이런 불평등은 부와 권력의 편중에서 비롯된 것이다. 갈레아노는 부와 권력이란 하늘에서 내리는 비처럼 땅 속에 스며들어 온 대지를 흠뻑 적시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부와 권력이 한 곳에 고이게 되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라틴 아메리카처럼 모순과 모순이 중첩되어 있는 곳도 드물다. 맨 처음 이 땅에는 주인이었던 원주민들만이 존재했다. 어느날 백인이 들어와 졸지에 원주민은 백인들의 노예가 되었다. 원주민들은 백인들이 곧 멸망할 것으로 믿었다. 백인들은 '어째서?'라고 물었고, 원주민들은 '너희들은 여자가 없기 때문이지'라고 대답했다. 이에 대해 백인들은 저주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걱정하지 마라, 너희 여자를 능욕하여 거기서 태어난 자식들이 너희를 지배하게 하겠다.' 이 모순은 지금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백인, 혼혈, 원주민으로 내려가는 오르도의 세계는 여전히 라틴 아메리카는 현대가 아니라 중세처럼 느껴지게 한다.

원주민들은 가면에 너무 익숙해져 자신들의 진짜 모습이 어떤 것인지 혼란 스럽다. 가끔 선각자들이 일어나 가면을 벗어 던지라고 외치지만 그 목소리는 광야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설혹 그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울려 퍼지더라도 오래 가지 못한다. 식민주의자들은 권력과 부에 몸이 단 배반자들을 이용해 벗겨진 가면을 원주민들의 얼굴에 씌운다. 점점 가면은 얼굴과 하나로 변해간다. 이제 가면을 벗어 던지는 것이 고통이다. 그래도 그 가면을 벗어야만 한다.

하지만 정복자들은 반항자들을 야생마처럼 도살한다. 아무리 하찮은 자유일 망정 전염되면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자신들의 정복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떠들어 댄다. 그들에게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에게만 입술을 허용하는 장미빛 베일을 쓴 귀부인과 같기 때문이다. 원주민들의 역사는 동물의 역사이며 존재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매도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드시 가면을 벗어 던져야만 한다. 역사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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