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에게는 자신만의 신화가 존재한다. 그 신화의 핵심은 기억이다. 기억의 강약에 따라 신화의 줄거리는 달라진다.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은 자신이 그 신화의 중심에 언제나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신화는 자신의 존재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남자들 세계의 신화는 군대가 압도적이다. 그렇다면 군대의 신화를 검토해 보자. 군대는 규율에 얽매여 있는 사회이다. 여기서는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상부로부터 下達되는 명령이 우선하는 집단이다. 그럼에도 우리들은 주막집 신화에서 이런 관계를 무시하고 자신을 중심으로 하는 군대 이야기를 이야기한다. 이때부터 군대 이야기는 사실을 바탕으로 한 신화의 세계 혹은 설화의 이야기로 변질된다. 그러나 우리는 화자나 청자나 이런 사실을 가볍게 지나친다. 그것은 경험의 공유라는 공범적인 관용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신화나 설화의 세계에서도 존중되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집단의 힘이라는 것이다. 자신을 억압하는 상대적인 집단의 힘이 강할 수록 거기에 저항하는 개인의 의지 혹은 영움담은 더욱 극대화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신화 혹은 설화를 창조하는 사람일 수록 상대의 능력을 과장한다. 헤라클레스의 12가지 영웅담이라 테세우스의 모험담을 과외로 하더라도 월남전에서 미군의 관점이 어떻게 달라지는 지를 봐야 할 것이다. 월남전에 처음 참전했을 때 미국의 입장은 대단치 않은 적과의 싸움으로 치부했지만 지긍의 평가는 자신들이 싸울 수 있었던 적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의 시간적 흐름에 따른 평가가 아니라 처음 부터 말하고 싶었던 진실의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세상의 역사를 보면 자신이 진정으로 죽이고 싶어한 적이라면 자신의 위업만큼 훌륭한 상대였다고 평가하는 것이 상례이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위업이 부각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위업은 상대의 힘에 비례한다. 상대가 강하면 강할 수록 자신이 그 상대를 정복했다는 사실이 부각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를 보면 정복자는 상대를 무시하지만 그 힘 혹은 능력만은 훌륭했다고 기술한다. 그래야만 자신이 그 힘을 넘어서는 능력을 보유했다고 과시할 수 있기 때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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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일곱 기둥 2
T.E. 로렌스 지음, 최인자 옮김 / 뿔(웅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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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비아의 로렌스로 알려진 토마스 에드워드 로렌스는 아주 심리적으로 복합적인 인물이었다. 그에게는 행동과 지성, 정열과 냉소, 명예욕과 인간혐오의 모순이 함께 존재하였다. 그의 이런 성격은 가계내력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는 아일랜드의 준남작이었던 토머스 로버트 채프먼 경이 같은 집에 살던 가정부 사라 메이든과 사랑의 도피를 통해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그 당시 중혼은 엄청난 죄악이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들은 모두 사생아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이런 사생아라는 열등의식은 로렌스의 자의식에 깊숙이 자리잡은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로렌스가 학교에 입학할 연령에 도달할 때까지 가족들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스코틀랜드와 프랑스 등지를 전전하는 생활을 했던 것으로 보아 매우 불안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로렌스의 이런 하부구조는 평생동안 조직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남게하는 요인이되기도 하였다. 로렌스는 강압적인 조직생활보다는 자유로운 사고의 세계를 원하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이런 자유로움을 성취하기 까지 억압적인 삶을 인내할 줄 아는 냉정함도 가지고 있었다. 로렌스의 이런 사고와 행동은 이후 아라비아의 독립운동에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게 된다. 아랍의 서구에 대한 믿음은  불행하게도 아랍인들의 정치적인 면이 아니라 로렌스라는 개인에 대한 신뢰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런 신뢰는 아랍의 입장에서는 커다란 불행이면서 재앙이었다.

로렌스에게 아랍의 이런 불행은 고통이었다. 그는 전후 훈장이 수여되었지만 이를 거부하였다. 그 이유는 본국의 명령에 따라 아랍인들에게 거짓된 희망-독립된 국가-을 불어 넣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것은 자신뿐 아니라 조국에도 불명예스런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이렇게 이상주의적인 로렌스는 이런 정치적 현실을 감내할 수 없었다. 그는 이런 현실에 환멸을 느끼고 결국은 자신이 몸담았던 식민성에 사표를 제출하고 은둔생활로 들어간다.

로렌스는 매우 복합적이었다. 자신이 제국주의의 앞잡이라고 느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랍인들과 대의를 함께 나누는 동료라고 생각하였다.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이런 감정을 평생 유지하며 살았던 로렌스는 단순히 영웅으로 평가될 수만은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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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일곱 기둥 1
T.E. 로렌스 지음, 최인자 옮김 / 뿔(웅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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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은 육지의 바다이다. 이 거대한 경계 안에서 인간은 왜소하게 보일 뿐이다. 하지만 그곳에는 심오한 삶의 지혜와 진리가 숨어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선지자들은 사막에서 고독을 잉태했고, 지혜를 출산했다.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 역시 그 길을 걸었다. 하지만 그에게 있어서 사막은 정적인 고독과 지혜의 장소가 아니라 동적인 장소로 이해되었다. 그는 사막의 고독 속에서 아라비아의 독립을 구상했고, 사막이라는 거대한 바다를 통해 그 목적을 달성하였다. 그는 사막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자신들에게는 무한히 열려있는 공간으로 활용하였다.

전체 3권으로 번역된 이 책의 1권은 바로 로렌스의 이런 구상이 싹트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그리고 브리튼이라는 식민제국의 전체적인 구상과 자신의 생각이 상치되더라도 이에 구애받지 않고 아랍을 설득해가면서 하나의 아랍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그려지고 있다. 우리가 아랍이라고 알고 있는 거대한 제국은 이집트인, 다마스커스인, 시리아인, 바그다드 사람, 알제리인 등과 같이 다양한 지역을 아우르는 허술한 제국이었다. 공통점이라고는 이슬람교를 신봉하고 아랍언어를 사용하는 이 광대한 땅에서 부족이 아니라 하나의 아랍이라는 추상적 관념이 독립의 횃불로 타오를 수 있도록 이방인인 로렌스는 자신의 열정을 불사른다.

사실 로렌스는 이집트의 브리튼 식민당국과 긴밀한 협조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맥마흔 선언'이라든가 '사이크스-피코 협정'과 같은 정치적 뒷거래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시종일관 아랍의 대의를 위해 싸운다는 자신의 태도를 철회하지 않았다. 그는 아랍이 독립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결코 독자적인 왕국 혹은 국가를 창설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 아랍이 거부하는 이스라엘의 존재가 아랍 영토 안에서 서서히 드러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었다. 그의 이런 이중적인 태도는 당시 세계인이라고 자부하였던 브리튼 식민제국의 지식인들이 공유하고 있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로렌스의 이런 태도를 비난만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는 아랍을 하나의 대의로 묶고 그것을 현대사로까지 이어지게 만든 주역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1권의 압권은 오랜 사막 여행을 통해 몸이 쇠약해진 로렌스가 파이잘의 진영에서 몸을 추스리며 아랍의 독립전쟁을 구성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전략가와 전술가들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들의 이론을 사막이라는 거대한 땅에 접목시켜 보며 로렌스 자신의 구상을 다듬어가는 장면은 사막이라는 장대한 배경과 어울어져 하나의 거대한 힘으로 다가온다. 로렌스는 여기서 정규적인 군대방식을 포기하고 철저히 게릴라 전술 위주의 전쟁을 선택하기로 한다. 이것은 시나이에서 터어키군과 대치하고 있던 브리튼과 프랑스 연합군의 방침-이들은 아랍이 터어키군과 전통적인 전쟁을 벌이길르 원하였다-과는 어긋나는 것이었지만 로렌스는 자신의 방식을 밀고 나가기로 결정한다. 그리고 그것을 구체화하기 위한 방식으로 운송수단인 철도의 파괴와 통신수단인 전선의 절단을 감행한다. 터어키군은 이를 방어하기 위해 아라비아 지역에 엄청난 수의 군대를 주둔시켜야만 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연합군이 팔레스티나에서 벌이는 작전을 도와주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로렌스의 이런 결정은 이후 벌어지는 전쟁의 과정에서 탁월한 선택이었음이 밝혀진다.

** 이 책은 영화로 치면 로드무비와 비슷한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과 아라비아의 지도 한장 제대로 심어놓은 것이 없다는 점에서 약간 의아할 뿐이다.  이런 사소함으로 인해 책을 읽는 재미가 반감된다면 그것은 순전히 출판사의 책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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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 후세인이 교수형을 당해 처형되었다. 그 죽음의 동영상은 인터넷의 바다를 떠돌아 다니며 호기심과 만족과 적의와 결의를 양산하고 있다.

후세인의 지지자들은 후세인이 죽음을 결연하게 맞이하고 대처했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하면서 그를 새로운 순교자로 추앙하고 있다고 한다.

오래 전에 험프리 보가트와 제임스 캐그니가 주연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하지만 운명이 한 명은 가톨릭 사제(험프리 보가트)로 다른 한 명은 범죄자(제임스 캐그니)로 만든다. 하지만 이 둘은 자신이 살았던 그곳에서 만난다. 사제는 그곳으로 부임하여 아이들을 범죄에 빠지 않게 교화하고 가르치지만, 범죄자는 자신들의 충실한 예비군을 모집하기 위해 거리의 아이들을 유혹한다. 아이들은 무력한 신부보다는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결해 주는 범죄자에게 경도된다....결국 범죄자는 자신의 죄로 잡혀 재판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는다.  그는 이 순간 신문기자들을 향해 외친다. 죽음의 현장에서 나는 당당할 것이라고...

거리의 아이들은 이 자극적인 기사를 보고 자신들의 우상인 범죄자가 죽음의 순간에도 멋있게 두목답게 처신할 것이라고 상상한다. 처형 전날 신부는 범죄자를 면회한다. 거기서 그는 자신의 친구인 범죄자에게 담담히 말한다. 내일 사형장에서 겁에 질린 모습을 보여달라고... 범죄자는 이런 제안을 단호히 거절한다. 하지만 신부는 설득한다. 너를 보고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고, 범죄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신부는 더 이상 설득을 포기하고 돌아선다.

범죄자는 아무말 없이 철창 안에서 평소와 다름없는 태도를 보인다. 간수가 오고 그를 형장으로 데려간다. 이른바 데드맨 워킹이 시작된다. 기자들은 플레쉬를 터뜨리며 그이 일거수 일투족을 찍어댄다. 친구인 신부는 조용히 뒬르 따른다. 범죄자는 시종여유를 부린다. 하지만 사형실 안으로 들어가려 할 때 그는 죽기 싫다고 발버둥을 친다. 그 순간 신부와 범죄자는 눈이 마주친다. 그 두사람 사이에 오가는 무수한 언어들...

다음날 신문에 그의 죽음에 대한 기사가 실린다. 기사의 촛점은 마지막 순간의 발버둥이다. 아이들은 그 기사를 보고 무척 실망한다.

사담 후세인의 죽음이 가져온 후폭풍의 기사를 보면서 생각난 이 영화의 이야기는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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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 한길 히스토리아 3
조르주 뒤비 지음, 정숙현 옮김 / 한길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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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 책을 읽으며 우선 떠오른 생각은 중세에 장자로 태어나지 못한 자의 고단한 삶이었다. 사실 중세는 철저한 위계사회였다. 그 질서는 신으로부터 부여된 질서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도 어찌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런 사회에서 위계질서를 유지하는 부와 권력은 철저하게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었다. 그러므로 중세에 장자-엄밀히 말하면 嫡長子-로 태어난다는 것은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그 외의 자식들은 철저하게 소외되었다. 이들은 잠재적인 경쟁자였기에 견제를 받았다. 그래서 차남은 일반적으로 수도원으로 들어가 마음에도 없는 성직의 길을 걸어야만 했다. 그리고 삼남 이하의 자식을은 자신들이 스스로 운명을 결정해야만 했다.

솔직히 십자군 운동은 신앙심이라기 보다는 몇 백년에 걸쳐 장자 상속으로 생긴 모순에 대한 유럽 중세의 돌파구였는지도 모른다. 뚜렷한 상속분이 없던 떠돌이 기사들이 자신의 몫을 챙길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기회였기 때문이었다. 십자군 운동이 끝난 뒤에도 이들 버림받은 기사들은 이베리아반도로 건너가 기독교도 왕국이나 이슬람왕국의 용병이 되어 자신의 몫을 챙겼고, 아니면 튜톤기사단의 발트 정복에 협조하였다.

하지만 이들 떠돌이 기사들이 가장 확실하게 성공한 것은 노르망디의 서자 윌리엄을 도와 잉글랜드를 침공한 것이었다. 윌리엄을 따라 나선 기사들의 면모는 그당시 유럽 각국의 장자가 아닌 아웃사이더들의 명단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럼에도 이들 역시 자신의 상속자들에게 자신들이 걸었던 똑같은 과정을 강요하였다. 이런 가혹함(?)이 어쩌면 중세 유럽의 폭발적인 외적 팽창에 기여를 한 것은 아닐까?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은 이런 총체적인 유럽 상속문화 속의 소외자가 어떻게 자신의 상속분을 만들어가는가하는 역사의 기록인 것이다. 여기에는 우리들이 중세의 역사 속에서 흥미를 가지고 살펴봐야 할 재미있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이른바 왕이 왕국의 부유한 상속녀-남자가 아니라 여자라는 점에 주의하라-를 자신의 궁전에 보물처럼 감금해 놓은 다음 기사의 충성도를 평가한 다음 그 경중에 따라 상속녀를 하사했다는 이야기이다. 게다가 기사도 시대라고 알려진 중세의 충성이라는 단어는 왕이라는 정점에 대한 약속이 아니라 자신의 직속 군주에 대한 충성이었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라 하겠다. 이런 충성의 상황을 이해해야만 왜 잉글랜드의 존 왕이 러미니드 초원에서 귀족들에게 허무하게 굴복하였는지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위대한 기사 윌리엄 마셜에서는 또 한가지 흥미로운 유럽 중세의 단면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마상창시합이다. 이 마상창시합을 통해 기사는 명성을 쌓고, 재물도 긁어 모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를 발판으로 좀더 나은 사회로 도약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또한 마상창시합은 영화속의 낭만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전쟁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책략과 속임수가 난무하면서 최종적인 승리를 위해, 자신이 점찍은 전리품의 획득을 위해 몰입하는 기사들의 모습에서 중세 사회의 벌거벗은 모습을 볼 수 있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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