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수상작가인 테네시 윌리엄스의 농담 하나.

고속도로에서 스피드를 즐기던 아가씨가 있었지. 그리고 그 아가씨를 단속하는 고속도로순찰대원이 있어지. 아가씨는 매일 과속을 했고, 순찰대원은 매일 딱지를 떼었지. 그러던 어느날, 그 아가씨가 죽고 말았지. 원인은 과속이었지. 그녀가 왜 과속을 했냐고? 순찰대원이 그녀를 사랑했기 때문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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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티리콘 - 노먼 린지 일러스트판
페트로니우스 지음, 강미경 옮김, 노먼 린지 그림 / 공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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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워드 기본은 로마제국의 멸망의 원인을 사치와 향락이라고 보았다. 그는 건국 초기의 질박하고 강건했던 로마의 정신이 제국을 이루면서 급속히 쇠퇴한 것이 제국의 붕괴로 이어졌다고 보았다. 지중해를 우리의 바다로 불렀던 로마를 멸망하게한 사치와 향락은 어느 정도였을까?

사티리콘이 바로 그에 대한 어떤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지 모른다. 트리말키오의 연회의 모습을 보면 그 향연의 화려함과 과시욕, 그리고 참석한 사람들의 조악함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그리고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안락함을 우선시하는 당시의 세태를 보면, 로마의 위대한 정치가였던 大 카토가 수건만을 허리에 두른 채 자신의 밭을 갈고 씨를 뿌렸다는 초기의 이야기는 먼 전설이 된 느낌이 든다. 大 카토는 엄격하면서도 규율이 잡힌 로마를 원하였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젊은이들이 사치에 물들지 않고 질박강건하게 훈련되기를 원하였다. 카토의 이런 바램은 로마가 지중해세계로 확장해 나가는데 있어서 아주 귀중한 자산이었다. 하지만 로마의 진군이 멈추는 그 순간 카토가 주장했던 미덕은 그 모든 세대에게 하나의 짐으로 다가왔다. 안락함을 추구하는 제정의 세대들에게 카토의 삶은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로마는 자신이 얻은 모든 부를 자신들이 즐기는데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바로 사티리콘의 트리말키오의 연회장면은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다가 노예였던 트리말키오가 어떻게해서 자유민이 되어 부자의 대열에 끼게 되었는지를 그 자신의 장황한 과시욕을 통해 들어 본다면 로마의 기강이 어떻게 무너지기 시작했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성적 방종과 타락은 로마의 또 다른 문제였다. 하지만 그것을 아무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점 또한 문제였다. 그리고 이런 성적방종과 경제적 소모를 위해 점령지에서 유입된 수많은 노예들의 삶은 어떠하였을까? 로마의 노예들의 삶은 검투사 스파르타쿠스가 반란을 일으켰을 때 그 비참한 모습이 드러났다. 그리고 로마는 이런 노예들의 반란이 두번 다시 반복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예들을 더욱 철저하게 억압하였다. 사티리콘 곳곳에 드러나는 노예의 비참한 삶은 로마를 지탱하고 있던 가장 많은 인간 집단이 어떻게 억눌려 살고 있는지를 알게한다.

자신의 주변과 상관없이 향락과 쾌락만을 위하여 매진하는 개개인의 모습은 집단의 모습이면서 한 제국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제국의 이익이 아니라 개인의 쾌락을 우선시하던 제국의 필연적인 과정은 몰락이었다. 사티리콘의 단편적인 이야기를 읽다 보면 그 질리지 않는 인간의 자학적이며 변태적인 모습을 통해 인간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 사티리콘은 이런 문학의 선구적인 작품으로서 우리에게 무한한 상상력을 제공하기도 한다.

인간이 자신의 상상을 현실로 표현하면 그것이 바로 지옥이라고 한다. 사티리콘은 로마의 현실이 팍스 로마나가 아니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우리는 그 지옥의 모습을 팍스pax로 오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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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단 - 이슬람의 암살 전통
버나드 루이스 지음, 주민아 옮김, 이희수 감수 / 살림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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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暗殺. 굉장히 은밀하고 어두워 보이는 단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이스마일파의 암살은 솔직히 명살明殺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들의 상식으로 암살자는 은밀하게 움직이고 자신의 목적을 달성한 다음에는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이스마일파의 암살자는 이런 공식을 철저하게 거부한다. 이들은 자신의 목표를 향해 은밀하게 다가가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닥치면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신을 철저하게 드러내며 임무를 수행한다. 이스마일파의 자객은 임무를 완수하고 살아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서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낸다. 이것은 이들 이스마일파가 단순한 살인청부업자가 아니라 신념에 기인한 당파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라 하겠다. 실제로 이스마일파의 암살자들은 권력을 가진 지배 상류층만을 자신들의 목표로 설정했다. 게다가 이들은 단검만을 사용함으로서 목표물 이외의 대상이 피해를 입는 것을 최소화하였다는 점이다. 이런 점이 이스마일파에 대한 신화를 가속화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들이 암살을 이렇게 특정 목표에 집중하면서 철저하게 광고효과를 노린 것은 소수파로서의 생존전략과 종교적 열성이 혼합된 결과였다. 하지만 서구의 사고방식에 의해 걸러진 이스마일파의 행위는 철저하게 왜곡되었다. 이들의 대의명분은 무시된채 암살이라는 그 자체에만 집착하므로서 이스마일파는 물론이고 이슬람 그 자체에도 어두운 그림자를 주입시켰다는 점이다.

정말로 이스마일파는 그러하였을까? 사실 시아파의 분파로 갈라진 이스마일파는 그 종교적 심성에 의한다면 염세적일 수 있다는 점 부인할 수 없다. 알리 이후 꺽여진 정치적 주도권은 시아파를 금욕적이며 고행적이며 신비적인 종파로 변모하게 하였다. 이것은 다수 순니의 느슨한 종교적 감성에 자극을 준 것도 사실이지만 이런 이유로 시아는 순니에 의해 철저하게 부정될 수밖에 없었다. 이 결과 소수 시아파는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철저하게 자신들만의 종파주의 혹은 분파주의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는 인도에서 시크교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순혈주의로 나아간 것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다.

이스마일파가 암살집단으로 성장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은 소수 종파로서 생존이 가장 큰 이유였다. 생존을 위한 무자비한 투쟁은 러시아 혁명에서 볼세비키가 살아남기 위해 행했던 행동과 맥을 같이한다. 이스마일파 역시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고수하고 생존하기 위해 자신들의 힘을 과시하기 위한 방편으로서 암살을 선택하였다. 그리고 이 암살은 단순하면서도 철저한 방식을 채택함으로서 아랍 세계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었다. 사실 이슬람은 자살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이슬람의 자살에 대한 관점은 가톨릭과 상당히 근접해 있다. 자살자에게는 천국의 문이 닫혀있고, 그들은 저주를 받는다고 본다. 그럼에도 이스마일파의 이런 자살공격이 용인된 것은 다수의 폭력에 대한 소수의 저항이라는 관점에서 이해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시아파 그리고 시아파 속에서의 이스마일파가 소수 중의 소수라는 점에서 충분히 이해될 수 있다. 사실 시아와 이스마일파의 역사는 순니라는 이슬람의 주류에 대한 끊임없는 이의제기의 역사였다. 항상 이들 소수는 다수에게 왜라는 물음을 제기하였다. 그리고 그 왜라는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받았다면 수긍하였지만 그렇지 않았을 때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를 관철하였다.

이러한 이스마일파의 모습은 현재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 의해 행해지는 테러에 대한 면죄부처럼 인용되지만 실제는 근본부터 다르다는 점이다. 시아뿐 아니라 순니의 대부분 신학자들은 이슬람의 테러에 반대하고 있다. 지하드라는 입장에서 테러를 보는 입장에서도 아주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왜냐하면 살인은 원칙적으로 종교적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이 책은 과거의 암살단을 다루고 있지만 실상은 현재의 이슬람과격주의자에 의해 행해지는 테러를 분석하는 시금석으로 기술되었다는 점이다-이 책의 초판이 70년대에 출판되었다. 1948년 1차 아랍전쟁의 부산물로 파생된 팔레스타인 난민문제는 70년대 테러의 전주곡이었다. 난민캠프에서 젊은 시기를 보낸 20대의 젊은이들이 70년대에 들어와 세계가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좌절하면서 대화보다는 폭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들 팔레스타인 난민들의 테러 혹은 폭력 아니면 지하드는 아랍세계에서는 긍정적인 면으로 수용되었지만 서구유럽에서는 단순한 폭력으로 폄하되었다. 이러한 서구의 대응방식은 폭력의 질적 양적 확장을 불러 일으켰다.

현대의 테러가 이스마일파의 여정과 유사한 과정을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은 역사의 반복이라는 경구로 설명될 수 없다. 사실 종교는 실천적이지만 교리는 철저히 관념적이며 이론적이다. 삶의 행위라는 실천 속에 관념과 이론이 혼합된 세계는 모순의 세계인지도 모른다. 평화를 갈구하는 종교가 폭력을 사주하는 원인이 되면서 폭력을 옹호하는 이론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폭력을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혹은 자신들의 생존을 갈구했던 이스마일파의 현재는 소멸이라는 점이다. 현재 이스마일파는 소수의 종파로서 살아있지만 예전의 영향력을 상실하였다. 게다가  이스마일파의 암살 행위는 현대의 이슬람에 대한 우리들의 왜곡에 일조하였다. 이것은 한 종교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매우 불행한 일이다. 이슬람은 기독교 못지않게 윤리적이며 평화적이다. 우리는 살라딘이 예루살렘을 탈환했을 때 보여주었던 기사도적 정신을 잘 알고 있다. 살라딘의 행위는 기독교도들이 성경을 인용하면서 설교한 그 사랑의 정신을 보여주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이런 살라딘의 행위는 이슬람 과격파의 테러행위에 의해 빛이 바랬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스마일파의 암살이 보르헤스가 어디선가 썼듯이, 예수를 찌른 창촉이 시대를 반복하며 결국은 케네디를 죽인 총알이 되었다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다. 그 반복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현재 아랍의 지하드 역시 역사 속의 이스마일파처럼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의 암살단을 통해 현재의 지하드를 음미해 본것이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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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숭배와 그 결과들에 대하여 책세상문고 고전의세계 56
니키타 세르게예비치 흐루시초프 지음, 박상철 옮김 / 책세상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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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세대에게 소련 수상 니키타 흐루시쵸프의 이름을 듣고 연상되는 것은 U-2기 사건이다. 이 사건은 미국이 U-2기를 이용하여 이란과 터어키에서 소련 영공을 마음대로 드나들며 정찰활동을 하다 소련의 대공미사일에 U-2기가 격추되어 국제사건으로 비화되었다-U-2기 조종사 프란시스 게리 파워즈와 소련 스파이의 교환은 서독과 동독의 경계선인 그루니케 다리를 양념으로 하여 60년대 스파이소설의 열광적인 소재가 되었다. 후르시쵸프는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의 오만함과 비도덕성을 유엔에서 강하게 성토하면서 구두를 벗어 연단을 두드리는 해프닝을 벌였다. 서구인들의 눈에 흐루시쵸프의 이런 행위는 그들이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던 선입관, 러시아의 후진성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호가 되었다.  

흐루르시쵸프의 이런 몰염치는 러시아를 이해하는데 많은 걸림돌이 되곤한다. 당시 러시아는 떠오르는 강대국이었다. 라이카라는 개를 우주선에 태워 우주로 날려보내고-이는 소련의 공격용 미사일능력이 지구상 어느 지점으로도 날려보낼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은근한 과시였다-중공업과 기초공업의 향상으로 조만간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으리나는 기대감에 부픈 시기이기도 했다. 유엔에서 후르시쵸프의 이런 해프닝은 소련의 이런 자신감에 바탕을 둔 의도적인 과시행위였다.

이런 흐루시쵸프가 소련이라는 거대 제국의 붕괴를 촉발시킨 첫걸음을 떼어 놓았다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그는 56년 20차 전당대회에서 그동안 금기시되어 왔던 스탈린에 대한 비판을 하였기 때문이다. 사실 1953년 스탈린이 사망했을 때 소련뿐 아니라 전 세계 공산주의 국가는 큰 충격에 빠졌다. 스탈린이란 그림자가 워낙 컸기 때문에 그 충격은 쉽게 치유되지 않았다. 레닌 사후 권력을 장악한 스탈린은 반대파에 대한 무자비한 숙청과 유배로 자신의 권력을 공고히 했다. 이러한 스탈린에게 독소전쟁은 큰 위기였다. 이 위기를 넘기기 위해 스탈린은 당이란 권력의 이름보다 러시아라는 감성에 호소함으로서 그는 러시아인들에게 하나의 신화가 되었고, 전쟁의 승리자가 될 수 있었다. 스탈린 사후에도 이런 신화를 깨부수는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였다. 그런덴 흐루시쵸프는 스탈린 사후 3년이 채 되지않은 시점에서 스탈린 비판을 감행하였다.

흐루시쵸프의 스탈린 비판은 스탈린의 개인숭배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 스탈린의 개인 독재에 의해 당의 민주적 집단주의가 어떻게 붕괴되었으며, 그 결과 대조국전쟁에서 불필요한 희생이 발생한 것을 흐루시쵸프는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흐루시쵸프의 이런 용기에도 불구하고 이 연설은 당의 이름이 아니라 흐루시쵸프 개인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한 점인데, 당이 흐루시쵸프의 연설을 추인하고 인정한 것이 아니라 흐루시쵸프 개인에 의해 스탈린 격하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과 개인의 차이는 아주 명백한 것이다. 이 결과 흐루시쵸프는 61년 쿠바 사태의 책임을 지고 실각하게 된다. 그리고 스탈린 격하운동 역시 중단되고 다시 소련은 브레즈네프에 의해 새로운 개인숭배시대로 회귀한다.

하지만 흐루시쵸프의 스탈린 개인 숭배 비판의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세대들에 의해 소련은 80년대와 90년대에 커다란 변혁을 격게된다. 일시적인 사상의 자유를 통해 호흡한 자유의 공기는 그 당시 젊은 세대들에게 커다란 충격으로 다가왔다. 전 세대가 스탈린의 억압과 공포 속에서 전쟁을 통해 복합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반면 스탈린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들은 흐루시쵸프의 연설문을 통해 그 시대를 판단하고 앞으로의 시대를 가늠하였던 것이다. 이런 사고의 변혁으로 소련은 90년대에 공산주의를 포기하였던 것이다.

공산주의가 붕괴된 현 시점에서 이 연설문은 어쩌면 허공에 뜬 구름과 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연설문을 통해 개인의 독재와 우상화를 어떻게 보아야하는가를 가늠하게한다. 발전과 승리라는 표면적 이유로 인해 탄압과 학살, 그리고 강제수용소가 과소평가되었던 그 시대를 우리는 지금도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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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상의 도서관 5
아베 긴야 지음, 양억관 옮김 / 한길사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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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독일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아주 오래전 이 동화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동화나 전설을 심리학적으로 혹은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하멜른의 동화 역시 어떤 역사적 사실이 이야기 속에 숨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중세 독일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사실을 유추해 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결국 하멜른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그 이야기 자체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베 긴야의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이런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플어가는 단초가 될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 하멜른의 이야기에 대한 어떤 정확한 해답을 바란다면 많이 실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형성되어 변조되어 가는 역사적 사실을 즐길 준비만 되어 있다면 이 책은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왜 맨날 지배자여만 하는가에 대해 불만을 품는다. 하지만 민중들이 글을 배우고 쓰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라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기록이 항상 역사의 주류로 편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하멜른에 관한 중세와 근세의 기록을 섭렵하면서 동방식민설이나 소년십자군과 같은 설의모순과 타당성을 검토한다. 유럽의 역사 속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지만 독일의 동방정책은 꽤 오래전부터 시도된 정책이었다. 지금의 발트3국지역으로 침입해 들어간 튜톤 기사단이 알렉산더 네프스키에 의해 페이푸스 호수에서 대패한 사건은 독일의 동방식민정책이 러시아에게 얼마나 큰 가시였는지를 알게 한다. 마찬가지로 소년 십자군의 이야기 역시 당시의 사회상과 맞물려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 역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사건 속에서 하멜른의 기록과 중세 유럽의 기록을 대비하면서 이런 사실적으로 보이던 역사적 근거를 하나씩 벗겨낸다. 그리고 그 실체의 핵심에 위치한 국가권력의 강화라는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마치 미셀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이란 정상인과 다른 인간들-여기에는 천재도 바보도 이단자도 아니면 선각자도 다 포함된다-을 사회보호라는 차원에서 격리를 하면서 사상의 통제를 통한 국가 권력의 강화를 유도하였다는 것과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가 실종되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교회는 인간의 죄악으로 연결시키며 당시 사람들의 쾌락적 삶을 억압하려 하였다. 그리고 권력자들은 광대 혹은 피리부는 사나이로 대표되는 떠돌이 집단-이들은 중세시대에 통제가 되지않는 집단으로 어느 계급에도 속해있지 않았다-을 겨냥한다. 철저한 계급적 사회질서 속에 서있는 중세유럽의 체제는 이런 떠돌이 집단이 많은면 많을 수록 약화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기에 권력자들은 피리부는 자로 대표되는 자유로운 집단에 대한 박해를 정당화하였다. 그리고 이 박해의 정당화 속에 교회 역시 개입하여 유대인과 마녀라는 집단을 억압하였다.

이렇게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린이들이 실종된 사건을 통해 시대적으로 변모해가는 이야기의 형태를 통해 사실의 언저리 속에 기생하는 억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이야기의 해석이 전적으로 지식인의 몫이었다는 점에서 하멜른의 이야기를 주의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사실이 민중적인 시각으로 표현되어 구전으로 전승되는 것을 지식인의 입장에서 글로 채록하면서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형제의 동화 역시 구전이란 원형에서 기록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순화되었는가, 그리고 그 순화의 방향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림 형제는 독일의 전설과 민담을 수집하면서 역사 이전의 독일의 모습, 떡갈나무 숲과 게르만의 원시성이 독일의 원형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이결과 무수한 영방으로 나누어진 독일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는 프로이센의 구호로 통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예를 들면서 마찬가지로 하멜른의 이야기가 이런 과정을 통해 사실성이란 원래의 원형에 시대를 거치면 권력자들-교회와 제후-의 입맛에 맞는 부분들이 첨삭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헤멜른의 이야기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순수성을 상실한 대신 강력한 선동적 파괴력을 얻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악몽-중세로부터 지금까지 죽지않고 살아나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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