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이상의 도서관 5
아베 긴야 지음, 양억관 옮김 / 한길사 / 2008년 1월
평점 :
품절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의 이야기는 우리들에게 가장 잘 알려진 독일의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아주 오래전 이 동화를 읽었을 때의 느낌은 재미있는 이야기였다는 정도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동화나 전설을 심리학적으로 혹은 역사적인 사실을 통해 이야기를 재구성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하멜른의 동화 역시 어떤 역사적 사실이 이야기 속에 숨어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하지만 중세 독일의 역사를 통해  하나의 사실을 유추해 낸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해야 했다. 결국 하멜른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그 이야기 자체로 간직할 수 밖에 없었다.

아베 긴야의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이런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플어가는 단초가 될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 이 책에서 하멜른의 이야기에 대한 어떤 정확한 해답을 바란다면 많이 실망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형성되어 변조되어 가는 역사적 사실을 즐길 준비만 되어 있다면 이 책은 아주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우리들은 역사의 주인공이 왜 맨날 지배자여만 하는가에 대해 불만을 품는다. 하지만 민중들이 글을 배우고 쓰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한 것은 르네상스 이후라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볼 때 여전히 지배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의 기록이 항상 역사의 주류로 편입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저자는 하멜른에 관한 중세와 근세의 기록을 섭렵하면서 동방식민설이나 소년십자군과 같은 설의모순과 타당성을 검토한다. 유럽의 역사 속에서 큰 관심을 끌고 있지 못하지만 독일의 동방정책은 꽤 오래전부터 시도된 정책이었다. 지금의 발트3국지역으로 침입해 들어간 튜톤 기사단이 알렉산더 네프스키에 의해 페이푸스 호수에서 대패한 사건은 독일의 동방식민정책이 러시아에게 얼마나 큰 가시였는지를 알게 한다. 마찬가지로 소년 십자군의 이야기 역시 당시의 사회상과 맞물려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 역시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적인 사건 속에서 하멜른의 기록과 중세 유럽의 기록을 대비하면서 이런 사실적으로 보이던 역사적 근거를 하나씩 벗겨낸다. 그리고 그 실체의 핵심에 위치한 국가권력의 강화라는 진실이 드러나게 된다.

마치 미셀 푸코가 광기의 역사에서 광인이란 정상인과 다른 인간들-여기에는 천재도 바보도 이단자도 아니면 선각자도 다 포함된다-을 사회보호라는 차원에서 격리를 하면서 사상의 통제를 통한 국가 권력의 강화를 유도하였다는 것과 유사한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어린이가 실종되었다는 단 하나의 사실을 가지고 교회는 인간의 죄악으로 연결시키며 당시 사람들의 쾌락적 삶을 억압하려 하였다. 그리고 권력자들은 광대 혹은 피리부는 사나이로 대표되는 떠돌이 집단-이들은 중세시대에 통제가 되지않는 집단으로 어느 계급에도 속해있지 않았다-을 겨냥한다. 철저한 계급적 사회질서 속에 서있는 중세유럽의 체제는 이런 떠돌이 집단이 많은면 많을 수록 약화될 수 있다는 약점이 있다. 그러기에 권력자들은 피리부는 자로 대표되는 자유로운 집단에 대한 박해를 정당화하였다. 그리고 이 박해의 정당화 속에 교회 역시 개입하여 유대인과 마녀라는 집단을 억압하였다.

이렇게 하멜른의 피리부는 사나이는 어린이들이 실종된 사건을 통해 시대적으로 변모해가는 이야기의 형태를 통해 사실의 언저리 속에 기생하는 억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이야기의 해석이 전적으로 지식인의 몫이었다는 점에서 하멜른의 이야기를 주의해서 살펴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사실이 민중적인 시각으로 표현되어 구전으로 전승되는 것을 지식인의 입장에서 글로 채록하면서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림형제의 동화 역시 구전이란 원형에서 기록이라는 과정을 거치면서 어떻게 순화되었는가, 그리고 그 순화의 방향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봐야한다는 것이다. 그림 형제는 독일의 전설과 민담을 수집하면서 역사 이전의 독일의 모습, 떡갈나무 숲과 게르만의 원시성이 독일의 원형이라는 점을 끊임없이 주장하였다. 이결과 무수한 영방으로 나누어진 독일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국가라는 프로이센의 구호로 통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저자는 이런 예를 들면서 마찬가지로 하멜른의 이야기가 이런 과정을 통해 사실성이란 원래의 원형에 시대를 거치면 권력자들-교회와 제후-의 입맛에 맞는 부분들이 첨삭되었다는 점을 말하고 있다. 이 이야기를 읽으며 헤멜른의 이야기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본래의 순수성을 상실한 대신 강력한 선동적 파괴력을 얻었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악몽-중세로부터 지금까지 죽지않고 살아나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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