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민족원류
손진기 / 동문선 /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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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의 역사로 편입시키려 하는 동북공정의 대표적인 학자인 손진기가 쓴 책이다.  저자는 여진과 실위-말갈족-역사를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학자이다. 여진은 예로부터 고구려의 후손이라고 자부하는 민족으로 고구려를 계승한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섬겼을 정도였다. 그리고 실위는 우리 역사의 진공지대인 발해의 하위계층을 형성한 민족임을 생각할 때 저자의 연구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짐작하게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자국의 역사서 뿐만 아니라 조선실록이나 삼국사기와 같은 한국의 역사서도 심도있게 연구하여 청 이후 중국의 역사에 정식으로 포함된 만주지역의 역사를 자국의 입장에서 설명하고 있다.


만주는 청나라가 중국을 정복하기 전까지 한국과 중국이란 나라의 가운데에 위치한 중간지대의 성격이 컸다. 중국에서는 이 지역의 유목민족이 한 지도자의 손 아래 통일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강력한 군대를 주둔시키는 한편 이이제이의 전략을 구사하였다. 즉 약한 부족을 지원하고 강한 부족은 분열시키는 정책을 시행하여 상당한 효과를 거둘 수 있었다. 이 결과 만주지역은 원이 물러나고 청이 건국될 때까지 약 150여년간 분열된 지역으로 남아있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선과 일본의 임진전쟁에 명이 만주지역의 통제를 담당하던 군대를 조선으로 차출하여 출병시키면서 여진족이 통일의 기반을 마련하여 명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이후 만주지역은 청의 건국이 이루어진 성지로 인식되었다. 반면 조선은 이 지역을 군사적으로보다는 식민정책을 통해서 꾸준히 압록강과 두만강 이북으로 영토를 확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사정은 명이 붕괴되고 청이 멸망할 때까지 지속되었으나 조선이 일본에 합병되면서 조선의 만주로 향한 영토의 확장은 중단되었다. 오히려 일본과 중국 사이의 협약으로 그동안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던 만주지역의 영토-북간도와 서간도-를 잃어버리는 상황이 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해방후 남북이 분열되고 중국에서는 공산당 주도의 정권이 형성되고, 한국동란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만주의 역사는 잃어버린 역사가 되고 말았고 그 땅에 대한 역사적 고찰과 고증이 빠진채 막연히 고구려의 땅이란 감상적인 방법으로 접근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한국의 감상적인 접근은 중국이 개방화되면서 마찰을 빗게되었다.


당시 중국은 개발도상의 후진국가였고 한국은 선진국의 문턱에 진입한 상태였다. 경제력은 곧 힘인 상태에서 한국의 관광객들이 백두산으로 몰려들면서 국수적이고 민족적인 발언을 함으로서 중국을 자극하였다. 이 결과 중국은 역사의 조작과 합병을 통해 한국의 감정적 문제의식을 학문적으로 대응하려 하였다. 이것의 종합편이 2000년대 초반에 터져 나온 고구려사의 자국역사 편입이란 동북공정이다. 이러한 과정을 주도하는 학자 중의 하나인 이 책의 저자는 이 지역의 민족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면서 이 지역이 옛부터 중국의 중앙정권의 지배하에 있었다는 것을 끊임없이 지루하게 반복하고 있다. 이것은 이 지역의 역사적 권한과 실체가 그만큼 허약하다는 반증이면서도 무주선점의 기회라는 이야기도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동북민족원류라는 책은 읽기 쉬운 책은 아니다. 민족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오고 같은 부족의 이름이 시대마다 다르게 나오기 때문에 집중력을 갖지 않고는 소화하기가 힘들지만 중국이 무엇때문에 1973년에 이 책을 내고 다시 1993년에 개정판을 내었는지를 생각해야만 할 것이다. 역사는 자부심을 갖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역사에 대한 관심과 그것에 대한 앎이 중요하다. 중국인의 만주에 대한 관심을 알고 그것에 대응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은 그 땅에 누가 살고 있었고 그들은 현재 어떻게 되었는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중국인들의 속마음을 알 수 있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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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니즘 세계
월 뱅크 지음, 김경현 옮김 / 아카넷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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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의 역사를 읽은 사람들은 간혹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과연 <위대한 아시아는 있었는가?> 이 말의 반대편에는 위대한 서양이라는 허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볼 때 문명은 서양이 아니라 아시아에서 탄생하였다. 그리고 이 문명은 서진하여 유럽을 교화시켰다. 이렇게 시작된 서양의 문화적 열등감은 그리스가 마라톤에서 페르시아군을 격파함으로서 폭력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 폭력의 시작이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인 것이다. 플르타르코스는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을 페르시아가 그리스의 제 도시를 침범한 것에 대한 응징이라는 주장을 통해 역사적 타당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의 동방원정은 문명의 파괴를 위한 동진이었을 뿐이다. 이에 대한 예를 들자면 끝없는 반달리즘의 리스트가 작성된다. 페르세폴리스 궁전 방화,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소각....

이 알렉산드로스-인도 북부지역에서는 이스칸더-의 동진은 에드워드 사이드의 시각을 빌리자면 서양이 문명이란 허구의 탈을 쓰고 자행한 침략이었다. 그 침략을 미화한 헬레니즘, 참으로 아름다운 말이다. 트로이 전쟁을 유발시킨 헬렌, 그리스의 다른 이름 헬라. 결국 헬레니즘이란 남의 것을 빼앗고 다양한 문명을 그리스화를 통해 단일화한다는 의미인 것이다. 얼마나 서양적인 발상인가? 자신들이 타 제국보다 문명적, 도덕적 우위에 있다는 전제하에서 만들어낸  단어. 이 단어에 중독된 아시아의 역사 인식은 자기 비하이며, 열등감일 뿐이다.

이는 헬레니즘의 역사적 위치를 부정하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다만 서양의 이러한 시각이 싫을 뿐이다. 서양은 헤로도투스 이래로 지금까지 제국과 자신을 일체화시키는 과정을 밟아왔다. 얼마나 좋은 발상인가? 제국은 공동체이고, 개인은 제국의 일부인 것이다. 이러한 제국주의적 발상은 코스모폴리탄이란 기상천외한 단어로 그럴싸하게 포장된다. 지금도 국가와 개인의 이러한 관계를 미국이란 나라를 통해 볼 수 있다. 미국인 한 사람은 미국이라는 거대한 제국의 일부분이고, 미국이란 단어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의 또 다른 분신인 것이다. 이러한 기형적 왜곡으로 인해 제3세계의 국가들은 미국이란 단어 앞에 무력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도 헬레니즘이 동방에 낀친 영향력이 새삼 크다는 사실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반대의 사실도 중요하다. 하지만 서양의 어느 누구도 반대의 가정은 시도하지 않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리스적인 요소가 동방의 제 요소와 결합하면서 하나의 새로움을 창조하는 과정의 경이로움이다. 그리스가 유서깊은 동방의 문명을 흡수하면서 세계로 그리고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유기체로 성장하여 온 세상을 감싸는 과정은 문명이나 역사의 과정에서도 철저한 무력적 원리가 지배함을 느끼게 한다. 이 무력적 원리의 종착점은 무엇일까, 바로 전쟁이었던 것이다. 헬레니즘의 시작은 처음부터 무력이란 수단이 동반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역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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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멸 - 예문소설 1
A.A.파제예프 / 예문 / 198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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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된 이야기 하나.


<여로The Journey>라는 제목의 영화를 우연히 보았을 때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영화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장욱제, 태현실 주연의 일일연속극 <여로>의 영화판인줄 알았다. 흑백텔레비전 시절 그 앞에 앉아 여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화면에 보이는 것은 영어였다. 배우는 대머리 배우 율 브린너와 고귀한 여인 데보라 카. 때는 헝가리 의거가 일어나던 1956년, 장소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접경의 도시. 조연은 러시아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러시아군에 대해 느꼈던 친근함을 지금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아한 것은 당시 70년대 상황에서 어떻게 러시아군이 우호적으로 그려지는 이 영화가 버젓이 KBS에서 방영되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러시아 알파벳이 요상하다는 것과 러시아군도 우리와 다를바 없이 우정과 전우애로 똘똘 뭉쳐 자신들의 방식으로 국가에 충성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궤멸이란 책을 사들고 읽으면서 왜 자꾸 여로의 러시아군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 또 하나.


88서울 올림픽 때 잠실 체조 경기장에 가서 소련 체조 선수들의 경기를 보았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러시아 선수들. 슈슈노바, 보긴스카야... 그들이 어느새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었다. 누가 변한 것일까? 우리일까, 아니면 저들일까? 그때 대한민국은 정말로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 


궤멸의 주인공 레빈손은 적의 포위망을 돌파한 뒤 남은 동료들과 함께 휴식도 없이 당이 부여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묵묵히 떠난다.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모습일까? 이 작품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소비에트 공산당 문학이었다. 그 전까지 내가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혁명 이전의 러시아 문학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읽은 보람은 있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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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 색의 역사 - 성모마리아에서 리바이스까지
미셸 파스투로 지음, 고봉만.김연실 옮김 / 한길아트 / 200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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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가 파랑색으로 장정된 책을 본다는 것은 그리 흔치 않은 일이다. 중세 시대의 색에 대해 조사를 하면서 이와 관련된 책을 찾아보면서  이 책을 보았을 때 너무 현대적인 디자인이라 쉽게 눈길이 가지 않았다. 그래도 색과 관련된 것이라 서가에서 뽑아 몇 줄을 읽어보다 구입하고 말았다. 저자는 이 책 전체를 파랑이라는 주제로 채우고 있다. 그리고 수 많은 자료사진과 그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은 값어치를 충분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의 장점은 파랑색에 대한 문화사이며 미술사이고 역사라는 것이다. 그만큼 이 책의 저자는 깊은 지식을 자랑하고 있다.


시대별로 파랑색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어떻게 주류의 색으로 발전해 왔는가를 기술하는 저자의 설명은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고 있다. 왜 이렇게 미시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다 프랑스인인지... 이 책을 읽고 저자를 사랑한다면 악마의 무늬 스트라이프라는 책도 읽어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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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학사전
빈 성과학연구소 / 강천 / 199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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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은 정신적 공황을 겪게 된다. 제국주의의 창안자였던 유럽인들 스스로의 싸움으로 도덕적 우월성과 이제까지 신봉해왔던 역사의 발전 속에서 진보해 가는 유럽이란 허구성을 상실함으로서 제3세계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운동이 더욱 거세지게 된다. 이에 대한 유럽의 대응방식은 구태의연한 과거의 방식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유럽은 이들 국가의 독립을 늦춰보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제2차세계대전을 맞이하게되고 결국 전후 식민지 체제는 파멸을 맞게 된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항상 전쟁이 끝난 뒤에 정신적 공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공황기를 통해 과거의 정신적인 사고의 폭을 대폭 수정하거나 아니면 보강하여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중간시기에는  어김없이 성에 대한 담론이 강해지며 퇴폐적인 풍속이 유행한다는 점이다.  일차세계대전과 이차세계대전 사이의 20년은 구스타프 클림트나 에곤 실레의 그림이 상징하듯 몽환의 시대였다.  또 이 시기에는 아냐니스 닌이나  헨리 밀러와 같은 작가들이 등장하여 성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사회적 무기력과 성에 대한 퇴폐적 경향은 전승국인 프랑스나 영국보다는 독일에서 더욱 심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길 수 있는 전쟁을 배신자들이 <등 뒤의 칼>을 휘두름으로서  패배했다고 하는 생각과 전후 밀어닥친 경제난등에 의해 상실감이 배가된 때문이었다.

게다가 베르사이유 체제에 의한 막대한 배상금과 실업자, 상이군인, 대공황의 영향으로 돈의 가치가 일제히 폭락함으로서 미래보다는 현재를 생각하는 풍조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일군의 학자들에게는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전전의 엄격한 성에 대한 기준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에곤 쉴레가 어린 여자의 나체를 그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투옥되고 사회적으로 배척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는 결국 군에 징집되었다가 유럽을 휩쓴 독감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 그러나 전쟁 후에는 이러한 제약이 많이 약화되면서 성에 대한 연구가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아마 이러한 시대적 풍조가 확립되지 않았다면 프로이드의 학설이나 라이히의 정신분석학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한 당시의 관점에서 본 최신 성에 대한 백과사전이었다.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약간 미지근한 내용이지만 당시에 이런 것을 수집하여 조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성의 역사를 이해하는 자료집으로서 활용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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