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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멸 - 예문소설 1
A.A.파제예프 / 예문 / 1988년 11월
평점 :
절판
아주 오래된 이야기 하나.
<여로The Journey>라는 제목의 영화를 우연히 보았을 때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영화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던 장욱제, 태현실 주연의 일일연속극 <여로>의 영화판인줄 알았다. 흑백텔레비전 시절 그 앞에 앉아 여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는데 화면에 보이는 것은 영어였다. 배우는 대머리 배우 율 브린너와 고귀한 여인 데보라 카. 때는 헝가리 의거가 일어나던 1956년, 장소는 헝가리와 오스트리아 접경의 도시. 조연은 러시아군.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러시아군에 대해 느꼈던 친근함을 지금도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 의아한 것은 당시 70년대 상황에서 어떻게 러시아군이 우호적으로 그려지는 이 영화가 버젓이 KBS에서 방영되었는지 지금도 궁금하다. 이 영화를 보면서 러시아 알파벳이 요상하다는 것과 러시아군도 우리와 다를바 없이 우정과 전우애로 똘똘 뭉쳐 자신들의 방식으로 국가에 충성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궤멸이란 책을 사들고 읽으면서 왜 자꾸 여로의 러시아군들이 생각나는 것일까?
아주 오래된 이야기 또 하나.
88서울 올림픽 때 잠실 체조 경기장에 가서 소련 체조 선수들의 경기를 보았다. 빨간 유니폼을 입은 러시아 선수들. 슈슈노바, 보긴스카야... 그들이 어느새 우리 곁에 가까이 와 있었다. 누가 변한 것일까? 우리일까, 아니면 저들일까? 그때 대한민국은 정말로 자랑스러운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다른 이야기
궤멸의 주인공 레빈손은 적의 포위망을 돌파한 뒤 남은 동료들과 함께 휴식도 없이 당이 부여한 과업을 수행하기 위해 다시 묵묵히 떠난다. 이것은 매우 아름다운 모습일까? 이 작품은 내가 처음으로 접한 소비에트 공산당 문학이었다. 그 전까지 내가 접할 수 있었던 것은 혁명 이전의 러시아 문학뿐이었다. 이것만으로도 이 작품을 읽은 보람은 있지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