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학사전
빈 성과학연구소 / 강천 / 1996년 9월
평점 :
품절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유럽은 정신적 공황을 겪게 된다. 제국주의의 창안자였던 유럽인들 스스로의 싸움으로 도덕적 우월성과 이제까지 신봉해왔던 역사의 발전 속에서 진보해 가는 유럽이란 허구성을 상실함으로서 제3세계 식민지 국가들의 독립운동이 더욱 거세지게 된다. 이에 대한 유럽의 대응방식은 구태의연한 과거의 방식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유럽은 이들 국가의 독립을 늦춰보려는 헛된 시도를 하는  과정에서 제2차세계대전을 맞이하게되고 결국 전후 식민지 체제는 파멸을 맞게 된다.

유럽의 역사를 보면 항상 전쟁이 끝난 뒤에 정신적 공황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 공황기를 통해 과거의 정신적인 사고의 폭을 대폭 수정하거나 아니면 보강하여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이런 중간시기에는  어김없이 성에 대한 담론이 강해지며 퇴폐적인 풍속이 유행한다는 점이다.  일차세계대전과 이차세계대전 사이의 20년은 구스타프 클림트나 에곤 실레의 그림이 상징하듯 몽환의 시대였다.  또 이 시기에는 아냐니스 닌이나  헨리 밀러와 같은 작가들이 등장하여 성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문학적으로 표현해 내었다. 사회적 무기력과 성에 대한 퇴폐적 경향은 전승국인 프랑스나 영국보다는 독일에서 더욱 심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길 수 있는 전쟁을 배신자들이 <등 뒤의 칼>을 휘두름으로서  패배했다고 하는 생각과 전후 밀어닥친 경제난등에 의해 상실감이 배가된 때문이었다.

게다가 베르사이유 체제에 의한 막대한 배상금과 실업자, 상이군인, 대공황의 영향으로 돈의 가치가 일제히 폭락함으로서 미래보다는 현재를 생각하는 풍조가 유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일군의 학자들에게는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전전의 엄격한 성에 대한 기준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에곤 쉴레가 어린 여자의 나체를 그렸다는 이유로 감옥에 투옥되고 사회적으로 배척을 받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그는 결국 군에 징집되었다가 유럽을 휩쓴 독감에 감염되어 사망하였다. 그러나 전쟁 후에는 이러한 제약이 많이 약화되면서 성에 대한 연구가 가속화되기 시작하였다. 아마 이러한 시대적 풍조가 확립되지 않았다면 프로이드의 학설이나 라이히의 정신분석학은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이런 과정 속에서 탄생한 당시의 관점에서 본 최신 성에 대한 백과사전이었다. 물론 지금의 관점에서 보면 약간 미지근한 내용이지만 당시에 이런 것을 수집하여 조사할 수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한 노력이 아닐 수 없다. 성의 역사를 이해하는 자료집으로서 활용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