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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속의 역사 1 - 풍속과 사회
에두아르트 푹스 지음, 이기웅 외 옮김 / 까치 / 2001년 3월
평점 :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치하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수도인 빈을 정화하기 위해 공창公娼을 폐쇄해 버렸다. 외견상 빈은 도덕적으로 정화된 듯 보였다. 하지만 공창에서 쫒겨난 창녀들은 도시 곳곳으로 흩어져 도시 전체를 사창가로 만들었다. 즉 공창을 없애자 쫒겨난 창녀들은 거리의 창녀 즉, 가창街娼이 되었다. 이것은 도덕이란 문구로 인간-주로 남성-의 욕구분출을 막아 버릴 때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패사례라고 할 수 있다.
성의 사회사를 논하려면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상황이 모두 고려되어야만 한다. 한예로 고대 그리스에서 동성애는 현대처럼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오히려 남성들의 결속력을 다지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어떤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중장보병들의 밀집대형이 이런 경향을 더욱 부추겼다고도 주장한다. 고대 바빌로니아에서는 신전 매음이 성행하였는데 그것은 매음 당사자의 경제적인 사정 때문이 아니라 사회적인 관습 때문이었다. 러시아와 중국에서는 공산혁명이 성공하자 제일 먼저 사창가를 폐쇄시키고 창녀들을 재교육시켜 사회로 내보냈다. 하지만 개방. 개혁이 되면서 이들 나라에 가장 먼저 활성화 된것이 홍등산업이었다. 산업혁명 당시 영국에서는 수많은 젊은 남녀들이 직업을 찾아 도시로 몰려들었고 여기서 낙오된 여성들은 사창가로 흘러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예에서 보듯 성의 사회사는 인간의 도덕적 끈의 약화가 불러오는 것이 아니라 복합적인 상황에서 발생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성의 사회사는 도덕적 주입으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얽혀있는 요소들을 고려하고 제거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며 주목하게 된 것은 푹스의 하수도 이론이다. 푹스는 오물을 하수도로만 흐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도로 위로도 흐르게 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묻고 있다. 성의 본질을 가리는 것은 어찌보면 "포템킨의 마을"과 같은 가식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역사적으로 정치가들은 성에 대한 제도를 마련할 때면 이 포템킨의 마을 효과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시대를 따라 성에 대한 이해의 폭이 달라지지만 인간의 본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인간의 본성은 종교적 의미의 성 이해-자손을 낳아 번성하라-가 따라갈 수 없을 만큼 앞질러 나아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성을 억압하는 사회일수록 성에 대한 왜곡이 심하다는 사실이다. 성의 왜곡은 행위에서 발생하지 않는다. 성의 왜곡은 억압된 상상에서 유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옛 어른들은 성에 탐닉한다는 단어를 사용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체제는 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성을 검열함으로서 제도는 인간의 본성을 콘트롤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성의 통제는 식량의 배급제와 같이 인간의 활동범위를 축소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독재적인 정권이 붕괴되면 가장 먼저 성적인 억압이 해체되면서 그동안 꿈꿔왔던 환상을 실현할 대체수단을 찾게된다. 역사 속에서 억압이냐 자유냐의 갈림길은 남녀 공히 사타구니의 자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는 사실은 재미있으면서도 우리가 정치적 동물이란 사실을 알게해주는 표시라 할 수 있다. 이렇게 말하고 있는 나 또한 정치적인 견해에 치중되어 있음은 어쩔 수 없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너그럽게 보아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