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 -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
앵거스 플레처 지음, 박미경 옮김 / 비잉(Being) / 2021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문창과 출신답지 않게 요즘의 나는 문학에 대한 의구심이 상당했다. 실용적이지 않고 시간 아깝다고 여기며 읽기를 거부했다. 취업이 급해 내세운 표면적인 이유였다. 문학 독서는 뭔가 한가로운 느낌이 들기 때문에 억지로 멀리했다. 그렇게 안 읽다 보니 이제는 읽어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의 반향만 울릴 뿐, 즐기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그래도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나는 어릴 적부터 소설을 사랑했기에 언제나 갈증은 남아 있었다. 취업하거든 마음 편히 읽으려고 쟁여 둔 소설이 독서 목록 한 쪽에 즐비했다. 이런 마음 가닥에 딱 알맞은 제목의 책이 등장했으니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구원의 광명 같은 책은 앵거스 플레처의 『우리는 지금 문학이 필요하다』였다.


부제는 ‘문학 작품에 숨겨진 25가지 발명품’으로, 현실 세계의 도구로써 발명품이 아닌 뇌 과학과 심리적인 발명품을 지칭한다. 어떠한 문학 작품을 읽으면 그에 상응하는 정서적 반응이 발현된다. 그러한 장치가 어떻게 발명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작동법을 25장에 걸쳐 안내한다. 각 장의 마무리에는 해당 발명품을 더 느낄 수 있도록 관련한 문학 작품을 수록했다.


※문학 발명품과 뇌 과학


잠깐 대학 시절을 회상해 보면, 문학의 구성 요소를 배울 때 뇌 과학은 전혀 없었다. 좋은 문학의 구조가 어떻고, 이렇게 쓰면 안 되고, 저렇게 쓰면 안 되고, 이런 게 좋은 글이고, 저런 게 나쁜 글이고……. 전문가의 영역에서는 필요한 지식이겠으나, 어디까지나 글쓰기 방법론 한정이었다. 내 글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는 개인의 감각 역량일 뿐.


더 거슬러 올라가면 중고딩 때의 문학 시간도 별 다를 바 없었다. 아니, 더 심했지. 문학을 분석해서 외우고 문제 풀어야 했으니까. 한 사람의 독자 입장에서는 개 쓰레기 같은 교육 방식이었다. 독서의 재미는 저런 것들이 앗아갔다. 좀 화가 나는데.


아무튼, 저자는 진부한 방식으로부터 문학을 건져 올렸다. 문학은 우리 인생에 굉장히 유용한 장르다. “문학은 인간 생물학에서 제기되는 심리적 도전에 맞서도록 돕는 서술적·감정적 테크놀로지였다. 아울러 인간으로 존재하는 데서 제기되는 의심과 고통을 극복하기 위한 발명품이었다(p.26).”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고 진정시켜 더 나은 삶의 방향으로 나아가게 했다.


예를 들어, 고대 그리스인들은 호머의 《일리아드》를 읽으며 용기를 끌어올렸다. 이 용기는 어디서 어떻게 발현되었을까. 먼저 용기의 뇌 과학적 출처는 편도체다. 위기 상황을 맞이하면 재빨리 벗어날 수 있도록 두려움을 자극해 아드레날린과 천연 오피오이드 진통제 혼합물을 방출하게 해, 어떠한 에너지로 가득 채운다. “이 힘의 본래 생물학적 목적은, 우리를 위험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신경성분을 한 가지 더하면 용기로 전환될 수 있는데, 그 성분이 바로 옥시토신이다(p.65).”


피를 뿜어내는 아드레날린의 열기, 고통을 덜어주는 천연 오피오이드의 열기, 사회적 유대감을 형성하는 옥시토신의 열기. 이 신경화학적 묘약은 우리에게 활력을 불어넣고 고통을 덜 느끼게 하며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게 한다. 가슴속에서 타오르는 이 불꽃(heart flame)이 바로 용기이다. – p.67


호머는 두려움에 더할 옥시토신을 ‘찬가’라고 칭했다. 전쟁에 나선 이들이 ‘함께’ 신을 향해 ‘찬가’를 노래하니 용기가 되어 나타난 것이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일리아드》 속 인물들과 찬가를 부르며 자신에게 내재된 용기를 북돋았다.


혹은 요정이 나타나 행운의 반전을 전해주는 이야기가 유치하게 들린다면, 그 안에 숨겨진 발명품을 들여다보는 것도 좋겠다. 신경과학자들에 따르면 ‘우뇌가 (투쟁-도피 반응을 촉발시키는) 교감신경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좌뇌가 (우리를 진정시키는) 부교감신경계와 더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알아냈다. 달리 말하면, 우뇌는 잘못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쉬운 반면, 좌뇌는 잘될 수 있는 것에 더 집중하기 쉽다(p.201).’ 즉, 치킨만 반반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뇌도 희망 반, 절망 반의 세트 메뉴인 셈이다.


관점에 따라 절망편이 극대화될 수도 있고 희망편이 극대화될 수도 있는데, 동화(fairy tale, 요정 이야기)가 전하는 행운의 반전은 좌뇌를 자극해 우리를 낙관적이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는 두 가지 근거가 존재한다. ‘첫째, 좌뇌에게 스토리는 절대적 규칙의 영역이 아니다. 둘째, 좌뇌는 동화의 반전이 그저 우리가 운이 좋을 수 있다고, 그리고 운이 좋았다고 상기해줄 뿐이다. 이러한 암시는 우리의 회복력을 강화하고 기존에 가진 좋은 것들에 감사하도록 한다(p.211).’ 반면, 우뇌는 비관론을 펼치는데, 이는 우리의 사망률을 높이는 것과 상관있다. 자살, 심장병, 뇌졸중 같은.


비관론보다는 낙관론이 낫지만, 한쪽으로 기울어지는 건 어느 쪽이 되었든 썩 좋은 상황은 아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다. 낙관론이 우세일 때는 아마 균형잡기가 쉬울 것이다. 현실은 행운보다 불운이 더 가깝고 빈번하니까. 반대인 경우라면 동화의 반전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줄 수 있다.


이러한 흥미로운 주제가 무려 23가지나 더 존재한다. 로맨스, 분노, 호기심, 슬픔, 창의성 등등. 더 놀라운 사실은 이 발명품들이 일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저자가 속한 대학 팀인 ‘프로젝트 내러티브’에서 찾아낸 발명품은 무려 수백 가지. 이런 문학 이론서라면 100권이라도 더 읽을 수 있으니 추가로 출판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물론 나 스스로 발명품을 찾아내는 공부도 병행하면서.


새로운 관점으로 익숙한 문학 작품을 마주하고, 또 낯선 작품도 만나면서 다시금 문학에 대한 관심이 샘솟고 있다. 덕분에 이 책에서 소개된 작품 몇 권을 구매했다. 이제는 마음 편히 먹고 찬찬히 읽어볼 요량이다. 그간 삶이 퍽퍽하다고 여겼는데, 되돌아보니 문학을 소홀히 대했을 때부터 시작했던 것 같다. 반성하면서 새삼 깨닫는다. 앞으로는 문학을 좀더 가까이 대해야겠다.


※문학에 대한 태도


중세 성직자들은 고대 서사시에 주석을 달며 교리에 대한 설교로 바꿨다. 이교도의 알레고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끔 수정했다. 가만 보니 이 꼬라지는 중고등학교 국어 시간과 다를 바 없었다. 작품을 분해하고 단어를 해석하며 ‘A=B’로 매칭하는 작태. 많은 이들이 의문을 가졌지만, 힘이 없는 문학은 수술대에 묶인 실험체일 뿐이었다. 교과서나 지문에 수록되길 거부한 작가들의 심정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나도 배우는 내내 더럽게 재미없어서 판타지 소설로 관심을 돌렸다.


그 교육 방식은 나의 한국 문학 경시 사상의 뿌리이기도 하다. 왠지 한국 문학을 읽으면 해석해서 답을 찾아야 할 것만 같은 부담감이 전신을 지배한다. 그 불쾌감이 독서를 지루하게 만들었다.


한참 문학에 빠져 있던 시기에 나의 지론은 이것이었다. ‘문학은 읽는 그 자체로 즐거워야 한다. 분석과 해석은 비평가의 몫이며, 독자는 그저 독서에서 즐거움을 느끼면 그만이다.’ 지금 보니 나 한정으로 알맞은 논리였다. 재미없는 독서는 죽은 독서다. 앞으로 내가 가질 문학에 대한 태도다. 분석하지 말고, 해석하지 말고, 정답 찾지 말고, 억지로 느끼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나는 독서를 좋아하는 독자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