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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라밸 - 행복은 내가 정한다.
김은정 지음 / 담아 / 2020년 4월
평점 :
얼마 전, 네이버 블로그 서로이웃인 '낭만아빠 윤소장'님께서 서로이웃 4천 명 기념으로 진행한 이벤트에 당첨되었다. 선물로 김은정 작가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과 윤소장님의 정성스러운 편지를 받았다. 2차 추첨 덕분에 받은 책이어서 더욱 감사했다. 무릇 책 선물에 대한 예의는 읽던 책을 멈추고서라도 가장 먼저 읽는 것이므로, 받자마자 읽기 시작했다. 이런 종류의 책에 익숙하지 못한 터라 집중하지 못해 시간이 꽤 걸렸다. 더 빨리 읽지 못한 부분은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애용하는 알라딘에 들어가 검색해봤더니 분류가 '자기계발서'로 되어 있어 초반에 조금 혼란스러웠다. 사람마다 자기계발서의 기준이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에는 참고문헌과 계발에 대한 객관적 결과가 없으면 자기계발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은 김은정 작가의 경험을 주로 이야기하다보니 내 기준과의 괴리가 상당히 컸다. 그 부분에서 혼란을 빚었다. 곧 '에세이'라고 생각하자 혼란은 점점 가라앉았다.
※거북이 독서가
거북이 독서여도 나의 성장을 위해 쉬지 않고 계속 책과 함께한 결과이다. - p.181
아무튼, 에세이로 자체 분류하고 나니 눈에 들어오는 몇몇 부분이 있었다. 그중 '거북이 독서'라는 표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저자는 책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독서에 막 발을 담갔을 때는 '독서 불치병' 때문에 10분 내외로 졸음이 쏟아졌다고. 그래서 수면제로 활용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리지만 꾸준히 읽은 결과,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지금은 행복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좋아했다. 장르의 다변화가 있었지만, 그래도 책과 떨어져 지낸 적은 거의 없다. 그렇다고 읽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다. 오히려 지금은 엄청 느려졌다. 각 잡고 읽어야 사흘에 한 권 읽을까 말까. '독서 불치병' 때문은 아니고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렇다. 특히 요즘은 비관 자아가 다시 뇌를 지배해서 독서 자체를 더욱 거부했다. 다행히 책에서 '거북이 독서'가 언급되었다. 참으로 시의적절했다. 덕분에 독서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들었다.
아예 읽지 않느니 한 글자라도 읽는 게 도움 되는 것은 자명하다. 그것이 또 내가 지향하는 '아주 작은 습관의 힘'이 아니겠는가. 독서 부담을 좀 덜어두고 나도 회복할 때까지는 '거북이 독서가'가 되어야겠다. 쓸수록 마음에 드는 말이다. 거북이 독서가.
※쓰고 또 쓰고
고민이 있거나 마음 정리가 필요할 때면 언제나 글쓰기를 통해 해결했다. - p.45
저자는 'Four-고'를 삶의 기준으로 세운다. '걷고, 쓰고, 읽고, 나누고'가 그것이다. 여기서 시작점은 '쓰고'이다.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이 생기면 일기를 쓰며 버텼다. 아이가 태어난 후 혼란을 겪었을 때도 글을 쓰며 상황을 정리했다. '내가 내 삶을 바라보는 자세'라는 제목의 글을 썼다.(p.45) 모든 것을 쏟아내어 쓰고 나서부터 나아갈 길이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고비마다 글쓰기로 대안을 찾아낸다. 삶이 안정된 지금은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나누기 위해 글을 쓰고, 또 독서를 소화하기 위해 서평과 필사도 겸한다고 한다. 그런 결과들이 모여 저자의 손에서 두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온 것이다.
엊그제 분노를 참지 못했을 때, 차라리 글을 썼어야 했나 싶다. 감정을 글로 토해냈다면 키보드가 부숴질 일도, 내 손이 다칠 일도 없었을 텐데. 아니, 동생과 싸울 일도 없었을 것이다. 글쓰기의 힘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저자의 말을 읽고 보니 아쉬운 생각이 문득 든다.
어쨌든 내가 지향하는 삶 역시 언제나 글 쓰는 삶이다. 쓰고자 하는 분야는 달라도 태도는 동일할 테니, 저자의 쓰고 또 쓰는 자세를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가끔 일기도, 자체 프로젝트인 '매일 쓰기'도, <긍정의 한 줄>도 귀찮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저자의 마인드를 떠올려야겠다.
※하이라이트는 포기하지 않는 것
'도대체 내가 뭘 어떻게 했기에 10년 만에 내 삶이 이렇게 바뀌었지?' 내가 잘한 일들을 떠올려 보았다. 제일 잘한 것은 오늘 잠들면서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않았으면 하고 기도했던 그 시절조차 난 포기를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 p.51
앞서 요즘 내 뇌를 비관 자아가 독차지했다고 얘기했다. 뭐 주기적으로 그러니 다시 좋아질 거라 생각은 하지만, 당장의 비관은 어쩔 수 없다. 만사가 부정적이고, 가족마저 적으로 보이며, 다양한 자살 방법을 시뮬레이션 한다. 뼛속까지 쫄보여서 막상 실행은 못하니 상상으로 만족하고 현실로 돌아옴의 반복이다. 비관 자아 버전의 나는 내가 인지 능력을 막 가졌던 때와 지금을 비교했을 때 나아진 점이 없다고 여긴다. 그러나 낙관 자아가 회복하면 확실히 예전보다는 나아졌음을 여실히 느낀다. 그 중심에는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가 굳건히 서 있다.
비관 자아에 휘둘려 죽어버렸다면, 또 내가 쫄보가 아니었다면 난 이미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사실 비관 자아보다 쫄보의 영향이 더 크다.). 살아 있기 때문에 괴로움 속에서 꿈도 꾸고 욕심도 부리며 지내는 중이다.
저자가 'Four-고'를 삶의 기준으로 삼을 수 있는 이유도, 경제적·시간적 자유를 이룰 수 있었던 이유도, 유명한 강연 무대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도 모두 하나의 뿌리에서 출발한다. '포기하지 않는 것.' 삶을 포기하지 않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타인을 위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았기에 저자는 지금의 자리에 도착했다.
물론 저자의 삶과 내 삶은 다르고, 성격도, 지향점도 다르니 데칼코마니처럼 적용할 수는 없다. 애초에 타인의 경험을 나와 일체화 시키는 자체가 말이 안 되는 행위니까. 하지만 인간이기에 보편적인 특성과 공통점이 있다. '포기하지 않는 자세', 이것이 모든 인간의 기본값이다. '거북이 독서', '쓰고 또 쓰고' 역시 '꾸준하게', '포기하지 않고'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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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한 심정으로, 읽을 때는 '아, 나랑 안 맞는데……, 서평 쓸 수 있으려나.'하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다 읽고 막상 서평을 쓰기 시작하니 무심코 지나쳤던 부분이 떠오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이래서 자기계발서로 분류한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저자가 책에서 경제적 자유를 강조하며 전작 『부자는 내가 정한다』를 수시로 언급했으니 기회가 되면 한 번 읽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