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한일기 - 코로나19로 봉쇄된 도시의 기록
팡팡 지음, 조유리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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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이어 올해의 메인 이슈도 코로나다. 백신이 개발되면서 좀 나아지려나 기대했지만, 변종이 등장해 다시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변종에도 효과적인 백신이 있어도 우리나라 모든 국민이 처방받으려면 한참 걸릴 것으로 보인다. 올해 말까지는 안심할 수 없다. 사람 많은 곳을 피하고, 외부에서는 마스크를 최대한 벗지 말아야 한다. 현재는 예방이 곧 백신인 셈이다.

 

이런 핫이슈를 몸소 경험하고 있으니 우한일기를 마주했을 때 아니 구매하고, 아니 읽을 수 없었다. 코로나의 발원지가 어디냐, 바로 우한 아니었던가. 뭐 발원의 근거는 논란이 있다고 쳐도, 초기 확산이 두드러졌던 곳이 우한이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리원량 의사가 코로나의 위험성을 설파했으나 중국 정부는 헛소문을 퍼트린다며 처벌했다. 중공식 입막음 때문에 환자 선별이 늦어졌고 전염성이 매우 강한 COVID-19는 우한을 집어삼켰다. 의료체계가 붕괴 수준에 이르러서야 중국 정부는 극약처방으로 우한을 봉쇄했다. 팡팡은 봉쇄3일 차부터 해제 명령이 나온 날까지의 60여 일 동안 우한 상황과 개인적인 경험 및 의견을 중국 SNS에 일기 형식으로 올렸다. 우한일기는 그 내용을 모아놓은 책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수많은 인민들의 생활상뿐만 아니라 중국 각 지역 공무원들의 평균 수준,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고질병까지 들춰냈다. 이 병은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악랄하고 끈질긴 병이다. 게다가 언제쯤 치료가 가능한지도 알 수 없다. 고치려 노력하는 사람도, 치료받으려는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 p.48

 

호시절에는 누가 진짜고 가짜인지 알 수 없다. 전부 평균 이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구분이 가능해지는 시점은 위기 상황이 당도했을 때다. 진짜 유능한 사람들은 위기 대응 능력이 굉장히 뛰어나다. 투자의 격언 중 하나인 버핏의 말은 투자를 벗어나 모든 상황에 어울린다. “물이 빠져야 누가 발가벗고 수영하는지 안다.”

 

우리는 실시간으로 우한 의료체계가 속절없이 붕괴하는 소식을 접했다. 병원으로 밀려드는 군중을 공무원들은 제어하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전염병 소식을 숨겼고 민중을 속였다. 사람들은 정부가 전염병으로 속이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예전에 사스로 크게 데인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부는 신속하게 전문가의 의견을 발표했다.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p.59)’ 작가를 비롯한 우한 사람들은 안심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라서 중공식 통수를 예상하지 못했다. 의견의 주인공 전문가는 발표 후 코로나에 감염되었고 의견을 정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세심하게 돌아봐서 이렇게 감염된 것이다, 대충 봤다면 감염되지 않았다라는 뻔뻔한 말을 했다.

 

그들의 무능함 여파는 고스란히 시민들의 피해로 이어졌다. 코로나 확진으로 부모가 격리되는 바람에 집안에 홀로 있다 아사한 아이가 있었고, 기저질환이 있던 중증 환자 사망자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보호자가 코로나로 사망해 졸지에 고아가 된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미처 정비하지 못한 채 봉쇄된 의료 최전선에서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젖 먹던 힘까지 끌어모아 희생정신을 발휘해 간신히 버텨냈다. 그 과정에서 리원량 등 몇몇 의료진이 세상을 등졌다. 건강한 시민들은 건강을 망치지 않도록 집안에 박혀 있어야만 했다.

 

전염병을 막는 과정도 일상생활과 같아서 수많은 어리석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일을 저지른다. 하지만 어리석지 않은 사람이 더 많고, 모든 일이 다 어리석은 것도 아니다. - p.86~87

 

정부와 공무원이 속인 대가로 우한 시민들은 꼼짝하지 못하는 신세가 되었지만, 금세 살기 위해 행동했다. 기간을 두고 한 가구당 한 사람씩 나와 생필품과 식료품을 구매했다. 주변에 직접 나서기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문 앞까지 배달했다. 나중에는 젊고 건강한 청년을 중심으로 장보기 그룹이 생겨 시민들의 주문에 맞춰 대신 장을 봐주었다. 27일 차 일기에서 작가는 우한 사람들의 삶이 화창한 날씨처럼 활기차다고 썼다. 인간의 적응력과 생활력이란 참으로 대단함을 느꼈다.

 

물론 쓰레기 같은 부류의 개인도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적잖이 그랬듯 우한 역시 마스크를 쓰지 않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 진실을 거짓으로 호도하는 사람, 권위를 내세워 개소리하는 사람 등. ‘그들 대부분이 전염병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전염병 통제는 더디고, 어쩔 수 없이 계속 집안에 머물러야 하는 우리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행동 때문에 대가를 치른다(p.241)’

 

하긴 악당 같은 게 어디 바이러스뿐일까.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여기고 인민들이 죽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는 사람들, 기증한다는 명목으로 물품을 모은 후 인터넷에 내다파는 사람들, 일부러 엘리베이터에서 침을 튀기고 이웃집 대문 손잡이에 침을 묻히는 사람들, 병원에서 구입한 긴급 의료용품을 훔치는 사람들까지. 물론 사방으로 소문을 지어내고 모함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상식적으로 사람이 존재하는 한 바이러스는 영원히 존재한다. 그렇다, 사회생활도 이와 같아서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바이러스 같은 사람(덜떨어진 사람)도 늘 함께 있다. - p.139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느꼈다. 불과 얼마 전에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몰상식한 인간들 때문에 집단감염이 또 발생했었다. 지금도 집단감염이 발생하지 않아 언론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어딘가에서는 여전히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몇십 명 이상이 모이는 장소가 분명 존재할 것이다. 질병인 바이러스는 시간이 걸려도 치료제나 백신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회적 민폐 바이러스는 약도 없다. 성숙한 시민의식만이 답이 될 수 있다. ‘그래, 우리의 머리는 선생님의 가르침에 달린 게 아니고, 신문에 달린 것도 아니고, 회의 문건에 달린 건 더더욱 아니다. 머리는 우리의 어깨 위에 달려 있다. 우리의 머리는 독립적으로 사고할 때 비로소 가치가 있다.(p.233)’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5&aid=0001412034


서평을 쓰기 전에 이런 기사를 봤다. 요약하자면 중국 정부가 코로나로 인한 노인 사망자 수를 숨겼다는 의혹이 재차 불거졌다는 내용이다. 재차라고 하니 이전에도 한번 있었던 모양새다. 봉쇄 해제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 여전히 우한은 진행 중인 듯하다. 우리야 중국이 중국했다로 치부할 수 있어도, 이미 정부의 배신을 겪은 우한 시민 역시 그러할까? 워낙 정부의 입김이 강한 나라이니 사건의 온상이 제대로 드러날지 미지수다. 의혹을 제기한 기자와 언론사가 무사할는지……. 아마도 이 책에서 배울 교훈은 우리나라 정부가 중국의 저런 모습을 학습하지 않도록 국민으로서 경계해야 한다는 점이리라. 그나마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여서 다행이다.

 

다시 한번 느낀 점을 강조하면,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기에 어디서나 깨어 있는 부류 또한 존재하기 마련이다. 끝으로 작가가 일기에 실은 고등학생의 글을 나도 내 서평에도 실으면서 마무리한다.

 

오히려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은, 대부분의 문제는 사회의 어두운 면에 관심을 기울일 때 일어나는 게 아니라 우리가 밝은 빛에 과하게 취해 있을 때 나타난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런 빛은 우리의 시력을 망가뜨리죠.” - p.3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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