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밤 - 낯선 공기와 어둠이 위로가 되는 시간
장은정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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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생활에서 문득 여행지에서의 순간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론 낯선 일상에서의 낮보다 어둠이 내려앉고부터의 시간들이 더 인상 깊게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낯선 나라, 낯선 동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 스며든다는 건 어쩌면 여행사는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밤의 시간을 애틋하게 추억하고 기억하는 여행자인 것 같다.



그날 밤 이후로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힘들고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때면 눈부시게 빛나던 프라하의 밤을 떠올렸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원하는 '언젠가'는 영영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고 즐겨야 한다.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만끽하고 행복해야 한다.  파라하의 그날 밤엔 불빛만큼 많은 생각들이 반짝거렸다. /p37

아이슬란드를 향한 가장 큰 그리움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대자연이나 한여름의 오로라에서 찾아오지 않았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약간은 몽롱하게 즐겼던 늦은 저녁의 식탁.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그 속에서 느꼈던 아주 작지만 소소한 행복.  매일 밤, 행복은 서툴고 느리게 차려낸 그 식탁 위에 있었다.  /p61


저자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출장을 다니며 경험한 여행자로서의 밤의 기록들은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하며 스치듯 생각했을지도 모를 단상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여행을 하며 애틋하고 보듬고 싶었던 시간들은 관광지들의 추억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밤'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때론 여행 메이트와 긴 시간 여행에 지쳐 틀어지기도 했고, 부모님을 모시고 떠났던 여행에선 보호자와 가이드로 자신만의 여행을 즐길 순 없었지만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다고 고백한다.



사소한 대화가 끊임없이 오고 갔던 제주의 밤.  그 밤마다 나는 용기를 얻었다.  행복이란 때론 한여름 나무 밑의 그림자처럼 사소하기도, 나무 위 높은 곳에 대롱대롱 매달린 열매처럼 탐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그 행복이란, 강한 열망으로 끌어당기는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이 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창밖이 보이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씩 미소를 짓게 되었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른다.  제주에서 또 다른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얻었다.  진심으로 응원했기에 그들의 행복을 보는 것은 내게도 더없는 행복이 되어주었다.   /p79

어제는 좋았던 것들이 오늘은 싫고, 어제는 싫었던 것들이 오늘은 좋기도 했다.  때로는 여행도 귀찮다.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여행은 더욱 그렇다.  힘에 부치거나 힘이 빠지기도 했고, 무엇을 해봐도 힘이 나지 않기도 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아 외롭고 우울했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고 싶어도 낮과 밤이 뒤바뀐 시차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럴 때면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 나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여행에서는 밤이 유난히도 어둡고 길었다.  그럼에도 혼자만의 여행은 온전히 내 것이라서 좋았다....<중략>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과연 그런 시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아니,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중략>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행.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밤이 유난히 어둡고 외로울지라도 나를 믿고 의지하는 밤.  그런 날은 밤이 길게 느껴져도 좋았다.  /p85~87


우리가 먼 나라로의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일상에서 떠나 나를 바라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딱히 뭔가 관광을 하지 않아도 낯선 곳에 나를 풀어놓음으로써 다른 시각으로 내면의 내가 정리되어가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다.  자꾸 여행이 떠오르고 어딘가 떠나고 싶어진다면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있다, 조금 더 준비가 되면 떠나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떠날 수 없는 게 여행이 아닐까?



매일매일 이별하던 밤. 이별에 익숙해지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잘 이별하는 것도 좋은 인연으로 기억될 수 있는 방법임을 배웠다.  이별은 언제나 만남보다 더 어렵다는 것도, 이별 역시 여행의 일부라는 것도, 연이 닿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도 배웠다.  매일매일 이별하면서 나는 그렇게 조금씩 이별을 배웠다. /p141~143


지난 몇 개월, 낯선 도시로 이사를 와서 행동반경도 자유롭지 못하고 매일 같은 생활에 답답증이 돋고 있던 참이었다.  저자의 추억담 같은 여행자의 밤을 읽으며 얼마 되진 않지만 그동안 여행했던 밤들을 되짚어보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들이 왜 그리 애틋했는지, 그 감상들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해 두기도 했는데 저자의 몇 줄 글을 읽으며 그 이유를 되짚어 보기도 했다.  앞으로 얼마나 여행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여행에 함께하게 될 '밤'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 또는 친구가 되어줄 여행자의 밤.  언젠가, 낯선 도시에서 맞이하게 될 미래의 밤들을 꿈꿔본다.



여행의 끝은 항상 많은 것을 잘 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에 찾아왔다.  그래서 늘 아쉽고 후회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다.  <중략>  '좀 더 잘 할걸. 좀 더 노력할걸.'  인생은 언제나 아쉽고 후회스러운 것 투성이다.  아쉽고 또 아쉬워서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여행의 마지막 밤처럼 말이다.  /p221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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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기괴괴 : 저주받은 갤러리 기기괴괴
오성대 글.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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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약한 공포물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나는, 여름이 제일 싫었다.  회사에 재직중이었을 땐 여름이면 공포물파일을 업무파일인것 처럼 첨부파일로 보내서 열어보게 하는 사람도 있었고 스크린세이버를 바꿔놓아 정말 기절할 정도로 놀란적도 있었다.  가끔 함께 있던 사람들이 '네가 놀라는 것때문에 더 놀란다!' 고 하지만 나는 정말이지 새가슴이다.  그래서 여름이면 공포영화가 줄줄이 상영되는것도 싫었고 괴담시리즈도 싫어했는데, 그래도 여름이면 은근 으시시한 이야기를 한 두편은 직,간접적으로 보게 되는 편이다. 


얼마전 조카의 핸드폰 어플에 있던 초성퀴즈 웹툰편을 풀어가다가 '기기괴괴'라는 웹툰이 있다는걸 알게 되었는데, 거짓말 같이 2주도 되지않아 책으로 읽어보게 되었다.  사실 책을 받아들고도 조마조마 했는데, 이정도는 정말 무서운걸 읽지 못하는 사람도 읽어 넘길 수 있는 수준? 


그동안 연재되었던 기기괴괴 시리즈중 인기가 좋았던 126화의 에피소드를 총 5권의 책으로 출간이 된다고 한다.  그 중 첫번째 책으로 <저주받은 갤러리>가 대표작으로 시작되는 이야기다.   괴모수, 당첨번호, 살의, 불면증등 책에 실린 다른 이야기들도 함께 읽으면서 느낀건 살아가며 정말 무서운건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었다.  어쨌든 사람으로 하여금 일어나는 일들이고 귀신보다 더 무서운게 사람인게 사실 아닐까?  부록으로 실린 장르파괴괴는 오성대 작가가 조금은 개그코드로 그려준 웃고 넘어가자는 짧은 웹툰인데, 앞의 이야기들로 좀 으스스 했던 기분을 조금은 상큼(?)하게 기분전환 할 수 있었던 글이었다.


사실 이 한 권의 책으로 이 웹툰의 다른 시리즈는 읽지 않을 줄 알았는데, 네이버 웹툰 앱까지 설치해서 한번에 50회분량의 에피소드들을 읽어가다보니 너무 빠져들어서 잠시 읽기를 멈춘 상태.  올 여름 휴가지에서 가볍게 즐길수 있는 웹툰으로 기기괴괴 를 읽어보는건 어떨까? 추천해보고 싶은 책이었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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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 킬러 시리즈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해용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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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없는 집은 마음이 편하다.  물론 아내가 거북하다거나 싫다거나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애정은 오랜 결혼 생활을 통해 더욱 깊어졌으면 깊어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었지만 평소 아내의 눈치를 살피는 것은 사실이었다.  호랑이 꼬리 못지않은 아내의 꼬리는 집 구석구석을 기어 다니고 있고, 게다가 보이지 않는다.  언제 밟을지 모른다.  /p15


한 집안의 가장이며 평범한 회사의 영업사원인 미야케는 사실 알아주는 킬러로 코드네임은 풍뎅이.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건 그 무엇도 아닌 아내다.   살인 의뢰를 처리하고 밤늦은 귀가를 하는 날이면 부스럭거리는 것조차 조심스러워 '어육 소세지'로 허기를 달래곤 한다.  그가 가장 원하는 건 업계의 은퇴!   청부살인 중개업자인 의사는 그가 일을 그만두는 걸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부채를 핑계로 풍뎅이를 계속 잡아두고 싶어 한다. 



노란색과 검은색 무늬가 있는 벌이 풍뎅이 옆을 지나 나무의 무성한 이파리 속으로 사라진다.  집으로 귀환한 참인가.  죽고 죽이는 순간은 몇 번이나 경험했다.  커다란 구경의 총이며 칼을 든 상대를 앞에 두고 맨손으로 격투를 벌인 적도 이루 셀 수 없다.  인간의 몸은 익숙해서인지, 공포나 긴장감으로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일조차 사라졌다.  그런데 지금 벌의 움직임 하나에도 긴장한다.   풍뎅이는 쓴웃음을 짓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공포로 얼어붙게 만든 건 참 오랜만이야, 하고 벌에게 말하고 싶을 정도였다.  긴장하게 만드는 건 너와 내 아내뿐이야, 하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p86~87

"홀드를 잡고 있다 보면 늘 가족 생각이 나요."

"어떤 의미에서요?"

"우리는 자주 이웃 사람들에게 사이좋은 가족이라는 말을 듣는데요.  아, 물론 사이가 좋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건 내 입장에서 보면 필사적으로 매달린 채 그 사이좋은 가족을 유지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아아!"

"특별히 무리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요.  아내도 그렇고 딸도 소중하니까요.  다만, 이따금 손아귀 힘이 떨어지고 더 이상 매달릴 수 없게 되어서, 차라리 쿵 하고 떨어지는 편이 더 편하지 않을까 싶은 때가 있는 거죠."   /p127


맞벌이를 하는 아내의 심기를 거르지 않기 위해 아내의 말에 귀 기울이며 말의 의미를 헤아리고 심사숙고하고 아내의 패턴을 연구하기도 한다.  풍뎅이의 아내에 대한 독백을 읽고 있자면 공처가도 이런 공처가가 또 있을까? 그런데 또 유능한 킬러라고 하니 뜬금없이 오래전 영화화했던 킬러들의 수다 '신현준'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고3인 가쓰미는 엄마의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절묘하게 아버지의 편들어주기도 한다.  


'법을 지키지 않고 타인의 목숨을 빼앗아 온 당신이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을 리가 없다.  용서될 리가 없다.  언제 붕괴되어도 이상할 게 없다는 공포심이 있고, 그래서 아내를 필요 이상으로 두려워하는 존재로 설정해 둠으로써 스스로를 경계하고 경고를 던지는 게 아닐까.'  풍뎅이는 스스로 반론한다.  '아니, 집사람이 정말 무서울 뿐이야!' /p148

나노무라가 팔을 휘두르는 순간, 나는 죽는다.  죽는 건 상관없지만 아내나 가쓰미를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건 괴롭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아파 온다.  다음에 다 같이 레스토랑에 가자고 했었는데, 그 '다음'이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다.  그때 문득 '넌 지금까지 몇 명에게 그런 고통을 맛보게 했느냐'고 혼쭐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갑자기 몸 전체가 묵직해진다.  자신이 지금까지 해 온 짓을 생각하니 살아남으려 애쓰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이기적인 것 같았다.  /p223


볼더링을 하며 마음이 통하는 친구라고 생각했던 마쓰다도 풍뎅이의 일반인 같지 않았던 면을 보고 야반도주처럼 이사를 가버렸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 또 마음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나노무라는 자신의 목숨을 노렸던 같은 업계의 청부살인업자였다.  가정에서만 온전히 자신일 수 있었던 풍뎅이.  아내를 만나 가쓰미를 낳고 가장으로서의 행복을 누리며 살았지만 자신이 그동안 살해해온 사람들에게도 그러한 가족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을 가족이 있었을 거라 생각하니 점점 더 이 업계에서 은퇴하고만 싶어진다.  살인 의뢰를 수락하면서도 은퇴 의사를 확고히 밝히는 풍뎅이와 그런 그를 잡기 위한 의사의 줄다리기는 풍뎅이가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극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네 아버님은 말이야, 정말 이것저것 많이 힘들게 했단다."  어머니는 다이키를 품에 안으며 아내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불단으로 눈길을 주었다.  아버지가 엄마를 힘들게 했다고?  그 반대가 아니고?  내 생각과는 관계없이 어머니는 옛날이야기들을, 아버지가 어떤 어이없는 실수를 했었는지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몇 가지 재미있게 들려주었다.   

"하지만 말이야."  어느 정도 어머니의 이야기가 끝났을 무렵 내가 끼어들었다.  부탁하마 변호인, 하고 등 뒤에서 아버지가 고개 숙이는 것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사명감이 들었다.  "아버지도 늘 엄마를 신경 썼어.  그게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어." 

"그 사람이?  나한테 신경을 썼다고?  언제?"  어머니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어이없어해서 오히려 내가 더 어이가 없었다.

"언제라니, 늘 그랬지."

어머니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적 없어.  네 아버지는 늘 마음 편하게, 태평하게 살았거든."   /p366~367


풍뎅이가 죽고 10년이 지나 가쓰미도 한 가정의 가장이 되었고, 어머니는 한동안 힘들어 했지만 그럭저럭 지내고 있다.   어느날 어머니의 집으로 찾아온 청년이 전해준 아버지의 진찰권으로 알게된 병원과 만나게 된 의사.  오랫동안 정리하지 못했던 '아버지의 방'에서 정리하며 찾은 열쇠 하나로 의사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고 후반부에 이르는 몇 십페이지는 그가 마지막까지 가족들을 위해 준비해둔 과정들이 정말 업계 최고의 킬러로 인정하게끔 한다.  풍뎅이와 아내가 만나게 된 계기가 되었던 마지막 장을 읽으며 그가 아내를 무서워했던 게 아니라 그의 가족을 너무나도 사랑했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마음 한편 이 너무나 짠 해졌다.  근래 읽은 이사카 고타로의 소설 중 최고로 손꼽고 싶은 글!!  올여름휴가 단 한 권의 소설이라면 이 책을 추천하고 싶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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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해서 좋다 - 작지만 깊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왕고래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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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쓴다.  정확히는 마음속 배터리를 사용한다.  우연히 이웃과 마주친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이 넘치는 지하철에서, 동료에게 인사하는 출근길에서, 입김을 나누는 회의실에서, 저녁모임에서, 지인과의 대화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배가 고픈데 누구도 음식을 들지 않을 때, 눈을 맞추고 대화할 때, 입으로 생각을 뱉어낼 때, 귀에 상대방을 차곡차곡 담아 넣을 때, 소란스러운 무리의 옆을 지날 때, 점원이 뭔가 도와주려고 할 때, 그렇게 대부분의 일상에서 나는, 마음을 쓴다.  그들이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 그렇게 된다.  나는 소심하다.  /p13 <오늘도 마음을 쓴다>


나는 소심인이다.  학창시절 별명이 카멜레온이나, 홍당무 일정도로 낯선 이가 말을 걸거나 발표하는 순간에도, 심지어 물건을 사고 결제 대금을 지불하는 순간에도 얼굴에 피가 몰리면서 빨개지기도 했다.  그 증상은 시간이 흘러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낯선 곳을 가거나 낯선 사람과 오래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면 두근거리는 증상은 아직 남아있다.   예전엔 이러한 성격을 사회생활하기엔 부적절하다고 생각되어 고쳐야 하는 성격으로 나누고 그에 관련한 서적이나 심리 관련 책들도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긴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이해하는 경험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결국 난 어떤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고 당황하는 소심인이기 때문이다.  대범한 척 혀를 놀릴 수 있는 익숙한 상황이 늘었을 뿐, 여전히 지나치는 낯선 사람의 눈빛에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수십 명 앞에서 그럭저럭 말하는가 하면 한두 명 앞에서도 입을 못 열고 우물쭈물한다.  여전히 떨고, 빨개지며, 마른 숨을 고른다. 

겹겹 흑역사를 쓰며 알게 된 건 '일상의 담담함'이다.  삶엔 드라마와 엔딩이 있지만, 일상엔 없다는 것.  일상의 길고 반복적인 흐름은 어느 한 지점이 반짝거리거나 일그러진다고 해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내일이 올 뿐이다.  혹여 오늘 청중 앞에 서게 되면, 내가 고민했던, 그래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숨 한 숨 삼키며 뱉으면 된다.  유창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잘했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다.  그 모습이 더러 못나도, 내가 말을 멈추지 않는 한 이야기는 쌓인다.  오늘이 간다.  그 일상이 모여 삶의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닐까.  소심해서 더 재미있는.  /p32 <꼭 자신감이 필요할까>

우리는 '개인'의 가치가 부각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을 나 역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누리는 것을 나 역시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대중의 관심사는 일반적인 사실보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개인의 이야기로 집중된다./p186  <사물이나 현상을 꿰뚫는 능력>


내향적인 성격이 고쳐야 할 성격이라고 주목받았던 이유는 대범인과 다르게 눈에 띄는 결과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외향적인 대범인과 다르게 소심인의 내향적인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았던 게 아닐까 싶다.   잠시만 이야기를 해보아도 활달한 성격인지 조심스러운 성격이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범인과 소심인의 성격은 확연이 다르다.  소심인의 공감과 위안, 위안과 배려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아닐까?  소심인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역사를 바꾸고, 가치를 보존하고, 위기를 예방하며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현상을 꿰뚫고 자기만의 길을 만드는 능력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처리하기 때문에 하는 게 없는 걸로 오해받는 존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조용한 성격탓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주변의 신경을 쓰지않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공간과 행복을 구축할 수 있는 소심인이 아닐까? 내향적인 소심인이 문제가 되는 사회가 아닌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구축해가며 내면의 힘을 키우는 존재로 부각되어 주목받고 있는듯 하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들은 소란 속에서도 조용히 역사를 바꾸는 존재다." 라는 문장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오랜 시간 이 '소심'이라는 섬에 머물고 있다.  잔파도에도 휘청거리고 낮보다 밤이 긴 이곳.  이따금 큰 배라도 지나가면 해일이 왔다며 벌벌 떤다.  크기는 작은데 뿌리는 심해 깊은 바닥에 뻗어 있는, 이곳이 좋다.  소심해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 '네가 소심하니까 그나마 여기까자 왔다'며 고집을 부리는 나.  나는 이 섬을 사랑한다.  사랑해서 여기까지 왔다.  /p265~266 <EPILOGUE>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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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김재영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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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땅히 사과받아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상처받은 영혼들을 위한 노래"



처음 읽어보게 된 김재영 작가의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잔잔한 그들의 일상, 미세한 균열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본과 개발로 인해 삶의 터전이 무너지고 생존을 위협받는 이들의 삶은 보다 확장된 '이주민'의 삶을 다루고 있다.  우리의 삶도 어쩌면 타향에 적응하지 못하고 사는 이주민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 모르겠다. 



사실 그 광고는 밀란 쿤데라의 *소설에서 힌트를 얻어 기획한 거였다.  '사과쟁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작가는 (어느 냉소적인 인물의 입을 통해) 사과쟁이란 착각 속에서 만들어진다고 했다.  사과로 다른 사람의 환심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착각일 뿐, 자기 잘못이라고 밝힌 다는 건 상대방이 당신에게 욕을 퍼붓고 당신을 죽을 때까지 만천하에 당신을 고발하라고 부추기는 거나 마찬가지라면서.  그게 바로 사과하는 행위의 치명적인 결과라고 했다.  하지만 사과쟁이 캐릭터를 가진 인물(실제로는 작가의 마음을 대변하는 인물이었는데)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나는 사람들이 모두 빠짐없이, 쓸데없이, 지나치게, 괜히, 서로 사과하는 세상, 사과로 서로를 뒤덮어버리는 세상이 더 좋을 것 같아." /p18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밀란쿤데라 『무의미의 축제』58쪽

무엇보다 더 이상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고독한 평화가 있어서 좋았다.  이제껏 그녀가 경험한 대로라면, 인간이란 서로 다른 복잡한 내면을 가진 존재들이어서 일부러 맞추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오히려 더 다투게 되거나 사소한 오해 끝에 깊은 상처를 주고받기 쉬웠다.  원룸 보증금을 다 날려버리는 비싼 여행 끝에 그녀가 얻은 것은 '사랑 없는 행복'이었다.  혼자 지내는 생활에 익숙해지고 외로움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자 일상이 계획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나 관계에 대한 집착을 덜어내면 낼수록 살기에는 편했다.  그즈음 우주를 만났고, 사랑에 빠질 위험이 극히 적은 소꿉친구와 보내는 저녁은 무균실에서 지내는 것처럼 안전했다. /p24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


8편의 단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이웃이고, 어쩌면 내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크게 다른 삶을 꿈꾸며 살아온 것도 아닌데 이들의 삶은 저마다의 미세한 균열로 피로하고 힘겹다.  일상을 탈출해서 다른 곳에서 자신과 삶의 의미를 찾고자 했던 이들도 이내 현실로 돌아와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영혼 없는 사랑을 지지한다는 거야?" 

"아니야, 그건.  다만 로맨틱한 사랑에는 가부장적 남성상과 순종적 여성상이 마취제처럼 녹아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늘 정욱을 위해 살았지?  그의 취향에 맞추고, 그의 시간에 맞추고, 심지어 그를 위해 출산마저 포기해버렸지?  수진, 저 달을 봐.  합삭에서 벗어나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고 있어.  수진도 그럴 수 있고, 그래야 해." 

뜨끔했다.  그녀 말이 사실이었다.  달이 태양의 반대편으로 숨어들어가 지구 그림자 속에서 사라지듯이 언제나 나란 존재를 숨기기에 바빴다.   /p133  <특별한 만찬>

서른다섯에서 마흔 사이.  한겨울의 폭설 속을 헤치고 겨우 목숨만 건져서 살아 나온 것 같았다. /p186  <무지갯빛 소리>

 

사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한참을 이런저런 생각으로 멍해서 정리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던 책이기도 했다.  이 글들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몇 번은 읽어야겠다는 생각도 더불어 해보기도 했고, 추려둔 문장들이 꽤 되서 다시 한번 간단히 훑어보기도 했다.   모든 삶이 반짝거릴 수 있을까?  만족하는 삶이 있을 수 있을까?  하지만 누구나 반짝거리며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는 욕망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도 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빛을 잃어가는 삶을 위로하는 저자의 글은 조금은 몽환적이면서도 글을 읽으며 위안을 얻게 된다.  마음에 내려앉는 문장들을 하나 둘 낚아가며 읽었던 <사과파이  나누는 시간>은 평소 먹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해보지도 않았던 사과파이가 먹고 싶어지기도 했다.  뜬금없이... 사과를 키워내는 과정, 그리고 그 사과로 달콤한 사과파이를 만들기 위해 거쳤을 과정들을 상상하니 어쩌면 이 과정들이 우리의 삶과 닮아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살포시 해보기도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나, 단편 하나씩을 다시 읽어봐야지 천천히 그들의 인생을 보듬어 봐야지.



이상하게도 아가씨들은 바다에 관심이 없어 보였다.  바다는 아가씨들의 사진 속 배경일 따름이었다.  하지만 그녀들의 웃음소리에서 묻어나는 젊음의 생기만은 싱그러웠다.  아직 세상의 위험에 대해 잘 모르는, 철없는 희망을 완전히 저버리지 않은 어린 존재의 내면에서 울리는 가벼운 딸랑거림! ..... (중략).....해가 지기 전까지 아가씨들은 다른 유명한 장소들을 찾아다닐 것이다.  밤이 되면, 어둠 속에서 파도 소리를 듣는 대신 낮에 찍은 사진 중에 가장 근사한 사진을 휴대전화로 지인들에게 전달할 것이다.  나 이렇게 행복해.  부럽지?  제발 부러워해줘.  그러면 육지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부러움으로 밤잠을 설치게 되고, 얼마 뒤에는 섬으로 오는 비행기 티켓을 끊게 될 것이다.  타인의 욕망을 사기 위해서, 타인처럼 되기 위해서.  그것이 이 섬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일까?  단지 그 이유일까?  도망쳐 숨어들거나 외따로 스며들기 좋은 섬.  때로 반란의 거점이 되곤 했던 섬.  그게 사람들이 몰려드는 이유는 아닐까.  /p240  <그 섬에 들다>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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