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소심해서 좋다 - 작지만 깊은 마음으로만 볼 수 있는 것들에 관하여
왕고래 지음 / 웨일북 / 2018년 5월
평점 :
절판

마음을 쓴다. 정확히는 마음속 배터리를 사용한다. 우연히 이웃과 마주친 엘리베이터에서, 사람이 넘치는 지하철에서, 동료에게 인사하는 출근길에서, 입김을 나누는 회의실에서, 저녁모임에서, 지인과의 대화에서. 음식을 주문할 때, 배가 고픈데 누구도 음식을 들지 않을 때, 눈을 맞추고 대화할 때, 입으로 생각을 뱉어낼 때, 귀에 상대방을 차곡차곡 담아 넣을 때, 소란스러운 무리의 옆을 지날 때, 점원이 뭔가 도와주려고 할 때, 그렇게 대부분의 일상에서 나는, 마음을 쓴다. 그들이 나를 소진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저 스스로 그렇게 된다. 나는 소심하다. /p13 <오늘도 마음을 쓴다>
나는 소심인이다. 학창시절 별명이 카멜레온이나, 홍당무 일정도로 낯선 이가 말을 걸거나 발표하는 순간에도, 심지어 물건을 사고 결제 대금을 지불하는 순간에도 얼굴에 피가 몰리면서 빨개지기도 했다. 그 증상은 시간이 흘러 많이 나아졌지만, 지금도 낯선 곳을 가거나 낯선 사람과 오래 이야기해야 하는 순간이면 두근거리는 증상은 아직 남아있다. 예전엔 이러한 성격을 사회생활하기엔 부적절하다고 생각되어 고쳐야 하는 성격으로 나누고 그에 관련한 서적이나 심리 관련 책들도 꽤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대범한 사람이 되기 위해 긴 시간을 쏟았다. 하지만 그 시간은 스스로의 본질을 이해하는 경험에 더 가까웠던 것 같다. 결국 난 어떤 상황을 필요 이상으로 고민하고 당황하는 소심인이기 때문이다. 대범한 척 혀를 놀릴 수 있는 익숙한 상황이 늘었을 뿐, 여전히 지나치는 낯선 사람의 눈빛에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수십 명 앞에서 그럭저럭 말하는가 하면 한두 명 앞에서도 입을 못 열고 우물쭈물한다. 여전히 떨고, 빨개지며, 마른 숨을 고른다.
겹겹 흑역사를 쓰며 알게 된 건 '일상의 담담함'이다. 삶엔 드라마와 엔딩이 있지만, 일상엔 없다는 것. 일상의 길고 반복적인 흐름은 어느 한 지점이 반짝거리거나 일그러진다고 해서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담담하게 내일이 올 뿐이다. 혹여 오늘 청중 앞에 서게 되면, 내가 고민했던, 그래서 꼭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 숨 한 숨 삼키며 뱉으면 된다. 유창하지 못했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다. 잘했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다. 그 모습이 더러 못나도, 내가 말을 멈추지 않는 한 이야기는 쌓인다. 오늘이 간다. 그 일상이 모여 삶의 드라마가 되는 건 아닐까. 소심해서 더 재미있는. /p32 <꼭 자신감이 필요할까>
우리는 '개인'의 가치가 부각되는 세상으로 가고 있다.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을 나 역시 쉽게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구나 누리는 것을 나 역시 누릴 수 있다. 따라서 대중의 관심사는 일반적인 사실보다 뭔가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는 개인의 이야기로 집중된다./p186 <사물이나 현상을 꿰뚫는 능력>
내향적인 성격이 고쳐야 할 성격이라고 주목받았던 이유는 대범인과 다르게 눈에 띄는 결과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외향적인 대범인과 다르게 소심인의 내향적인 성격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들이 많았던 게 아닐까 싶다. 잠시만 이야기를 해보아도 활달한 성격인지 조심스러운 성격이지를 알 수 있는 것처럼 대범인과 소심인의 성격은 확연이 다르다. 소심인의 공감과 위안, 위안과 배려는 이 사회를 살아가는데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요소중 하나가 아닐까? 소심인은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역사를 바꾸고, 가치를 보존하고, 위기를 예방하며 타인에 대해 공감하고 현상을 꿰뚫고 자기만의 길을 만드는 능력을 외부로 드러내지 않고 처리하기 때문에 하는 게 없는 걸로 오해받는 존재가 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조용한 성격탓에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주변의 신경을 쓰지않고 집중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만의 공간과 행복을 구축할 수 있는 소심인이 아닐까? 내향적인 소심인이 문제가 되는 사회가 아닌 자신만의 인사이트를 구축해가며 내면의 힘을 키우는 존재로 부각되어 주목받고 있는듯 하다. 저자가 이야기 하는 것처럼 "그들은 소란 속에서도 조용히 역사를 바꾸는 존재다." 라는 문장을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참 오랜 시간 이 '소심'이라는 섬에 머물고 있다. 잔파도에도 휘청거리고 낮보다 밤이 긴 이곳. 이따금 큰 배라도 지나가면 해일이 왔다며 벌벌 떤다. 크기는 작은데 뿌리는 심해 깊은 바닥에 뻗어 있는, 이곳이 좋다. 소심해서 여기까지밖에 못 왔다고 한탄하는 친구에게 '네가 소심하니까 그나마 여기까자 왔다'며 고집을 부리는 나. 나는 이 섬을 사랑한다. 사랑해서 여기까지 왔다. /p265~266 <EPILOGUE>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