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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밤 - 낯선 공기와 어둠이 위로가 되는 시간
장은정 지음 / 북라이프 / 2018년 6월
평점 :

일상생활에서 문득 여행지에서의 순간을 떠올리게 되는 순간들이 있지 않은가? 개인적으론 낯선 일상에서의 낮보다 어둠이 내려앉고부터의 시간들이 더 인상 깊게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낯선 나라, 낯선 동네 말도 통하지 않는 사람들 틈에 스며든다는 건 어쩌면 여행사는 각자의 스타일에 따라 다르겠지만 난 밤의 시간을 애틋하게 추억하고 기억하는 여행자인 것 같다.
그날 밤 이후로 나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힘들고 지쳐 아무것도 하기 싫은 때면 눈부시게 빛나던 프라하의 밤을 떠올렸다. 지금이 아니면 내가 원하는 '언젠가'는 영영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을 충분히 누리고 즐겨야 한다.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만끽하고 행복해야 한다. 파라하의 그날 밤엔 불빛만큼 많은 생각들이 반짝거렸다. /p37
아이슬란드를 향한 가장 큰 그리움은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대자연이나 한여름의 오로라에서 찾아오지 않았다.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약간은 몽롱하게 즐겼던 늦은 저녁의 식탁.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모여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던 시간, 그 속에서 느꼈던 아주 작지만 소소한 행복. 매일 밤, 행복은 서툴고 느리게 차려낸 그 식탁 위에 있었다. /p61
저자가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출장을 다니며 경험한 여행자로서의 밤의 기록들은 어쩌면 누구나 한 번쯤 여행을 하며 스치듯 생각했을지도 모를 단상일지도 모르겠다. 저자가 여행을 하며 애틋하고 보듬고 싶었던 시간들은 관광지들의 추억이 아니라 여행지에서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었던 '밤' 시간이었다고 고백한다. 때론 여행 메이트와 긴 시간 여행에 지쳐 틀어지기도 했고, 부모님을 모시고 떠났던 여행에선 보호자와 가이드로 자신만의 여행을 즐길 순 없었지만 그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했다고 고백한다.
사소한 대화가 끊임없이 오고 갔던 제주의 밤. 그 밤마다 나는 용기를 얻었다. 행복이란 때론 한여름 나무 밑의 그림자처럼 사소하기도, 나무 위 높은 곳에 대롱대롱 매달린 열매처럼 탐스럽기도 하다. 그리고 그 행복이란, 강한 열망으로 끌어당기는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이 온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창밖이 보이는 침대에 누워 잠이 들 때마다 나도 모르게 씩 미소를 짓게 되었던 것도 어쩌면 그 때문인지 모른다. 제주에서 또 다른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용기를 얻었다. 진심으로 응원했기에 그들의 행복을 보는 것은 내게도 더없는 행복이 되어주었다. /p79
어제는 좋았던 것들이 오늘은 싫고, 어제는 싫었던 것들이 오늘은 좋기도 했다. 때로는 여행도 귀찮다. 모든 것을 혼자 해야 하는 여행은 더욱 그렇다. 힘에 부치거나 힘이 빠지기도 했고, 무엇을 해봐도 힘이 나지 않기도 했다. 누구도 먼저 말을 걸어주지 않아 외롭고 우울했다. 한국으로 전화를 걸고 싶어도 낮과 밤이 뒤바뀐 시차 탓에 그럴 수도 없었다. 그럴 때면 아무도 없는 낯선 땅에 나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것 같기도 했다. 그런 여행에서는 밤이 유난히도 어둡고 길었다. 그럼에도 혼자만의 여행은 온전히 내 것이라서 좋았다....<중략> 온전히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과연 그런 시간이 얼마나 되었던가. 아니, 그런 시간을 가져본 적이 있었던가. <중략> 오로지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여행. 그것 하나면 충분했다. 밤이 유난히 어둡고 외로울지라도 나를 믿고 의지하는 밤. 그런 날은 밤이 길게 느껴져도 좋았다. /p85~87
우리가 먼 나라로의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일상에서 떠나 나를 바라보고 싶어서가 아닐까? 딱히 뭔가 관광을 하지 않아도 낯선 곳에 나를 풀어놓음으로써 다른 시각으로 내면의 내가 정리되어가는 걸 느끼는 순간이 있다. 자꾸 여행이 떠오르고 어딘가 떠나고 싶어진다면 '마음의 휴식'이 필요한 신호일지도 모르겠다. 조금 더 있다, 조금 더 준비가 되면 떠나야지 하고 생각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아니면 떠날 수 없는 게 여행이 아닐까?
매일매일 이별하던 밤. 이별에 익숙해지는 법은 끝내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잘 이별하는 것도 좋은 인연으로 기억될 수 있는 방법임을 배웠다. 이별은 언제나 만남보다 더 어렵다는 것도, 이별 역시 여행의 일부라는 것도, 연이 닿는 사람이라면 언젠가는 다시 만나게 된다는 것도 배웠다. 매일매일 이별하면서 나는 그렇게 조금씩 이별을 배웠다. /p141~143
지난 몇 개월, 낯선 도시로 이사를 와서 행동반경도 자유롭지 못하고 매일 같은 생활에 답답증이 돋고 있던 참이었다. 저자의 추억담 같은 여행자의 밤을 읽으며 얼마 되진 않지만 그동안 여행했던 밤들을 되짚어보며 잠시 추억에 잠기기도 했던 즐거운 시간이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마지막 밤들이 왜 그리 애틋했는지, 그 감상들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해 두기도 했는데 저자의 몇 줄 글을 읽으며 그 이유를 되짚어 보기도 했다. 앞으로 얼마나 여행을 하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여행에 함께하게 될 '밤'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기록해봐야겠다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여행을 꿈꾸는 이들에게 좋은 가이드, 또는 친구가 되어줄 여행자의 밤. 언젠가, 낯선 도시에서 맞이하게 될 미래의 밤들을 꿈꿔본다.
여행의 끝은 항상 많은 것을 잘 할 수 있게 되었을 즈음에 찾아왔다. 그래서 늘 아쉽고 후회도 많았다. 돌이켜보면 언제나 그랬다. <중략> '좀 더 잘 할걸. 좀 더 노력할걸.' 인생은 언제나 아쉽고 후회스러운 것 투성이다. 아쉽고 또 아쉬워서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던 여행의 마지막 밤처럼 말이다. /p221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