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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 - 쉰다섯, 비로소 시작하는 진짜 내 인생
서정희 지음 / arte(아르테) / 2017년 6월
평점 :

몇 년이 지난 사건, 그 당시는 매장 운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그녀의 기사를 얼핏 본 기억은 있지만 자세한 사건의 개요는 알지 못했다. 그렇게 시간과 함께 지나고 잊힐 것만 같았던 서정희,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로 세상에 나섰다. 책의 출간 소식을 듣고 무엇보다 이 책이 읽고 싶었던 건 아마도 그녀의 시작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았다. 가족들이 쉴 수 있는 나의 작은 집을 갖고 싶었다. 어릴 때부터 즐겨 부르던 노래 <즐거운 나의 집>과 같은 가정을 만들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런데 그 안에서 내가 편안한 적이 있었던가. 아니다. 아이들 덕분에 행복했지만 결코 편안한 삶이 아니었다. 남들에게 보이기 위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게 아니란 걸 스스로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호수 위의 백조처럼 쉼 없이 물 아래 다리를 저어야 했다. /p12 프롤로그
한 남자의 아내, 아이들의 엄마, 그리고 가끔 TV에 방영되는 그녀의 살림 솜씨와 인테리어는 전문가 이상의 수준을 보여줬던 걸로 기억한다. 인테리어에 조금 관심을 가졌던 시절엔 그녀의 책을 찾아보기도 했고, 남다른 센스에 감탄하기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그녀가 32년 생활의 결혼 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엔 18살부터 시작되었던 그녀 인생의 이야기가 드라마처럼 펼쳐진다. 보이는 삶 그대로 행복할 수는 없었던 걸까? 한 가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의 모습이 안으로 삭히고 자신이 곪고 있는 만큼 밖에 보이는 모습은 더 완벽해 보이고 싶었던 건, 그렇게라도 가정이 깨지지 않게 지켜지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을 것이다. 사랑이 무언지도 알기 전에 시작하게 된 '삶'. 하지만 그녀는 좋았던 시절도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도 자신에게 집중하고 잘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그가 대화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포기하지 않고 노력했지만, 울타리 안에서 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던 그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아이들을 잘 양육하고, 남편 내조에 힘쓰고, 집안 살림과 가꾸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외모로는 공주일 것만 같은 이미지였는데, 이보다 더 열심히 살아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심히 살아내는 모습에 몇 번이나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쉬어 읽기를 반복했다.
새로 이사 간 신도시의 집에서 스스로를 치유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한 것도 글쓰기였다. 기억하고 싶은 책의 한 구절을 기록하고, 묵상 내용을 적고, 때로는 가슴속에 담아두었던 말들을 두서없이 써 내려갔다. 메모의 기적을 믿는 나는 언젠가는 내 삶의 양식이 될 거라 생각하며 머릿속에 들어온 많은 것들을 적어놓곤 했다. 그리고 그것들이 이 책의 시작이 됐다. /p26~27
나는 오늘도 책을 읽으며 밑줄을 긋는다. 거리를 걷다가 멋진 간판이 보이면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고, 감명 깊은 영화를 두 번 세 번 본다. 처음 볼 때는 배우에만 집중하다가 두 번째는 주변 풍경까지 눈여겨보고, 그 다음은 배경음악과 함께 더 깊이 빠져든다. 무엇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다. 그것들 모두 잘 소화시켜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앞으로 남은 생이 그런 좋은 것들을 받아들이고 생각하고 실천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p71
세상에 의도치 않게 밝혀진 엘리베이터 사건, 이혼 과정, 그리고 홀로서기까지의 시간. 아마도 글쓰기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좋아했던 일들을 다시 시작할 계기가 없었더라면 그녀는 그 시간들을 어떻게 지나왔을까? 벌써 쉰 다섯, 의 나이가 된 그녀는 책 곳곳에 수록된 사진의 실루엣만 보아도 여전히 곱고 아름다웠다. 내면의 고통이 이른 나이에 한 결혼으로 집, 가정, 아이들밖에 몰랐던 그녀를 더 단단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주저앉고 싶은 순간도 많았을 텐데, 글을 읽고, 쓰고 자신이 잘하는 걸 찾아가며 그동안 잊고 살았던, '나', '서정희' 를 바라보고 사랑하기 시작한 쉰 다섯, 두 번째 스무살을 시작하는 그녀를 응원한다.
그와 함께 살 때는 커다란 구둣발에 밟혀 상처가 나고 고통스러우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멀쩡한 척했다. 이제 아프면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 언제든 지나칠 필요 없이 내 모습 그대로 내가 가진 만큼만 보여줄 수 있어서 편안하다. 해피엔딩을 꿈꿨던 시나리오는 폐기처분됐다. 결혼도 이혼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그러나 괜찮다. 인생이란 정해놓은 대로 되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만으로도 큰 수확이라고 생각한다. 쉰다섯이 되어서야 비로소 편안하게 호흡하는 법을 배웠다. /p86
"짓는 것보다 해체하는 것이 더 힘들다."
그렇다. 32년간 어렵고 힘들게 공들여 완성한 나만의 집을 해체하는 과정은 정말이지 죽음과도 같았다.....<중략>....언제나 그랬듯이 또 나는 깊은 질문 속으로 나를 던진다. 답은 정해져 있고, 이제 와서 달라질 건 없다. 과거가 아닌 미래를 보아야 하는 이유이다. /p120
매일 나를 가꾸고 주변을 단정하게 정리하는 일. 이왕이면 깨끗하고 예쁘게 치장하는 것, 이게 타고난 나의 성정이다.
이걸 바꾼다고 상황이 달라질 리 없고, 사람들이 이해해준다 한들 나 자신이 납득하지 못하면 불행한 일 아닌가. <중략> 앞으로는 '나답게'살 예정이다. 내 자아가 원하는 대로 몸과 마음을 부지런히 가꾸고 주변도 예쁘게 꾸미면서 당당하게 살 것이다. 그게 내가 편안해지는 길이다. 내 인생에 나보다 더 중요한 사람은 없다. /p180
쉰다섯 살, 지금 나는 꿈을 꾼다.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인 꿈이다. 그러나 간절하다. 되고 싶다는 게 없다는 건 삶을 내려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희망은 숨 쉴 이유가 되어준다. /p253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