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소음
줄리언 반스 지음, 송은주 옮김 / 다산책방 / 201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예술가인 쇼스타코비치의 인생과 음악을 조금이라도 알고 읽었더라면 조금은 더 쉽게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둠의 시절, 한 예술가가 나름의 방법으로 그 시대를 통과하는 과정들을 읽으며 마음에 맴도는 문장들이 꽤 많았음에도 깊이 공감되지 않아서, 읽다 내려놓기를 반복했던 줄리언 반스의 시대의 소음.  읽으면서도 시대적인 배경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탓일까?  화자의 이야기에 깊게 빠져들지 못 했던 건 내 지식이 부족한 탓.



운명, 그것은 전혀 손쓸 수 없는 어떤 일에 대해 쓰는 거창한 단어일 뿐이었다.  삶이 당신에게 "그래서"라고 말했을 때, 당신은 고개를 끄덕이고 그것을 운명이라 불렀다. /p22

이론들은 깔끔하고 설득력 있으며 이해하기 쉬웠다.  삶은 혼돈이고 허튼소리로 가득했다. /p81

하나의 못이 다른 것을 몰아내듯이, 하나의 두려움이 다른 두려움을 몰아낸다.  그래서 고도를 올리는 비행기가 단단한 공기층을 들이 받는 것처럼 보이듯이, 그는 눈앞의 부분적인 공포에만 정신을 집중했다.  희생 제물이 되고, 산산조각이 나고, 즉시 잊혀지는 데 대한 공포.  공포는 보통 다른 감정들까지도 모두 몰아낸다.  하지만 수치심만은 아니다.  공포와 수치는 그의 배 속에서 행복하게 같이 뒤섞여 빙빙 돌아갔다. /p91


소비에트 연방 시절 러시아에서 살아남은 작곡가. :겁쟁이가 되기도 쉽지 않았다. 겁쟁이가 되기보다는 영웅이 되기가 훨씬 더 쉬웠다."  어찌 보면 시대에 순응하며 맞춰 살아가는 게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이들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 것이다.  예술가들조차 통제했던 시절,  예술이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예술'의 것이라면 인생도 마찬가지 여야 하는게 아니냐는 글은 깊은 생각에 빠지게 한다.  권력을 사랑하는 것으로 충분치 않았던 시대, 그 권력이 선택한 사람을 사랑해야 편할 수 있었던 시대.  예술까지 통제하고자 했던 시절의 예술가에게 그보다 불행한 시절은 없을듯하다.



낙관주의와 비관주의가 행복하게 공존할 수 있었던 몇 안되는 장소들 중 하나 - 정말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둘 다 있어야 하는 곳 - 는 바로 가정이었다.  그래서 예를 들면 그는 니타를 사랑했지만(낙관주의)  자신이 좋은 남편인지는 알 수 없었다(비관주의).  그는 걱정이 많은 사람이었고, 걱정 많은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이고 좋은 친구가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중략>....그는 자기 아이들을 사랑했지만(낙관주의) 좋은 아버지인지에는 자신이 없었다(비관주의).  가끔씩 아이들에 대한 애정이 비정상적이다 못해 병적이라고 느꼈다.  삶은 흔히들 하는 말로 들판을 거니는 산책이 아니다. /p106

"삶은 들판을 산책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햄릿에 관한 파스테르나크의 시 마지막 줄이기도 했다.  그 앞줄은 이러했다.  "나 혼자뿐이다.  내 주위 사람들 모두 어리석음 속에 익사했다." /p163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싶어 했다.  그가 두려워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었다.  그는 사람들은 죽음에 대해 더 자주 생각해야 하며, 죽음에 대한 생각에 익숙해져야 한다고 믿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무심결에 슬그머니 떠오르도록 그저 놔두는 것은 삶을 살아가는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죽음에 친숙해지도록 해야 한다.  말로써 든, 그의 경우에는 음악으로든, 우리 삶에서 죽음에 대해 더 일찍 생각할수록 실수도 더 적게 하게 된다는 것은 그의 믿음이었다.

그가 많은 실수를 하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가끔은 죽음에 대해 그렇게 자주 생각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실수는 똑같이 저질렀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가끔은 정말로 죽음이야말로 그를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208


평온한 시절이라고 인생을 제대로 이해하고 마주하며 살아가는 이 얼마나 될까?  흔들리면 흔들리는 대로 살아도 인생을, 일생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이야기 하긴 힘들듯하다.  "늙어서 젊은 시절에는 가장 경멸했을 모습이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라는 글처럼 제대로 이해하고 살아가기 힘든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깊은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듯했던 <시대의 소음>.  조금은 어려웠지만 삶에 대해 깊이 있게 생각해보게 되었던 글이었다.



 그는 평생을 아이러니에 의지했다.  그는 아이러니가 일상적인 장소에서 태어났다고 상상했다.  우리가 삶이 이러할 것이라고 상상하거나 가정하거나 바라는 것과 실제 삶 사이의 간격에서, 그래서 아이러니는 자아와 영혼을 지켜주는 수단이 되고, 우리가 매일 숨 쉴 수 있게 해준다. /p248~249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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