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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치백 - 2023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이치카와 사오 지음, 양윤옥 옮김 / 허블 / 2023년 10월
평점 :
<Buddha>는 내 계정 이름이다.
29년 전부터 나는 열반에 들어갔다. 성장기에 미처 자라지 못한 근육으로 인해 심폐기능도 정상치의 산소 포화도를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 그렇게 동네 중학교 2학년 2반 교실 창가에서 몽롱하니 의식을 잃었을 때부터 줄곧.
길바닥을 내 발로 걷지 못한지도 이제 곧 30년째가 된다. _1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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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있고 건강이 없으면 매우 정결한 인생이 됩니다.
(중략) 정결한 인생을 자학하는 대신 쏟아낸, 얼핏 떠오른 희망 사항이 마음에 들어서 고정 트윗으로 쓰고 있다.
다시 태어난다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_50~51p.
중증 척추 장애인으로 하루 종일 침대와 책상을 오가며 살아가는 샤카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막대한 유산이 있음에도 성인 소설과 광고 기사들을 써서 돈을 벌어 전액 기부하는 삶을 살아간다. 동시에 트위터에 익명 계정으로 "다시 태어나면 고급 창부가 되고 싶다."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하고 싶다"등의 말들을 쏟아내기도 하는데, 어느 날 남성 간병인이 샤카의 익명 계정을 언급하며 경멸적인 태도를 보이게 되고 돈과 욕망에 솔직해진 이들은 계약을 맺게 된다. 살기 위해 파괴되어가는 몸이지만, 욕망하는 나 샤카의 이야기는 읽는 내내 온몸으로 부딪히며 혼란스럽고 아프지만 이상하게 매력적인 이야기다.
강렬한 책표지와 부제에 이끌려 구입해두고 2024년이 되어 읽었던 <헌치백>, hunchback 은 곱사등이, 척추장애인이라는 뜻인데 실제 이 책을 집필한 작가도 선천성 근세관성 근병증의 중증 장애인으로 인공호흡기와 전동휠체어등에 의지하며 생활하고 있으며, 태블릿으로 집필을 했다고 한다. 삐딱하지만 그래서 더 마음이 가는 주인공의 이야기는 어쩌면 직접 경험하고 생각해왔던 일이기에 생생하게 튀어나올 것만 같은 이야기는 쉽게 읽히지만 장애가 있는 이들의 삶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게 된다. 가볍지 않은 이야기지만, 페이지가 잘 넘어가는 만큼 가독성 있게 읽히며 문장 또한 간결하면서도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를 명확하게 짚어가고 있다.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 중증 장애를 가진 작가는 비장애 여성처럼 임신과 중절을 꼭 해보고 싶다는 주인공의 고백 앞에 서성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만, 보이지 않는 존재로 살아가는 사람의 이야기, '중증 장애인'을 일상에서 마주치기란 쉽지 않은데 그들은 모두 어디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이야기들이 조금 더 많이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다. 그래서 어색하지 않고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께가 3,4센티미터나 되는 책을 양손으로 잡고 집중해야 하는 독서는 다른 어떤 행위보다 등뼈에 부하가 많이 걸리는 일이다. 나는 종이책을 증오한다. '눈이 보이고, 책을 들 수 있고, 책장을 넘길 수 있고, 독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고, 서점에 자유롭게 사러 다닐 수 있어야 한다'라는 다섯 가지의 건강성을 요구하는 독서 문화의 마치스모를 증오한다. 그 특권성을 깨닫지 못하는 이른바 '서책 애호가'들의 무지한 오만함을 증오한다. _27~38p.
잘못 인쇄된 설계도밖에 참조할 수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 그 친구들처럼 될 수 있을까. 그 친구들 정도의 수준이면 된다. 아기가 생기고, 지우고, 헤어지고, 다시 합체하고, 생기고, 낳고, 헤어지고, 다시 합체하고, 낳고·····그런 인생의 흉내만이라도 좋다. 나는 그 친구들의 등 뒤를 따라가고 싶었다. 낳는 건 못하더라도 지우는 것이나마 따라가고 싶었다. _39p.
간병인이 옆에서 책장을 넘겨주지 않으면 읽을 수 없는 종이책의 불편함을 그녀는 열심히 호소했다. '종이 냄새가', '책장을 넘기는 감촉이', '왼손에서 점점 줄어드는 남은 페이지의 긴장감이'라고 문화적 향기 넘치는 표현을 줄줄 내비치기만 하면 되는 비장애인은 아무 근심 걱정이 없어서 얼마나 좋으실까. _46p.
살아갈수록 내 몸은 비뚤어지고 파괴되어간다. 죽음을 향해 파괴되어 가는 게 아니다. 살기 위해 파괴되고 살아낸 시간의 증거로서 파괴되어 간다. 그런 점이 비장애인이 걸리는 위중한 불치병과는 결정적으로 다르고, 다소의 시간 차가 있을 뿐 모두가 동일한 방식으로 파괴되어 가는 비장애인의 노화와도 다르다. _61p.
나와 비슷한 근 질환으로 자리보전 중인 옆방 여성은 침대 위 이동식 변기에 볼일을 보면 주방 근처에서 대기 중인 간병인에게 손뼉으로 신호를 보내 뒤처리를 부탁한다. 세상 사람들은 얼굴을 찌푸리고 고개를 돌리며 말할 것이다.
"나라면 절대 못 견뎌. 나라면 죽음을 선택할 거야"라고. 하지만 그건 잘못된 것이다. 옆방의 그녀처럼 살아가는 것, 그것에야말로 인간의 존엄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_9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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