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건너기 소설의 첫 만남 30
천선란 지음, 리툰 그림 / 창비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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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을건너기 #도서협찬

#천선란 #창비

-진짜 쉽지 않다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

(중략)

어린 나를 마주하는 건 살면서 느껴 본 적 없는 낯선 감정이었다. 설명할 단어가 없어 표현할 수도 없는. 세게 묶은 양 갈래머리 탓에 울긋불긋한 두피, 통통하게 오른 젖살과 희미하게 자리 잡혀 있는 쌍꺼풀. 뭉툭하고 넓은 콧방울, 볼살에 밀려 더욱 가냘파 보이는 입술과 왼쪽 볼의 점. 그리고 공효를 바라보는 뾰로통한 표정까지. 그건 어린 공효였다. _15~16p.

_

모두가 각자 품고 있는 그 노을을, 무사히 건너 어른이 되기를 바랍니다. _작가의 말

우주비행사 '공효'가 자신의 무의식 세계로 들어가 외롭고 힘들었던 그 시절의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줘야 할까?라는 고민은 '어린 공효'를 만나며 잊고 있던 상처들을 떠올리게 된다. 어쩌면 이 소설은 아이들보다 성인에게 더 필요한 소설일지도 모르겠다. 어른이 되었지만 내면에 남아있는 '상처 입은 어린 나'를 제대로 마주하고 안아 주기까지의 과정은 나의 내면도 들여다보게 된다. 짧지만 그래서 좋았고, 몇 번이고 넘겨보았던 소설.

동화에서 소설로 가는 징검다리 창비의 '소설 첫 만남'시리즈. 동화를 읽다가 글자가 많은 소설로 넘어가기 쉽지 않은 아이들이 많다. 그림책 동화책을 읽다가 활자가 많아지는 책을 읽기 시작하며 흥미를 잃기도 하고, 어려워하는 걸 보기도 했다. 아이들의 관심 가질만한 내용과 적당한 그림, 무엇보다 동화책을 읽는 것 같지만, 책장을 덮고 나면 작은 한 권의 소설을 완독한 기분이 들게 한다. 천선란 작가의 <노을 건너기>는 소설 첫 만남 30번째 소설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라툰의 그림이 소설의 사이에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어 무거운 느낌을 주지 않아 성인도 가볍게 읽기 좋은 소설로 추천하고 싶다. (출간된 모든 소설이 궁금해지는 시리즈)

노을이 침범해 붉게 변한 집에 홀로 있는 것을, 어린 공효는 참 싫어했다. 아득히 멀어진 기억이지만 그 감정을 완전히 잊은 것은 아니었다. 공효는 어린 공효가 노을을 바라보며 먹었던 불량 식품 사탕의 맛을 느꼈다. _9~11p.

어린 공효는 몰랐겠지만 공효는 안다. 무엇을 원했던 건지. 왜 그때마다 분노에 가까운 화가 치밀어 올랐는지.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의 외로움을 보았던 거다. 그게 외로운 사람이 짓는 표정과 정적이라는 걸 모른 채로 그 마음의 중력을 온몸으로 받아 버린 거지. 소리를 질고 싶었던 건 정신을 잃지 않기 위해서였으리라. 살기 위해 어린 공효의 몸이 발악했던 거다. _35~36p.

"내가 밉지 않아? 나는 여기서 너를 엄청 괴롭히는데."

하지만 어린 공효의 말대로, 어린 공효가 없다면 공효는 바람에 날아갈 것이다. 모든 선택의 기준에 어린 공효가 있었다. 깊이 잠수하며 숨을 힘껏 참은 것도, 무중력 공간에서 기뻤던 것도, 출구 없는 우주로 나아가고 싶었던 것도, 좁은 복도에 서서 하늘을 노려보던 어린 공효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나는 너를 좋아해. 공효야.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너를 너무 좋아한단다. _65~66p.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 #소설추천 #소설첫만남 #book

창비에서 책을 제공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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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 미치고 반은 행복했으면
강혜정 저자 / 달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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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은미치고반은행복했으면 #도서협찬

#강혜정 #독파 10/1~15

나의 일탈은 '이탈'을 지향했다. 지극히 혼자만의 것도 아니었고 바르지도 않았고 예의를 벗어나기도 했지만 적잖이 항생제 같은 녀석이었다. 습관처럼 기록하고, 공유가 낙이며, 저장 용량도 넘쳐나는 이 현실에선 예전만큼 쉬운 일이 아니지만 나는 이런 괴짜스러운 일탈이 여전히 고프다. _51p.

_

나는 너를 싫어하는 것 같아요.

나는 너를 미워하나 봐요.

그래서 나는 네가 외로워 보여요.

그렇기 때문에 나는 너를 내버려 둘 수가 없어요.

(중략)

나는 오늘도 너를 봤는데 못 본 척하고 있군요.

내일도 너와 내가 있을까요?

아는 게 너무 없네요, 나는. _82p.

책의 제목에 끌려 선택했고 이후 저자가 배우 '강혜정'임을 알고 읽게 됐던 <반은 미치고 반은 행복했으면>. 책을 다 읽고 나서야 저자의 프로필을 읽어보았다. 배우가 아닌 한 사람으로 각 잡고 앉아 원고를 써야지! 하고 쓴 글이 아닌 생각날 때마다 핸드폰으로 써 내려간 글 이라고 한다. 자신의 내밀한 기억, 정체 모를 불안으로 서성였던 젊은 날과 세상과 단절되었던 코로나19를 지나오며 느꼈던 감정들을 그도 느끼고 나와 비슷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구나, 라는 생각에 더 깊이 문장을 곱씹으며 읽어보게 되기도 했다. 나를 들여다보고, 내 주변의 삶과 함께 살아가며 그 시간들을 곰곰히, 때론 조금은 까칠하게 보며 나만의 글을 쓸 수 있다는건 참 멋진일이 아닐까? 그래서인지 강헤정의 글과 사진은 에세이라기보다 조금 길게 쓰인 '시' 같았으며, 책표지 그대로의 느낌이었던 책이다.

"지금까지 너는 어떤 에너지로 발전한 것 같아?"

누군가로부터 받은 질문이었다.

나는 어떤 에너지로 살지?

나는 무엇에 가장 동요하는 걸까?

무엇이 나를 이끄는 성장 동력일까?

나는 어떤 사람이지? _33p.

그런 날이 있습니다.

당장에 결과물이 있어야 할 듯 어깨가 무거운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날.

(중략)

그냥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그냥 아무 존재도 아니었으면 하는 날.

그런 날이 있습니다. _77~78p.

꽃가루가 이목구비를 괴롭히고, 더위가 숨통을 틀어막고, 존재감 없이 짧은 추락 끝에 썰렁하게 비워진 계절. 그 겨울.

이 모든 것들이 가히 희망적이다. 시야가 트이고 게으를 여유가 생기고 불필요한 말이 일상을 훼손하지 않고 비워진, 감춰진, 밀폐된 겨울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134p.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 혼자만의 망상과 공상을 오가며 떠올리는 것에 점점 한계를 느끼고 있다. 그렇지만 사람들을 만나는 게 언제부턴가 좀 힘들어졌다. 생각을 채우려 나갔다 혼란만 리필해오는 건 아닐는지. 역시나 마음이 생각을 튕겨내는 것을 보니 아직은 꾹 다문 속을 다 열지 못한 듯하다. _ 179p.

털어내고 싶은 것들이 있는 만큼 먼지가 날리는 거니까. 이 글에 담아 털털 털어버리고 싶은 것들이 세상에 먼지처럼 날리는 때에 분명 나는 소란스런 재채기를 해댈 것이다. _263p.

#독파앰배서더3기 #완독챌린지독파 #난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에세이 #에세이추천 #book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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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모모모 - 2021 볼로냐 라가치상 수상작 그림책향 2
밤코 지음 / 향출판사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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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모모모

내기 내기 내기

벼 피 벼 피 벼 피

시작 두 페이지부터 피식 웃음이 나기 시작한다. 모를 심고, 벼가 자라며 피도 자라고, 바람에 넘어지기도 하고, 황금빛으로 익어 벼를 베고 탈곡을 거친다. 새도 먹고, 여물을 만들어 소도 먹이고 마침내 쌀이 되어 밥상에 오르기 까지의 과정을 유쾌하게 그리고 있다. 문장으로 된 글이 하나도 없다가 맨 마지막에서야 '잘 먹겠습니다' 이 한 문장을 위해서 이 책을 읽었구나! 하는 뿌듯함까지 몰려오는 그림책이라니. 벼의 한 해 살이를 그린 <모모모모모>는 아이들과 함께 읽어도 좋겠지만 역시나 어른에게 추천하고 싶은 그림책이기도 하다. 몇 페이지 안되는 그림책을 넘기며 마음의 안정과 웃음을 줄 수 있는 즐거운 책이라면 몇 권쯤은 나를 위한 선물로 소장해도 좋을 듯. 잠들기 전 읽는 책으로 머리맡에 살포시!

#모모모모모 #밤코 #볼로냐라가치상 #그림책 #밤코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그림책향 #그림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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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머리 그림책향 26
밤코 지음 / 향출판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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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많아도 걱정

너무 없어도 걱정!

뽀글뽀글 걱정!

찌글찌글 걱정!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크고 작은 사소한 걱정거리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현대인.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도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며 편히 잠들지 못하는 날이면 이 그림책을 꺼내들어 찬찬히 넘겨보게 된다. 저자는 머리카락 때문에 생긴 문제를 유쾌하게 풀어가며, 우리가 하는 모든 걱정도 재미있게 풀어갈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으로 집필했다고 한다.

넓은 판형에 시원시원한 그림과 짧은 문장은 페이지를 넘기며 마음의 안정이 찾아드는 기분이 들게도 한다. 걱정을 해결하는 비법이 따로 있을까? 무엇이든 가만히 있는다고 해별되진 않을 것이다. 스스로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내어 행동하다 보면 엉킨 실타래 같은 걱정도 술술 풀리지 않을까? 날마다 크고 작은 걱정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들에게 더 필요한 그림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잠들기 전 읽는 책으로 추천!)

#걱정머리 #밤코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그림책 #그림책향 #그림책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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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열정 (무선) -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9
아니 에르노 지음, 최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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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열정 #아니에르노

#독파 10/1~10/7

나는 내가 기다리는 사람 말고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자동차가 문 앞에 와서 멈추는 소리, 자동차 문이 닫히는 소리, 문지방을 넘는 그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는 순간이 오면 나는 항상 온 신경이 곤두서면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로잡히곤 했다. _1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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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람이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지금은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여자가 겪은 일인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지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 사람 덕분에 나는 남들과 나를 구분시켜주는 어떤 한계 가까이에, 어쩌면 그 한계를 뛰어넘는 곳까지 접근할 수 있었다. 나는 내 온몸으로 남들과는 다르게 시간을 헤아리며 살았다. 나는 한 사람이 어떤 일에 대해 얼마만큼 솔직하게 말할 수 있는지도 알게 되었다. 숭고하고 치명적이기까지 한 욕망, 위엄 따위는 없는 부재, 다른 사람들이 그랬다면 무분별하다고 생각했을 신념과 행동, 나는 이 모든 것들을 스스럼없이 행했다. 그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세상과 더욱 굳게 맺어주었다. _66p.

기다림으로 시작하는 글은, 그녀가 기다리는 사람이 가족이 있는 유부남이며 그 사람이 연락하고 찾아올 때만 그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야기는 진행형이 아닌 헤어지고 난 후 지난 시간들을 되짚으며 폭풍과도 같았던 열정적인 사랑을 이야기한다. 온통 한 사람으로 가득한 삶, 그만을 기다리는 시간들, 만남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그의 전화만 기다리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반복되는 이야기를 읽으며 '어!! 나도 이랬었잖아.'라고 공감할지도 모르겠다. 강렬하고 생소한 두려움은 사실적인 서술 방식에 글의 밀도를 더욱 깊이 있게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사랑에 빠진 여자의 심리를 진득하고도 깊이 있게 표현한 <단순한 열정>은 짧은 글임에도 자신의 감정에 충실한 한 여자의 독백은 그 예리한 표현과 문장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나는 나를 관통하여 지나가는 시간 속에 살고 있을 뿐이었다. _17p.

날이 밝아도 일어나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런 계획이 없는 무의미한 하루가 내 앞에 버티고 있었다. 시간은 더 이상 나를 의미 있는 곳으로 이끌어주지 못했다. 단지 나를 늙게 할 뿐이었다. _47p.

나는 하루하루를 시간을 헤아리며 지냈다. '그 사람이 떠난 지 이 주일째야. 이제 다섯 주가 지났구나.' '작년 오늘에는 내가 거기 있었지. 나는 이러이러한 일들을 했어.' (중략) 나는 특별할 것도 없었던 그 당시의 순간들을 돌이켜보았다. 소르본 대학의 자료실에 들르고, 볼테르 거리를 거닐고, 베네통에서 스커트를 입어보던 그때를. 그렇게 과거를 되새기다 보니, 왜 한 방에서 다른 방으로 옮겨가듯 지금 현재에서 그 시절 그 순간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것인지 의문이 생겼다. _50p.

살아 있는 텍스트였던 그것들은 결국은 찌꺼기와 작은 흔적들이 되어버릴 것이다. 언젠가 그 사람도 다른 사람들처럼 내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어버리겠지. _59p.

#독파앰배서더3기 #완독챌린지독파 #문학동네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책 #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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