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남해에서 유럽을 만나는 중입니다
어린왕자 지음 / 뚱따에이전시 / 2025년 9월
평점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유럽은 누구나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어 하는 곳이다. 그러나 경제적이거나 시간적인 여건 때문에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쉽게 발길을 옮기지 못하는, 그리움과 동경의 여행지로 남아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우리 곁에는 여권이나 비자 없이도 유럽의 감성을 만날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남해다.
남해는 한반도의 남쪽 끝, 남해안의 중심에 자리 잡은 섬으로, 크고 작은 산과 섬, 아름다운 해안선이 어우러진 수려한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다.
이곳에는 독일마을의 이국적인 풍경, 한국의 포지타노라 불리는 다랭이마을의 계단식 논밭, 프랑스 지베르니를 닮은 섬이정원, 스위스를 연상시키는 양떼목장 등 다양한 매력이 공존한다.
곳곳에 자리한 유럽풍 카페와 펜션까지 더해져, 남해는 마치 ‘작은 유럽’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남해에서 유럽을 만나는 중입니다’ 이 책은 이러한 남해의 특별한 매력을 한 권의 책에 담아낸 작품이다. 저자는 남해군청에서 20여 년간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어린 시절 ‘먼나라 이웃나라’를 통해 처음 유럽의 세계에 매료되었다. 그는 이후 대학에서 유럽학을 전공하고, 어학연수와 배낭여행을 통해 유럽의 다양한 문화를 직접 체험했다. 그렇게 마음속에 품어온 유럽의 이미지를, 남해군 공무원 생활을 하며 이 지역에서 다시금 현실로 되살려낸 것이다.
책은 저자의 유년기 추억, 유럽 유학과 여행 경험, 그리고 공직생활을 담담히 풀어내며, 그가 왜 남해를 ‘두 번째 유럽’으로 부르게 되었는지를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저자는 자신이 경험했던 여러 유럽의 도시와 문화를 남해의 풍경과 교차시킨다.
다랭이마을에서는 이탈리아 아말피 해안의 포지타노를 떠올리고, 섬이정원에서는 프랑스 지베르니의 모네 정원을, 독일마을에서는 독일의 로텐부르크의 거리를 떠오르게 한다. 남해의 해풍에 실린 맥주 향과 붉은 지붕의 건물들은, 여권 없이 떠나는 유럽 여행을 가능하게 만든다.
특히 흥미로운 점은 이 책이 단순히 풍경의 닮음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는 유럽의 문화와 남해의 삶 속에서 ‘삶의 태도’의 닮음을 발견한다.
유럽 사람들처럼 느긋하게 걷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며, 자신만의 속도로 살아가는 방식을 남해에서 실천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단순한 여행담이 아니라 ‘삶의 철학’으로 다가온다.
책 속 문장들은 마치 한 편의 풍경화 같다. 사진 한 장 없어도 남해의 바다, 돌담길, 흰 벽의 유럽풍 마을이 눈앞에 그려진다. 저자의 세심한 관찰력과 따뜻한 감성이 만들어낸 문장들은 읽는 이의 마음을 차분하게 적신다. 또한, 각 장마다 엮여 있는 유럽의 도시와 문화 이야기는 단순한 여행 정보가 아니라, 저자의 인생 경험과 감정이 녹아 있어 더욱 공감이 간다.
무엇보다 이 책은 ‘떠남’보다 ‘머묾’의 가치를 일깨운다. 젊은 시절에는 멀리 떠나야 진짜 여행이라고 믿었지만, 진짜 여행은 ‘지금 이곳’에서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이라는 것을. 남해의 석양, 바람, 골목의 풍경 속에서 그는 다시 유럽을, 그리고 자신을 만난다.
책을 덮으며 마음 한켠에 잔잔한 여운이 남는다. ‘남해에서 유럽을 만나는 중입니다’는 결국 “일상 속에서 낯선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멀리 떠나지 않아도, 마음의 문을 열면 언제든 새로운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깨달음. 언젠가 남해의 독일마을 언덕에 앉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이 책의 문장을 다시 떠올리고 싶다. 여행이란 결국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시선이자, 자신을 이해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이 책이 조용히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