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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변명 - 진리를 위해 죽다 ㅣ 주니어 클래식 2
안광복 풀어씀 / 사계절 / 2004년 3월
평점 :
일반적으로 <고전>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딱딱하다', '어렵다', '두껍다'라는 생각이 들게 된다. 게다가 가장 딱딱한 '철학' 고전이라니... 솔직히 이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 벌써부터 언제 다 읽을까라는 한숨부터 내쉬게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전혀 딱딱하고 두꺼운 책이 아니다. 오히려 230쪽에 불과한 웬만한 시집 두께에 불과하고 안에 쓰인 단어들 또한 풀어쓴 안광복씨의 말을 빌리자면 '중학교 3학년' 수준의 어휘에 불과하다. 오히려 이렇게 양이 적고 단어가 쉬우니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빈약하지 않을까라는 걱정이 앞서게 되었다. 게다가 딱딱하고 어려운 '철학'의 고전인데 이렇게 양이 적고 이해하기 쉬울 리가 없지 않은가?
원래 이 책은 내가 활동하고 있는 <독서 아카데미>에서 첫번째로 읽을 책으로 선정할 책이다. 처음부터 어려운 책을 선택하면 사람이 질려서 참가 안 할 것이 명약관화하므로 나름 <평범한>, 혹은 <평범하게 보이는> 이 책을 선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 얇은(?) 책에는 굉장히 다양한 생각한 것들이 존재한다. 특히 정의로움의 의미, 죽음과 인간다운 삶, 민주주의의 이상과 허상, 비판적 지식인의 삶에 대해 수많은 생각거리와 가르침이 담겨져 있는 좋은 책이다.
일단 가장 먼저 아테네 민주주의에 대한 물음을 소크라테스는 던지고 있다. 옮긴이가 서술한대로 '국민의 뜻은 올바르며 다수의 의견은 정의롭다'는 믿음이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신념이지만 중우정치에 빠져 이 신념이 항상 옳지는 못하다는 것이 소크라테스는 불만이었다. 게다가 당시 아테네 정세가 30인 참주 독재 이후 일어난 쿠테타의 주역과 소크라테스가 가까운 관계에 있었으므로 스크라테스가 고발된 근본적인 원인이 소크라테스가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라고 선동하고 있지 않은지 걱정한 '멜레토스 일당'이 소크라테스를 고발한 것이라고 옮긴이는 생각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지배체제'에 대한 도전은 강력한 응징을 받아 왔다. 권력을 쥐고 있는 기득자들은 자신의 자리를 보전해주는 체제나 이데올로기를 흔드는 일에는 단호한 모습을 보여왔다. 우리나라의 지배 관념인 민족주의, 반공이데올로기에 대한 도전은 이른바 '막걸리 보안법'으로 풍자되는 '국가 보안법'에 의해 강력히 제제를 받았으며 50년도 지나지 않은 과거에 '법'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죄없는 젊은이를 죽인 '법살'이 자행되었었다. 이를 보면 소크라테스의 재판이 그대로 2000년 정도 후에 나름 민주국가이자 법치국가라는 '대한민국'에서 그래도 재생된 것이다. 하지만 당시 '아테네'와 '대한민국'이 다른 점은 대한민국은 대한민국이란 체제와 국가를 반대하면 그것이 바로 죄목이 되어 사람을 죽였지만 아테네는 최소한 이런 논의를 한 것만으로는 사람을 고발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소크라테스의 죄목으로 '민주주의 전복'이라고 하지 않고 '젊은이를 타락시키고 국가가 인정한 신을 믿지 않는다'라는 괴상한 죄목으로 법정에 세울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독재정치보다 우월한 정치체제인가는 여전히 물음표로 남는다. 과거 <은하영웅전설>이라는 SF소설을 보면 그 책의 글쓴이도 나름 이런 고민을 했음을 알 수 있는데 아직도 기억나는 것이 주인공 <양 웬리>가 아버지에게 '왜 사람들은 황제의 등극을 보고 있었을까요?'라고 질문하자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고 책임지는 것을 싫어한다. 만약 자신에게 자유가 주어져 선택하여 그 선택이 잘못되었을 경우 모든 비난은 자신이 지어야하지만 누군가가 대신 선택해 줄 경우 그 사람만 비난하면 되는 것이기 때문에 황제의 등극을 굉장히 반기었다'라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이와 같이 사람은 어떤 문제에 대해 책임지는 것을 싫어하고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서 선거 등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럴 때 생각나는 것이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이다.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는 현존하는 모든 정부는 왕정, 귀족정, 민주정의 형태 중 하나에 해당하며 각 형태는 나름대로의 타락한 형태를 지닌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수정한 '키케로'는 이상적인 국가는 위 세가지 정치체제가 혼합된 혼합정체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실제로는 '민주정'이 세 가지 형태 중 최악의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는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 이후 혼란한 로마 정치나 키케로 자신 또한 귀족 출신이라는 것을 감안했을 때 당연한 주장이었다. 이에 따르면 당시 아테네의 민주주의는 점점 타락한 형태로 변하고 있는 듯 하다. 결국 후에 폴리스 국가로서의 끝을 맞이하고 귀족정과 왕정의 단계를 거처서 다시 현재의 민주정으로 바뀌었지만 과연 '폴리비오스의 정체순환론'이 잘 맞아 들어갈지는 좀 더 지켜볼 문제일 듯 하다.
이 외에 90년대에 들어서 이런 '중의정치'에 대한 대안으로 이른바 <심의민주주의>라는 것이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즉, 어떤 의사결정에 앞서서 토론회나 청문회릍 통해 이런 민주주의의 단점을 보완해 나가자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런 심의민주주의는 인터넷 문명의 발달로 인해 좀 더 현실에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과거에는 토론회나 국회에서 청문회를 하여도 TV에서 방영해주지 않으면 좀처럼 알 수 없었으나 얼마전 <쇠고기 청문회>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다음이나 네이버 등을 통해서 집 안에서 각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심의민주주의에도 단점이 존재한다. 토론에 참석하는 사람들이 개인적인 이익보다는 공익을 우선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와 다른 사람이 보고 있는 입장에서 인기에 영합하는 주장을 배제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결국 이런 문제를 전부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시민 의식>의 고양 밖에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소크라테스는 '약한 논증을 강하게 한다'는 고소 내용을 논박한다. 이런 스크라테스에 대한 비판은 현재 우리나라의 변호사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변호사의 경우 저런 것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형법은 증거보전 등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룰 수 있는 '검사'를 강자로 생각하고 상대적 약자인 '피고인'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인은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보다는 피고인을 위해 변호하는 것을 가정하고 있다. 이런 '검사'와 '변호인'의 논쟁 속에서 <실체적 진실>은 드러나기 마련이고정의 구현이라는 형법의 이상과 피고인 보호라는 인권은 서로 조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에서 결론으로 치달을 수록 '정의로움'이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하게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을 위해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죽음을 당당하게 맞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아직 정의가 무엇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조만간에 거의 모든 대학교 정치외교학과에서 교재로 사용하는 <롤스>의 '정의론'을 통해 나의 생각을 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상을 위해 죽음을 당당하게 맞이하는 소크라테스의 모습은 많은 교훈을 주지만 나는 조금 생각이 틀리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좋다'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조금이라도 오래 살아남아서 <등애>의 역할에 충실하는 것이 오히려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자신의 이상과 신념이 진실이라고 어떻게 단언하겠는가? 오히려 이런 이상과 신념을 주입하는 사람들은 순교자가 아닌 경우가 많다. 예컨데 왜 후세인은 순교자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끝까지 구구한 생명을 보전하려고 애썼을까? 그리고 자살폭탄테러를 지시하는 사람들은 왜 자신이 직접 뛰어들지 않는가? 오히려 지도자급은 뒤에서 물러서서 자신의 생명을 보전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다시 한번 예를 들지만 <은하영웅전설>에서도 민주주의를 구하기 위해 많은 목숨이 사라져도 지도자인 트류니히트는 오히려 제국편에 붙어서 부귀영화를 누리지 않았던가? 이런 모습은 동맹군 라프의 약혼녀이자 반전론자인 제시카가 트류니히트의 선거 유세장에서 한 대화에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결국 나의 생각은 자신의 목숨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이 책은 '아무도 읽지 않는' <고전>이지만 양도 적고 쉽게 읽히는 책이고 비록 얇은 책이지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게다가 옮긴이가 깔끔하게 번역하고 곳곳에 해설을 해주고 있어서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