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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혜옹주 - 조선의 마지막 황녀
권비영 지음 / 다산책방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나는 낙선재에서 오래오래 살고 싶어요. 전하, 비전하 보고싶습니다. 대한민국 우리나라."
대한민국 우리나라라는 말이 이렇게 크게 와 닿았던 적이 있었던가? 내 스스로 내 물음에 대답하기가 민망할정도다. 내 나라 대한민국에 대한 애국심(?) 혹은 애착심(?)이라는 것이 내게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는 사실 이책을 통해 처음 알게되었을 정도로, 대한민국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나에겐 말이다. 학교다닐때 시험본다고 국사를 달달 외웠던 그 기억 속에 일제 강점기가 남아있고, 조선민족말살정책이 남아있고, 이토히로부미의 하얼빈 사살이, 조선총독부의 지배와 독립운동이 고스란이 남아 있을뿐이다.
처음 덕혜옹주라는 책을 받아들고서는, 그 첫장을 넘기는게 왜이렇게 힘이 들었는지 모르겠다. 펼쳐보지도 않은 책 속에 담겨있을 무거운 내용이 나를 짓눌렀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잊고 지냈던, 내 나라의 역사를,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를 모르고 있었다는 것에 대한 죄책감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첫장을 넘기고서는 4시간을 내리 읽어 내려가는 동안 책장에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이 책이 얼마나 소설적요소를 포함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조선의 마지막 황녀로서, 여자로서의 덕혜 옹주의 삶은 정말 비극적이었고, 그 책을 읽고 있는 내가 대신 아파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정도 였다. 너무나도 사실적이었고, 망해가는 조선의 비극을 온전히 몸으로 다 받아내야만했던 덕혜옹주. 그녀에게서 삶이란 어떤 의미였을까? 조선의 옹주로써 지켜야 했던 마지막 자존심, 내 나라 대한 민국에 대한 마지막 그 자존심을 자신을 잃어가면서도 지켜내는 모습은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다.
일본의 내정간섭으로 옹주로 인정받지도 못하고 있던 그녀를, 일본 총독 데라우치로 부터 인정받기 위해 그앞에서 춤까지 추는 고종의 모습. 그의 모습은 자식을 사랑하는 아비의 마음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고, 아무것도 모르는 덕혜옹주는 풍전등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조선의 마지막 황녀였지만, 일본인들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일본 가요를 배우고, 기모노를 입는 덕혜옹주. 그렇지만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을, 조선의 국민을 보호하고 아껴야한다는 그 사실만은 잊지 않았다. 일본순사에 의해 위안부로 끌려갈뻔한 복순을 구해주는 모습만 봐도 어린 나이에 정신만은 얼마나 올곧았는지 알수 있었다.
일본인과 결혼하게 될것을 걱정해 궁내부 대신 김황진의 조카 김장한과의 혼인을 추진하게 되지만 급작스럽게 한상학이 궁내부를 장악하게 되고, 덕혜 옹주는 오빠와 함께 일본으로 옮겨가게 되고, 결국은 거기서 대마도 번주인 소 다케유키와 결혼을 하게 된다. 그녀의 결혼을 막기위해 구국청년단들이 노력을 하지만 결국 막지는 못하는데, 그때 부터 그녀의 불행은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원하지 않는 결혼, 그것도 덕혜옹주를 일본인의 처로, 일본인으로 살게 하기 위해 돈을 줘 가며 떠맡기다시피 한 결혼이었다. 처음 얼마간은 남편 소 다케유키가 덕혜옹주를 이해하려고도 많이 노력했지만, 그녀로써는 일본인 남편은 물론, 자신의 조국인 조선을 잊을수가 없어 매일 다투었다. 하지만 정혜를 임신하게 되고, 조금은 나아지는 듯 보였다. 정혜를 통해서 어린 자신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정혜와 함께 조선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정작 정혜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엄마인 덕혜옹주보다는 아빠인 소 다케유키를 따르게 되고, 자신은 조선인이 아니라 일본인이라고, 학교에서 조선인 엄마때문에 놀림을 받는다고, 자신은 정혜가 아니라 마사에라고 말한다.
결국 덕혜 옹주는 딸인 정혜로부터 버림받고 되고, 일본의 패망과 함께 망해가는 집안으로 인해 남편 소 다케유키로부터도 버림받고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만다. 총명하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가 일본의 정신병원에 감금되기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보냈을까, 단지 조선을 사랑했고, 조선에 머무르고 싶었을 뿐인데....
구국청년단이자 자신의 첫 정혼자인 박무영, 일본순사에게 잡혀가려고 했던 덕순, 결국 이 둘에 의해 덕혜 옹주는 내나라 조선으로 돌아오게 된다. 박무영과 덕순 역시 소설을 읽는 내내 어쩌면 한 여자를 위해서, 오롯이 조선의 마지막 황녀를 위해서 자신의 모든것을 바칠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정도 그들의 삶은 눈물겨웠고, 파란만장했다. 특히나, 정신병원에서 덕혜를 빼내오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는 덕순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 한구석이 짠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토록 돌아오고싶었고, 그토록 보고싶었던 조선에 와서도 마음편히, 오래 오래 살지 못하고 결국은 생을 마감해야했던,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 옹주. 그녀의 삶은 우리 국민 모두에게 잊혀진 기억이었고,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아픔의 역사 그 자체였는지도 모른다. 이 소설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다시금 떠올리게 되고, 우리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옹주의 불운한 삶을 다시금 되짚어 보지 않을수 없었다. 조금만 더 우리 조선에, 대한 민국에 힘이 있었더라면, 조선의 마지막 황녀 덕혜를 그리 슬픈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을것을, 단지 조선을 너무나도 사랑했고, 자신의 딸을 사랑했을 뿐인데, 결국 그녀에게 내려진 것은 정신병동행. 너무 슬프지 않은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질수 있는 자유가 있다. 하지만 그 자유를 누리지 못했던 덕혜옹주의 삶은 살아도 사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것은 자신의 생을 조선에서, 그토록 원하던 낙선재에서 맞았다는 것일지도. 한 여자의 일생을, 그것도 너무나도 비참하고 슬펐던 여자의 일생은 정말이지 우리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을것만 같다.
2010년 1월에 만난 덕혜 옹주는 앞으로 꽤나 오랜시간 동안 잊을수 없을것만 같다. 덕혜옹주의 대한민국을 향한 사랑과,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지 않았나 싶다. 덕혜옹주, 그리고 수많은 애국지사들에게 정말 찬사를 보내고 싶다. 감사합니다. 주권국가 내나라, 대한 민국에서 자유를 누리며 살수 있게 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