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인생을 살아보고자 야심 차게 구입했던 고가의 종합비타민을 먹은 결과는 성공반 실패반이었다. 사람들 말대로 호랑이 힘이 솟구쳤다. 오후가 되어도 졸리지 않았고, 기력이 넘쳤다. 밤에도 졸리지 않았고 기력이 넘쳤다. 21시만 되면 바람이 다 빠져버린 풍선마냥 흐믈대며 침대에 눕는 거 말고는 할 수가 없었는데, 23시까지도 막 부풀려진 풍선마냥 탱탱했다. 나중에서야 안 사실은 그게 비타민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중인 하나인 불면증이었다는 것을 다른 부작용을 검색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이었다. 그 다른 부작용은 변비였다.

변비가 없고 장소불문 어디서나 잘 눈다는 걸 나름의 자부심(신체가 너무 후져서 이런 게 다 자부심이다)으로 사는 나인데 어느 날부터 1일1똥의 소중한 시간이 사라진 것이다. 기억을 거슬러 가보니 비타민 복용을 시작한 후부터였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더욱 치명적이었던 것은 불면증(? 하지만 이게 불면증이 맞나? 23시에 즐겁게 곯아떨어짐)으로 인한 에너지 과다 사용으로 체중까지 줄어들었다는 점이었다. 뭘 먹여도 체중과 신장이 늘어나지 않는 아기를 키우는 부모라면 내 심정이 어떤지 잘 알 것이다. 

비타민 복용을 중지하고 매일 사과 2개씩(또는 무화과) 먹고, 사과와 함께 먹을 동물복지 요거트를 구입했다. 이 요거트가 마트에 입점한 당시엔 너무 비싸서 캐셔가 가격을 찍고 "요거트가 정말 이 가격인가요?"하고 물어보기도 했다. 나는 "네, 맞아요. 이거 되게 좋아요."하고 대답했던 기억이 난다. 우유와 유제품을 먹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먹을 때마다 공장식 축산이 떠올라서 결국에는 멀리하게 되었다. 내 몸은 얼추 비타민을 복용하기 전으로 돌아왔다. 잠은 많이 자야 하고, 체중감소는 중지되었고, 변비도 어느 정도 해결이 되었다. 

사람은 타고난 몸대로 살아야 함을 다시 한번 깨닫고 나는 하루하루 나빠지지 않고 살아가고 있는 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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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평소 얼마나 생명을 존중하면서 살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아보고 싶다.


생명을 가진 인간 및 동물에게 책임감을 느껴서 단 돈 1원이라도 기부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공장식 축산으로 생산되는 질좋고 값싼 고기를 먹는 자신이 역겹다고 여겨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동물복지계란을 한 번이라도 구매해본 적이 있는지 묻고 싶다.

좋은 말 선한 말에는 반드시 책임과 희생이 전제되어야 한다.

책임도 지기 싫고 희생도 하지 않을 인간에게 선한 말을 할 자격이 주어질까?

그냥 지금처럼 자신이 못난 걸 인지하지도 못한 못난 사람으로 살아.

돼지를 돼지고기로 생각하고
소를 소고기로 생각하고
한 인간의 삶을 그저 경제성장의 주체로만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


회생 가능성이 없는 동물을 치료도 하지 않고 안락사도 하지 않는다면 그 동물이 겪어야 하는 죽음의 과정은 최악이다. 적어도 보호소라는 이름을 걸고 있다면 살리거나, 자비롭게 죽이거나 둘 중에 하나는 해야 한다. 

일부 부도덕한 보호소들이 이런 행위를 하는 이유는 보조금의 지급 방식과 관련이 있다. 보조금 지급 방식은 지자체의 방침에 따라 달라지는데, 이 중 '항목별 방식'은 포획, 보호, 사체 처리에 드는 비용을 각각 나누어 지급한다. 이 방식은 유기동물이 공고 기간 10일이 끝나기 전에 원 소유자에게 돌아가거나 폐사하면 실제 보호 기간에 대한 보조금만 지급한다. 그래서 항목별 보조금을 받는 어떤 보호소들은 자비로운 죽음이 절실한 상황에서도 안락사를 하지 앟고 열흘이 지나기를 기다린다. 물론 이 죽음을 자연사로 통계에 포함한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 / 하재영


이세상에 태어남이 불행과 고통 뿐이라면, 행복에 비해서 불행과 고통이 극심하게 많아서 삶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지옥 그 자체라면 제대된 사고를 하는 인간이라면 태아와 산모에게 필요한 유일한 것은 낙태술 말고는 없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당신은 어떤 천국에서 살길래 죽음보다 나쁜 삶이 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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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당찬 마음과 무관하게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예술을 사랑한 죄, 예술을 보기만 하거나 폄하하기만 하지 않고 굳이 꼭 내 손으로 직접 하고자 한 죄, 그것은 그대로 온오프라인 월세에 빈틈없이 반영되어 매달 국내외의 집주인 친구들을 쉴 틈 없이 부양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 이반지하>


얼마 전 동생이 내 집에 와서 며칠 지내다 갔다. 지내면서 하는 말이 내가 그르누이 같다고 했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출세작 <향수>의 그 그르누이 말이다! 풀이하자면 집에 생활의 흔적(더러움, 얼룩 등)이 없다는 것. 특히 화장실이 너무 깨끗하다. 물때가 없다고 신기하다고 했다. 동생은 지난번 방문 때도 내 화장실의 청결도에 감탄한 후 청소방법을 배워가서 얼마간은 화장실 청소를 열심히 했다고 한다. 참고로 물때는 물때 제거 스펀지로 살살살 문지른다. 스펀지는 다이소에서 구매함.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를 읽었다. 나의 생 자체가 그르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권의 에세이들을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정도의 밀도로 압축하면 이 책의 50페이지 정도나 될까 싶었다. 내가 현재까지 살아온 나의 에세이를 쓴다면 이 책의 첫 에피소드 '생존자' 정도의 무게나 밀도가 될 듯싶었다. 사실 내 유일은 성취는  생존밖에 없다. 


작업실과 집을 합치기로 한 이후로는 무조건 방이 2개인 집들을 보러 다녔다. 하지만 투룸이라고 해서 가보면 거실과 부엌과 현관이 합쳐진 곳을 방1로 치는 경우가 많았고, 그게 아니어도 보통 방 하나가 진짜 말도 안 도게 작아서, 이거 뭐 벽은 왜 쳐놨나 싶을 때가 많았다. 또 두 방 중 한 방의 상태가 매우 안 좋아서 작업이나 생활 중 어떤 것을 포기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도 비일비재했다. 비장한 예술가일 때는 작업실을 크고 햇빛이 잘 드는 방으로, 잠자는 방을 어둡고 벽이 삐뚤어진 방으로 정했다. 그러다 또, 아니 근데 인마 사람이 살고 봐야지 싶어질 때는 삶보다 중한 예술이 있냐고 나불대며 혼자 가구를 이리저리 옮겨 생활과 작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했다.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 / 이반지하>



인마 사람이 살고 봐야지 하는 생각으로 밥벌이를 놔버릴까 고민중인 나로서는 '부동산과 예술하고저'와 '예술하고자 한 죄'의 모든 에피소드들을 읽고 많이 심란해졌다. 나는 나 한 몸 먹여 살리는 것도 지치고 힘든데, 예술까지 먹여 살리는 삶이라는 것은 어떤 걸까?... 그건 아마도 육체적 정신적으로 둘 다 몹시 힘들겠지만, 적어도 나처럼 그르누이인 삶은 아닌 어떤 것일 것이다. 


예술을 하면 지겨울 틈은 없겠지, 적어도. 하지만 대신 주로는 불만족스럽고 우울할지도 몰라. 나처럼 자신의 모든 에너지와 재능을 오직 생존에 올인하면 그 생존이 어느 정도 윤택해졌을 때 죽음처럼 말기 암처럼 지겨움이 찾아와. 남은 생은 그 지겨움과 함께 해야 해. 나의 이런 기분을 위로해주는 유일한 예술은 영화 <패터슨>이다. <패터슨>덕에 하루하루 지겹더라도 지겨움 그 자체가 가치롭다라고 생각하면서 하루하루 즐기려고 애쓰는 중. 



 ps.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는 내가 여태껏 읽은 '내가 이렇게 살아왔다' 식의 에세이 최고 걸작이다. 캐럴라인 냅의 <명랑한 은둔자>도 좋지만 사실 동시대성이 느껴지지 않아서 내게 너무 먼 그대였다. 호프 자런의 <랩 걸>도 멀다, 나에겐, 좋긴 했지만. 더 멀리 가면 장 자크 루소의 <고독한 산책자의 명상>도 좋지만 화질이 엄청 낮은 에릭 로메르 영화를 17인치 모니터로 감상하는 기분이랄까.  좋은 건 알겠어 하지만 그 좋음을 감상하는 방법도 시대도 너무 차이가 난단 말이지. 하지만 <이웃집 퀴어 이반지하>는 영화 <기생충> 같다. 동시대성, 한국어, 4K, 봉준호처럼. 


내 책장에 나를 즐겁게 해준 좋은 책 1권이 더 추가되어서 기쁘다. 지겨운 나날 속의 어쩌다 찾아오는 즐거움이 되어 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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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진 저녁(겨울이라면 이미 밤이겠으나 여름은 저녁이 계속 이어지고) 이미 서편으로 넘어간 태양의 잔여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기 위해 자외선 차단제를 대충 바르고 아울렛에서 야심 차게 구매한 나이키 운동복으로 차려 입고(내가 방문한 날 매장은 여성 운동복만 추가 15% 할인 행사를 하고 있었지) 마지막으로 숨쉬기 편한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비장한 마음으로 집 앞 산책로로 나간다. 

내가 산책을 나가는 가장 큰 이유는 바람을 맞기 위해서이고(에어컨이 좋긴 하지만 에어컨의 차가운 인공 바람만으로는 한없이 부족) 그다음 이유는 땀 흘리고 나서 하는 샤워의 쾌감 때문이다. 덤으로 빠른 걸음으로 왕복 5km 하고 나면 PAI 지수가 쑥쑥 오르는데 이게 은근 긍정의 피드백으로 작용한다. 이번 건강 검진 문진표에 술은 마시지 않고 운동은 매일 하는 100점 문진표를 제출하고야 말리라!!! 


마스크 속에서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등줄기에서도 땀방울이 흘러내린다.

강바람이 분다.

매일 같은 자리에 같은 강아지와 견주가 앉아서 강물에 비친 도시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또 다른 벤치에는 최신 유행의 크롭티를 입은 20대가 어제와 마찬가지로 전화 통화를 하고 있다.

자전거 길에는 자전거가 드문드문하고

산책로에는 적당한 숫자의 사람들이 산책을 하고 있다. 


왜 태어났는지 태어났어야만 했는지 언제나 의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오늘 하루는 살아야 하는지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카뮈가 <페스트>에서 말한 페스트 퇴치법인 성실! 

하루 8시간 자고, 밥 3번 먹고, 운동하고, 씻고 딱 그것만 하면 된다.

나머지 시간은 버린다.

그 버려진 시간에 나는 주로 돈을 번다. 하지만 돈을 버는 것에는 성실하지 않다. 

그래서 가난하지만 그 가난조차도 나에겐 충분!

그러니 저리 좀 꺼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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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자 허지원 박사는 말의 힘을 강조하면서 긍정적인 생각을 하라고 했다. 일종의 위약효과 같은 논리로. 그래서 어느 날 아침, 일어나서 20만 구독자를 거느린 모 요가 유튜버의 아침 명상 영상을 봤다. 총 8분짜리 영상이었는데, 나는 3분을 버티지 못했다. 지금 이 순간 숨 쉬고 살아있는 것에 감사하세요, 오늘도 즐거울 것이다 라고 생각하세요 등등 그런 한 마디 한 마디가 너무나 오글거리고 부끄럽고 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나에게 위안이 되는 건 코로나 종말론이나 지구온난화 종말론 같은 거다. 비극을 통한 감정의 정화, 카타르시스를 그저 언어영역 공부하듯 관념적으로 생각했었는데 오래 살다 보니 카타르시스도 다 체험해보는구나 싶다. 공기 중의 탄소량이 너무 많아서 빙하가 돌이킬 수 없도록 녹아내라고 있다던가, 델타 변이, 람다 변이 어쩌고 하는 정체불명의 복붙 기사들을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11권 안티고네 읽듯 하고 있다. 그런 인류 멸종 관련 기사들을 읽고 있으면 불안이 싹 사라지고 마음이 한없이 편안해진다. 나만 그런가?


꿈을 거의 꾸지 않는데 이틀 연속으로 꿈을 꿨다. 꿈을 꾸면 꼭 포털에서 꿈해몽 블로그를 찾아본다. 이틀 연속 길몽이다. 첫날에 꾼 꿈은 재물 꿈이었다. 아, 회사 그만두지 말고 계속 출근하라는 말이구나로 받아들였다. 둘쨋 날 꿈은 출세 혹은 건강에 관한 꿈이었다. 아, 당분간은 계속 건강할 터이니 계속 출근하라는 말이구나로 받아들였다. 




문제 1. 2020 도쿄 올림픽은 다음 중 무슨 힘에 해당하는가?

1) 말의 힘   2) 비극의 힘  3) 꿈의 힘


문제 2. 2021년 출생아 수는 다음 중 무슨 힘에 해당하는가?

1) 말의 힘  2) 비극의 힘  3) 꿈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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