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지 않는 일이란 이와 같은 집요한 질문을 자신에게 던진 끝에 내린 주체적 선택일 가능성이 높다. 한때 그런 선택이 원천 봉쇄되던 시절이 있었다. 과거에는 자식이 없으면 안정된 노후를 기대할 수 없고, 친족집단이 없으면 사회적으로 취약한 상태에 몰렸으며 자신의 유한한 삶에 영생의 환상을 부여할 방법이 딱히 없었다. 그러한 시절에 자식이 없으리라는 것은 최대의 저주가 되었다. 

이제 국가가 과거 친족집단이 하던 역할을 대신 떠맡게 되었다. 전통보다는 개인의 동의 여부가 규범의 기초가 되었다. 자식의 성취가 아니라 자신의 성취가 인생의 성패를 결정짓게 되었다. 그 와중에 인구가 줄어도 세대 수는 꾸준히 늘어난다. 1인 가구가 증가했기 때문이다. 노후를 자식이 아니라 개인의 저축이나 사회보장제도가 책임지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제 최대의 저주는 자식이 없을 것이라는 예언이 아니라 도저히 감당 못 할 자식을 많이 두게 되리라는 예언이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2021년 출생아가 몇 명일까가 하는 게 나의 관심사 중 하나라서 검색을 하다가 유튜브에서 놀라운 댓글이 많은 영상을 보게 되었다. 

영상 주소 https://www.youtube.com/watch?v=mvAViXQlqek

댓글이 만 개가 넘어서 '아니 무슨 ytn 뉴스에 댓글이 이렇게 많담?' 하면서 호기심에 클릭을 했는데...

사상의 진화를 목격할 줄은 상상조차 하지 못했기에 심장이 두근두근 할 지경이었다. 그래도 자식은 있어야지, 그래도 결혼은 해야지 하던 인간들만 봐오다가 비록 웹상의 댓글일지언정,

 

- 애를 위해서 낳지 않는다, 태어나서 아이가 짊어져야 할 짐이 너무 많다, 내가 희생을 치르는 마지막이었으면 한다.

- 내 유전자를 물려받아 나처럼 힘든 것들을 겪을 아이와 그걸 지켜볼 나를 생각하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낳고 싶지 않다

- 나는 태어난김에 그러저럭 살지만, 이걸 태어날 아이에게 권한고 싶지 않다

- 애초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고통받지도 않았을텐데...

- 낳음당한 피해자 생산하지 말고, 그냥 내 대에서 유전자 소멸시키는 게 지구환경에도 좋다

- 낳으라는 사람들은 부부를 위해서 낳으라고 하지 태어날 자식을 위해서 낳으라고 하지 않는다.

- 뛰어놀아야 할 어린시절을 학원에서 12년 보내고 청춘 즐길 시간엔 군대, 취업준비하느라 10년 가까이 보내고 작은 아파트 하나가 안 구해져서 이리저리 치였던 삶을 아이한테도 또 살게 할까만은... 결과가 좋고 나쁘고를 떠나서 과정이 너무 고되고 끔찍해서 안되겠구나


이런 걸 읽으니 인류애가 밀려왔다. 그래도 다음 세대가 각성을 하고 있구나 하는 안도감. 



엄마는 부모가 다 죽고 난 뒤 남편도 자식도 없이 혼자 늙어갈 나를 생각하면 내가 너무 불쌍해서 잠이 안 온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엄마, 나는 엄마가 더 불쌍해, 아빠 같은 남자 만나서 고생만 하고 이혼도 못하고 평생 같이 사는 엄마가 더 불쌍해." 라고 답가를 보냈다. 그랬더니 엄마는 자기는 아빠 만나서 사는 게 좋다고 했다. 더 이상한 남편들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의 인생을 긍정하기 위해서 자신의 선택을 긍정하지. 그 긍정의 방법 중 가장 저열하고 손쉬운 게 나와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을 불쌍하게 여기고 깎아내리는 거야. 그래서 엄마는 엄마의 결혼을 긍정하기 위해서 나의 비혼을 불쌍하게 보는거지. 마찬가지로 나도 내 비혼을 긍정하기 위해서 엄마의 결혼을 불쌍하게 여기고 엄마의 남편을 하찮게 생각하는 거고. 난 사람들이 왜 타인 비하를 하는지 그 심리를 다 알고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으니까 엄마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거라면 맘껏 불쌍해 해. 뭐 불쌍한 딸이 되서 엄마의 인생을 합리화해줄 수 있다면 그 정도 효도는 할 수 있지." 라고 엄마가 다 이해하지 못할 말들을 늘어놓고야 말았다. 본인이 살기 위해서 결혼하고 자식을 낳지 않을 수 밖에 없었던 시대에 태어난 여자에게 왜 나를 낳았냐고 하는 것도 어리석다는 걸 이제는 깨달았다. 엄마는 자신이 살려고 나를 낳은 거고, 나 역시 내가 살려고 자식을 낳지 않는 거니까. (어떤 사람은 아빠는? 이라고 할 텐데, 나는 번식의 주체는 자궁이 있는 여자라고 보기에 남자가 과연 번식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의문이다. 남자는 번식의 한가지 요소일 수는 있느나 번식의 주체로 여자와 대등한 자격을 가질 수 없다고 본다.)


지금부터 내가 죽는 순간까지 인구가 증가할 일도 없을 것이고, 출생아가 증가할 일도 없을 것이다.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면 안락사도 합법화될 것이다. 나는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 일을 하다가 퇴직을 할 거고 퇴직 후에는 저축해 둔 돈으로  검소하게 살다가 괄약근이 제 기능을 못하게 되면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안락사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건강상태를 보면 과연 내게 안락사의 행운이 올까 싶다. 그전에 병사할지도...


나는 내가 받을 연금에 대한 일말의 기대도 없으며, 젊은이들이 노인복지를 줄이고 반드시 안락사법을 합법화 할거라고 200% 믿는다. 내가 내 노후를 위해서 믿는 것이 있다면 안락사이지 부동산이나 주식을 통한 노동없는 수입이 아니다. 내가 이런 심성이기 때문에 번식 자체에 큰 흥미가 없는 것은 아닐까? 나의 분신 하나를 더 만들어서 이 세상에서 누릴 수 있는 것을 최대한 누리겠다는 그런 욕망이 없다. 굳이 뭘 그렇게 애를 낳아서 애 키우는 행복을 맛보려고 하는건지... 정말 내 취향이 아니다.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박지원이 보기에 전쟁, 지진, 홍수, 판데믹, 호환, 마마보다 참담한 재앙이란 바로 담담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다. 다 귀찮아하는 상태다.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 / 김영민>


아프면 더 살고 싶어진다고 하던데 왜 나는 이만큼 살았으면 충분하다, 됐다. 라고 생각하는지... 정말 삶에 대한 그 어떤 욕구도 생기지 않는다. 사실 작년에 이미 자연수명이 끝난지라, 지금 살아있는 건 보너스라고 생각하는 편. 실학자 박지원이 이런 나를 봤다면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을 것이다. 배우 윤여정을 보면 일단 오래 살아야 기회가 생기지 싶기도 하지만, 뭐 또 꼭 그렇게 상받고 인정 받아야 할 일인지...아카데미에서 상을 받든 안받는 윤여정은 항상 훌륭한 배우인 것을. 


"집까지 먼길로 돌아갈까?" 차에 오를 때면 캐럴라인이 말하곤 했다. 그럼 우리는 서둘러 헤어지지 않으려고 서머빌이나 메드퍼드의 혼잡한 길로 접어들었다.

먼길로 돌아갈까? / 게일 콜드웰


운전을 할 때 내가 선호하는 경로는 최단거리가 아닌 운전할 때 기분이 좋은 경로이다. 기분이 좋은 경로란 2가지를 충족해야 한다. 도로 구조상 교통위반이 발생하기 어려울 것과 주변 경치가 좋을 것. 그래서 나는 공원의 식물들에겐 좀 미안하지만 공원길로 둘러 다닌다. 천천히 운전하면서 하루치의 자연(?)을 감상한다. 풍경이 멋지다고 생각되는 날에는 블랙박스 영상을 저장해 두기도 한다.


서정이라는 정서가 없이 어떻게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 영화 <퍼스트 카우>를 보면 서정이 무엇인지, 서정이 삶의 필수요소인 사람이 생존하기에 세상은 얼마나 험난한지를 잘 알 수 있다. 생존에 서정이 필요없는 사람들은 절대 이 영화를 보지도 않을 것이고 이해도 못할 테지만... 세상이 드라마 <지옥> 같더라도 그 속에서 <퍼스트 카우>의 주인공처럼 사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소에게 다정하게 말을 걸고 뒤집힌 도마뱀을 바로 잡아주는 사람.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처참한 지경에 이른 나이지만 그래도 한 가지 욕심을 부려본다면 서정만을 잃고 싶지 않다. 먼길로 돌아가고, 천천히 걷고, 본 영화를 또 보고, 읽은 책을 다시 펼쳐서 생각을 곱씹고, 잠을 충분히 자고, 질병과 죽음을 삶의 당연한 과정으로 받아들이면서 담담히 담백하게 살고 싶다. 


ps. 사람이든 동물이든 책이든 예술작품이든 영화든 그 무엇이든 간에 서열화 하는 것에는 서정도, 인간존중도, 생명존중도 없다. 그것은 그저 지옥이다. 가장 잔혹한 지옥이 있다면 모든 것을 서열화하여 우월감과 비참함을 끝없이 느끼게 하는 세상일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2021년 한국이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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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민의 신간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를 읽고 있다.

목차를 보고서는 4부를 제일 먼저 읽었다. 취향의 교집합이 있어서 나름 반가웠다. 나도 올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이불-시작>전시에 갔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를 교수님도 읽었군요! 반가워요!!


뭐 대충 반가움은 여기까지고.

아래는 뭘 그렇게까지 살아내야 합니까? 난 귀찮은데요. 하는 부분들이다.


43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박지원이 보기에 전쟁, 지진, 홍수, 판데믹, 호환, 마마보다 참담한 재앙이란 바로 담담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다. 다 귀찮아하는 상태다. 그래서는 이 세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귀찮아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니라 정치하는 이의 관점이다. 뼛속 깊이 귀찮아하는 사람은 삶 자체도 귀찮아하므로 인류의 멸망 따위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을 감히 책임지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다르다. 이 세상이 사라지면 큰일이다. 책임질 대상이 없어지잖아! 나는 뭔가 책임지고 싶은데!


91

"느긋하게 헤엄치듯, 그럭저럭 세월을 마치는 것, 그것이 지혜로다." 그렇다면 편식을 하지 않고, 이빨을 잘 닦고, 목전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꼴 보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크게 화를 내지도 크게 흥분하지도 않고, 샤워를 규칙적으로 하면서 쾌적한 생활을 유지하다가 때가 오면 잠들듯이 죽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삶. 

(중략)

정치 없이 살 수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야수일 거라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치적 참여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효용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양주가 권하는 대로 살다 보면 인간성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공적인 삶은 도외시한 채 숯불갈비만 혼자 처먹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중략)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인간은 타고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끝내 온전해지지 않는다. 마음에는 언제나 공터가 남아 정치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비계가 있어야 삼겹살이 완전해지듯이, 정치가 있어야 삶이 완전해진다. 


96

"고독을 즐기고, 식고 마른 심신으로 해탈의 방법이나 찾으며, 나만 구제하면 그만이지 남이 무슨 상관이랴라고 말하는 것. 그건 자기 개인에게야 좋겠지만 위대한 것은 아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좋은 길을 얻는 것은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의 나인지라 삶이 완전해지던 말던, 위대해지던 말던 관심없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삶으로 남은 생을 살다 가는 게 소망이다. 니체가 이런 나에게 종말의 인간이라고 했나, 인간말종이라고 했나 그러던데. 그래서 나는 짜라투스트라에서 저 문장 읽고 책 덮었다. 초인 같은 거 와놔 부담스럽고 별로다. 


뭐 여튼 아무튼.


번식을 할 정도로 이승의 삶이 좋은 사람들이나 박애 정신으로 정치참여 열심히 하고 완전한 삶을 살아내고, 아울러 위대해져서 나처럼 만사 시큰둥한 사람도 더 나은 세상에 살게 좀 해줘도 되고 안해줘도 된다. 어차피 사람은 잠시 살다 죽으니깐. 


p.s. 그리고 나는 김영민에 의하면 준법 마니아로서 내가 그토록 본받고 싶어 하던 황시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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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아는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이야기에 푹 빠지게 되어 예상보다 빨리 <오만과 편견>을 다 읽고, 지금은 <1차원이 되고 싶어>를 읽는 중이다. <오만과 편견>을 읽을 때 영화 <오만과 편견> ost를 들으면서 읽었고, 책을 다 읽고 나서는 마침 넷플릭스에 영화가 있길래, 영화도 다시 봤다. 늘 그렇지만 역시나 영화는 소설의 잘 만든 예고편 같은 느낌 또는 잘 만든 뮤직비디오 같은 느낌. 


이번에 다시 읽으면서 새롭게 내 눈에 띈 인물은 베넷 씨이다.


엘리자베스의 견해가 모두 자기 가족을 기반으로 형성되었더라면, 그녀는 결혼의 행복이라거나 가정의 안락에 대해 그다지 즐거운 상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젊고 아름다운 데다 마음씨도 착해 보이는-젊고 아름다우면 마음씨도 착해 보이게 마련이니-한 여인에게 반해 결혼하게 되었는데, 막상 결혼해 보니 머리도 나쁘고 마음도 꼭 막혀 있는지라 그녀에 대한 애정은 결혼 초기에 진작 끝나버렸다. 존경, 존중, 신뢰는 영원히 사라졌고, 가정의 행복에 대한 그의 생각들도 모두 깨져버렸다. 그러나 베넷 씨는 누구 탓도 아닌 자신의 경솔함으로 초래된 실망을 보상하기 위해서, 어리석거나 나쁜 짓을 한 결과 불행에 빠진 사람들이 스스로를 위안하기 위해 찾는 도락 따위에 빠질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전원과 책을 사랑했다. 그리고 주로 이런 취미에서 즐거움을 얻었다. 자기 아내에게서 덕을 본 것이라고는 무지와 어리석음으로 그의 즐거움에 기여했다는 것 외에는 없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남편이 아내게게서 기대할 수 있는 유의 행복은 아니지만, 달리 즐길 만한 거리가 없는 처지라면 주어진 여건에서 얻을 것을 얻는 것이 진정한 현자일 것이다. 



"난 내 세 사위가 다 대단해 보인다." 하고 그는 말했다. "가장 아끼는 사위는 위컴이 되겠지만, 네 남편도 제인 남편만큼 좋아하게 될 것 같다."



움베트토 에코는 세상이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내었고, 인터넷에 떠도는 인도(혹은 티벳??) 승려 짤을 보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바보들과 다투지 않아야 한다, 즉 바보에게 "니가 옳아." 하고 발걸음을 돌려 바보와 갈라서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둘 보다 더 뛰어난 사람이 있었느니, 그는 바로 베넷 씨이다. 왜냐하면 베넷 씨는 바보를 즐기고 감상하기 때문이다. 


**현자 순위**

3위 움베르토 에코. 

2위 인도 혹은 티벳의 현자

1위 베넷 씨



ps. 현재 나의 위컴은 2022년 대선 후보들이다. 대선 토론 놓치지 말고 즐겨야지!!!! 나라의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나는 사실 지금 너무 만족스럽게 웃고 있다. 후보들의 면면... 이게 바로 유머!! 리디아와 위컴의 결혼은 자연의 섭리이고 막을 수 없다. 그냥 즐길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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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7 18: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자 베넷 ㅋㅋㅋ 저도 좋아하는 캐릭터 입니다ㅋㅋㅋ 이렇게 굳이 왜 좋은지 밝혀주시니 아하 그래서였군! 즐겁습니다. 1차원이 되고 싶어 저도 읽는 중이고 박상영의 쓸데 없는 디테일 때문에 자꾸 추억 소환되서 손가락이 오그라듭니다. 오늘 저녁 매운 떡볶이 먹으면서 마저 완독할까 싶네요. 즐거운 주말 되소서!🙏🏻

먼데이 2021-11-08 14:21   좋아요 0 | URL
저도 내가 살았던 시대의 소품들이 고증하듯이 재현되는 소설도 별미네 별미 하면서 읽고 있습니다. 절반 정도 읽었는데, 다 읽으셨다면 수성못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겠군요.
 

박찬욱 사진전엘 갔다. 2번이나 갔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무료이기도 하고. 어떤 사람이 이게 뭐지? 하던 사진을 나는 그게 무엇인지 0.1초 만에 알아봤다. 그것은 바로 고양이. 오랜만에 본 전시라서 기분이 새삼 좋았다. 

씨네21 유튜브 채널 김혜리의 콘택트에서 박찬욱 편을 봤다. 고양이 사진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 몸을 최대한 동그랗게 말아서 뒷다리와 꼬리 부근을 햝고 있는 고양이의 자세를 박찬욱 감독은 "무엇에도 상관하지 않고 자족하는 성격"을 드러내는 것처럼 보여서 그 자세를 찍었다고 설명했다.


나는 야생고양이를 좋아한다. 내가 사료를 주는 고양이들도 결국에는 모두 야생 고양이로 독립해서 떠났다. 그리고 가끔 찾아와서 아는척 하고 별식을 하는 기분으로 사료를 먹고는 또 떠난다. 산에서 뭘 먹고 사는진 몰라도 진짜 덩치가 좋고 털 속에 감춰진 근육이 느껴지는 고양이도 있다. 암컷 고양이들은 그곳이 산후조리원이라도 되는 듯이 출산을 하면 아기들을 데리고 나타나서 육아를 하다가 육아가 끝나면 아기 고양이를 두고 떠난다. 아기 고양이는 그곳에서 사료를 먹으면서 지내다 생후 1년 전후가 되면 드디어 사냥 겸 여행을 떠날 수 있을 정도로 용감무쌍해진다. 용감무쌍이라는 아이템을 득한 후에는 떠난다.


나라면 깨끗한 물과 충분한 사료와 충분히 크고 넓은 집이 있는 곳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데 결국엔 다들 떠난다. 아마도 그곳에서의 고양이로서의 생은 내가 코로나 수동감시로 분류되어서 최종 4번의 pcr 검사를 해야 했던 때 느꼈던 얽매이는 느낌이었을까? 


고양이가 자족할 수 있는 이유는 사는데 자신의 몸뚱이 하나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가 없기 때문이리라. 다른 필요한 것은 모두 자연에서 자신의 육체 능력으로 구할 수 있는 야생 고양이의 삶이 아무리 생각해도 2021년을 살아가는 나보다 나은 것 같다. 통신이 마비가 되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한심한 생존능력으로 자족 같은 걸 바라다니 쯧쯧. 같은 이유로 나는 아마도 영영 자족 같은 건 해보지도 느껴보지도 못하고 죽음을 맞이할 테지.


내가 생각하는 자족은 돈이 들지 않아야 하고, 자신의 능력 내에서 충족되는 어떤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을 읽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보다는 글을 쓰는 것에서 느끼는 즐거움이 더 자족에 가까우리라. 음악 감상보다는 악기 연주라든가. 수동적인 유희보다는 능동적인 유희가 자족의 근본이 아닐까 싶다. 


그러고 보면 지금 쓰는 이 일기는 자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내가 돈을 바라고 이걸 쓰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위해서 잘 보이기 위해서 이 글을 쓰는 것도 아닌, 오직 나 자신의 유희를 위해서 쓰고 있으니 말이다. 


p.s. 하지만 글을 쓰려면 무엇인가를 체험해야 하고 그 체험을 하는 것에는 돈이 든다. 하다 못해 박찬욱 사진전은 무료라지만 그곳까지 오가는 교통비는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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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듄>은 <그래비티> 이후 최고의 아이맥스 영화라는 모 평론가의 20자 평도 있었지만, 3D가 아닌 관계로 나는 집에서 멀고 너무 도심이라 교통이 불편한 아이맥스관보다는 그냥 늘 가던 극장에서 일반 상영으로 봤다. 이번 영화 개봉 홍보를 보기 전에는 <듄>의 존재를 몰랐기에, 대충 줄거리 및 고유명사의 의미 정도는 예습하고 극장엘 갔다.


한스 짐머의 음악과 드니 빌뇌브의 연출은 만족스러웠다. 다만, 나는 이 영화의 우주적인 스케일이 와닿지는 않았다. 영화 시작과 함께 십만 년이라는 시대 설정이 자막으로 나왔지만,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아라키스에 당도하는 씬부터 피식할 수밖에 없었다. 탈레반이여 뭐여?? 모래가 여자들만 덮치나? 우리 폴은 모래먼지가 피해 가나 봐. 물론 우주적 귀공자 티모시의 얼굴을 가리면 안 되긴 하지만, 이 영화의 탈레반스러운 복식에는 기가 찼다. 


아, 그리고 그전에 또 피식한 장면이 있었구나. 이건 뭐여? 사이비 종교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일명 타작마당을 실시하던 장면이 자꾸 생각나서 저기는 어딘지? 십만 년 미래의 대우주가 맞기는 한지... 십만 년이 지나도 인간이 아직 예수 같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상태라면 인간은 지금 멸종해버려도 아깝지 않을 종이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사이비 종교 같은 전제들이 영화의 몰입에 상당히 방해가 되었다. 


폴의 모친, 즉 공작부인 제시카는 사이비 무리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종교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식을 낳고 자신의 의도대로 자식을 키운다. 공작부인 레베카의 바로 그런 양육 태도가 정말 싫다. 그게 재물을 바치기 위해서 신성한 짐승을 구해서 사육하는 거랑 뭐가 다르지?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는 인간만큼 비열한 것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아네트>의 마지막 장면의 그 노래를 폴과 공작부인 제시카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읊조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노래의 제목은 sympathy for the Abyss. 


시발 너무 좆같아서

왜 자식이 부모의 심연 같은 것을 위로하고 동정해주어야 하는데?


아네트는 나를 연민해달라고 사정하는 아버지에게

"내가 왜? 내가 왜 너를 용서해야 해? 내가 왜 잊어야 해? 당신은 나를 착취했고, 엄마는 나를 복수 수단으로 사용했는데? 왜 내가 잊고 용서하지? 싫다."

라고 부르짖는다.


이 영화에서 자식 역의 아네트는 계속 마리오네트가 연기한다. 딱 1장면만 제외하고. 자식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면서 이용해 먹는 부모들은 이 영화 보고 대오각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부모가 자식을 낳는 이유에 관하여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면 아네트를 단 한 장면만을 제외하고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연기를 시켰을 리가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레오(스) 카락스는 이 영화를 그의 딸에게 바친다라고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오지 전에 자막으로 넣어 두었다. 이것이 수미쌍관이며 화룡정점!!


<아네트>에서의 부모는 매우 한국적(인간종 기준 일반적)이다. 아버지는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거기다 부인이 더 잘 나가게 되자 열등감 폭발해서 부인에게는 폭력을, 자식에게 착취를 서슴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전형적인 쓰레기 남편이자 아버지임. 어머니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이 실패하게 되자 자식에게 집착하는 전형성을 보여준다. 


엄마도 아빠도 용서치 않겠다고 소리치는 아네트가 맘에 든다. 


낳는 게 선이 아닌데, 다수의 인간들이 낳으니 그걸 선이라고(다수에게 이로운 게 선이고 정의가 되는 것이니까) 믿고 행하고, 생식 본능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고...


나는 정신이 너무 병들었는지 <긴긴밤>을 읽으면서도 치쿠와 윔보가 알에게 하는 선의가 정말 선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왕 태어나짐 당했고, 어차피 병들어서 죽는 게 시간문제인 처지라서,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을 즐겁게 보내자라는 각오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즐기면서 지내고 있기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입을 열기 전에는 매사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인 줄 알지만, 입을 여는 순간 그들의 안색은 어둡게 변한다. 마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볼드모트를 발음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차피 사람은 태어나면 죽기 마련인데 죽을 애를 왜 낳는지 모르겠다 = 볼드모트


내가 <듄>을 '티모시 살라메가 주연인 중동에서 석유 전쟁하는 이야기의 배경을 우주로 바꾼 것'이라고 했더니 친구가 그게 그렇게 요약이 되냐고 놀라워했다. 뭘 그걸 가지고, 나는 인생도 단 두 글자로 요약하는데, 생사. '태어나서 죽는 거'라고 즉 생사가 핵심인 것이고, 살면 살수록, 사람이 한 번 죽어보려고 태어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필연적인 죽음을 부정하는 인간일수록 번식과 부와 명예에 집착한다라는 것을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사는 것=죽는 과정


그 죽는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즐기겠다는 것이 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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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11-03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극 대 공감… 😭 저도 티모시와 드니 빌뇌브 조합에 말없이 극장가서 견디며(?) 왤케 내용이 촌스러운가… 가문…? 가..족…? 수만년 후의 인류는 역시 핏줄…?… 그런데 이 와중에 저 불편한 여성 복식은 무언가… (아무리 원작이 70년대라지만, 그래도… 워후..) 하면서 몰입하지 못하고… 하지만 저 허버허버진 사막의 모래들을 보는 건 좋았고… 올 겨울엔 귤까먹으며 듄이나 읽어볼까 했는데 읽지 않기로 굳은 결심했어요! 더 괜찮은 재밌는 좋은 이야기를 즐길 시간을 위하여~~~

먼데이 2021-11-03 10:45   좋아요 1 | URL
<듄> 극장 가서 봐도 아깝지 않을 영화이긴 하죠. 티모시 얼굴과 웅장한 한스 짐머의 음악! 거대한 사막과 사막 벌레 ㅋㅋㅋ
그 외엔 소설의 설정들이 너무 고리타분했어요. 시대 설정은 미래지만, 내용은 너무 중세... 공작이 다 뭔가요 ㅜ 미쳐버리는 줄. <브리저튼>도 아니고.

<아네트> 강추해요. 정말 좋아요!!! 우리 아담 드라이버는 <프란시스 하> 이후로 외모는 점점 망가지지만, 연기는 나날이 멋져 집니다. <결혼 이야기>에서도 찌질한데 <아네트>에서는 더더더 찌질이. <아네트>는 큰 기대없이 아담 드라이버 보러 간 건데 완전 좋았어요.


- 2021-11-03 10:48   좋아요 0 | URL
먼데이님 뭔가 저랑 취향 맞으시니깐요(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가ㅋㅋㅋ) 저는 또 아네트를 보러 가야겠어요!! 으하하하!! (인생의 재미 또 하나 늘려갑니다.) 영화 보고 감상 남기러 올께요 😤

- 2021-11-07 18:13   좋아요 0 | URL
개봉관이 별로 없어 멀리 버스타고 다녀와서 봤네요. 보고와서 읽으니 리뷰가 더 생생히 읽혀져요. 저는 마리오네뜨로 표현된 아네트가 혹시 무슨 짓 당해서 이렇게 연출했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극중에 나오는 지휘자를 음청 째려보면서 조마조마하면서 봤어요. 다행스럽게도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정서적 착취도 방치와 무관심도 애를 낳아놓고 구실 삼는 것도 심각하고 잔인한 폭력이죠. (할말하않) 그나저나 우리 패터슨은 벗겨놓으니까 더 볼만하더라고요? ㅋㅋㅋ 메소드 연기 잘하는 애들은 연기가 아닌 경우가 많다는 영화 관계자의 말을 실감하며... 예술병 걸린 애비 감독의 반성문 영화.. 잘 봤습니다. 저도 좋았어요! (찡긋-)

먼데이 2021-11-08 14:32   좋아요 0 | URL
너무 스포를 한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을 했는데 즐감하셨다니 다행이예요. 아담 드라이버 의상 완전 좋죵 ㅋㅋㅋ 배우 본인도 그 장면들의 위해서 몸 관리를 얼마나 했을까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