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듄>은 <그래비티> 이후 최고의 아이맥스 영화라는 모 평론가의 20자 평도 있었지만, 3D가 아닌 관계로 나는 집에서 멀고 너무 도심이라 교통이 불편한 아이맥스관보다는 그냥 늘 가던 극장에서 일반 상영으로 봤다. 이번 영화 개봉 홍보를 보기 전에는 <듄>의 존재를 몰랐기에, 대충 줄거리 및 고유명사의 의미 정도는 예습하고 극장엘 갔다.
한스 짐머의 음악과 드니 빌뇌브의 연출은 만족스러웠다. 다만, 나는 이 영화의 우주적인 스케일이 와닿지는 않았다. 영화 시작과 함께 십만 년이라는 시대 설정이 자막으로 나왔지만, 아트레이데스 가문이 아라키스에 당도하는 씬부터 피식할 수밖에 없었다. 탈레반이여 뭐여?? 모래가 여자들만 덮치나? 우리 폴은 모래먼지가 피해 가나 봐. 물론 우주적 귀공자 티모시의 얼굴을 가리면 안 되긴 하지만, 이 영화의 탈레반스러운 복식에는 기가 찼다.
아, 그리고 그전에 또 피식한 장면이 있었구나. 이건 뭐여? 사이비 종교야?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일명 타작마당을 실시하던 장면이 자꾸 생각나서 저기는 어딘지? 십만 년 미래의 대우주가 맞기는 한지... 십만 년이 지나도 인간이 아직 예수 같은 메시아를 기다리는 상태라면 인간은 지금 멸종해버려도 아깝지 않을 종이다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사이비 종교 같은 전제들이 영화의 몰입에 상당히 방해가 되었다.
폴의 모친, 즉 공작부인 제시카는 사이비 무리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종교 집단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 의도적으로 자식을 낳고 자신의 의도대로 자식을 키운다. 공작부인 레베카의 바로 그런 양육 태도가 정말 싫다. 그게 재물을 바치기 위해서 신성한 짐승을 구해서 사육하는 거랑 뭐가 다르지? 자식을 통해서 자신의 야망을 실현하는 인간만큼 비열한 것도 없다.
그리하여 나는 <아네트>의 마지막 장면의 그 노래를 폴과 공작부인 제시카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읊조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노래의 제목은 sympathy for the Abyss.
시발 너무 좆같아서
왜 자식이 부모의 심연 같은 것을 위로하고 동정해주어야 하는데?
아네트는 나를 연민해달라고 사정하는 아버지에게
"내가 왜? 내가 왜 너를 용서해야 해? 내가 왜 잊어야 해? 당신은 나를 착취했고, 엄마는 나를 복수 수단으로 사용했는데? 왜 내가 잊고 용서하지? 싫다."
라고 부르짖는다.
이 영화에서 자식 역의 아네트는 계속 마리오네트가 연기한다. 딱 1장면만 제외하고. 자식을 마리오네트처럼 조종하면서 이용해 먹는 부모들은 이 영화 보고 대오각성과 사죄를 해야 한다. 레오(스) 카락스 감독이 부모가 자식을 낳는 이유에 관하여 나와 같이 생각하지 않았면 아네트를 단 한 장면만을 제외하고 마리오네트 인형으로 연기를 시켰을 리가 없다고 나는 확신한다.
레오(스) 카락스는 이 영화를 그의 딸에게 바친다라고 영화가 끝이 나고 엔딩 크레딧이 나오지 전에 자막으로 넣어 두었다. 이것이 수미쌍관이며 화룡정점!!
<아네트>에서의 부모는 매우 한국적(인간종 기준 일반적)이다. 아버지는 가정을 전혀 돌보지 않는다. 거기다 부인이 더 잘 나가게 되자 열등감 폭발해서 부인에게는 폭력을, 자식에게 착취를 서슴지 않는다. 쉽게 말해서 전형적인 쓰레기 남편이자 아버지임. 어머니는 남편에게 사랑받는 것이 실패하게 되자 자식에게 집착하는 전형성을 보여준다.
엄마도 아빠도 용서치 않겠다고 소리치는 아네트가 맘에 든다.
낳는 게 선이 아닌데, 다수의 인간들이 낳으니 그걸 선이라고(다수에게 이로운 게 선이고 정의가 되는 것이니까) 믿고 행하고, 생식 본능에 대해서는 너무 관대하고...
나는 정신이 너무 병들었는지 <긴긴밤>을 읽으면서도 치쿠와 윔보가 알에게 하는 선의가 정말 선일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이왕 태어나짐 당했고, 어차피 병들어서 죽는 게 시간문제인 처지라서, 내게 주어진 시간만큼을 즐겁게 보내자라는 각오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열심히 즐기면서 지내고 있기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입을 열기 전에는 매사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인 줄 알지만, 입을 여는 순간 그들의 안색은 어둡게 변한다. 마치 내가 아무렇지도 않게 볼드모트를 발음하기라도 한 것처럼-
어차피 사람은 태어나면 죽기 마련인데 죽을 애를 왜 낳는지 모르겠다 = 볼드모트
내가 <듄>을 '티모시 살라메가 주연인 중동에서 석유 전쟁하는 이야기의 배경을 우주로 바꾼 것'이라고 했더니 친구가 그게 그렇게 요약이 되냐고 놀라워했다. 뭘 그걸 가지고, 나는 인생도 단 두 글자로 요약하는데, 생사. '태어나서 죽는 거'라고 즉 생사가 핵심인 것이고, 살면 살수록, 사람이 한 번 죽어보려고 태어나는 것만 같다. 그리고 이 필연적인 죽음을 부정하는 인간일수록 번식과 부와 명예에 집착한다라는 것을 일종의 자연현상으로 받아들이는 중이다.
사는 것=죽는 과정
그 죽는 과정에서 최대한 많은 이야기를 즐기겠다는 것이 내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