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민의 신간 <인간으로 사는 일은 하나의 문제입니다>를 읽고 있다.

목차를 보고서는 4부를 제일 먼저 읽었다. 취향의 교집합이 있어서 나름 반가웠다. 나도 올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하는 <이불-시작>전시에 갔었다.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를 교수님도 읽었군요! 반가워요!!


뭐 대충 반가움은 여기까지고.

아래는 뭘 그렇게까지 살아내야 합니까? 난 귀찮은데요. 하는 부분들이다.


43

"무릇 천하의 재앙 중에서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보다 더 참담한 것은 없다." 박지원이 보기에 전쟁, 지진, 홍수, 판데믹, 호환, 마마보다 참담한 재앙이란 바로 담담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다. 다 귀찮아하는 상태다. 그래서는 이 세계가 유지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것은 귀찮아하는 사람들의 관점이 아니라 정치하는 이의 관점이다. 뼛속 깊이 귀찮아하는 사람은 삶 자체도 귀찮아하므로 인류의 멸망 따위를 크게 개의치 않는다. 그러나 이 세상을 감히 책임지고자 하는 정치인들은 다르다. 이 세상이 사라지면 큰일이다. 책임질 대상이 없어지잖아! 나는 뭔가 책임지고 싶은데!


91

"느긋하게 헤엄치듯, 그럭저럭 세월을 마치는 것, 그것이 지혜로다." 그렇다면 편식을 하지 않고, 이빨을 잘 닦고, 목전의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꼴 보기 싫은 사람은 만나지 않고, 크게 화를 내지도 크게 흥분하지도 않고, 샤워를 규칙적으로 하면서 쾌적한 생활을 유지하다가 때가 오면 잠들듯이 죽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삶. 

(중략)

정치 없이 살 수 있다면 그는 신이거나 야수일 거라고.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정치적 참여는 그로 인해 발생하는 효용 때문만이 아니라 인간이 인간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하다. 양주가 권하는 대로 살다 보면 인간성은 파괴되고 말 것이다. 공적인 삶은 도외시한 채 숯불갈비만 혼자 처먹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중략)

정치에 참여하지 않으면 인간은 타고난 잠재력을 발휘할 수 없고, 결과적으로 끝내 온전해지지 않는다. 마음에는 언제나 공터가 남아 정치가 들어오길 기다린다. 비계가 있어야 삼겹살이 완전해지듯이, 정치가 있어야 삶이 완전해진다. 


96

"고독을 즐기고, 식고 마른 심신으로 해탈의 방법이나 찾으며, 나만 구제하면 그만이지 남이 무슨 상관이랴라고 말하는 것. 그건 자기 개인에게야 좋겠지만 위대한 것은 아니다. ......집 밖으로 나가지 않고서도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좋은 길을 얻는 것은 위대한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담백하게 욕심이 없는 상태의 나인지라 삶이 완전해지던 말던, 위대해지던 말던 관심없다. 그야말로 스트레스를 최소화한 삶으로 남은 생을 살다 가는 게 소망이다. 니체가 이런 나에게 종말의 인간이라고 했나, 인간말종이라고 했나 그러던데. 그래서 나는 짜라투스트라에서 저 문장 읽고 책 덮었다. 초인 같은 거 와놔 부담스럽고 별로다. 


뭐 여튼 아무튼.


번식을 할 정도로 이승의 삶이 좋은 사람들이나 박애 정신으로 정치참여 열심히 하고 완전한 삶을 살아내고, 아울러 위대해져서 나처럼 만사 시큰둥한 사람도 더 나은 세상에 살게 좀 해줘도 되고 안해줘도 된다. 어차피 사람은 잠시 살다 죽으니깐. 


p.s. 그리고 나는 김영민에 의하면 준법 마니아로서 내가 그토록 본받고 싶어 하던 황시목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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