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좀 근근이 사는 게 좋다. 스타크래프트로 비유하면 무한맵보다는 유한맵이 재미있달까. OTT 영화서비스에 비유하면 기간제한이 없으면 찜만 해두고 보지 않게 되는데, 0월 0일까지 감상할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보게 되면 당장 클릭해서 감상하는 것 같은 한정제가 주는 동기유발이 좋달까?
얼마 전까지 유튜브 프리미엄 무료 구독 2개월을 해 봤다. 구독 마감 하루 전 날에 구독 해지(구독 해지 날짜를 아는 이유는 종이 다이어리 월간 페이지에 써두었기 때문이고, 나는 매일 다이어이를 보고, 쓰고 하기 때문)했다. 요즘은 다시 사파리로 유튜브에 접속해서 내게 필요한 영상을 본다. 보는 건 정해져 있다. 빅씨스, 정희원, 백상현, 오지은임이랑 정도다. 사람들은(임이랑도) 프리미엄 사용하고 나면 광고를 견딜 수 없게 된다고 하던데, 난 아니었다. 광고에 낭비되는 시간이 아깝기 때문에 꼭 필요한 유튜브만 보고 창을 끄게 된다. 유튜브앱이 아닌 사파리로 유튜브를 보는 건 좀 더 불편하기 때문에 유튜브 무한 플레이를 하지 않게 된다.
나는 생활에 약간의 불편이 있는 게 좋다. 그 불편을 처리하는 행위에서 삶의 동력을 얻는달까? 홈네트워크 앱을 사용하지 않고, 내 손으로 전자기기의 전원을 끄고 켜는 것. 나는 스마트폰으로 천장조명을 끄고 켜는 걸 싫어한다. 누웠다가 다시 일어나서 전등을 끄는 행위가 귀찮다는 그 따위 정신상태로는 이 험난한 세상에서 생존하기 힘들 거라고 장담한다. 사소하고 하찮은 귀찮은 행동을 하기 싫은 마음 상태 그 자체가 몰입을 못하는 상태, 집중 못하는 상태로 진입하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돈을 많이 벌어본 적도 많이 가져본 적도 없지만(어쩌면 그래서 돈의 참맛을 몰라서 그런지 몰라도) 한정된 수입에서 가계부를 쓰면서 지출을 조절하는 것이 재미있다. 충동적으로 하고 싶은 걸 하는 것보다는 나의 과거 행적을 통계내고 미래를 예상하고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할 때 쾌감을 느낀다. 충동적으로 즉흥적으로 욕구를 채울 때는 쾌감이 크지 않다. 올해는 옷 구매 0원이 목표인데, 이 목표를 아직 실천 중이다. 이 목표의 실천은 내가 샤넬이나 디올에서 말도 안 되는 가격의 귀금속을 살 때의 쾌감보다 더 큰 쾌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내 하루에서 가장 중요한 미션은 잠을 충분히 자는 것이다. 평균 8시간 수면 유지!! 깊은 수면과 렘수면 시간을 충분히 확보할 것. 밤에 잠을 충분히 잘 자려면 아침에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일어나야 하고, 낮 동안 머리와 몸을 최대치로 가동하면 된다. 낮 동안 몸을 충분히 움직이면 밤에 깊은 수면을 잘 수 있고, 낮 동안 질 좋은 두뇌 활동을 하면(즉 몰입과 집중활동, 나의 경우는 일기 쓰기, 책 읽기, 영화감상, 업무) 충분한 렘수면을 할 수 있다. 이도 저도 아닌 얕은 수면으로는 뇌와 몸이 충전될 수가 없다.
삶의 중심에 질 좋은 충분한 수면을 놓게 되면, 집중력을 도둑맞을 일도 없고(스마트폰 중독이 될 수가 없다), 필요 이상의 많은 돈을 바라지도 않게 된다(일단 잠을 8시간 자면 돈을 소비할 시간도 별로 없다), 질 좋은 수면을 위해서 낮 동안 몸을 많이 움직이려 하게 되고, 의미없이 스마트폰을 멍하니 보고 있는 행동도 자제하게 된다.
밤에 충분한 잠을 자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부족하고, 그래서 미루는 법이 없게 된다. 그릇의 개수에 비유해 보자. 식기가 많으면 설거지를 미루게 되지만, 식기가 몇 개 없다면 설거지를 미룰 수가 없는 법.
흔히 사람들은 욕망은 소금물 같아서 채우면 채울수록 더 갈증이 나게 된다고 하는데, 나는 그렇지도 않다. 8년째 이사하지 않고 살고 있는 이 집의 수납공간이 내가 최대치라고 정한 만큼 채워졌고, 그래서 나는 더 이상 사지 않는다. 심지어 책도(이건 집 옆에 도서관이 생긴 탓도 있고, 그동안 구입한 책을 다 읽지 못한 탓도 있다). 더 사려면 기존 물건들을 버려야 하는데 딱히 버리고 싶은 것도 없고.
왜 나는 근근이, 부족한 듯, 좀 불편한 듯 사는 데서 삶의 동력을 얻는 걸까? 모든 게 편리하고 쉽고 충분한 상태에서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다. 그저 늘어져있고만 싶어 진다, 그 상황이 딱히 재미있지도 않다. <슬램덩크>에서 강백호가 강한 상대를 만날 때는 백호 능력 이상의 실력을 발휘하는 것이 비해, 만년 벤치 연습생을 마크할 때는 승부욕이 솟지 않아서 백호의 수비에 구멍이 생기는 것과 유사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