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나이 때는 하루에 꼭 한 쪽이나 두 쪽의 일기를 써야 잠들 수 있었어.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길이가 점점 줄어들었고 요즘에는 그날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어떤 손님을 만났는지 같은 내용을 짧게 메모하는 수준이야. 오늘이 어제와 다르고 또 내일과도 다를 거라는 근거를 적어두는 거지. 기록하지 않으면 하루하루가 같은 날이, 하나의 덩어리가 되어 한꺼번에 사라져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있거든.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 답신 / 최은영>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일주일은 또 어떻게 흘러가는지, 한 달은, 일 년은? 기록하지 않으면 통계 내지 않으면 속절없이 늙어버렸다는 허탈감을 극복할 수가 없다. 그래서 기록하고 통계를 내고 추세를 살피는 거 같다. 잠은 얼마나 자는지, 영화는 몇 편을 보는지, 책은 몇 권을 읽는지, 돈은 어디에 얼마를 쓰는지, 음식을 무엇을 얼마나 먹는지. 심지어 요즘은 스크림타임도 살펴본다. 어떤 앱을 몇 분 정도 사용하는지. 아무리 궁리를 하고 계산을 해보아도 하루 치의 체력과 시간은 부족하거나 빠듯해서 무얼 하나 더 할 수 여력이 없다. 


24시간이 부족한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감상할 수 있는 콘텐츠(책, 영화, 음악, 팟캐스트, 유튜브 등)가 너무 많아서 인 거 같다. 분별, 분별, 분별, 우선순위, 우선순위, 우선순위.


제일 중요한 것은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고 이것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한다는 것이 2024년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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