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멸의 샘이 여기 있다 문학과지성 시인선 265
김명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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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다음날 골짜기로 갔더니 죽은 단풍나무 가지 끝에 잠자리 두 마리 죽은 듯 앉아 있었지요 죽은 고요와 죽은 듯한 고요가 한 가지에 잇닿은 보이지 않는 투명한 끈을 서로 밀치고 당기고 하는 것 같았어요 실은 그 잠자리들은 바람에 젖은 날개를 말리고 있었을 테지만 죽은 나무는 제 가지 끝에서 생이 새롭게 꽃피고 있다고 믿는 중인지도 모르지요 서서히 땅거미에 잠겨가는 그 나무의 상처 주위로 들며 나는 무수한 벌레들이 그 나무가 토해내는 검고 푸르고 싸늘한 입김인 양 느껴졌는데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 있다와 없다 사이에 머무는 저것들 경계를 짓지 않으면서 서로 붐비는 그 사이로 뒤섞어놓은 색실 가닥처럼 잠자리 두 마리 죽은 단풍나무 가지를 떠나 대기 속으로 화르르 날아올랐지요-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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