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네 살, 비밀과 거짓말 푸른도서관 37
김진영 지음 / 푸른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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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 살, 비밀이 많은 나이라고 해야할까. 하도 오래전이어서 내 나이가 그만큼이었을 때 어떻게 지냈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내가 늘 기억하는 내 청소년기의 모습은 이제 조금 더 컸다는 자부심. 어른들의 세계와 나의 세계가 그다지 다를 것도 없다는 생각. 그런 것들이었다. 아마 이 책의 주인공 하리도 그런 생각들로 뭉친. 평범한 열네 살의 소녀이다.  

 

우연한 기회에 남이 두고 간 물건을 챙겼다가 도벽이라는 오명을 쓰게 된 하리는 이 도벽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리는 도벽을 즐기거나, 돌파구로 생각하지 않는 아이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도둑질을 계속 한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니 치명적인 약점을 가지게 된 셈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있다. 바로 엄마가 도둑질을 한다는 사실이다. 하리에게는 자신이 도둑질을 하게 된 것이 마치 엄마의 피를 이어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어른의 도덕적 타락이 아이에게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어른들의 타락이 곧 자신의 타락을 항변해 줄 수 있는 무기가 된다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잘났다는 어른들도 그러는데, 내가 그러는게 뭐 대수야. 라고 쉽게 자신의 타락을 인정해버릴 수 있는 세대.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오히려 더 잘 해야한다.  

 

하리가 자신의 딜레마를 극복하고, 비밀과 거짓말에서 빠져나와 '나'를 표현하게 되는 과정이 조금 급작스럽기는 하다. 그러나 어쩌면 성숙이란 그렇게 갑자기 찾아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안에서 눌려져 있던 것들이 한 순간에 답을 찾아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순간이 인생에는 여러 번 찾아오기 마련이니까. 하리의 앞날에는 여전히 어려운 일들이 놓여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자신을 표현할 수 있게 된 하리가 결국은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희망적인 기대를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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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령화 가족
천명관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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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가루 가족이란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루저들의 모임이라고 해도 좋다. 링에서 쓰러지고 이미 케이오 선언을 당해 다시 링 위에 올라갈 수 있을지조차 희박한. 오십대와 사십대에 걸친 이들 삼남매가 삶에서 곤두박질치고 난 후에 비로소 돌아온 곳은 칠십대의 노인이 근근히 삶을 유지하는 공간. '엄마의 집'이다. 

  

실패한 자식들의 후퇴에 대해 엄마가 취하는 태도는 놀랄만큼 심플하다. 한마디로 '밥 먹어라'다. 우리 엄마가 나를 기르면서 아침밥을 먹이는 데에 목숨을 걸었던 이유도, 점심 도시락이 없다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닌데 눈길을 헤치고 도시락을 짊어진 채 교문 앞에서 눈사람이 되어갔던 이유도. 어쩌면 이걸로 해명될 지 모르겠다. 엄마가 주는 '밥'은 그저 식사가 아니라 탯줄과도 같다는 것을. 그것으로부터 영양을 얻어 살을 만들고 뼈를 만들었던 때처럼, 엄마의 밥은 세상속에서 내게 살을 붙이고 뼈를 기르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라고 말이다.  

 

천명관의 소설로 처음 접하게 된 것은 '고래'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암울하기만 했던 줄거리다. 기발하기도 하고 재미도 있었지만 읽고나서 개운하지는 않았다. 전적으로 개인취향에 의한 뒷끝이었지만. 반면 이번 소설은 재미있고, 담담하고, 때로는 유쾌하다. 나이가 마흔이고 쉰이지만 역시 엄마 밑으로 들어와 살면서 철들어 가는 중년들을 보면서 성장이란 멈추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칠십의 노인이 야반도주를 감행했던 젊은 날의 상대를 다시 만나고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노년의 사랑이라는 것도 참으로 열정적이지 않느냐고 묻는 일도. 이 소설을 통해서 가능했다. 그러니 콩가루 가족의 파란만장한 출생의 비밀에 파묻히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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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 - 20대와 함께 쓴 성장의 인문학
엄기호 지음 / 푸른숲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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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예찬이라는 글을 교과서에서 배우던 때가 있었다. 청춘에 관한 미사여구로 채워졌던 그 글을 읽으면서 단 한번도 내 청춘이 아름답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지금도 기억 나는 것은 그 글에 사용된 온갖 표현의 향연뿐이다. 나중에 그 글을 가르쳐야 하는 입장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을 때 한 선배가 했던 말이 기억난다. "대체 청춘인 애들이 지금 자기 청춘이 이렇게 아름답다는 걸 알긴 해? 이건 지난 다음에 추억할 때에나 맞는 말이야. 한마디로 자기 나이대 사람들은 함께 공감할 지 몰라도 현재 청춘들은 전혀 공감안해." 라고. 그러니까 배우게 할만큼 중요한 글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그때를 떠올렸다. 내가 어째서 그 글을 읽으면서도 내가 청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었는지. 새벽같이 일어나 달보고 들어오는 생활의 어디쯤에 찬란함이 있는 것인지. 내 시들시들한 몸상태의 어디에 생동감이 넘쳐 흐르는 것인지.  

 

가까이 겪어보지 않고서는 세대를 논할 수 없다. 저자가 청춘들의 가까이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공감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보고, 그들의 생각을 끌어내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글이 청춘에 관한 글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청춘이었을 때 나를 겪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들에 훗. 하고 냉소를 보냈듯이, 지금의 청춘들은 겪어보지 않고 너희들이 이러이러한 세대라고 내리는 판단과 분석에 차가운 비웃음을 날린다. 그러나 어느 세대든, 그렇게 성장해왔다. 전과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전과는 다른 가치를 배웠고, 전과는 다른 미래에 노출될 것이다. 그러니 삶의 방식도, 삶을 운영하는 척도도, 기존과는 다를 것이다. 선사시대에도 있었다는 '요즘 애들은~'으로 시작되는 비난은 단지 비난일 뿐 아니라 그렇게 흘러왔던 역사의 단면이다.  

 

이들이 어째서 자신을 잉여라 부르는지. 그들이 삽질에 쏟는 열정의 본질이 무엇인지. 돈 앞에 기존의 세대보다 자유로웠던 것 같은데도 불구하고 어째서 돈에 그토록 쿨하지 않은지. 이들에게 혁명이란 무엇인지. 이러한 물음앞에서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책을 찾는다면 이 책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단순히 청춘들의 사정을 살펴 공감하고 그래도 희망은 있다고 칭찬하려는 책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이 책이 재미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가치중립적이기 때문이다. 옳은 것과 그른 것이 기준이 아니라 '왜'가 기준이다. 그러니 결과가 아니라 과정이 궁금한 이들만 펼쳐들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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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체 (반양장) - 제8회 사계절문학상 대상 수상작 사계절 1318 문고 64
박지리 지음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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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글이다. 난쟁이 아버지의 쌍둥이 아들. 아버지를 닮아서인지 키가 크지 않는 두 아이들은 학교에서도 늘 키 때문에 놀림을 받는다. 체육선생님에게서는 늘 세트 취급을 받으며 구박을 받아야 했고, 신체검사 때에는 마음을 졸여야 했고, 수학여행에서는 급기야 키 작은 남학생과 키 큰 여학생의 조합에 끌려 나가야 했다. 자신이 선택할 수도, 자신이 노력해서 이룰 수도 없는 것으로 인해 차별을 받을 때 우리는 그 어떤 때보다 좌절하게 되고 상심하게 된다. 이 두 아이들의 경우에도 그랬다. 

합은 형이다. 그는 공부를 통해 꿈을 이루려고 한다. 수학여행에 갈 때 공부를 하는 놈은 모자라다고 아무리 야유를 퍼부어도 굳은 심지의 그는 공부를 꾸준히 한다. 의사가 되어서 키 크는 약을 발명하려고. 동생 체는 몸을 움직이는 성격이다. 사회선생님으로부터 체 게바라의 이야기를 듣고 게바라를 형님으로 모시는 그는 우연한 기회에 계룡산도사 계도사를 만나 키 클 수 있는 방법을 듣고는 실행하기로 결심한다. 둘의 합체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동굴에서 33일간의 수련을 떠난 두 아이들. 아이들은 과연 키가 커 질 수 있을까?

신체의 키 뿐이 아니다. 형제간의 사랑을 확인하고, 난쟁이 아버지를 부끄러워했던 과거를 반성하고, 진정한 성장은 몸의 성장이 아니라 마음의 성장에 있음을. 마음이 성장하면 자연스레 자기 안에 있는 혁명을 실현할 수 있는 '어른'이 될 수 있음을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술술 읽히는 성장 소설을 원한다면 이 책을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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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기엔 좀 애매한 사계절 만화가 열전 1
최규석 글.그림 / 사계절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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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지만 가난한, 멋지지 않은 외모 원빈. 

이름은 원빈이지만 원빈의 외모라고는 볼 수 없는. 하지만 착하디 착한 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 주인공이다. 미술을 전공하고 싶은 미술학도지만 집안의 형편때문에 미술학원에 보내달라고는 말도 꺼내지 못한다. 그러던 어느날 술을 한 잔 마시고 엄마가 선언한다. 미술학원에 보내주겠다고 말이다. 엄마가 걱정되지만 꿈을 이룰 수 있게 된 것에 기쁘기도 한. 그야말로 평범한 고딩 원빈의 미술학원 생활이 시작된다. 회비 때문에 도망쳐보기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돈을 떼어먹힐 뻔도 하고, 짝사랑하던 여자친구의 대학입학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 그래도 웃는다. 그러던 원빈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면서 끝나는 마지막 장면은 그래서 무척이나 서글프다. 그 자리에 가서 아이를 달래주고 싶을만큼.

어떻게든 되겠지.

어쩌면 애매할지도 모르겠다. 주인공들이 말했듯이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닌데. 삶은 살아지는데. 그런데 울어버리자니 아직 그 지경은 아닌 것 같다. 아직 희망은 있다. 그래서 울기 애매했는지도 모르겠다. 청춘이란 그렇게 절망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는 나이일테니까.  그래도 언젠가 이들이 이 모든 날들을 뒤로하는 때가 올 것이다. 울음의 맛을 보고 나면 자신이 무엇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도 알게 될 테니까. 그리고 누군가의 울음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게 될 테니까 말이다. 그들이 그렇게 성숙한 어른이 되어가기를. 애매한 상황 중에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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