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79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김남주 옮김 / 민음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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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6시에 플레옐 홀에서 아주 좋은 연주회가 있습니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어제 일을 죄송했습니다.'
 
페이지 : 56쪽  

본문에는 물음표로 처리되어 있지만 제목에는 점 세 개로 마무리 되는 이 자신없는 물음은 시몽이 처음 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할 때 했던 말이다. 사강은 이 질문이 반드시 점 세개로 처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데, 그것은 아마도 자신없음을 의미해야하기 때문이 아니었을지. 

소설을 읽고 나서 떠오르는 장면은 아이러니하게도 나이든 어느 여인이 아니라 매우 젊고 아름다운 '뉴문'의 여주인공이었다. 전반부에서 그녀는 꿈을 꾼다. 아주 나이 든 자신이 나오는. 처음에는 자신의 할머니로 여겼던 여인이 그녀 자신이라는 것을 알아챈 후, 그리고 전혀 늙지 않은 에드워드가 자신에게 여전히 사랑을 고백하는 순간. 그녀는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어난다. 그렇다. 모든 여인들이 사랑 앞에 두려워하는 것. 이 젊디 젊은데다 아름답기까지 한 소녀가 자신의 생일을 싫어하게 만들 정도의 위력을 가진 그것. 바로 '늙는다'는 것이다. 눈치챘겠지만 폴 역시 그랬다. 시몽은 젊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신에게 사랑을 확인시켰다. 또 그녀가 원하는 것이면 무엇이든 했다. 그러나 그녀는 늙었다. 우리의 여주인공을 기억해보자. 그녀 역시 할머니가 된 자신에게 에드워드가 사랑을 고백하는 말을 들었다. 여전히 그는 그녀를 사랑했지만. 그녀는 끔찍했다. 늙은 자신의 모습 옆에 젊은 그의 모습때문이었다. 그것은 아무리 사랑받아도 끔찍한 장면이다. 젊은 소녀에게도, 이제 서서히 나이 먹었다는 느낌을 갖기 시작하는 우리의 폴에게도.

폴이 선택한 로제와의 사랑은 열정이 아니라 안정이다. 언제나 기다리고 있으리라고 여기는 로제의 믿음을 바탕으로 한. 로제의 사랑과 애정을 바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데에서 그녀 스스로 '늙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가장큰 이유를 본다. 그녀는 그를 사랑한다고 말하고 있지만 그 사랑에는 어딘지 그녀 스스로의 주장의 냄새가 난다. 그렇다고 그녀가 시몽을 사랑한다고 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녀는 그에게 모성을 느꼈을 뿐이다. 때로는 열정적인 감정이 피어날 때도 있었지만 그것만으로는 로제를 떠나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지 못했다. 그것 뿐이다.

스무살 시절의 폴을 떠올리자면 서른 아홉의 폴이 얼마나 늙었는지. 젊은 날 그녀는 매력적인 남편을 과감하게 떠나지 않았는가. 로제보다 훨씬 더 안정감을 줄 수 있는 관계를 미련없이 저버린 그녀의 젊음. 그러나 이제 그녀는 모든 것을 떠나 자신에게 온 젊은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그 때의 자유로운 여인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토록 서글픈 독백은 설득력을 갖는다.


시몽, 이제 난 늙었어. 늙은 것 같아......
 
페이지 : 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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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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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읽는 책이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이라는 것만 알았지 부조리극이라는 것도. 언어의 무의미함을 다룬 작가라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희곡의 처음이 되는 대머리 여가수를 읽을 때에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대머리 여가수에는 여가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두 부부와 한 하녀, 그리고 소방대원이 등장할 뿐이다. 이들이 나누는 무의미한 대화 속에 단 한 번 등장하는 단어일 뿐인 대머리 여가수가 제목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언어의 의미없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런지.

 

이들은 전혀 소통되지 않는 대화를 끊임없이 나눈다. 도입부에 스미스와 스미스 부인은 한 쪽만 계속 이야기하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마틴 부부가 등장해서는 두 사람이 부부면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대화를 시작하다가 결국 부부사이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메리라는 하녀는 다시 등장하여 이들이 사실은 진짜 부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자기가 자기라고 믿기 때문에 자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가져봄직한 대목이다. 소방대원이 등장하면서는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펼쳐진다. 실화라고 하면서 실화일 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무엇이 재미있는 것인지를 알아낼 수가 없다. 그리고 모두가 퇴장한 후 마틴 부부가 남아 다시 스미스 부부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이들이 무슨 대화를 하든 결국 어떤 의미가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

 

두번째 작품 수업은 교수와 학생의 수업장면이 점점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녀는 종종 등장하여 교수에게 수학과 언어학을 시작하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교수는 고압적인 자세로 그녀를 제지한다. 그리고 교수가 결국 학생을 죽이고 말았을 때에는 하녀에게 마치 야단맞는 학생과도 같은 자ㅅ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하녀는 교수의 살인을 뒷처리하며 새로운 희생자. 새로운 학생을 맞이한다. 이 상황에서 언어 자체가 폭력이라기 보다는 언어를 통한 수업 자체가 폭력이다. 교수는 끊임없이 말해야하고, 학생은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는 명제가 교수에게는 폭행을 학생에게는 히스테리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마지막 <의자>에는 노인과 노파. 변사 세사람과 수많은 의자들이 등장한다. 노인과 노파 두 사람의 대화에서 시작된 극은 끊임없이 들어오는 의자들로 채워지고 마지막에 황제의 등장에 이르면 거의 위대한 한 인물의 역사가 시작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무대 위에는 분명 노인과 노파. 이 두 사람밖에 없지만 관객은 의자의 존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무대위에 꽉 차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아니 혹은 의자만으로 꽉 차 있는 무대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두 서글픈 노인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간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자 초반에 겸손한 노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과감하고 자신감넘치는 노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황제가 들어오고 변사가 들어와 사인을 하기 시작할 때쯤 감격에 겨운 노인 둘은 변사가 자신의 삶을 기록해 줄 것으로 믿고 자살한다. 그리고 변사는 자신이 벙어리라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소박하게 산다. 대단한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하고, 노인이 늙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내 집의 대장으로 산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그것이 누군가에게 이야기 될 것을 기대한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보라.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주리라 여겼던 변사는 벙어리이며 귀머거리이다. 우리의 삶은 그저 우리로 끝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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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1
가오싱젠 지음, 오수경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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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깝고도 먼 나라가 대개 일본이라고 말하지만, 진정 가깝고도 먼 나라는 중국이 아닐까 싶다. 한동안 이념이 달랐기 때문에 더더욱 가까이하기 힘들었던 나라. 그러나 아주 오랜 기간 함께 역사를 달려왔던 나라. 실은 한문문화권이라고 말하면서 한묶음으로 묶기 때문에 잘 알고 있다고 여겨왔을 뿐. 그 나라에 대해 이야기해보라고 한다면 글쎄 얼마나 잘 이야기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 책에는 세 편의 희곡이 실려있다. <버스정류장>, <독백>, <야인> 이 그것이다. 마지막에 실려있는 부록을 읽어보면 가오싱젠의 희곡에 대한 생각을 알 수 있는데, <야인>은 그의 이러한 관점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버스정류장>은 무언가를 끊임없이 기다리고 좌절한다는 점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떠올리게 한다. 삶이란 끝없는 기다림이라는 보편적 진실이 여기서도 발견된다. 정류장에 모여있는 사람들은 시골에서 시내로 가기를 기다리고 있다. 버스가 오면 그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가 노인은 장기를 둘 것이며 안경잡이는 시험을 볼 것이다. 아이 엄마는 아이와 남편을 돌보는 집안일로 복귀할 것이고, 숙련공은 자신의 기술을 펼쳐 작품을 만들 것이다. 청년은 시내의 자유를 즐길 것이고 아가씨는 만나기로 한 사람을 만나 달콤한 미래를 계획할 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이들의 모든 바람에도 불구하고 버스는 그냥 지나쳐버린다. 때로는 사람이 가득 들어있기 때문에, 혹은 사람이 적지만 바쁘니까 그냥. 또는 외국인들을 위한 버스기 때문에 내국인은 태우지 않고 지나가버리기도 한다. 사람들은 온 몸으로 버스를 막아서 보기도 하고, 버스가 시민들을 위하지 않는다고 제법 그럴듯한 성토를 하면서 정치적 계획을 꾀하기도 하지만. 모든 방법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갈 수 있을 것 같지 않아보인다. 이렇게 놓고 보면 그들은 주류에 속하지 않은 비주류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종점이라고 하는 제법 좋은 위치를 차지하지도 못하고, 버스 기사와 아는 사이라서 세워달라고 말 할 수 있는 인맥이나 지위를 가지지도 못한. 그저 기다리다가 안오면 포기해야하는 시내에서 소외된 인물들이다. 안경잡이의 시계가 일년이 지나고 이년이 지났음을 알려도 포기할 수 없는 시내에 대한 갈망. 그것은 그들 각자가 지닌 인생의 청사진에 대한 갈망이었다. 그러나 그것보다 비를 피하며 천막 속에서 몸을 부대꼈던 그 시간 뒤에 오히려 따뜻한 인간애가 형성되고 자신이 가진 자리에서 새롭고 건강한 미래를 꿈꾸게 되는 장면은 얼핏 지나치게 교훈적인 것 같긴 하지만 인정할 수 있는 마무리이다.

 

<독백>에는 말 그대로 한 배우의 독백이 계속 이어진다. 배우로 살기 위한 방법. 배우가 어떻게 유명해지게 되는 것인지 얼마나 하기 힘든 것인지. 이 배우의 독백을 통해 관객들은 연극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야인>은 3장으로 되어있다. 한 삼림마을에 야인이 발견되면서부터 사람들은 이 마을을 주목하기 시작한다. 야인이 있다는 사람과 없다는 사람이 대립하는 가운데 어린 소년 세모는 야인과 만나 그와 교감하게 된다. 이 소년의 이야기를 반대자는 반대자대로 이용하고 찬성자는 찬성자대로 이용하지만 모두 진실과는 상관없다. 진정한 야인은 삼림마을에서 사라져가고 있는 전통이었으니까. 심한 벌목으로 인해 마을이 물에 잠기는 위험에 처하고, 다양한 종의 나무들과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 안타깝게 느껴졌다.

 

사실 이 희곡은 내용 자체에서 의미를 찾기보다는 형식에서 의미를 찾는 것이 더 맞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용은 왠지 건전가요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상연되는 무대를 볼 수 있다면 온갖 전통 노래와 문화를 즐길 수 있는 그야말로 축제처럼 느껴질 수 있을텐데 말이다. 그러나 실제로 상연된다고 하더라도 중국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내가 백프로 장면을 느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중국문학을 더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잘 아는 것도 없고 읽어본 적도 없지 않던가. 최근에 혜성같이(?) 등장한 위화의 작품 정도 읽어본 것 같다. 그 외의 동양문학들은 전부 일본의 것이 아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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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노그라피아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2
비톨트 곰브로비치 지음, 임미경 옮김 / 민음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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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브로비치 자신이 직접 등장하는 작품이다. 실명도 자주 작품에 거론된다. 그가 마음에 들어하지는 않지만 그의 내면을 그대로 반영한 듯한 인물 프레데릭은 곰브로비치가 자칫 실행하지 못하는 은밀한 계획을 과감하게 실행해 낸다. 작품 내내 그 둘은 행동을 같이 하게 되는데 읽는 동안 나는 곰브로비치가 자기 내면의 자아를 형상화했다면 프레데릭은 그의 본능쯤이 되지 않을까 싶다. 분리되고 싶지만 분리되지 않는. 혐오하지만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 

 

두 사람이 한적한 시골 마을에 내려와서 처음 주목하게 된 인물은 싱싱한 젊은이들이다. 나와 프레데릭 모두 알고 있는 히폴리트의 딸 헤니아와. 그 집 마름의 아들 카롤은 두 사람이 보기에 완벽한 젊음. 생명. 무지. 였다. 이미 삶을 지나와버린 그들이 결코 가질 수 없는 활력. 무지하기 때문에 오히려 순수한 그들의 모든 행동들. 그러나 히폴리트부부는 헤니아를 도무지 신체적으로 우수할 것 없는 변호사 알베르트와 약혼시키기로 결심한다. 이 어울리지 않는 결합을 무심코 넘길 수 없었던 두 사람은 카롤과 헤니아의 관계를 진척시키고 싶지만 두 사람은 서로에게 전혀 이성적으로 끌려하지 않는다. 두사람 모두 이렇듯 성적 매력을 풍부히 가지고 있으면서 서로 사랑하지 않다니! 두 중년은 이들을 자꾸 엮어내려하고, 그럴수록 알베르트는 두 젊은이에게 농락당하는 히스테릭한 약혼자가 되어간다.

 

젊은이들의 위험한 연애에 집착하는 두인물을 따라가다보면 그들이 전쟁 후 자신의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렸음을 알 수 있다. 나치하의 독일. 체제를 전복하고자하는 은밀한 계획. 명령. 살인. 이런 것들에 지쳐버린 이들은 젊은이들의 육체. 욕망. 사랑. 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에게서 자신의 젊은시절을 투영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름다운 어떤 것을 실현해보고싶은 욕망을 그들은 이 젊은이들에게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모든 죽음이 얼마나 허망한지. 한평생 신을 따르는 삶의 극단을 살아왔다고 자부했던 아멜리아의 추한 죽음이나, 반독체제를 위해 헌신했던 위험한 삶을 두려움으로 마감한 시에미안의 허망한 죽음이나, 헤니아에게 도덕적 우위를 가진 어른으로 남고 싶어 선택한 알베르트의 유약한 죽음. 또 두 사람의 계획의 완성을 위해 그저 젊음을 희생당한 올렉의 죽음. 모두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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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8
라우라 에스키벨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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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모 할머니 티타.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부엌에서 살다시피 자란 여인이다. 강인한 성격을 지닌 마마엘레나의 막내딸로 태어나. 아버지의 얼굴도 못 본 채. 앞으로 결혼하지 않고 어머니를 부양해야한다는 전통에따른 책임과 의무만 지닌 채. 그리고 그러한 전통에 묶여있기에는 너무나도 아름답고, 상냥했던 여인.

 

티타는 어머니를 부양해야한다는 의무에 묶여있었지만 마마엘레나의 사랑을 전혀 받고 자라지 못했다. 마마엘레나는 티타가 언제든 자신을 떠날 수 있는 자유를 지녔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라도 생각하지 않도록 만들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였다. 그래서 그녀가 행복에 겨워하는 것도 잔치를 즐기는 것도. 사랑에 빠지는 것은 더더욱 용서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티타는 자유를 갈망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티타는 그토록 자신을 묶어 놓은 전통에 힘들어 하지만 전통적인 요리법은 사랑했다. 그녀가 가문의 가지막 요리전수자라는 사실은 그녀를 묶었던 전통이 그녀 이후에 기능하지 못한다는 사실과 맞물려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전통은 이제 그녀 이후의 시간에는 자기의 영향력을 뻗어내지 못 할 것이다.

 

부엌이라는 공간은 여성의 영역이면서 동시에 억압받는 자의 영역이다. 그들은 이 곳에서 눈물을 흘리고 위로를 나누기도 하고,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요리를 하면서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티타는 이 곳에서 사람들을 향한 자신의 사랑과 욕망을 또 애정과 분노를 모두 담은 요리를 만들어 내었다. 그녀의 요리법은 하나같이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것들이다. 감히 따라하지 못할. 아니 따라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정성을 들인 요리법. 마치 그녀의 순탄치 못한 사랑과 인생을 대변하는 것 같은 그 요리법들.

 

페드로와의 풋풋했던 사랑이 열정으로, 때로는 증오로, 때로는 안타까움과 분노로 변화하는 과정에서 티타는 성숙했고, 자립했고, 성취했다. 부엌에서 시작된 그녀의 삶은 자기 안의 불꽃을 모두 연소하여 자신과 그녀의 사랑을 요리하는 마지막을 예고한 것은 아니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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