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머리 여가수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3
외젠 이오네스코 지음, 오세곤 옮김 / 민음사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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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 대한 사전 지식 없이 읽는 책이 조금은 위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희곡이라는 것만 알았지 부조리극이라는 것도. 언어의 무의미함을 다룬 작가라는 것도 몰랐기 때문에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 희곡의 처음이 되는 대머리 여가수를 읽을 때에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웠다.

 

대머리 여가수에는 여가수가 등장하지 않는다. 두 부부와 한 하녀, 그리고 소방대원이 등장할 뿐이다. 이들이 나누는 무의미한 대화 속에 단 한 번 등장하는 단어일 뿐인 대머리 여가수가 제목이 되었다는 것 자체가 언어의 의미없음을 이야기할 수 있게 해주는 실마리가 되지 않을런지.

 

이들은 전혀 소통되지 않는 대화를 끊임없이 나눈다. 도입부에 스미스와 스미스 부인은 한 쪽만 계속 이야기하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마틴 부부가 등장해서는 두 사람이 부부면서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대화를 시작하다가 결국 부부사이임을 확인하는 것으로 끝난다. 하지만 메리라는 하녀는 다시 등장하여 이들이 사실은 진짜 부부가 아니라고 말한다. 어느 순간 우리는 자기가 자기라고 믿기 때문에 자기가 되는 것은 아닐까. 의문을 가져봄직한 대목이다. 소방대원이 등장하면서는 더더욱 이해되지 않는 상황에 펼쳐진다. 실화라고 하면서 실화일 수 없는 이야기가 계속되고, 재미있다는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무엇이 재미있는 것인지를 알아낼 수가 없다. 그리고 모두가 퇴장한 후 마틴 부부가 남아 다시 스미스 부부의 이야기로 돌아가는 마지막 부분에 이르면 이들이 무슨 대화를 하든 결국 어떤 의미가 있을까 회의하게 된다.

 

두번째 작품 수업은 교수와 학생의 수업장면이 점점 더 폭력적이고 억압적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하녀는 종종 등장하여 교수에게 수학과 언어학을 시작하지 말라고 경고하지만 교수는 고압적인 자세로 그녀를 제지한다. 그리고 교수가 결국 학생을 죽이고 말았을 때에는 하녀에게 마치 야단맞는 학생과도 같은 자ㅅ를 취하게 된다. 그리고 하녀는 교수의 살인을 뒷처리하며 새로운 희생자. 새로운 학생을 맞이한다. 이 상황에서 언어 자체가 폭력이라기 보다는 언어를 통한 수업 자체가 폭력이다. 교수는 끊임없이 말해야하고, 학생은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는 명제가 교수에게는 폭행을 학생에게는 히스테리를 일으킨 것은 아닐까. 읽는 내내 마음이 불편했다.

 

마지막 <의자>에는 노인과 노파. 변사 세사람과 수많은 의자들이 등장한다. 노인과 노파 두 사람의 대화에서 시작된 극은 끊임없이 들어오는 의자들로 채워지고 마지막에 황제의 등장에 이르면 거의 위대한 한 인물의 역사가 시작되는 듯한 느낌마저 든다. 무대 위에는 분명 노인과 노파. 이 두 사람밖에 없지만 관객은 의자의 존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무대위에 꽉 차 있다고 느끼게 될 것이다. 아니 혹은 의자만으로 꽉 차 있는 무대 위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두 서글픈 노인의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른다. 어찌되었건간에 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자 초반에 겸손한 노인의 모습은 사라지고 과감하고 자신감넘치는 노인의 모습이 등장한다. 그리고 황제가 들어오고 변사가 들어와 사인을 하기 시작할 때쯤 감격에 겨운 노인 둘은 변사가 자신의 삶을 기록해 줄 것으로 믿고 자살한다. 그리고 변사는 자신이 벙어리라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는 소박하게 산다. 대단한 어떤 것을 이루지 못하고, 노인이 늙어가는 것처럼 그렇게 내 집의 대장으로 산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그것이 누군가에게 이야기 될 것을 기대한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살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보라. 우리의 이야기를 전해주리라 여겼던 변사는 벙어리이며 귀머거리이다. 우리의 삶은 그저 우리로 끝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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