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주사위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4
마크 앨퍼트 지음, 이원경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절판


상대성이론으로 유명한 아인슈타인의 또다른 이론 통일장 이론. 과학자의 순수한 학문의 결과가 끔찍한 무기가 되어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아인슈타인은 통일장 이론을 발표하지 않고 자기가 신뢰할 수 있는 제자 세사람에게 남긴다. 차마 이 아름다운 이론을 없앨 수 없었던 그가 선택한 소극적이지만 최선의 방법이었다. 그러나 이 이론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누군가가 이들 세사람을 죽이고 통일장 이론을 알아내고자 한다. 세사람 중 마지막으로 죽음을 당한 클라인만 박사의 제자였던 데이비드 스위프트는 죽기 직전의 클라인만 박사를 만나게 되고, 그에게 이 이론의 열쇠가 되는 숫자배열을 듣게 된다. 어떤 사건이 일어난 것인지도 모르는 채 열쇠를 받아든 그는 곧바로 FBI에 체포된다. 놀랍게도 FBI역시 이 이론의 열쇠를 탐내고 있었다. 살인 사건의 배후를 캐는 것 보다 그가 남긴 비밀스런 열쇠를 더 탐내다니. 게다가 그를 위해서는 데이비드의 인권따위는 존중받을 가치가 없는 듯이 행동하기까지 하다니. 이제 데이비드는 자신이 어떤 위험에 처했는지 서서히 깨닫게 된다. 그는 국가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데다, 끔찍하게도 냉정하고 무자비한 용병에게 쫓기고 있는 몸이 된 것이다. 물리학자로서 서지 못하고 과학사 교수가 된 데 그친 그가 물리학의 최고이론을 수호하는 수호자로서 움직여야 한다.
 

과학은 늘 그들의 이론에 대한 책임에 대해 짐을 져 왔다. 그들의 연구가 실행되는 방식에 있어 가치를 선택하는 주체가 과학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인간이 선하지 않다는 사실은 그렇기 때문에 아주 위험한 변수이다. 선한 곳에 사용되리라 예상했지만, 얼마든지 악한 곳에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개인이든, 때로 국가든 상관없다. 오히려 국가는 자기들의 악행을 합리화하기까지 한다. 무자비하다는 측면에서는 악한 개인과 다를바가 없다. 믿을 곳이 있었다면 마이클과 모니크가 눈물을 삼켜가며 이론을 없애버리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지는 않았을테니까. 인간이 신이 알고 있는 영역에 계속 다가가서는 안되는 이유는 어쩌면 이 악 때문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절대 악을 다스릴 수 없으므로.

 

물리학을 잘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에는 전혀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설명하는 일을 하고 있는 작가가 충분히 설명을 해 두기도 했거니와, 설사 설명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이들의 스릴넘치는 도주와 추격을 따라가는 데에 전혀 문제가 없기 때문이다. 단서를 따라가며 하나하나 진실에 접근해가는 방식은 '천사와 악마'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론을 수호하기 위한 도주라는 측면에서는 영화 '세인트'를 떠올리게도 하는 흥미진진한 스릴러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고 명탐정이 태어났다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3
우타노 쇼고 지음, 현정수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제목을 보고 명탐정의 등장을 기대하며 펼쳐들었던 책이다. 물론 명탐정이 등장했다. 사정에 대한 설명만 듣고도 범인이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맞히는 놀라운 능력의 소유자 가게우라 하야미. 거만한 태도로 경사들에게 범인은 누구누구이니 증거는 당신들이 잘 찾아보면 될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는 그의 뒷모습은 얼마나 멋졌는가! 그러나 그는 생계형 탐정이었다. 탐정 노릇밖에 할 수 없어서 이렇게 탐정을 하고는 있지만, 비밀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로 사건을 가지고 책을 써서 돈을 벌지도 못하고, 사람들에게 명탐정이라는 사실을 인정받지도 못하는 것이 늘 불만인 어찌보면 탐정이라기보다 불평많고 생활고에 시달리는 천재백수같은 느낌의 인물이다. 그의 조수인 '나'는 탐정의 명예로운 정의감에 불타지 않는 그에게 약간의 불만을 품고 있지만, 그가 워낙 명탐정이기 때문에 그의 곁에서 시중을 들며, 그가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것을 지켜보는 낙으로 살고 있다. 그러던 중 가게우라가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명탐정이 죽다니! 과연 조수인 '나'는 그의 마지막 조언대로 이 밀실트릭을 풀어낼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이 '나'가 바로 명탐정이 되는 것일까.

 

두번째 사건은 무인도에서의 이야기이다. 지하철 폭파 사고를 일으키고 무인도로 도망친 네명의 남녀와 그를 버리러 왔다가 자기도 함께 갖혀버린 한명의 남자. 다섯명밖에 없는 것이 분명한데도 타살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죽음들이 연달아 일어난다. 최후의 생존자는 누구이며, 결국 살인마인 그가 살아남게 된 것일까 아니면 그가 범인임을 알아낸 마지막 생존자가 생기게 될 것일까.

 

마지막 사건은 탐정소설을 좋아하는 중년 남성의 1박 2일 탐정게임이야기이다. 한편으로 이 이야기는 장난스럽기도 하고, 탐정 소설 속의 탐정 소설을 읽는 것 같기도 하다. 꿈을 이루고 싶었다는 후유키의 발언이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사건이야기였다.

 

세 편의 작품은 모두 폐쇄된 공간에서 사건이 일어난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마지막에는 약간의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 역시 그러하다. 두번째 사건의 경우는 아무리 명탐정이라도 결국 풀어낼 수 없을지 모르겠다. 소설만으로는. 나는 과학수사대에서 디엔에이를 검사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어찌되었든 명확하게 결론을 내려줘!! 라고 외치며 말이다. 세 이야기가 각각 독립되어있으면서 동시에 묘하게 동일하게 느껴지는 작품이었다. 스릴 넘치는 밀실트릭의 세계를 느껴보고 싶은 독자에게 강력하게 추천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교차로의 밤 매그레 시리즈 6
조르주 심농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매그레 시리즈 1권이었던 수상한 라트비아인 이후에 매그레 시리즈에는 범죄조직은 등장하지 않는다. 불쌍한 한 개인의 안타까운 과거가 드러나거나, 과거의 잘못에 묶여 기이한 행동을 해야했다거나 하는 등 대부분의 범인들은 전문화되지 않은 인물들이었다. (청부를 했던 경우를 제외하고)  그런데 이번 작품에서는 대놓고 조직이 등장한다. 게다가 범인일 것 같은 인물도 줄곧 얼굴을 나타내며 나좀 끼워달라는 듯이 조잘대고 다닌다. 아마도 이번 작품을 영화화 한다면 범인역할을 하는 배우가 굉장히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악인의 표정을 지을 수 있는 인물이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신분과 본성을 숨기고 살아가는 교차로의 인물들 사이에 고고하게 품위를 유지하는 귀족 남자가 있다.  사랑 때문에 자신의 안전한 지위와 부를 버리고 떠나온 남자. 하지만 외눈박이에 음침하다는 이유로 그의 고귀한 성품을 인정받지 못하는 남자. 그의 모습은 마치 폐허 속에 유일하게 버티고 있는 한 송이의 꽃같다. 심문에 단련이 된 인물들도 버티지 못한다는 긴 심문시간을 고고하게 버틴 그에게 매그레가 계속 신경을 쓰는 이유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딘가 묘하게 부조화스러운 사람이라는 느낌. 범죄에 단련되지 않았을 것 같은데도 전혀 주눅들거나 당황하지 않는 모습. 읽으면서 나는 그가 범죄자라면 아주 끔찍하게 무서운 인물일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까지 들었었다.

여러면에서 흥미진진했던 6권을 끝내고 이제 천천히 7권을 기다려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채털리 부인의 연인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5
D.H. 로렌스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3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콘스턴트는 처녀적부터 예술가였던 부모의 영향으로 자유롭게 성장했다. 자유로운 연애를 즐겼고 성문제에 있어서도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남편 클리퍼드가 전쟁에서 하반신마비라는 부상을 안고 돌아온 후 그의 아내로서, 남작부인으로서 품위있게 살아가는 일에 익숙해진다. 처음에는 남편의 든든한 지지자이자, 조력자로서 살아가는 삶에 그녀도 뿌듯함을 느꼈다. 그러나 남편 클리퍼드는 귀족으로서의 자아가 매우 강했고, 명성을 얻고 싶어했으며 그러기 위해 그녀로서는 불필요하다고 혹은 부적절하다고 생각하는 일들도 행했다. 점점 그녀는 그에게 지쳐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영혼은 그의 성 안에 갖혀있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처녀적에 누렸던 자유로움에 비한다면 영국 광산을 운영하는 채털리부인의 삶은 꽉막힌 것이었다.

 

그녀를 속박하는 남편으로부터 그녀가 적극적으로 벗어나지 않는 데에는 한때 그녀가 그를 지켜주는 역할에 매우 만족했기 때문이다. 또한 아직 그녀는 그의 옆자리를 비워버리고 싶을만큼 그로부터 멀어지지 않았다. 때로 아주 귀찮기는 했지만, 그녀가 그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아는 한 그녀는 그를 떠나버리지 않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사냥터지기에게 몸을 주고 그의 열정과 함께 자신의 내면 속 간직하고 있던 열정을 알게 된 순간. 어쩌면 남편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이러한 그녀의 일탈이 일견 이해되는 이유는 남편이 그녀를 정서적으로 학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그녀를 충분히 사랑해줄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않았다. 하반신 마비가 모든 접촉 불가능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 요컨대 그가 너무나 정신적으로만 그녀를 원했다는 점은 한편으로 그녀의 여성성에 대한 학대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아직도 옛 영국에 속해있는 그녀가 과연 연인과의 관계를 어떻게 유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이 소설이 부인의 연애담을 골격으로 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전쟁 후 영국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계급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이행되는 시기에 나타나는 갈등과 불안감. 전쟁 후의 정신적인 공황상태. 젊은이들의 의미없는 토론과 논쟁. 시간의 허비. 노동자들의 고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니고 있는 건강한 원천들을 이 소설에서 볼 수 있다. 오히려 작가는 노동자 계급의 정신상태가 지배 계급의 그것보다 훨씬 단순하고 명료하며 삶에 가까운 듯 생각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음 세대를 생산하지 못하는 클리퍼드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이 당연시되는 마을 사람들의 삶이 일종의 상징이라면 말이다.

 

이제 2권에서는 본격적으로 이들의 대립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그녀의 연인은 사냥터지기이니까. 육체가 없는 귀족과 육체를 긍정하는 평민의 대립이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키친 민음사 모던 클래식 5
요시모토 바나나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09년 11월
평점 :
절판


 



키친

p.8
 
며칠 전, 할머니가 죽었다. 깜짝 놀랐다.

확실하게 존재하였던 가족이란 것이, 세월을 두고 한 명 두 명 줄어들어, 지금은 나 혼자라 생각하니 눈앞에 있는 모든 것이 거짓말처럼 보였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태어나고 자란 방에 나 혼자 있다니, 놀랍다.

무슨 SF같다. 우주의 어둠이다.

 

 



달빛 그림자

p.153
  손을 흔들어주어서, 고마워요. 몇 번이나 몇 번이나 흔들어준 손, 고마워요.

 

 

 

 

 

사랑하는 이의 죽음은 현실과의 분리를 가져온다.

 

갑자기 현실에서 이탈하는 느낌. 내 옆에 있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버렸는데, 어디로 갔는지 알 수도 없고, 볼 수 없다는 사실도 믿을 수가 없고. 그래서 현실이 현실이 아닌 것 같은 느낌. 우주에 떨어진 느낌. 다시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서 어쩌면 환상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미카게는 할머니를 잃고 부엌에서 잠을 잔다. 그녀에게는 점점 편안한 곳으로 이동했을 뿐이라는 설명으로 족한지 모르지만, 할머니가 있었던 시기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사실은 그녀의 상처가 그녀를 그곳으로 몰아넣었다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그런 미카게에게 유이치가 전화를 해서 같이 살자고 한다. 그곳에서 그녀는 점차 안정을 되찾아간다. 실은 아버지이지만 어머니로 살고 있는 에리코씨와 때로 무심한 듯 따뜻한 듯 한 유이치와 함께 살아가면서. 이 두사람 역시 유이치의 친어머니를 잃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서일까. 유이치와 미카게는 함께 꿈을 꾸고, 이 꿈을 통해 그녀는 다시 현실로 돌아올 힘을 얻는다.

 

달빛 그림자에서도 환상의 힘은 계속된다. 사랑하는 연인 히토시를 잃은 사츠키는 의문의 여인 우라라를 통해 히토시를 다시 만나는 환상을 체험한다. 그의 마지막이 너무나도 갑작스러웠기에 사츠키는 자신에게 생긴 상처가 상처라는 인지조차 하지 못한 채. 아니 그것을 치유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도 갖지 못한 채 그저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 그녀에게 마지막 히토시의 손짓은 이제 스스로 흘러가는 시간의 흐름을 따라 여행을 할 수 있는 힘을 주게 된다.

 

그러나 환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이들에게 치유를 가져다 준 것은 환상만이 아니다. 꿈을 꾸거나 시간의 흐름이 역행하는 등의 신기한 현상은 우리에게 안정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상처는 사람으로 치유된다. 미카게의 곁에 있어 주었던 유이치와 에리코씨가. 에리코씨의 죽음 뒤에 어둠 속으로 파묻혀버렸던 유이치에게는 다시 미카게가. 각각의 연인을 잃은 사츠키와 히라기에게는 서로가 있어주었다. 상처를 알아봐주는 사람이. 그 상처에 갑작스럽게 손을 대기보다는 살살 바람을 불어 상처가 마르기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상처가 마르고나면 딱지가 앉고, 딱지 속에서 서서히 새 살이 차오를 것이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